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가(處容歌)는 통일신라 시기 처용이라는 사람이 역신에게 아내를 빼앗긴 후 지었다고 전해지는 8구체 향가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제2권 처용랑 망해사(處容郞望海寺) 편에 수록되어 있다.
쿠쉬의 책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Kushnameh)》에 등장하는 아비틴 왕자와 신라 프라랑 공주는 7세기 말 멸망한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자가 신라로 망명하여, 신라 태후르 왕의 딸 프라랑과 결혼하고 영웅 페리둔을 낳는 사랑과 모험 이야기를 담은 역사적 설화입니다.
쿠쉬나메(Kushnameh)는 7세기 중엽 아랍의 공격으로 멸망한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자 '아비틴'이 신라로 망명하여 신라 공주와 결혼하고 황금의 나라 신라에서 안정을 찾는 이야기를 다룬 11세기 페르시아 구전 대서사시입니다. '쿠쉬의 책'이라는 뜻으로, 페르시아인들의 망향과 이상향(신라)에 대한 동경을 담은 1만 129절의 방대한 서사시입니다.
주요 내용 및 특징
뜻: 페르시아어로 '쿠쉬(인명)'와 '나메(책)'의 합성어로, 쿠쉬라는 인물의 이야기 혹은 쿠쉬의 책이라는 뜻.
내용: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과 신라 공주의 사랑, 신라를 '바실라(Basila, 아름다운 신라)'라 칭하며 풍요롭고 황금으로 가득 찬 이상향으로 묘사.
배경: 7세기 중엽 통일신라 전후의 시대적 배경을 다루며, 2009년 영국 국립도서관에서 원본이 발견됨.
의의: 사산조 페르시아와 고대 신라의 문화적 교류를 시사하는 중요한 역사적 구전 자료로 평가됨.
용의 아들인 처용은 헌강왕을 따라 수도 서라벌에 와서 벼슬을 하는데 어느 날 밤 역신(疫神)이 자기 아내와 함께 동침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용이 그걸 보고도 태연하게 노래를 지어 부르며 춤을 추었더니 역신이 모습을 나타내 처용의 관대함에 감복하여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대문에 처용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붙여 둔다면 그 집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 후부터 백성들은 처용의 형상[1]을 그려 문간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가 나게 하였다. 그리고 헌강왕이 세운 절 이름을 망해사(望海寺), 혹은 신방사(新房寺)라고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망해사는 울산 울주군 청량읍 울주군청 뒤에 있었는데 지금은 절터와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된 승탑만 남아 있다.
이때 처용이 춘 춤이 악부(樂府)에 처용무(處容舞)라 전해지고 이 춤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정재(呈才) 때와 구나의(驅儺儀) 뒤에 추는 향악(鄕樂)의 춤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를 처용무라고도 한다.
그런데 처용가는 단순히 처용설화하고만 연관해서 생각해서는 안 되고 헌강왕설화, 어법집의 기록 등과 함께 살펴봐야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신들이 각기 출현하여 국가의 존망에 대한 예조를 보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