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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뮤지컬 간도 아리랑(북간도)ㅡ
(댓글주시면 교정하겠습니다.)
오늘 3ㆍ1절을 맞이하여 북간도를 그리며 당시 공연과 "문화독립군단"도 창단과 함께 우리 한 민족의 생활상과 민족문화를 생각해 봅니다.
ㅡ 사랑하는 자녀를 뺏어도 좋고
ㅡ 개척한 땅을 뺏어도 좋고
ㅡ 온 국민을 죽여도 좋고
ㅡ 희망을 뺏어도 좋단말인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1995년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창작 뮤지컬 북간도 간도아리랑을 기획ㆍ제작하면서 북간도를 방문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다녔다.
당시 간도아리랑은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故 안수길 선생의 원작 북간도를 새롭게 각색하여 민족 수난기에 해당하는 시점과 배경을 북간도를 이주한 이주민의 삶을 총체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기획ㆍ제작자로서
원작자의 친족들과 만나 대화를 한 바 있다.
당시 세종문화회관 시립뮤지컬단(가무단)은 1961년 예그린악단의 창단을 모체로 35년(95년의 기준)의 전통을 지닌 뮤지컬 전문단체이다.
예그린의 "살짜기옵서예" 필두로 시집가는 날, 대춘향전, 우리고유의 정서와 포기와 베스, 돈키호테, 지붕위에 바이올린, 유논과 아보스, 가스펠, 지저스 슈퍼스타 등 뮤지컬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
뮤지컬 "간도아리랑"을 통해 과거를 짚어보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내다보고자 함이었다.
오늘 3ㆍ1절을 맞이하여 북간도에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각각 수천 명씩 모여 만세시위를 이어갔다. 대한독립만세!
일제 탄압에 맞서 독립을 외쳤던 선열들의 용기와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3.13. 화룡현 이도구 4400명,
3.13. 화룡현 용정 4000명,
3.16. 화룡현 두도구 1000명,
3.17 동녕현 삼차구 4000명,
3.18. 화룡현 청산리 900명,
3.20. 훈춘현 훈춘 3000명,
3.26. 왕청현 백초구 1500명,
3.26. 연길현 국자가 2000명,
3.28 훈춘현 구사평 4000명,
3.28 왕청현 라자구 1000명,
3.30. 훈춘현 한ㅇ자 수천명,
4. 4. 화룡현 황전자 1500명,
4. 7 훈춘현 녹도 1000명
우리는 선열들의 그 용기에 의해서 우리 후대들은 행복한 문화생활을 하고 즐기고 있다는 것은 고맙고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뮤지컬을 세계화 무대로 우리 선조들로부터 훌륭한 문화유산을 물려 받았기 때문에 문화대국으로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77년도 미국 30개 주립대학 순회할 때, 뉴욕타임스의 기사 평가와 78년도 유럽일주 순회공연을 통해 우리는 이미 세계화로 위대한 민족이었다.
더욱 남북통일을 위해 서울예술단을 83년도 창단(단장: 정부고위급 인사/ 총무: 최창주 출연겸)하여 85년 9월 生과 死의 갈림길 38선을 통과하여 평양대극장에서 공연을 한 바도 있습니다.
오늘 3ㆍ1절을 맞이하여 이제 문화독립군단을 통해 곧 통일기반 조성하여 남북통일이 될 것을 예시해서 생각해 봅니다.
건강캠페인입니다 제일의 富는 건강입니다 건강이 있고 난 다음 그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飛松 최창주 평론가 석좌교수
전 예그린악단원
전 세종문화회관 뮤지컬 기획담당(실장)
전 한예종 교수 연희학과장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차관급)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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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평>
KBS 한민족 방송
<열사의 소리 항일의 깃발>
창단공연: 일시/ 2019.3.9(토). 17:00.
장소/ 대구 콘서트 하우스
제목/ "문화독립군단" 창단에 즈음하여(II)
삼일절 100주년 특집 '열사가 소리 항일의 깃발' KBS-라디오 한민족 방송으로 3월 2일 방송된다. 인터뷰를 다음과 같이 하고 왔다.
오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하나 ~ 정치 지도자들의 만남ㅡ "정치는 적을 만들고 예술은 친구를 만든다." "문화는 보이지 않는 핵폭탄이다." 예술가의 논리이다. 그래서 진정한 독립을 위해 100주년을 맞이하여 <문화독립군단>을 창단했습니다.
올해가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1919년 임시정부, 1932년 일본의 상해사변, 1940년의 광복군 창설, 1945년 해방을 맞게 된다. 이제 미래를 설계하고 2019년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ㅡ 꼭 영화 25시와 같다. 人間, 한 사람의 비굴한 권력의 욕심으로 인해 주인공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고난의 세월을 보내다가 결국 가정을 되찾는 내용이다.
권력이 부폐한 것이 아니라, 부패가 권력을 잡아서 나라가 흔들리는 것이다.
그동안 역사와 인류의 원형문화와 한민족 문화는 물론, 임시정부 수립정신의 얼을 되찾는 정신문화운동의 느낀점을 평론가로서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3.1 운동이냐? 혁명이냐?
총독부 기관지에는 3.1폭동, 조선폭동, 조선난동 등, 임시정부 신문에는 3.1독립선언, 3.1만세, 3.1시위 등으로 불렀다. 혁명은 명예, 산업, 정치체제를 바뀌는 천지개벽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서로 의견들이 다르겠지만 혁명은 속국에서 혁명을 할 수 있느냐의 반론도 있으나, 운동과 혁명을 함께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을 해보았다. 왜냐하면, 일제가 태극기만 들고 있는 소녀들의 손목을 겨냥했고 무차별하게 군화와 총칼로 학살했다.
이렇게 수모를 당하면서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독립은 되었지만 되돌아 볼 필요성이 있다. 사회, 정치, 경제 외에 문화측면으로 볼 때, 아직 일본, 이태리, 영국 등, 서양의 문화식민지로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일제강점기 시대를 되돌아 볼 때는 국가사랑, 나라사랑이라는 명분과 정신으로 우리민족은 항거하고 항쟁을 했었다.
예로 우리의 조선연극사(김재철)의 출판된 책을 보면 우리의 전통문화예술에 대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우선 조선연극사의 광대는 연극배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신오위장(在孝)은 판소리 6마당(춘향가, 박타령, 토끼타령, 적벽가, 심청가 등 괘씸한 洋國/되놈) 가창을 불러 신재효는 歌劇化 하였다.
그 중간에 바톤을 이어받은 이인직(血의 淚)은 고종의 칙허를 받아 내탕금(內帑金)으로 로마의 극장을 본떠서 국립극장겪인 원각사(圓覺社)를 건축해서 구극극장으로 변하여 官妓의 歌舞場이 되었고, 광대들의 재담, 춘향전, 심청전 등 공연을 하였다.
또한 1912년 박승필의 유일한 광무대를 건축하여 고전음악, 광대줄타기, 검무, 기생의 가무, 흥부전 등을 공연하였기에 예전부터 협률사원들이 조직되어 지방공연인 가면극, 심청전, 춘향전 등을 함께 하였지만, 협률사는 예술행위를 함께 하다가 1914년도에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그러다가 1930년 권상장(勸商場) 뒤에 미나도좌(座) 라는 극장이 건축되어 신극(新劇)을 공연하였지만, 승무, 검무, 고전음악, 가요, 춘향전, 이동백은 歌手長 등이 활동하였다. 그러나 11윌 20일 부터는 영화상설관이 되었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민족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 Work and Play 즉, 논에 모를 심을 때도, 사람이 죽어나갈 때도 놀면서 일하는 흥의 민족이다. ~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어야~ 뒤야 북망산이 어디메냐 ~ 어허야 뒤야 ~
우리는 恨이 맺힌 민족이지만 흥의 민족이다. 물론 수많은 외침을 받아서 역사 학자들도 몆 번을 외침받았는지 모를 정도로 외침을 많이 받아 한(恨)이 맺혔지요. 그러나 흥(興)의 민족으로서 삶의 소리(노래)이다.
아울러 舊劇인 판소리의 복창터지는 소리를 하며 되놈들을 비평하면서 恨을 興으로 풀어내고 달래면서 나라사랑, 국가사랑을 하며 민족의 소리를 외치고 있을 때에 ~ 조선연극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동경유학생들에 의해 러시아의 스타니슬랍스키의 리어리즘 연극과 영국의 셰익스피어 등, 대학의 연극영화과나 대학로에서 자리잡게 되었다.
문제는 8.15해방이 되었지만 학교수업에서 동경유학생들의 러시아
스타니슬랍스키의 리얼리즘 연극과 영국 셰익피어의 교육을 통해 배운사람과 격을 달리해서 공부한 것처럼, 건물도 서양 건물을 건축해야 있어 보이는 것 같고, 오히려 문화식민지로 자리잡게 되어 일제강점기보다 더한 이태리의 벨칸토창법 등으로 음악까지 우리교육의 90%가 서양음악을 하지 않으면 교사 및 교수가 될 수 없는 악조건의 환경이 되어 오히려 지금이 더 국민들이 국가식민지로 전략, 심각한 상황을 이르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국제화ㆍ세계화시대가 되었지만 전통은 전통예능인만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온통 서양의 문화예술로 자리잡고 있어 러시아와 영국의 연극, 서양음악의 벨칸토, 뽕짝 등, 서양무용으로~ 궁중춤, 민속춤을 천하다고 궁중무용, 민속무용이라 부르고 있다. 더욱 발레, 현대무용, 째즈 등으로 한국춤이 설자리가 빈약하다.
칼춤을 劍舞. 굿을 巫俗 등, 더욱 외래 용어인 축제, 페스티벌을 잔치라고 한다면 젊은이들이 "노인잔치"라고 해서 참석자의 관객동원, 인원모우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그래서 필자의 주장을 양보했다.
영어가 라틴어에서 왔다지만, 이렇게 온 나라가 서양 것, 위주로 교육하고 있으니 서양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0년은 서구의 합리적인 제도권 속에서 교육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전통을 이어 받는다고 농사지어 초가집이나 서울에서 기와집을 지을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의 새로운 전통을 통해 진정한 선진국의 한민족 국민으로 찾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전통문화예술은 최고 종합예술이다. 그런데도 한국인데 한국 것을 하면 밥을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정부는 문화정책을 바꾸어 정체성을 회복시켜야 한다. 그동안 100년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문화는 변하고 다르게 흐른다는 것이지만, 우리 것은 창조가 되나 외국문화는 전달만 할 뿐, 정체성과 가치관이 없기에 국제화시대에 우리 것과 연관의 필요성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문화독립군 총연합회(대문총)를 설립하고 예, 체능의 행정과 독립정신으로 "문화독립군단" 을 창단하게 되었다. 당시는 지나(支那:중국) 및 만주까지 우리땅이었다. 목소리를 내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그래서 <세계를 삼켜버리겠다> 고 쓴소리 <컬럼>을 쓴 바도 있어 이제부터라고 생각하고, 다음과 같은 취지와 목적으로 시작한다.
ㅡ 첫째, 위에 나열된 사항을 바로잡아야 하고 문화국가의 문화정책과 행정, 문화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제 문화열사와 문화독립군이 나와 國格을 높여야 한다. 지역에도 재단이 많이 설립되었지만, 지역공동체라고 해서 주민들을 어떻게 현장에 참여시킬 것인가?
그러려면 수도권에 편중된 인구가 되었지만 지역생활문화를 공존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역문화가 너무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수도권과 공존시키려고~ 우선 대구지역부터 시작하여 공연을 펼치기로 했다. 공연단도 서울의 프로팀을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특징적인 문화예술을 소개하여 수도권과 지역문화예술 위주로 문화권 확산과 생활문화 균형의 다양성을 공존하여 살려보자는 취지이고 ㅡ
ㅡ 두 번째는 남북문화예술을 동시에 교류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이제 총칼전쟁에서 문화전쟁으로 가는 마당에서 77년~78년 세계순회 경험과 85년도에 "서울예술단"을 창단하여 평양대극장에서 동시문화 교류를 할 때, 우리 공연팀이 너무 잘했기에 ~ㅡ 북한에서는 앞으로 공연을 하고 싶으면 경제적인 문제인지는 몰라도 남한의 돈 많은 연예인들을 일방적으로 선호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북한에서 "피바다" "꽃파는 처녀" 등을 가지고 내려온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가지고 올라 갈 수 있는가? 필자가 85년도 방북하여 이미 평양대극장에서 공연준비할 때, 남북대학생 문화교류 등 등, 동시에 준비한 경력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ㅡ 세번째는 국제화ㆍ세계화시대에 국위선양 문제이다. 유럽에도 우리처럼 원형무대에서 프로시니어로 변하였고, 오신(娛神)에서 오인(娛人)으로 사람을 위한 세상(사람이 있는 문화)이 되었다.
그동안 해외에 작품을 소개할 때에, 이제 제멋대로 들고 나갈 것이 아니라, 정체성과 전문가들에 의해 제대로 된 원형과 창작작품을 세계에 소개하자는 것이다.
더욱 해외에 나갈 때는 국적불명의 작품을 가지고 나가게 되면 그쪽 전문가들에게 ㅡ
"너희들 것 없어, 왜? 우리 것을 따라하나? 너희들 것 좀 보여다오." 이렇게 비평을 받았다. 또 옵니버스타일의 너무 긴 작품을 소개하고 있으니, 초청측 최고위급인사가 이제 지루하다고 그만두라고 했다.
예술행위는 백지한장 차이지만,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가 전문가처럼 기획ㆍ제작하는 것은 문제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보여주지 않으면 능력을 모른다.
그래서 제대로 된 우리 것을 77년도 미국 30개 각 주립대학에 순회하며 소개했을 때에 ㅡ
"이렇게 좁은 땅덩어리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렇게 큰 춤사위가 나올 수가 있느냐 실로 예술의 극치다." 라고 뉴욕타임스가 극찬을 했다.
우리의 정체성있는 작품은 미래의 학생들에게도 교육이 되고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이 자살 1위인데 어울림의 공동체인 우리 것을 교육과 공연을 하면 1석 2조의 융합ㆍ교육 효과가 있어 자살도 없어진다.
옛 지도자는 "국민정신이 바뀌면 썩은데서 싹이 나고 죽은데서 살아날 수가 있다" 고 했다. 그래서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전문성, 공정성, 투명성을 통해 문화청책(聽策)과 비전의 <문화독립군단>을 창단하게 되었다.
제헌 헌법(제14조)에서 민주독립국가 재건과 민주주의 체제의 수립에서 학문과 예술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상위법(제9조)을 지켜준다면 지금이야 여건이 열악한 상태이지만, 우리는 최고 우수한 민족이다.
더욱 예술가치확산 차원의 문화관, 종교관, 자연관 등의 미래전략으로 우리 전통문화의 문화역사강국으로 이미 숙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역사에 관심 많기 때문에 미래가 있는 것이다.
이제 지역마다 문화재생도시를 위해 문화독립군 프로그램을 우리 스태프들이 특색있게 기획ㆍ제작 해드릴 것으로 문의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대문총>은 정치집단이 아니며, 대문총 회장의 경력은 다음과 같이 역임했다.
예그린악단원
한예종 교수 연희학과장
한국문화예술위원장(차관급) 대행 한국공연예술학회 부회장, 한국예술비평가협회 부회장(평론가)
사) 한국생활연극협회 고문,
사) 한국뮤지컬협회 자문위원,
사) 한국문화가치 연구협회 평가(심의위원),
제50회 한국민속문화예술축제 추진위원장 및 심사위원장,
85년 평양방문 서울예술단 창단 총무, 기획진행, 前 서울뮤지컬단 기획실장,
前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 봉산탈춤(17호 전승교육사)을 하며 예그린악단원(70년)으로서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 총무, 기획, 제작자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한예종 교수로 정년퇴임하였다.
위와 같은 경력과 내용으로 오늘 방송부터 시작했고, 이제 우공이산(愚公移山)할 수 있다. 역사와 정신문화를 바로세우기 위해 그 문화독립군 첫 운동을 2019년 3월 9일(토) 5시, 대구 콘서트 하우스에서 공연을 통해 문화독립군 운동을 알리며 시작합니다. 많은 성원바랍니다.
대한민국 문화독립군 총연합회(대문총)
회 장 최 창 주 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