고개를 숙인다. 마음을 담아 인자하니 허리까지 굽혀진다. 아파트를 나서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자연스레 미소가 피어난다. 바쁜 이는 묵례를 하지만 대부분은 차창을 내리며 인사말을 건넨다. 잘 다녀오라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기분 좋은 하루의 출발이다.
우리 아파트 정문 경비 김 반장은 칠순의 고령이지만 늘 주민을 위해 무엇을 할까 하고 사방을 살핀다. 주민 체육센터 옆에 근무할 때는 하루 몇 번씩 만나도 항상 웃으며 인사했다. 창고 열쇠를 원하면 직접 나와서 열어 추었다. 성가시게 하는 것 같아 열쇠만 달라고 해도, 이게 자신이 할 일이라며 웃었다. 연세 많은 어른이니 대강하라고 하면 “여기는 제 직장입니다. 어른 노릇은 집에서나 하면 되지요.” 했다.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 얼마나 본이 되는 생각인가. 그러니 운동하는 사람들도 커피나 간식거리를 챙겨오면 아저씨께 먼저 드리고 먹었다.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해 오자 김 반장에게서 인터폰이 왔다. 지하 2층의 우리 차에 헤드라이트가 켜져 있다며 배터리 손실을 걱정한다. 자동이라 적정시간 후 꺼진다고 하니 그제야 마음을 놓는다. 1층부터 지하 2층까지 세 개 층에 주차된 많은 차량을 모두 살펴 문제가 있으면 주인에게 연락하는 성실함이 놀랍고 고맙다.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하면서 호감과 신임을 얻으니 짧은 경력이지만 반장 직책을 맡게 되었다.
반면, 우리 동 경비 아저씨는 아침에 마주쳤을 때 빗자루로 낙엽을 쓸어 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주민들이 들고 나며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서 생긴 찌꺼기 치우는 게 너무 힘든단다. 조금만 신경 쓰면 문이 닫힐 텐데 휙 열고 가버리는 주민도 문제고, 출입구 현관 청소도 내 일이다, 하면 될 것을 짜증 내는 아저씨도 안 됐다.
외출했다, 오니 주문한 쌀이 경비실에 보관되어 있다. 한 포대의 쌀을 들고 올 일이 걱정이다. 현관을 쓸며 투덜거리던 모습이 떠올라 말 꺼내기가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들어다 줄 것을 부탁하니 의외로 웃으며 번쩍 옮겨준다. 고마워서 따끈한 커피와 과일 한 접시를 들고 내려갔다. 잘 먹겠다며 받는 그이도 건네주는 나도 기분이 좋다.
경비원이 관련된 사건이 작년부터 올가을까지 전국에서 연이어 일어났다. 대부분이 폭력, 갑질, 눈물, 해고 등 부정적인 것이다. 언젠가는 모멸감을 못 견딘 경비 아저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를 접하며 가슴이 서늘해졌다.
훈훈한 소식도 들린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 때부터 일했던 경비원이, 암 진단을 받고 사직하게 되었다. 그것을 안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치료비에 보태 쓰라고 전달했다. 아파트 주민들이 경비 아저씨의 건강을 빌며 지갑을 채워 준 덕에 그는 마음 편히 수술한 후 쉽게 일어나 건강해졌다고 한다.
어느 여고의 경비원 미담도 떠오른다. 한 학생이 도시락을 둔 채 등교해 버려서 엄마가 들고 갔다. 딸이 몇 반인지 잊은 그녀가 그것을 맡기며 딸아이가 찾으러 올 때까지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경비 아저씨는 그 학생이 몇 반인지 알고 있다며 교실로 가서 전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전교생 모두의 이름과 학년 반을 외우고 있다고 한다. 아침에 아이들이 교문에 들어서면 눈을 맞추며 “아무개 안녕. 오늘 기분은 어때?” 한단다. 학생들은 아저씨께 인사하며 보약을 먹은 듯 기운이 난다. 그는 수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이름과 반을 어떻게 외웠을까. 종일 책을 들여다보며 조바심치는 학생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 뜻을 안 아이들도 자주 음료수나 빵을 아저씨 손에 쥐여 주며 정을 나눈다.
친구는 아파트를 들고 나며 경비 아저씨를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했다. 어느 날 아저씨가 항상 밝게 예를 갖춰주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그 덕에 일할 맛이 난다며 작은 쪽지를 건넸다. 거기에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 적혀 있었다. 선행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있다는 의미이다. 쉬는 날 글 배우러 갔다가 거기서 적어온 것이라 했다. 자기가 한 일이라곤 인사가 다인데 성원을 받은 듯 감동했다는 경비 아저씨의 마음이 친구에게 깊이 와 닿았다. 웃으며 인사하고, 좋은 글귀를 나누며 둘은 서로 응원과 격려와 감동을 주고받았다.
경비원은 공동체의 귀한 구성원이다. 그들이 없으면 생활이 불편하고 주변도 불결해질 것이다. 다정한 말 한마디로 위하고 다독이는 정이 있어야 한다. 서로 인격적 대우를 통해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을 할 때 행복한 주거 공동체가 될 것이다. 동짓달 새알 가득한 팥죽 한 대접, 설날 따끈한 떡국 한 그릇을 경비 아저씨께 대접하는 것은 예로부터 전해오던 우리의 인심이다.
오늘 아침도 아파트를 나서는 사람들은 웃으며 마음을 나눈다.
“수고하십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기분 좋게 주고받는 인사가 하루를 시작하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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