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
내 몸의 눈, 코, 귀, 혀와 손이 별개의 기관 같지만 결국 한 몸이듯이 그 다섯 가지 눈은 붓다라는 하나의 인격이 여러 작용으로 드러나는 모습일 뿐입니다. 부처와 중생, 번뇌와 보리, 주관과 객관, 본질과 현상을 둘로 나누어 모양을 지으면 그것은 상(相)이 되어버립니다. 일체가 한 몸이고 하나임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일체동관(一切同觀)입니다.
1. 육안(肉眼)은 육체의 눈입니다. 육안은 시각적 기능만 의미하지 않는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총칭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가장 발달된 감각기능인 시각으로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대표한다고 말 할 수 있다.
2. 천안(天眼)은 사물의 근본을 통찰하는 직관의 힘입니다. 천안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사람에 따라 더 발달해 있기도 하고 덜 발달해 있기도 합니다. 천안통(天眼通)은 세간의 모든 고락의 모양과 각가지 모양을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통력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신통이 중생을 미혹케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통을 잘못 쓰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중생은 자기 이익 따라 움직이므로 신통과 진리를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부처님은 절대로 신통을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신통력이 해탈의 길을 열어 줄 수 없습니다.
3. 혜안(慧眼)은 지혜의 눈입니다. 천안은 육안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혜안은 그와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세상의 참 모습을 바로 볼 줄 아는 눈, 제법이 공한 이치를 보는 지혜의 눈이 혜안입니다.
이 골짜기에 사는 사람은 이 산이 동산(東山) 인줄 하고, 저 골짜기에 있는 사람은 이 산이 서산(西山) 인줄 압니다. 지혜의 눈으로 보면 이 산은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닌 그냥 산입니다. 옳으니 그르니, 잘했느니 잘못했느니 하는 시비분별을 떠나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혜안입니다. 수행 정진해서 지혜를 증득하면 혜안이 열립니다.
4. 법안(法眼)은 인연 따라 일어나는 만상(萬象)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훤히 보는 안목을 말합니다. 사물이 본래 정해진 실체가 없는 이치를 보는 안목은 혜안입니다. 혜안이 열리면 시비 분별하는 마음이 없어져 편안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중생의 번뇌를 사라지게 할 힘이 부족합니다. 인연 따라 일어나는 갖가지 모습을 훤히 볼 줄 아는 법안이 열려야 보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파도가 생겼다 사라지는 모습만 보는 것은 중생의 안목입니다. 바다 전체를 보면 파도가 생겨났다 할 것도 없고 사라졌다 할 것도 없는 생멸이 공(空)한 세계를 보는 눈이 혜안입니다. 그러나 더 넓고 깊은 눈으로 보면 바다는 단지 하나가 아닙니다. 그 하나로부터 수많은 파도가 생기고 풍랑이 일어납니다. 바람의 변화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온갖 풍랑과 파도의 가지가지 미묘한 현상을 훤히 다 아는 안목이 법안입니다. 법안이 열려야 보살행을 이루어 중생을 제도할 수 있습니다.
5. 불안(佛眼)이란 일체가 여여(如如: 있는 그대로 그렇고 그렇다)함을 깨친 안목입니다. 여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붓다의 지견에 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안이 열린 붓다는 주객을 완전히 떠난 경지이므로 보이고 보이지 않는 것, 깨닫고 깨닫지 못한 것, 법과 법이 아닌 것 등등 모든 구별과 차별과 대립이 없습니다. 주객이 완전히 끊어져 오고 감이 없고 주고받음이 없으니 그야말로 일체가 다 같음을 보는 경지입니다.
불안의 경지, 주와 객이 사라진 경지,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이 구별되지 않는 경지에서는 ‘본다’는 말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습니다. 손으로 음식을 집어 입에 넣는 것을 보고 ‘손이 입에게 보시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손과 입이 한 몸이듯 주체와 객체도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본다는 이름만 존재할 뿐이며, 부처님은 다섯 가지 눈을 다만 눈이라 이름 할 따름입니다.
부처님은 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을 모두 하나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 깨달으면 부처요, 그 마음이 자비하면 보살이요, 그 마음이 청정하면 성문연각이요, 그 마음이 선량하면 천인이요, 그 마음이 정직하면 인간이요, 그 마음이 성내고 짜증내면 아수라요, 그 마음이 어리석으면 축생이요, 그 마음이 탐욕에 휩싸이면 아귀요, 그 마음이 번뇌 망상에 찌들어 있으면 지옥이라 했습니다. 중생도 부처도 다 이 마음 가운데 있습니다.
출처 : 법륜 스님 <금강경 강의 제 1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