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따라] 절음식은 '다이어트 보약'
한낮엔 숨이 턱 막히는 찜통 더위가 괴롭히고, 한밤엔 열대야가 극성을 부려 잠을 설치기 일쑤다. 하루 종일 땀만 나고 어깨는 축축 늘어진다. 장마 덕에 초복.중복.대서는 그럭저럭 피했는데 말복(8월 10일)까지 넘길 일이 암담하다.
이럴 때 일반인들은 보신탕.삼계탕.추어탕 등 일명 보양식이라는 것을 떠올리지만 개고기나 미꾸라지 등을 기피하는 사람들은 지친 몸을 추스를 만한 음식을 찾 는 게 쉽지 않다.
한국전통사찰음식연구소(02-355-5961)의 적문 스님은 "사찰에서는 세간에서와 달리 '몸'에 좋다는 고기는 물론 오신채(파.마늘.달래.부추.흥거)도 쓰지 않지만 한여름에 몸을 보하면서도 몸가짐을 가지런하게 해 수행정진을 돕는 좋은 음식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석가모니께서 깨달음을 얻기 직전에 설산에서 6년간 고행하신 몸을 보양한 '유미죽'이 대표적"이라고 덧붙였다. 유미죽은 우유에 연근.쌀.콩.보리.땅콩.참깨 등을 섞어 만든 고단백 죽. 동남아 불교국가에서 주로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적문 스님은 또 "사찰음식은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열매.뿌리.잎사귀 등 약리 작용을 가진 재료로 만든 음식인 만큼 보양식이 아닌 것이 없다"며 "그러면서도 세간에서 먹는 보양식과 달리 살이 찔 염려가 전혀 없는 다이어트식"이라고 강조했다.
기가 허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찬데 이를 보충해주는 보기(補氣)식품으로 인삼.마.고구마.유자.매실.찹쌀 등이 있다.
혈액이 부족해 빈혈이 있는 사람에게 좋은 보혈(補血)식품으론 연근.당귀.오미자.대추가 대표적이다. 식은 땀이 나는 경우엔 당근.무.상추.메밀 같은 보음(補陰)식품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적문 스님은 사찰음식 중에 사시사철 일반 가정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보양식으로 찰밥과 미역국을 꼽았다. 찰밥은 기를 보하는데 으뜸이고, 미역국은 엉킨 피를 풀어 맑게 해준다는 것.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요즘은 제철 식품인 연을 많이 섭취할 것을 권했다.
연씨(연자).연뿌리(연근).연잎 등은 자양강장식으로 부족함이 없고, 특히 연씨는 수험생의 정신 집중력을 높이는데 그만이란다.
적문 스님은 가정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연자를 이용한 영양보양식 '연자밥'을 비롯해 '마 야채 지짐''유미죽'등 사찰 보양식 만드는 방법을 상세히 소개
[한국일보] 2002-07-05 (생활/여성) 뉴스 38면 30판 1243자
선식…수험생에 좋고 성인병도 예방
산만한 어린이나 집중력이 필요한 수험생 자녀에게 어떤 음식이 좋을까.
산사에서 스님들이 먹는 ‘선식’은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마음의 건강식이다.
스님들이 수행정진하면서 양식으로 삼는 선식은 우선 소화가 잘되고 자극이 없으며 칼로리가 낮다는 점에서도 수험생에게 권할 만한 음식이다.
이밖에 아토피성피부염 비만 심장병 등 성인병에 좋은 선식으로 가족의 건강을 지켜보자. 한국전통사찰음식문화연구소(02-355-5961)는 9일 오전 10시20분 종로구 부암동 나무학교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산사의 선식’을 무료 강의한다.
선식의 특징과 연자죽 두부죽순김밥 등 조리법을 강의하며 무료시식행사도 갖는다. 한국전통사찰음식문화연구소 소장 적문 스님이 권하는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선식을 소개한다.
▼작설차전병말이 작설차는 스님들이 늘 곁에 두고 마시는 음료. 작설차의 쓴 맛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또 쓴 맛은 심장을 튼튼하게 하는 작용이 있으므로 심장병에도 좋다. 반면 단맛은 마음을 들뜨게 하는 역할을 한다. 쓴 맛을 싫어하는 청소년을 위해 단 맛이 나는 애호박과 작설차를 함께 요리 재료로 사용한다.조리법-애호박은 곱게 채를 썰어 소금에 절여놓는다. 불린 녹차잎과 절인 호박을 찹쌀가루 밀가루에 넣고 반죽한다. 후라이팬에 전을 지져낸 뒤 김밥 말듯이 둥글게 말아 썬다. 진간장 식초 통깨 설탕으로 초간장 소스를 만들어 함께 낸다.
▼두부죽순김밥
법당 뒤에 으레 대나무 숲이 있을 정도로 대나무는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역할을 한다.
선식에 자주 등장하는 죽순도 학습효과를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 산만한 자녀뿐 아니라 아스파라긴산 발린산 글루타민산등이 풍부해 비만증 당뇨병에도 도움이 된다.
조리법-두부를 굵고 길게 썰어 소금을 뿌려 물기가 빠지면 튀기거나 노릇하게 지져낸다. 간장에 엿을 넣고 끓이다 졸아지면 두부를 넣어 간을 배게 한다.
죽순은 데쳐 소금간을 해 볶아낸다. 우엉 당근 달걀등 김밥 속을 준비한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에 참기름 통깨로 간을 한 뒤 재료를 넣어 김밥을 만다.
▼연근죽
연근을 갈아 쑨 죽은 아토피성피부염에 좋다. 또 정신 안정효과가 있어 피로회복과 식욕부진에도 좋다.
조리법-쌀을 씻어 30분 정도 불린다. 연근은 껍질을 벗기고 잘게 썰어 믹서에 물을 넣고 곱게 간다. 냄비를 달구어 참기름을 두르고 쌀을 볶다가 물 1컵을 붓고 끓인다.
반쯤 익으면 연근즙 4컵을 붓고 잘 저으면서 끓인다. 대추씨를 뽑고 잘게 채로 썰어 함께 끓인다.
김동선기자 weeny@hk.co.kr
전통사찰음식 작품전시회
한국전통사찰음식문화연구소는 15일부터 28일까지 '2002 한.일 월드컵 기념 한국전통사찰음식작품전시회'를 연다.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 집'에서 내외국인을 상대로 한 특별 무료공개강좌와 사찰음식 요리 및 연꽃을 주제로 한 작품 등이 진행된다. (02)355-5961∼3
[경향신문] 2002-05-16 (생활/여성) 기획.연재 42면 45판 2885자
사찰음식 '산사떠나 속세로' - '탁 탁 탁' 대중의 건강 깨치는 맛수행
옛날 고승들은 무얼 잡수셨기에, 또 전래 사찰음식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기에 스님들은 그렇게 오래 살고 피부도 뽀얄까. 이처럼 호기심의 대상이자 스님들의 전유물이었던 사찰음식이 이젠 조용한 산사를 떠나 저잣거리로 내려왔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 속에 사찰음식이 각광을 받으며 사찰음식연구소는 물론 전문식당들도 늘어나고 있다. 또 월드컵을 맞아 외국인들이 절에 머무는 템플스테이가 호응을 얻으면서 사찰음식은 한국을 소개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사찰음식의 뜻과 맛을 알아본다.
원래 사찰음식은 수행정진에 열중하는 스님들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자극성이 없고 부드럽고 담백한 것이 특징. 스님들이 쓰는 발우란 그릇에 최소한의 양을 담아 완전히 비우고 늘 들고다니는 헝겊으로 설거지까지 한다. 음식찌꺼기, 물낭비도 없다. 정적인 음식이라 내면이 충실해지고 맛이 아니라 지혜를 얻는 데 필요한 수행과정.
조리의 3원칙은 청정(淸靜).유연(柔軟).여법(如法). 청정이란 방부제가 들어있지 않은 깨끗한 채소로 맛을 내는 것. 물론 젓갈, 파, 마늘 등 냄새가 나는 오신채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유연은 짜고 맵지 않을 것. 자극성이 많으면 수행정신에 열중하는 스님들의 위장에 부담이 가기 때문이다. 여법은 양념을 하더라도 단것, 짠것, 식초, 장류의 순으로 적당히 넣어 채소의 독특한 맛을 살리는 것이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만들지 않고 끼니때마다 준비하며 반찬 가짓수는 적되 영양은 고루 포함되어 있는 것은 기본이다. 이 조리법 3원칙만 충실히 따르면 성인병 걱정은 없다. 섬유질 많은 야채가 대부분이니 변비의 고통도 없고, 짜고 맵지 않으니 고혈압도 예방되며 칼로리가 낮아 살찔 염려도 없다.
최근에 선보이는 사찰음식들은 모양과 빛깔이 화려해졌다. 백년초가루, 치자, 송화가루, 시금치즙 등으로 오색물을 들이기도 하고 꽃꽂이하듯 팽이버섯이나 연근알 등을 장식하기도 한다. 사찰음식연구가 선재스님은 "단청이 화려한 것도 참공양의 뜻을 나타내기 위함이듯 공양은 소박한 것보다 화려한 것이 더 신심을 담아낸다"고 설명한다.
또 최근에는 사찰음식 역시 국제화 바람을 타고 있다. 일본의 정진요리, 중국의 소식과 교류하고 있다. 일본은 젠스타일로 화려해지고 소림사에서 무술수련도 하던 중국의 사찰음식은 단순한 야채만이 아니라 콩고기, 밀고기, 다양한 두부를 개발해 빛깔과 모양새가 매우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이들을 수용한 사찰요리가 절음식 전문점이나 전시회에서 선보이고 있다.
글 유인경 기자alice@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color@kyunghyang.com
■사찰음식 전문점들 - '산중음식'이곳에서도 공양
사찰음식을 전문으로 하거나 메뉴에 사찰요리를 곁들인 식당들이 전국에 늘고 있다. (표 참조)
스님이었다가 환속한 사찰음식연구가 김연식씨가 운영하는 '산촌'은 가장 오래되고 제일 유명한 곳.
들깨죽, 산채모듬나물, 애호박전, 졸임감자 등과 제철에 나오는 재료로 신선한 채소요리와 튀김요리도 선보인다. 일반인들을 위해 마늘 등 오신채도 넣는다. 또 직접 담근 장류나 스님들의 밥그릇인 발우도 판매해 외국인 손님도 즐겨 찾는다. '사람을 살리는 먹을거리'의 저자이기도 한 강승남 원장이 운영하는 '향토생활관 산채'는 옛날식으로 자연발효시킨 된장, 고추장 등으로 맛을 낸다. 현미밥에 냉이, 원추리, 피마자 잎사귀 등 19가지 나물이 들어간 산채정식이 제일 인기.
아주머니들의 계모임 장소로 인기가 높은 '풀향기'는 서울 곳곳에 지점을 낼 만큼 호응을 얻고 있다.
산나물 비빔밥 등 단품요리에서 세트메뉴까지 메뉴가 다양하다. 들깨가루를 뿌린 샐러드가 신선하다. 서울 삼청동에는 유사한 메뉴의 '들향기'란 식당도 있다.
채식뷔페 '시골생활'은 양상추 등 20여가지의 야채, 호박죽, 통밀 빵, 현미떡을 비롯해 젓갈이 안든 김치 등 반찬도 풍성하다. 점심때만 문을 열고 저녁엔 단체예약손님만 받는다. 유인경 기자
■전통 절음식 맛보려면,스님들 '발우'공개 요리강연에
스님들이 자신들의 밥그릇(발우.사진)을 공개한다. 사찰음식을 연구하는 스님들이 직접 연구소를 운영하거나 각 대학에서 특강을 하기도 하고 호텔에 초청받아 행사도 갖는다.
불교방송에서 사찰요리를 강의해 유명한 선재스님은 외국의 호텔에서도 요리시범과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 선재사찰연구소(02-928-2074, 923-4097)를 개설, 요리책도 펴내고 강의도 벌인다. 한국 전통사찰음식문화연구소(02-355-5961)의 적문스님은 가장 활발한 음식포교 활동을 펼친다. 서울 갈현동의 연구소에서 매달 정기강좌를 열고 문하생들을 배출했다. 특히 연구소에서 사찰요리를 배운 회원들의 60%가 개신교 신자이며 15%가 가톨릭 신도라는 것이 특이하다. 종교를 떠나 건강음식을 익히고 유망사업으로 떠오른 사찰음식 전문점 창업을 원하기 때문이다.
연구가들은 건강식으로서의 사찰음식의 효능과 유서깊은 전통사찰의 독특한 요리를 소개한다. 통도사는 참죽나물로 만든 김치, 해인사는 상추불뚝 김치와 전, 송이국과 송이밥 등이 전해진다. 송광사에서는 갓김치와 죽순장아찌가 유명하며 설악산 신흥사와 오대산 상원사에서는 참나물김치, 들깨즙, 취나물쌈, 김천 직지사는 우엉을 이용한 김치구이 찜, 법주사는 머위김치 무침이 대표적 음식. 부산 범어사에서는 씀바귀로 갖가지 요리를 하고 옥잠화 꽃잎튀김, 배추꽃밥 같은 음식도 전해진다. 사찰음식이란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 제철에 절에서 가장 가까이 구할 수 있는 나무와 풀과 열매로 쌈, 국, 나물 등으로 다채롭게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절마다 심어진 벚나무, 소나무, 은행나무는 풍광이 아니라 식재료용이다.
서울의 절에서도 공양 인심을 즐길 수 있다. 우이동의 도선사나 삼성동의 봉원사는 절을 찾는 이들에게 무료 공양으로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한다. 도선사의 경우 등산객이 많은 일요일에는 쌀 7가마의 밥을 짓는단다. 유인경 기자
[조선일보] 2002-03-12 (생활/여성) 기획.연재 42면 45판 1376자
사라져가는 사찰음식 ‘비법’ 130가지
“이맘 때면 공양 상에 해쑥, 원추리, 비비추, 땅두릅나물 같은 봄나물이 오르겠네요.절마다 정월 장은 이미 담갔을 테고요.” 서울 인사동 사찰음식전문점 ‘산촌’을 운영하는 김연식(56)씨는 전국 사찰을 돌며 절마다 전해 내려오는 요리 비법을 기록 중이다. 최근 낸 책 ‘눈으로 먹는 절 음식’(우리출판사)에서는 우선 수원 용주사, 여주 신륵사, 합천 해인사, 구례 화엄사, 여수 향일암, 여수 흥국사, 해남 대흥사 등 일곱 군데 사찰의 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책에는 용주사의 국화송편, 신륵사의 연잎밥, 해인사의 상추불뚝전과 한해물 김치, 흥국사의 제고물떡과 팥방망이떡, 산초잎장떡, 대흥사의 쑥밥과 원추리국 등 요리법 130가지가 올라 있다. “손끝에서 손끝으로 이어지는 사찰음식 비법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까워 기록에 나섰다”는 김씨는 열다섯 나이에 출가해 78년 하산할 때까지 사찰 음식을 직접 만들어 본 경험이 있다. “공부는 안 하고 살림만 열심히 했지요.음식 솜씨가 있어 칭찬도 많이 받았고요.그때부터 노스님들의 구전을 채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씨는 “사찰 음식은 워낙 금기가 많아 오히려 발달한 것 같다”고 말한다.
“육류뿐 아니라 파·마늘·달래·부추·홍거 등 ‘오신채’나 양파를 쓰지 않습니다.건강식으로 조명받는 사찰음식의 비법은 무엇보다 재료를 이리저리 섞지 않고 주재료의 맛을 살리는 데 있지요.”
김씨는 “불교적 특성과 생활의 편리함에 밀려 사찰음식의 전통이 사라져 간다”고 말한다.
“오욕(五慾) 중에 식욕도 포함되거든요.입에 달게, 맛있게 먹는 것은 수도에 걸림돌이 된다는 거지요.그러니 ‘음식을 이렇게 하면 맛있게 만들 수 있다’는 기록을 따로 남길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또 요즘 세상에 스님들에게 무조건 재래식으로 음식을 만들라고 할 수도 없고요.” 지금은 ‘전설의 떡’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통도사의 세편이다.
너무 찰지고 투명해 마치 유리 같았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 귀찮아서 못하는 것’은 신흥사 김치다.
흐르는 계곡 물을 막고 물 속 바위를 들어낸 다음 밀랍한 김칫독을 담갔다가 1~3년 뒤 한여름에 꺼내먹었다고 한다. “후원(사찰 부엌)절에는 나물하는 ‘채공’, 밥하는 ‘공양주’, 국 끓이는 ‘갱두’가 따로 있어요.솜씨가 있고 불심 깊으면 ‘별좌’로 승격되고 더 올라가면 절의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원주’가 되지요.밥을 지으려면 장작을 지고 계단을 한참 내려가야 했지요.밥솥은 위 아래 온도 차이가 날 만큼 커서 솥껑 위에 숯을 얹곤 했지요.요즘은 밥도 스팀으로 짓고, 절마다 떡하는 기계도 들여놨더군요.” 앞으로 사찰음식의 대표주자 송광사의 비법부터 일지암의 차(茶) 문화까지 책으로 펴낼 주제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김씨는 “사찰 음식은 마음을 비우고 만들수록 맛이 난다”고 말했다.”
/정재연기자 whauden@chosun.com
지리산 화엄사 아래 사하촌 30여가지 봄나물산채 '꿀맛'
/구례의 산채백반/ 지리산 화엄사 아래 사하촌. 봄이면 갖가지 산나물이 쏟아져 나오는 이곳 사하촌은 예부터 산채음식이 발달했다. 산채는 스님들의 사찰음식이자 춘궁기 농부들의 입맛을 달랬던 서민 음식이었다. 산채정식으로 가장 유명한 집은 마산면 황전리의 '그 옛날 산채식당'.
50년 넘게 이곳에서 밥상을 차려온 박종악 할머니(72)의 손맛을 못잊어 다시 찾는 사람들이 많다. 두릅과 참취, 둥글레, 고사리, 산더덕, 반디, 돈나물, 도토리묵, 갓김치, 취나물, 고사리, 도라지, 죽순, 박속, 토란대, 돌미나리, 산초잎…. 반찬만 30가지가 넘는다.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기 때문에 약간 짭짤하다. 소금도 반드시 한 번 구워쓴다고 한다. 1인분 8,000원. (061)782-4439. 지리산 화엄사 주차장 앞의 지리산식당도 소문난 산채집이다. 특히 된장국은 스님에게 직접 배운 솜씨로 끓여낸다. 염색예술가 안화자씨가 지리산 만수동에서 담그는 된장을 가져다 써 맛이 깊고 구수하다. 7,000원. (061)782-4054.
[조선일보] 2000-12-12 (생활/여성) 뉴스 39 면 45 판 560자
팔도 사찰김치 ‘한자리에’
젓갈 빼고, 파·마늘 빼고 김치를 담글 수 있나? 전통 사찰 김치가 그렇다.
파, 마늘, 부추 등 자극적인 ‘오신채’를 쓰지 않고 동물성 젓국이나 생선류를 넣지 않았지만 사찰마다 발달한 ‘장’으로 담은 ‘사찰 김치’는 담백하고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소금, 고춧가루, 생강으로 양념을 하고 갓, 미나리, 청각, 당근, 배를 넣는가 하면 고추간장, 버섯간장, 다시마 간장, 감초 간장 등 ‘되간장’으로 맛을 돋운다.
전주 정혜사에서는 들깨죽과 찹쌀죽을 쑤어 김장을 한다.
17일 오전 10시 한국전통사찰음식문화연구소(02-355-5961)에서는 다양한 사찰 김치를 구경하고 맛 볼 수 있다. 청도 운문사의 ‘과일김치’ 속초 신흥사의 ‘취나물 김치’ 합천 해인사의 ‘우엉김치’ 속리산 법주사의 ‘호박김치’ 순천 송광사의 ‘연근 물김치’ 구례 화엄사의 ‘죽순 김치’ 양산 통도사의 ‘풋감김치’ 등이 한자리에 모인다.
사찰김치 역시 지역적 특색이 있다.
경기·충청 지역 사찰에서는 잣을 이용한 백 김치, 보쌈김치, 깍두기가 퍼져 있다.
전라도 사찰에서는 들깨죽 넣은 고들빼기 김치, 콩잎 김치, 깻잎 김치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