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까나의 향기 (최낙환)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삶의 향기가 있습니다.
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향긋한 풀꽃 같은 산사람 향기가, 칡덩굴에 매달려 있는 꽃송이에서 나는 것 같은 인자로 움을 품은 구수한 향기가, 때로는 고향을 그립게 만드는 찔레꽃 향기, 머루 향기, 더덕 향기, 뽀로롱 뽀로롱 날아오르는 산새들의 향기....,
들에 사는 사람들에게서도 향기가 납니다.
이른 봄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향기가 나는가 하면 ,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향기. 과수원을 둘러친 탱자나무 꽃향기, 파아란 하늘을 날아오르는 종달새의 노래와 같은 향기도 납니다.
가을걷이를 지게에 지고 가는 농부의 어깨에서 피어나는 기쁨의 향기..., 든든한 바위 같은 아버지의 어깨에서 땀방울과 함께 피어오르는 믿음의 향기, 치맛자락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비탈진 밭고랑에서 부지런히 손 놀리는 아낙네의 콧잔등에서 송골송골 솟아나는 땀방울에서 나는 엄마의 향기 등....
사람이 사는 곳에는 사람의 향기, 삶의 향기가 납니다.
부까나에도 다양한 삶의 향기가 납니다. 온 몸을 검은 천으로 둘둘 감고 두 눈만 빠끔히 뚫어 놓은 여인들이 내는 향기가 있는가 하면 우람한 몸매와는 상관없이 스키니 바지를 입고 당당히 걸어가는 여인이 내는 향기, 벌거벗은 발, 윗도리도 못 걸친 아이들에게서 나는 향기, 손때 묻은 손으로 떨어뜨릴 세라 꼭 잡은 빵조각에서 나는 가난의 향기, 배고픔의 향기, 부끄러움이 없이 칭얼대는 아이에게 옷가슴 헤치고 젓 물리는 모정의 향기, 시골 고향집의 뒷간에서나 맡았던 추억의 향기도 납니다. 이른 아침 가는 길 걸음 멈추고 건네는 아침 인사 한 마디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는 수줍음의 향기도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별로 내 세울 것도 없는 신세에 고집만 가득한 고집의 향기, 필요 이상으로 거들먹거리는 거만의 향기, 교만의 향기도 있습니다.
작은 밥그릇 하나에 많은 식구들 둘러 앉아 식사를 하다가도 찾아온 손님을 향해 밥 한술 같이 뜨자는 이웃 사랑의 향기, 가슴 따뜻한 향기도 있습니다.
작은 대나무 토막 하나를 말없이 가져갔다고 열두 명 온 식구들이 떼를 지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다투는 미움의 향기도 있습니다. 14살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16살 신랑은 3년 동안 점심을 거르면서 모은 돈 50만원을 어린 색싯집 부모님께 드리고 치루는 결혼식 첫날 기쁨과 행복감에 어깨춤을 추는 신랑 신부의 달콤한 결혼식 향기도 있습니다.
요즘 같은 연말과 새해가 가까워 오면 버린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 낸 플라스틱 파이프 조각과 펑크 난 타이어에서 얻은 고무조각으로 만든 복을 가지고 돈벌이 캐롤링을 위해 집을 나서는 형제의 희망 부푼 사랑의 향기도 있습니다. 마주 보는 바다 끝으로 황혼이 찾아오고 서늘한 해풍이 불어오면 붉은 비닐봉지 잘라서 만든 연과 함께 하늘 높이 올려보는 어린이들의 파란 꿈의 향기도 있습니다.
집 앞 바다에서 불어오는 비릿한 바다 향기, 도심 깊은 빌딩의 불빛 속에서 속삭이는 유혹의 향기, 때때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소망을 잠식 시키는 절망의 향기, 얼기설기 엮은 대나무벽 사이로 들려오는 부부들의 다투는 소리의 향기, 보름달이 뜨면 금빛 바닷물사이로 들려오는 젊은 남녀들의 속삭이는 사랑의 향기, 온갖 삶의 향기 가득한 부까나입니다.
내일이면 팔려 나갈 양철지붕 처마 밑에 널어놓은 한국산 중고 아디다스 신발과 블라우스, 티셔츠에서 나는 우까이 우까이 향기, 아디다스 중고 운동화가 팔리면 조리 슬리퍼를 새로 사준다는 아빠의 말에 빨리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는 부까나 아이들의 소망의 향기도 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같은 박자, 같은 리듬으로 끊임없이 들려오는 비디오케의 향기가 있는가 하면 하루 다섯 번씩 정해진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모스크의 향기도 있습니다. 독선적 종교와 종교 지도자들이 풍기는 위협과 두려움의 향기, 때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움 깊은 곳에서 풍겨 나오는 죽음의 향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미약 하지만 라사뚜한에서 흘러나오는 이사의 향기도 있습니다. 15년 전 한 형제의 가정과 이곳 부까나에 이사의 좋은 소식 씨앗들을 심어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면서 싹이 트고 잎이 자라서 조금씩 조금씩 이사의 향기를 뿜어냅니다.
그간 수많은 위협과 협박의 향기가 이사의 향기를 없애려 했지만 높은 곳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의 향기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봄 온 식구들이 저녁밥상을 대할 즈음 원인 모를 화재로 자욱한 연기 속에 가진 것 모두를 태워 잃어 버렸지만 부까나 라사뚜한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자라고 있는 향기로운 이사의 향기는 없애지 못 했습니다.
오늘도 부까나의 라사뚜한 사람들은 향기중의 향기요 향기의 왕이신 이사(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이곳 사람들의 가슴과 삶속에 가득하기를 소망 하며 두 손을 모읍니다.
오늘 당신의 삶과 삶의 자리에서는 어떤 향기가 나나요?
혹 잃어버린 향기나 찾고자 하는 향기가 있다면 이곳 부까나에서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 부까나 지역은 다바오에 있는 M종족들의 공동체가 있는 마을 중의 하나입니다. 이사는 예수를 M들이 부르는 명칭 , 라사뚜한은 하나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이 곳에 저희들이 섬기는 라사뚜한 교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