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농의 식사는 잠시의 만족을, 이성의 식사는 건강한 삶을
체질과 섭생(攝生)
“밥은 봄같이 먹고, 국은 여름같이 먹고, 장은 가을같이 먹고, 술은 겨울같이 먹어라”
음양과 오행에 바탕을 둔 오상 체질을 거론하며 수실(토허)인에게 유익한 토의 성질을 지닌 황색 식품에 대해 살펴보았다. 화실인, 목실인, 금실인, 토실인과 관련한 식품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체질에 맞는 식품
붉은색 과일은 火의 기운이나 성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롭다. 그리고 녹색 과일은 木, 흰색 과일은 金, 검은색 과일은 水의 기운이 허약한 사람들에게 필요하다. 금실인은 금의 장부(臟腑)인 대장과 폐장이 실하고 금을 제어해야 할 火의 장부인 소장과 심장이 신약한 체질을 말한다. 따라서 부실한 화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화를 상징하는 붉은색 과일이나 채소 등을 섭취하는 게 좋다고 보는 것이다. 토마토, 수박, 체리, 앵두가 붉은색 식품이다. 뿐만 옷도 붉은색 계열을 입어야 든든하고, 몸에 착용하는 보석류 또한 루비(붉은 색 鋼玉), 레드 다이아몬드(블러드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림), 산호, ‘불의 돌’ 임페리얼 토파즈와 같은 적색 보석을 애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 흰색 과일과 채소
화실인은 화의 장부인 심장과 소장이 실하고 화를 컨트롤해야 하는 水의 기운이 허한 경우다. 수의 장부는 신장과 방광이며, 수는 검은 색으로 상징된다. 따라서 수의 기운이 필요한 화실인은 ‘블랙 푸드(black food, 검은색 과일과 알곡)’가 보탬이 되고, 검은색 의복을 입고 보석, 패물, 장신구도 검은색 계통의 것을 걸치는 게 좋다. 블랙 다이아몬드, 블랙 사파이어, 스피넬 등이 검은색 보석이다. 검은색 식품은 일반적으로 암 예방과 기억력 향상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체질과 상관없이 맛과 영양의 밸런스, 건강을 위하여 포도, 오디, 블랙베리, 프룬, 흑미, 흑두, 흑임자, 검정 강낭콩 등의 식품을 섭취하는 것은 권장할 만하다. 사실, 198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Five a Day”라는 오행을 상징하는 오색 식품 섭취 운동이 펼쳐진 이후 다섯 가지 칼라 식품에 대한 관심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하였던 적이 있다. 5색 과일이나 채소를 골고루 하루에 총 400g 이상 섭취하자는 것이 이 캠페인의 핵심 주장인데, 이 운동의 결과 미 건국 이래 처음으로 암 발생률과 사망률이 감소 추세로 돌아섰었다. 지금은 당시의 열기가 시들해졌지만, 블랙 푸드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여전한 것 같다.
토실인은 살려는 열망으로 땅에 뿌리를 내리려는 木의 속성을 지닌 식물이 단단하거나 영양가 없는 토양을 만나 고전하는 경우에 빗댈 수 있다. 토는 강한 반면 목을 상징하는 장부인 간담이 부실하니 녹색 계열의 의상을 입고, 보석은 녹색의 비취 정도 걸치는 게 좋다. 틈나는 대로 녹색의 잔디밭을 어슬렁거리고, 푸른 숲에서 산보를 즐기는 것도 필요하다. 아보카도, 멜론, 키위 말고도 푸른색 채소나 과일은 많으니 샐러드를 만들어 먹든, 갖은양념으로 무쳐 먹든, 삶아먹거나 볶아먹거나 선택의 폭이 넓다.
목실인은 목이 실한 반면 흰색을 상징하는 금이 허한 경우다. 금이 상징하는 장부는 대장과 폐다. 면도칼(金)로 아름드리나무(木)를 벨 수 없다. 설사 그럴 의지가 있다 해도 수개월이 걸릴 일이다. 따라서 흰색 보석류를 착용하고, 옷도 흰옷을 입어야 건강해진다. 식품도 백색 식품을 섭취하는 것이 몸에 이롭다. 대표적인 백색 과일과 채소로는 배와 바나나, 알로에, 양배추, 양파, 버섯, 무, 도라지, 더덕, 마 등이 있다. 과학적으로 흰색 색소를 만드는 물질인 안토크산틴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은 따뜻한 성질을 지녀서 폐와 기관지가 약한 사람에게 좋다고 한다. 또 백색 과일이나 채소는 몸속의 노폐물과 독소를 몸 밖으로 배출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요한 것은 중용이다. 맛있다고, 몸에 좋다고 마구 먹는 폭식은 해롭다. 어느 한 가지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식사나 식단 또한 중요하다. 자신의 체질을 알아서 몸에 유익하고 해로운 식품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필요하다. 본능에 따르는 식사는 잠시의 만족을 주지만, 이성의 충고를 따르는 식사는 건강한 삶을 선물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은 묘한 존재다. 식량이 부족할 때는 무엇이고 가리지 않고 입에 넣었을 텐데, 살만하니까 사변적이 되어 - 실제로는 지금 당장 안 먹어도 혹은 눈앞의 것을 안 먹어도 굶어 죽을 염려를 안 해도 되므로 - 먹는 일에도 금기를 적용해 까탈 맞게 음식을 가려먹게 되었다. 종교적으로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은 소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고(그렇다고 물론 소고기를 전혀 안 먹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과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돼지 지방에서 추출한 젤라틴이 들어간 오** 초코파이를 이란 친구에게 주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는 문어를 유럽인들은 ‘악마의 물고기(devil fish)’라고 부르며 먹기를 꺼린다. 임신부가 멀리해야 할 식품도 문화에 따라 다르다. 오리고기를 먹으면 태어날 아기의 손발이 오리발처럼 달라붙고, 닭고기를 먹으면 피부가 닭살이 된다. 이런 식의 금기는 생각보다 만연해 있다.
현대인들이 보기에 실소를 금치 못할 금기 중 하나가 忌諱라는 것으로 돌아가신 조상이나 성인, 황제와 같이 신분이 높은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기 꺼리는 일이다. 사람 간에는 예의와 존숭(尊崇)의 차원에서 그렇다 쳐도, 식품의 이름조차 기휘 때문에 개명해야 하니 우습다고 할 수밖에 없다. 참마를 가리키는 서약(薯藥, 한약재로 쓰일 때는 山藥이라고 함)은 강장제로서 덩이뿌리를 몸이 허해서 생기는 남성의 유정(遺精), 여성의 대하(帶下), 소갈(消渴), 묽은 변이나 곱똥을 누는 사리(瀉痢) 즉 설사(泄瀉) 따위에 쓴다. 이 食物 겸 약재의 본이름은 서예(薯預)였는데, 중국 당나라 제8대 황제인 代宗 이예(李豫, 재위 762~779년)의 휘와 같다고 해서 음이 비슷한 ‘藥’으로 바뀌었다.
백제 무왕이 신라의 아이들에게 마를 먹인 까닭은?
고등학교 시절 배운 <薯童謠>는 그 내용이 알쏭달쏭했다. 『三國遺事』 권 제2 紀異 武王 條는 신라 향가인 이 노래와 관련하여 “(훗날 백제 무왕이 되는 젊은이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는 소문을 듣고는 머리를 깎고 신라의 서울로 가서 동네 아이들에게 서예 즉 마를 먹이니 아이들이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었고, 이에 아래와 같은 노래를 지어 아이들을 꾀어 부르게 하여 동요가 서울 전역에 퍼져 대궐 안에서까지 들리게 되자 백관들이 왕에게 극구 간하므로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 보냈다”라고 전한다.
善化公主主隱 선화공주니ㅁㆍㄴ
他密只嫁良置古 ㄴㆍㅁ 그ㅿㅡ기 얼어 두고
薯童房乙 셔동 지블
夜矣?乙抱遣去如 바므란 안고 가다
이 이야기대로라면 서동은 무왕이어야 하고, 선화공주는 무왕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나온 金製舍利器와 함께 발견된 금판의 사리봉안기에 무왕의 비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고 되어 있으니 무왕의 왕후는 선화공주가 아니다. 물론 선화공주가 일찍 죽어 당시 실세였던 사택가문의 여식이 왕비가 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세간에서 말통대왕(末通大王)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백제 무왕이고 그의 어렸을 적 이름이 薯童”이라는 『高麗史』의 기록(“俗號末通大王陵, 一云, 百濟武王, 小名薯童”)(권 57 志 권 제11 地理 二 전라도 전주목 금마군 항목)과 “무강왕(武康王)이 말통대왕이 되었다”는 『世宗實錄』 「地理志」의 기록(“在郡西北五里許, 谷呼武康王爲末通大王”)(권 151 지리지 전라도 전주부 익산군 편)은 서동이 무왕이 아닌 무강왕일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역사적 진실을 추적하는 작업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예가 삼국시대에 아이들도 좋아하는 한국인의 먹거리였다는 점이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수실인이라 토가 허하고 따라서 비위가 약한 체질이라 황색 식품이 몸에 좋다는 게 오상체질에 입각한 일반론이지만, 위에서 말했듯, 균형 잡힌 식단이 중요하기도 하고, 왠지 입맛에 맞는 식품이 따로 있는 법이다. 비록 나는 싫어하지만 마를 좋아하거나 체질상 백색식품인 마의 섭취가 유익한 사람들이 있다. 마는 기력이 허한 남자들에게 강정제로 쓰이는 식품 겸 약재다. 그런데 서동이 신라의 어린애들에게 마를 먹인 까닭은 무엇일까? 『東醫寶鑑』에 의하면, “마는 따뜻하고 맛이 달며 虛勞(허약한 몸)를 보해주고 오장을 채워주며 筋骨을 강하게 하고 安神(정신을 편안하게 함)을 통해 지혜를 길러준다”고 한다. 서동의 깊은 뜻이나 의도는 몰라도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 서동이 좋은 일을 한 건 분명하다.
똑같이 먹어도 유난히 더 살이 찌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는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몸속에 ‘피르마쿠테스’라는 이름의 유해균이 많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피르마쿠테스균은 장내에서 당 발효를 증진하고 지방산을 생성해 비만을 유도하는 유해균이다. 반면 우리 몸을 날씬하게 만들어주는 이로운 균은 ‘박테로이데테스’인데, 이 균은 우리가 섭취한 탄수화물을 분해하고 몸 밖으로 배출시켜 체중 감량을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프랑스, 특히 남프랑스 여자들은 먹는 양이 절대 적지 않다. 오히려 식사량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도 변함없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한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꽤 많이 먹는다. 쏘렌토 골목 카페에서 노부부가 안티 파스타로 피자를 한 판씩 먹고 싸딘 파스타와 랍스터 파스타를 또 한 접시 먹는 걸 보고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던 기억이 난다. 그런 대식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리고 많이 먹는데도 살이 안 찌는 건 일종의 축복이다. 먹고도 살이 붙지 않는 현상에 대한 설명의 하나가 “프렌치 패러독스”라는 주장이다. 육류 등 살찌는 음식을 많이 먹지만 와인을 곁들여 마시기 때문에 먹고도 살이 안 찐다는 것이다. “지중해 식단”이라 하여 요리를 할 때 올리브 오일을 많이 사용하므로 배불리 먹어도 비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럴듯한 조리문화 홍보도 있다.
▲ 동지 팥죽과 동치미
제철음식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것 같지만 제대로 실행에 옮겨놓지 못하는 비만 방지 요체가 있다. 다름 아닌 우리 선조들의 경험에 의한 섭생 내지 건강 관리법이 그것이다. 이번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인용한 속담을 잘 들여다보면 그 속에 사계절 기온과 관련지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섭생에 관련된 지혜가 담겨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마땅히 밥은 따뜻하게 먹는 것이 좋다. 국은 뜨거워야 하고, 장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다시 말해, 끓인 뒤 식혀서, 그리고 술은 차게 마셔야 몸에 이롭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네 선조들은 부족한 식량 사정 속에서 자연과 일치하는 섭생법을 체득하여 생존을 영위하고 독자적인 음식문화를 발달시켰다. 서양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네 풍속엔 절식(節食)이란 게 있다. 절기에 맞춰 특별히 만들어 먹는 음식을 총칭하는 말이 절식인데, 설날에는 떡국, 대보름엔 오곡밥, 초파일엔 증편, 단오엔 수리취떡이나 쑥떡, 유두일엔 국수(유두면)나 수단, 삼복중에는 육개장, 추석날에는 송편, 구월 구일 중양절(重陽節)엔 국화주와 국화전, 동짓날엔 팥죽을 먹는 풍습이 바로 그것이다.
이 중에서 보름날의 풍습에 대해 더 자세하게 말하면, 이날 그저 오곡밥만 지어 먹는 것이 아니라 이른 새벽에 ‘귀밝이술’이라고 청주를 한 잔 마시고, ‘부럼 깨기’를 하고, ‘복쌈’이라고 해서 김이나 나물 잎에 밥을 싸서 먹었다. 나물은 묵혀두었던 박나물, 버섯, 고사리, 도라지 말린 것, 외곡지, 가지고지, 시래기 등을 함께 섞어 무쳐 먹었다. 그리고 ‘묵은 나물을 늘어놓았다’라는 뜻으로 陳菜라고 불렀다. 고기 하나 없이 차려지는 순 자연산의 한국적인 채식 식단인 셈이다.
가을 전어가 영양학적으로 최고이며 미각적으로도 절정임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가을에 전어를 구우면 집 나간 며느리가 되돌아온다” 할 정도로 가을철 전어는 미식가의 예찬 대상이다. 그런데 전어 맛의 절정은 9-10월이 아닌 11월이다. 이 시기에 잡히는 전어는 살이 통통하고 비린내가 적으며 뼈가 무르고 맛이 고소하다. 늦가을 고소함이 비길 데 없는 전어 맛의 비밀은 풍부한 지방에 있다. 가을철 전어의 지방 함량은 봄의 세 배나 된다고 한다. 산란기인 3월~8월에는 지방 함유량이 적어 맛이 떨어진다. “가을 전어의 대가리엔 참깨가 서말’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 맛깔스럽게 구워진 가을 전어
아욱 된장국을 특별히 좋아하는 나는 근래 식품매장에 나오는 아욱이 억세고 맛이 예전 것만 못한 게 늘 불만이다. 아욱은 가을 국거리 채소로 나 같은 사람의 다이어트에 적격이다. 내가 아욱국을 좋아하는 건 된장과 어우러진 특유의 구수한 맛 때문이지만, 알고 보면 마른 체형인 내 몸이 살자고 본능적으로 아욱을 선택한 결과인지 모른다. “아욱으로 국을 끓여 삼 년을 먹으면 외짝 문으론 못 들어간다”는 속담대로 한 삼 년을 아욱국만 먹어볼까 했는데, 집 식구가 편식이 해롭다며 동조하지 않는 바람에 아욱의 효과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여전히 몸이 여윈 편이지 불어나 있지는 않다. 아욱국에 맛들인 사람은 알겠지만 “가을 아욱국은 마누라 내쫓고 사립문 닫아걸고 먹어도” 죄책감은커녕 마냥 맛만 좋아 콧노래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있다.
상추는 어떤 계절의 식품일까? 여름이라고 답하면 오답이다. 한여름 장마가 지나고부터 가을까지가 상추의 계절이다. 상추는 성질이 냉한 식품인 데다 서늘하고 시원한 날씨를 좋아한다. 배처럼 치약 대신 쓸 수 있다. 추분 지나면서 해가 짧아지면 우울해하거나 식욕 부진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상추는 권할 만한 채소다.
절기상으로는 이렇게 제철 식품이 따로 있지만, 그보다는 개인의 체질에 맞는 식품, 그렇지 못한 식품을 구별해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전어가 내 몸에 맞지 않는다면 아무리 가을 전어라 해도 쓸모가 없다. 곧 맞이할 동짓날 팥죽 먹을 생각을 하며 나는 미리부터 즐겁다. 팥죽에 곁들여 먹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맛과 얼음 박힌 무의 질감 또한 유쾌한 상상을 자아낸다. 음식은 궁합이 맞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