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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뜨는 곳엔 사이렌 어김없이…
2005년 익산과 천안에서 두 명의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이 같은해 8월 드디어 경찰에 붙잡혔다.
20대 초반이었던 그는 범죄행각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아이고 끔찍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지난 2005년 4월 8일 새벽 전북 익산시의 한 주택가.
평소 같았으면 조용했을 동네 골목에 이른 새벽부터 주민들이 잔뜩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불상사가 있었던 것을 말해주듯 주택가 주변에는 붉은 핏자국이 뚝뚝 떨어져 있었다.
핏자국이 이어진 한 주택 옥상에선 젊은 여인의 사체가 발견됐다.
나체 상태의 여인은 예리한 흉기에 의해 온몸이 난자된 상태였다.
대체 누가 왜 이 여인을 이토록 참혹하게 살해한 것일까.
이번에 전북지방경찰청 강력계 장승우 형사가 전하는 얘기는 이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저지른 20대 청년과 상상을 초월하는 그의 범죄행각에 대한 것이다.
전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근무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장 형사는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4개월간의 수사 끝에 검거된 범인은 출소한 지 열흘밖에 안된 스물세 살짜리 청년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2건의 살인과 100여 차례에 달하는 강도행각을 저지르는 등 그의 범행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그는 단지 반항한다는 이유만으로 두 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것도 모자라 자신이 살해한 여성의 사체를 농락하는 엽기행각을 보이기도 해 당시 전북 도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정말 우리를 놀라게 했던 것은 일말의 뉘우침도 모른 채 추가범행 계획을 담담히 털어놓던 냉혈한의 모습이었다.”
우선 장 형사로부터 사건 당시 현장 상황에 대해 들어보자.
옥상은 그야말로 잔혹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했다. 피비린내가 진동을 할 정도였으니….
사체의 상태로 짐작컨대 여인은 살해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됐다.
얼마나 억울했던지 눈도 감지 못했더라. 현장 상황으로 판단컨대 누군가 다른 곳에서 범행을 저지른 뒤 사체를 이곳으로 옮겨왔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조사 결과 피살된 여인은 사체가 발견된 곳에서 20m쯤 떨어진 2층짜리 주택에 살고 있던 김인애 씨(가명·당시 25세)로 밝혀졌다.
집 안에 어지럽혀져 있는 옷가지며 집기들로 보아 누군가 김 씨의 집에 침입했음이 분명했다.
또 김 씨의 방에 흥건하게 남아 있는 핏자국들은 사건 당시의 참혹한 정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수사팀을 더욱 분노케 한 것은 김 씨의 사체에서 성폭행 흔적까지 발견됐다는 사실이었다.
식구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2층까지 올라와 잔혹하고 파렴치한 범행을 저지른 ‘악마’는 대체 누구일까.
통상적인 수사절차에 따라 수사팀은 사건 당일의 목격자를 찾는 동시에 김 씨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른 새벽 수상한 사람을 봤다는 목격자는 없었고 김 씨의 주변에서도 사건과 연관 지을 만한 인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건을 해결할 만한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한 채 수사는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다음은 장 형사의 얘기.
우리는 전북지역의 동일범죄 전과자와 최근 출소자들을 상대로 일일이 탐문수사를 진행했다.
동시에 범인이 다른 지역에서도 범죄행각을 벌일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범위를 넓혀 전남과 충남북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는 인물들까지 일일이 수사를 진행했다.
당시 수사팀이 용의선상에 올린 동일수법 전과자 및 지역 불량배의 수는 무려 2만 5000여 명.
또한 수사팀이 취합해 분석한 통신자료도 100만 건에 달했다.
이어지는 장 형사의 설명.
광범위한 통신수사와 탐문수사를 진행한 결과 유력하게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이 있었다.
바로 익산에 거주하던 박용수(가명·당시 23세)였다.
박용수는 익산 살인사건이 일어나던 날 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는데 사건 당일부터 휴대폰 배터리를 빼놓고 일체 사용하지 않는 등 수상한 행적을 보였다.
그러던 5월 1일 줄곧 꺼져 있던 박용수의 휴대폰이 천안에서 잠시 켜졌다 꺼진 것이 포착됐다.
박용수가 천안에 왔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나흘 후인 5월 5일 충남 천안에서 또 한 건의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천안시 신부동의 원룸에 혼자 살고 있던 이성혜 씨(가명·여·당시 22세)가 흉기에 찔린 처참한 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관할 경찰서에서 즉시 수사에 착수했으나 좀처럼 뚜렷한 용의자가 드러나지 않아 경찰의 애를 먹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익산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던 전북경찰청 형사들에게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안겨주게 된다.
장 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당시 우리는 박용수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박용수가 뜨는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관할서에서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박용수가 가는 곳마다 사건이 터진 사실이 확인되더라.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범행을 한 흔적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었다.
천안 이성혜 씨 살인사건도 그중 하나였다.
박용수가 천안에 왔다는 것이 확인되고 난 며칠 후 천안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을 보니 더욱 ‘뭔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사팀은 천안 살인사건 역시 박용수와 어떤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사건에 대해 더욱 주목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익산 살인사건과 천안 살인사건의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됐다.
두 사건이 동일인에 의해 저질러졌을 가능성이 커진 셈이었다.
다음은 장 형사의 설명.
두 사건은 피해자가 젊은 여성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무관한 사건이었다.
천안 이성혜 씨 살인사건에 대해 살펴보던 중 우리는 사건이 벌어지기 며칠 전인 4월 30일 이 씨의 바로 옆집에서 절도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범인이 남긴 것이라고는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이 전부였다.
족적은 유명 브랜드 운동화의 것으로 특이한 문양을 지니고 있었는데 놀라운 사실은 그 집에서 나온 족적이 익산 김은애 씨의 집에서 발견된 족적과 일치했다는 점이다.
익산에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천안까지 넘나들었음을 증명해주는 단서였다.
범인이 한 번 범행을 저질렀던 원룸에 또다시 찾아와 그 옆집에 살던 이 씨를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었다.
특히 수사팀은 두 사건 모두 범인이 주방에 있던 식칼을 흉기로 사용한 점, 비닐장갑을 끼고 범행을 한 점,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한 점 등 범행수법 면에서도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용의자 박용수를 추적하는 작업은 무려 4개월 가까이 계속됐다.
그리고 마침내 8월 7일 박 씨는 후배와 함께 훔친 타를 타고 절도행각을 일삼던 중 연고지 부근에 잠복해 있던 수사팀에 의해 체포된다.
이어지는 장 형사의 얘기.
전주시 송천동의 한 아파트 부근에서 검거될 당시 박 씨는 ‘왜 나를 잡아가려 하느냐’며 강하게 저항했다.
여기서 일일이 밝힐 수는 없지만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족적 및 수개월에 걸친 통신·탐문수사 결과 등은 이미 박용수가 두 건의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 방증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박용수는 경찰에 와서도 절도만 인정하고 살인에 대해서는 완강히 부인했다.
우리는 박용수에게 ‘(익산 사건) 유전자 확인만 하면 끝난다’고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박용수의 표정이 변하는 것이 보이더라.
결국 얼마 뒤 박용수는 ‘다 말하겠다. 사실은…
내가 다 했다’라고 자백하기 시작하더라.
그렇다면 불과 한 달 동안 두 명의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박용수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조사 결과 박 씨는 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복역하다 그해 3월 말에 출소한 상태였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살면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박 씨는 청소년기를 심하게 방황하며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박용수는 170㎝도 안 되는 키에 왜소한 체격을 지닌 인물로 미남형이었다.
겉보기에 결코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를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박용수는 모든 범행을 인정한 후에도 놀랄 만큼 냉정하고 태연한 모습을 보여 오히려 수사팀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당시 출소 후 박 씨는 범행대상을 물색하던 중 김인애 씨의 집을 타깃으로 정하고 침입하게 된다.
그러나 집 안에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2층 방 안에서는 김 씨 부부의 딸 김인애 씨가 잠들어 있었다.
다음은 장 형사의 설명.
금품을 훔치기 위해 집 안을 뒤지던 중 김인애 씨가 잠에서 깬 거다.
박용수는 주방에 있던 부엌칼로 위협하면서 김 씨의 옷을 벗게 한 후 성폭행을 하려 했다고 한다.
김 씨가 소리를 지르며 심하게 반항해 살해하고 말았다는 게 박용수의 진술이었다.”
그러나 수사팀을 더욱 경악케 한 것은 범행 후 박용수가 보인 엽기행각이었다.
이어지는 장 형사의 얘기.
일반적으로 범인들은 범행 후 서둘러 현장을 뜨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박용수는 달랐다. 그는 죽은 김 씨를 이불로 둘둘 말은 뒤 20m 정도 떨어진 이웃집 옥상으로 옮겼다.
그리고 피투성이 사체를 상대로 몹쓸 짓을 하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시간’(사체와의 성관계)은 온갖 강력범죄를 담당하는 형사들조차도 거의 경험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특이한 케이스다.
박용수는 ‘택시를 타고 도망치려다 또 그 생각이 나서 한 시간 후 다시 옥상으로 갔다.
그런데 그땐 이미 이웃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어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 수사팀의 귀를 의심케 만들었다.”
박 씨는 그 길로 KTX를 타고 천안으로 올라갔다.
일용직 노동일을 하며 도피행각을 벌이던 박 씨는 그후 교도소 동기인 한 후배와 함께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를 전전하며 100여 차례에 걸쳐 과감한 절도행각을 벌여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씨는 또다시 두 번째 살인을 하게 된다.
이어지는 장 형사의 얘기.
박용수가 두 번째 살인을 하기까지는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이미 박용수가 살인에 무감각해져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특히 박용수는 ‘익산 김인애 사건 당시 성폭행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흔적이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 후에는 일절 성폭행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로 치밀했다.
결국 강도살인·강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 씨는 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