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일이 전체 일 거리의 10%정도라고 합니다. 나머지 90%는 선택사항이라고 합니다. 안해도 생명 유지나 체면에 별 문제 없다는 뜻입니다.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가 제창한 “90/10의 원리(The 90/10 Principle)”의 골자입니다.[1] 대부분의 행운이나 불운은 자신의 선택이 가져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 해도 될 일 가지고 외부 환경을 탓하며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결과를 미리 가늠해 보고 처신할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코비는 적절하게 처신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곱 가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삶의 주도권을 가질 것; 결과를 미리 보고 행동할 것, 중요하고 긴급한 일을 먼저하도록 우선 순위를 정할 것; 이득을 상대와 같이 공유할 것, 설득하기 전에 듣고 이해해줄 것; 협력하여 시너지 효과를 높일 것;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을 것. 니것이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몇 가지만이라도 실천해서 나쁠 것 없어 보였습니다. 순례길에서 결정하고 책임져야하는 많은 일을 처리하는 기준이기도 했습니다. 하기야 순례 떠날까 말까 결정하는 것도 선택사항 중의 하나임에 틀림 없습니다.
샤티욘(Châtillon)에서 베레스 (Verrès) 마을까지 21 km 를 걷습니다. 어제처럼 골짜기 자동차 길이라도 따라가면 편하겠지만 거리가 짧아 산 비탈을 걷기로 했습니다. 영국인-호주인 부부는 밤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너무 더워서 호텔로 옮겼다고 나중에 들었습니다. 어제 산 식품으로 아침 먹고 마을 골목의 카페에서 까페 라떼(café latte)를 마셨습니다. 까페 올래(café aux lait)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지역은 불어와 이탈리아어가 혼용되는 곳입니다.
도라 발테아 강 언덕 위 옛 성이 연무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성당은 잠겨 있었고 성당 마당에서 출발 기도를 마치고 오르막 골목길을 걸었습니다. 생각보다 가파른 길이었습니다. 왼쪽 계곡으로는 몬테 체르비노(Monte Cervino: 4478m 또는 마터호른(Matterhorn)이라고도 부름) 봉에서 빙하 녹은 물 일부가 흘러내립니다. 몬테 체르비노(Monte Cervino 바로 아래 브루일(Breuil) 마을까지 샤티온에서 28km. 버스가 다닙니다. 해발 2000m의 브루일 마을의 18홀 골프가 매력적이긴 했습니다. 한 게임 치고 갈지 말지도 선택사항에 듭니다.
순례길 초반은 해발 600m 언저리의 산 중턱에서 해발 400m의 강을 내려다보며 가는 길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강 근처까지 내려 갔다가 다시 해발 750m의 산 중턱을 지나 오늘 목적지 베레스 마을에 들어가게 됩니다.
마을 두 언덕에 개인 소유의 성(Castello Passerin d'Entrèves )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숲 속에 이탈리아 정원이 정면에 있습니다. 로마시대 성이 있던 자리에 지은 성인데 이곳을 지배했던 샤얀 가문을 시작으로 여러 귀족들의 손을 거쳤습니다. 그 사이 성 내부가 화려했을 텐데 1791년, 1704년 프랑스 군대가 점령군 주둔지로 쓰면서 훼손되었습니다. 그 후 소유자들이 증 개축을 하면서 도개교와 감시 탑이 철거되고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내부는 이탈리아 귀족들의 거주 공간이 어땠는지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프랑스 군이 물러 간 뒤에 심은 나무들이 300년 이상 자라 지금은 거목이 되어 있었습니다.
해발 640m 인 언덕에 오르자 길은 동쪽 산길이었습니다. 땀이 등을 적시고 숨이 찼습니다. 마을 뒤 길이 좀 울퉁불퉁하기는 했지만 마차가 다닐 정도여서 걷기는 편했습니다. 마주 오는 주민들, 걸음이 빠른 순례자들이 지나갔습니다. 큰 바위를 둘러가는 곳은 길 내기가 여의치 않아 나무로 보도를 만들어 깔아두어 걷기 편했습니다. 작은 물줄기가 바위 사이로 떨어지면서 폭포가 되어 쏟아져 내리고 시원한 물소리는 한동안 정적을 깨며 퍼져갔습니다. 물이 있어 울창한 숲이었고 햇살이 드는 곳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탈 위로는 관목, 아래로는 과수원이거나 숲이었습니다. 도시의 소음이 아래로부터 치솟아 올라왔습니다. 강이 “ㄴ”자로 꺾이는 곳이었습니다. 베레스가 있는 남쪽 골짜기로 고가도로 교각 위로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서쪽으로 아오스타 쪽 멀리 눈 덮인 봉우리가 보였습니다.
평탄한 길이 산 빈센트(Saint Vincent) 도심지 뒤를 지나갔습니다. 허름한 산 비탈 주택가였습니다. 인구 4600명, 해발 575m. 방향이 남으로 바뀌어 가다 보니 시야가 터졌습니다. 이 마을에서 2019년 5월 25일, 지로 디탈리아(Giro d’Italia) 14번 구간 경기가 있었습니다. 세계 도로 자전거 경기 선수권 대회(UCI Road World Championships), 지로 디탈리아(Giro d’Italia), 뚜흐 드 프랑스(Tour de France)를 세계 3대 자전거 대회라고들 합니다. 5월에 열린 14구간 경기는 산 빈센트(Saint Vincent) 부터 꾸르마유(Courmayeur)까지 131 km입니다. 이 경기는 프랑스의 뚜흐 드 프랑스를 본 떠 1909년에 만든 이탈리아의 장거리 자전거 경주대회입니다. 자전거 프로들의 잔치입니다. 매년 5월-6월에 열립니다. 이때가 되면 이 경주 코스에 잡힌 마을에서 숙소 구하기가 힘듭니다. (2022년 5월 22일에는 지로 디탈리아 15번 구간이 지나갑니다.)
사진출처: By 2017 Giro d'Italia - Own workThis W3C-unspecified vector image was created with Inkscape.,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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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빛 아침 햇살이 골짜기 건너편 산을 비추었습니다. 서족 멀리 아오스타 골짜기 끝은 허연 수증기 속에 가물가물 했습니다. 동서로 70km 가까이 되는 골짜기입니다. 뻗어오는 강줄기가 90도로 방향을 꺾어서 남으로 향하는 곳이었습니다. 골짜기로 난 길은 지로 디탈리아 자전거 경주가 열리는 곳이었습니다. 가까이 고속도로 오버패스가 보이고 시내에 대형 호텔과 음식점, 고급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샤티온에서 산 빈센트(Saint Vincent)까지 저 아래 골짜기로는 도시가 이어진듯했습니다. 뒤로는 바위 산의 하얀 암석이 버티고 있고 남으로 터진 골짜기로 고속도로가 나 있었습니다. 골짜기에서 도시 소음과 25번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트럭 소음이 끊임없이 들려왔습니다. 장거리용 대형 트럭들 상당 수는 터널을 통과하여 스위스나 프랑스로 갈 것입니다.
길을 잘못들어 한참을 되돌아와서 희미한 길 표지를 찾아 비아 프란치제나를 걸었습니다. 이른 아침이어도 거리에 사람들이 분주했습니다. 아침에 떠나온 샤티온 성당 종탑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털털거리며 지나가는 차가 있어 보니 삼륜 화물차였습니다. 바퀴가 세 개이며 오토바이 핸들이 운전석에 있는 차. 1970년대에 한국에서 운행되던 화물차와 같은 차종이 이 지역에서 운행되고 있었습니다. 농부들이 주로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1960년대 서울에서 연탄 싣고 골목을 오르던 그런 차량이었습니다. 산비탈 중턱에 자리잡은 산 빈센트 온천장 앞을 지나갔습니디. 규모가 큰 사업장이었습니다. 이 온천장 옥상은 일광욕을 겸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치료부터 마사지, 미용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었습니다. 이 옥상에서 아오스타 밸리, 도라 발테아 강과 그 건너편 산이 한눈에 보입니다. 길은 주택가와 산 비탈 사이로 났습니다.
해발 600m- 700m 사이의 산 비탈에 난 길을 걸었습니다. 200m쯤 고도차가 나는 골짜기 너머 맞은 편 산이 친구가 되었습니다. 대부분 잡목 형태의 보잘 것 없는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시야가 터지면 저 아래 골짜기가 현실 밖의 세계처럼 보였습니다. 6 km를 걸어서 킬리안 (Cillian)마을에 왔습니다. 돌로 벽을 쌓고 얇은 돌 판을 기와 삼아 지붕을 인 집들. 나무 빼고는 모두 바위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였습니다. 숲에서 베어온 통나무들이 길가에서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겨울철 난방용으로 쓸 것이었습니다. 마을에서 골짜기 쪽으로 내려가 큰 길에 나서면 옛날 로마가도의 다리가 폐허로 남아 있는 게 보였습니다. 골짜기 건너편 옛 성은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습니다. 셰날 성(Castello di Chenal)이었습니다.
산길을 구비구비 걸어 폐이예(Feilley) 마을을 지나고 숲을 통과하여 셰날(Chenal) 마을을 지나갔습니다. 발은 오르내리지만 마음은 편했습니다. 몇 집 안 되는 작은 마을 성당 종탑이 기울어진 채 쓸쓸해 보였습니다. 마을 바로 옆에 셰날 성터가 있었습니다. 바위 위에 돌 벽만 남은 폐허였습니다. 돌 벽 바로 옆으로 바위 절벽이었습니다. 이 골짜기가 참 엄중하게 경계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길에 깔린 바윗돌은 마차가 지나면서 파 들어가 이곳이 예전 로마가도였음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산골 마을 지나는 길 가에 농가들이 있었습니다. 주변은 바위 산들이 높이 둘러싸고 있었고 작은 골짜기에는 포도밭, 과수원과 목장이 이어졌습니다. 소들이 길가 가까이 다가왔지만 길로 나오지 못하는 것은 가느다란 전선 때문이었습니다. 그 전선에 충격이 올만한 전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버려진 나무 토막들, 일을 마치고 돌아온 트랙터, 자동차들이 농가 옆에 있었습니다.
집이 몇 채 있는 프로바니(Provaney) 마을부터 내리막 길이었습니다. 마을 왼쪽 바위 언덕 위에 성이 보였습니다. 규모가 있고 높은 망루 때문에 위엄도 있어보이는 까스텔로 디 센 제르맨(Castello di Saint-Germain). 망루는 남아 있고 대부분 무너져 내린 성이었습니다. 그 망루라면 골짜기를 지나는 사람이며 물자, 군대가 잘 보일 것입니다. 무기체계가 발달하였어도 고지를 점하는 것은 싸움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성이 있는 바위 절벽 밑을 지나 길을 더 가자 고도 차 100m 아래로 강줄기가 있었습니다. 강 건너에 바위 산 자락에 수력발전소가 보였습니다. 아오스타 밸리에 포진한 32개 수력 발전소 중 한 곳입니다. 발전소 배수구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발전 중이었습니다. 몬죠베 (Montjovet) 수력발전소는 발전용량이 50Mwatt입니다. 발전기 터빈을 돌리는 물의 낙차는 52m이며 상류 4 km 지점부터 물을 끌어오고 있었습니다. 1914년부터 발전을 시작해서 1966년에 대대적인 보수를 하였습니다. 송전설비에 변압기 송전탑이 주변에 있었습니다.
스티븐 코비의 일곱가지 원칙에서 순례길은 선택사항입니다. 순례를 시작했다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가장 중요한 우선 순위는 안전과 건강이었습니다. 발과 다리는 신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가 되었습니다. 혼자 걷게되니 안전한 길을 택해야 했습니다. 무엇을 먹을 것인지, 구경거리나 사진 찍는 일, 사람들 만나는 일 등은 모두 선택사항이 되었습니다. 걷는데 지장이 있으면 잊어버려도 될 일이었습니다. 주도적으로 나서서 해야할 일은 기도하기와 묵상이었습니다. 단절을 통해서 얻어지는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이 기도 시간이었습니다. 돌아가면 이런 일들 또한 다른 우선 순위를 가질 것입니다.
몬죠베 마을까지 급경사 내리막입니다.
[1] Stephen Covey, De-stress Your Life! The 90/10 Principle of Stephen Covey,
https://www.baass.com/.../De-stress-Your-Life-The-90-10-Principle-of-Stephen-Covey, down loaded 2018.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