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布施)를 하면 무슨 공덕이 있습니까?’ 하고 제자들이 묻자,
부처님이 자세하게 설명했다.
음식을 보시하는 사람은 남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며
의복을 보시하는 사람은 남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사람이며
탈것을 보시하는 사람은 남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며
등불을 보시하는 사람은 남에게 밝은 눈을 주는 사람이며
집을 보시하는 사람은 남에게 모든 것을 주는 사람이며
부처님 법을 보시하는 사람은 남에게 윤회를 끊어주는 사람이니라.
무엇을 주면 그것이 메아리가 되어 내게 돌아온다는 데에 부처님 법의 오의(奧義:심오한 뜻)가 있다. 남에게 힘을 주면 내게 힘이 생기고, 남에게 아름다움을 주면 내가 아름다워지고, 남에게 밝은 눈을 주면 내 눈이 밝아지고, 남에게 윤회를 끊어주면 내 윤회가 끊어지는 바, 부처님 법의 보시는 이웃에게 주는 만큼 내 것이 된다는 역설의 인과법칙(因果法則)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 길상사 공덕주 길상화보살도 아무런 조건 없이 당시 1천억 원의 땅과 집을 보시한 분이다.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으나 길상화보살이 보시하려고 마음을 내어 결실을 맺는 두 장면은 내가 법정스님 곁에서 지켜보아 조금은 알고 있다.
한번은 법정스님이 상도동 약수암으로 법문하시려고 오셨다기에 뵈러 갔는데, 그 자리에 나로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와 있었다. 암자 큰방에는 법정스님과 요정을 운영하여 재산을 크게 모은 길상화보살, 그리고 감색 양복을 입은 중년신사 두어 명이 앉아서 담소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길상화보살이 법정스님에게 성북동 대원각을 기부는 하겠지만 자신의 재산이 뜻대로 잘 운영되는지 지켜볼 감사를 한 명 두자는 안을 가지고 온 자리였다고 한다.
그때 법정스님은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고승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그분들을 찾아 시주하십시오.” 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일이 틀어지자, 가장 당황했던 사람은 길상화보살이었다. 보살을 잘 아는 변호사가 조언해주어 제안하였는데, 뜻밖의 결과가 났기 때문이었다.
법정스님의 의지는 단호했다. 할 수 없이 보살은 그날 이후부터 전국의 고승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미 자신의 재산을 절로 만드는데 시주할 결심을 굳혔기 때문에 다른 용도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2년 후, 길상화보살은 어찌 보면 고승들 가운데서 자신에게 가장 불친절했던 법정스님을 다시 찾아와 요정 대원각을 아무런 조건 없이 보시했다. 길상사가 개원하는 날 그녀는 수천 명의 신도 앞에서 말했다.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모릅니다. 제 소망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었던 저 팔각정에 범종을 달아 한 번 쳐보는 것입니다.”
여러 고승대덕의 법문이 길게 이어졌지만 기억에 남는 말을 길상화보살의 세 구절뿐이다. 그러자 법정스님은 길상화보살 목에 염주를 걸어주었다. 염주를 선물한 까닭은 부처님 가르침을 늘 잊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법정스님이 처음에 길상화보살의 시주를 받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길상화보살이 보시한다는 상(相)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시한다는 생각 없이 보시해야 하는데 보시한 이후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길상화 보살은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보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준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보시(布施)라야 복덕이 크다고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그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해야 하나니, 이른바 모양에 얽매임 없이 보시를 해야 하며,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감촉이나 생각에 얽매임 없이 보시를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하여 어떠한 상에도 집착을 하지 말아야 하느니.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에 집착을 하지 않고 보시를 하면 그 복덕이 가히 헤아릴 수 없이 크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보시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했다.
무주상보시를 하면 초기경전인 <아함경>은 천상에 태어난다고 했고, 대승경전인 <금강경>에서는 ‘위없는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다 했으니 ‘내 것’이라는 상(相)을 지우고 아낌없이 보시하는 것이야말로 나와 이웃, 더 나아가 세상과 한 덩어리라는 연대의식을 자각케 하는 성불의 지름길이라고 확신해도 좋을 듯하다.
출처 : 정찬주 불교 이야기 중
첫댓글 🙏
고맙습니다.덕분입니다, 새해 더욱 건강하고 복된 나날 보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