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밤에 불어닥친 폭우 속 포장마차는
이동규
소주 좀 걸치면 이 풍진 세상 어찌 살까나 하다가
그냥 물처럼 살면 다 된다며 다독거리는 말들이
넋두리와 한탄이며 허풍이라는 것을
술주정꾼들의 헛발길질이란 것을
그것들은 결국 재활용 부대에 담겨나갈 빈 병 숫자만 늘린다는 것을
엊저녁의 몰아친 푹풍우 속에서 불쑥 나타난 패거리들
아무 말이나 뱉으며 포장마차를 마구 흔들어 댄다.
오염수 방류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일제 덕분에 우리나라 근대화가 빨리 이뤄졌다고
반공이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정치는 검치로 다 잡아야 한다며
오늘 어려운 것은 모두 지난 정권 때문이라며
안팎으로 얻어맞더니
포장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마침내 찢겨 버린 포장이여
광대뼈만 앙상한 마차에 달랑 몇 조각 붙어있는
포장 쪼가리가 숨을 펄럭거리는
웃음기 살아진 허탈한 길섶 마차 신세인데
아침 햇살은 속절없이 속살까지 환하게 내 보이고
갑천의 해오라기는 간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본격적으로 물고기 사냥에 나서고 있다.
불어난 물속의 구름 틈새를 기웃거리며
빨간 눈으로 기회만 엿보는
2. 하꾸나 마타타
이동규
모깃불에 밀리면서도 재진입 기회만 노리고 있는
모기들의 절박함을 깜박 잊고 졸다 보니
나는 별을 가득 싣고서 달빛 호수에서 노를 젓고 있었다.
별똥별이 물수제비를 그리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모깃불이 사그라들자
기다렸다는 듯 벌 떼 같이 몰려온 모기들의 성찬이 시작되고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물수제비까지 뜨던 그 많은 별 대신에
모기들만 윙윙거리고
별들은 모두 물안개 뒤로 숨은 것일까 아니면
이곳의 미세먼지가 싫어서
황사도 없고 미세먼지도 없다는 돗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의 초원으로 가버린 것일까
밤마다 열린다는 그곳의 동물 사육제가 좋아서
자기도 모르게 마사이족과 함께
“하꾸나마타타”를 외치며 뜀박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별이 안 보이는 것은 분명히 안개 때문일 거라고
결코 아프리카까지 가버린 것은 아닐 것이라고
별바라기 하며 안개를 밀어내야 한다.
진정으로 별 볼 일 있는 세상을 만드려면
3. (수필)
걸레야 걸레야
이 동규
네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출신은 본래 걸레가 아니라 사람의 얼굴과 몸을 닦아주는 수건이었구나. 그런데 이렇게 쓰레기로 버려지는 신세가 되었다니 매우 안타깝다.
너도 세상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을 때는 화려했었겠지. “경축 00기념”이라고 쓰인 명함을 내밀면서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에 장사는 없다고 하듯 너도 세월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더러워지면서 사람의 몸을 닦는 수건이라는 본래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걸레라는 재활용 신분이 되었을 것이다. 더 이상 수건일 수 없게 되면서 욕실 수납장에서 밀려나 바닥이나 닦는 신세로 전락한 된 것이다. 이렇게 맡은 일이 청소하는 것으로 달라졌지만 그래도 세상의 무엇인가를 닦으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수건 시절을 돌이키며 “왕년에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히지 않고 현재의 처지로 자신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이다. 비정규직이라고 해도, 신분이 낮아졌다고 해도 자신이 어딘가에 쓸모가 있다면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즉, 자신 스스로가 아직은 쓰임새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나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들의 처지에서 볼 때 궂은일, 싫은 일, 좋아하는 일을 가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현직에서 물러나 은퇴자라는 신분으로 지내는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것이 비정규직이건, 하위직이건 거절하지 않고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 대부분이지 않는가! 또 사람들은 금전적 보상이 없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보람된 일이라면 그 기회를 뿌리치지 않가 기꺼이 응해주지 않는가!
어떻든 너는 거실부터 화장실까지 구석구석까지를 닦을 수 있는 청소용 걸레로서의 새로운 신분을 갖게 된 것이다. 다만 문제는 청소 대상이 일거리가 많은 것들이어서 네자신도 그만큼 쉽게 더러워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걸레로의 생존 기간은 오래 갈 수가 없다. 얼마 안 있어 너의 몸은 시커멓게 때가 묻고 낡아져 버린다. 비누로 빨아도 소용없어지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때가 바로 걸레로써의 역할이 끝나는 시점이다. 사람들은 너에게 더 이상 청소를 시키지 않게 되는 것이다. 네가 닦으면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더럽혀질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를 쓰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게 되어 네 의사와는 관계없이 너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신세가 되고 만다.
네가 이렇게 더 이상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할 시점이 온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간 사용해 온 것들일지라도 그것의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렇지만 너희 중 몇몇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지 않고 또 다른 일을 맡을 수도 있다. 즉, 지금까지 집안에서 청소를 담당하였지만 집밖으로 나와 주인의 자동차 세차라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동차 세차 일을 하게 되면 걸레는 그야말로 급속하게 더러워지고 만다. 아무리 빨아도 더 이상 세차를 하기에도 어려울 만큼 새카매져 버리는 것이다. 소위, 걸레일 수도 없는 걸레 신세가 된다. 이때 어떤 사람은 너를 그냥 쓰레기통에 버릴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으로 자동차의 휠에 묻은 시커먼 기름때라도 한 번 더 닦아낸 다음 버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만약 까맣게 기름때가 묻은 휠이라도 한 번 닦은 다음 버리기로 한다면 수건은 수건이다가 걸레로 걸레는 걸레이다가 걸레도 되지 못한 쓰레기로 보냈다면 수건이지만 수건일 수 없어 걸레로, 걸레지만 걸레일 수 없어 휠 기름때를 닦아내는 최후의 걸레로 변신하면서 생애를 보낸 셈이다. 이제 너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쓰임새가 없어졌으니 세상과의 하직을 고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네 일생을 생각해 보면 이처럼 마지막까지 쓸모가 있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니 진짜 후회 없는 삶, 촛불과 같은 삶을 살아낸 것이다.
그간 네가 깨끗하게 만든 세상이 얼마나 많겠는가! 처음에는 사람의 얼굴과 몸을 깨끗하게 했다. 그 다음에는 청소를 담당하는 걸레로서 실내의 여러 곳을 닦았다. 그리고는 집밖까지 진출하여 자동차 내외부 세차용으로서 마지막으로는 휠의 기름때 닦는 일까지 담당한 것이다. 자기 몸이 으스러지고 내동댕이쳐질 때까지 무엇인가 쓸모 있는 일을 하다가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사람으로 치면 너처럼 수건이었을 때 자기 본분을 다해 열심히 일하다가 은퇴한 이후에는 걸레가 했듯 사회에 봉사하거나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마지막으로 숨을 거둘 때에는 시신까지 기증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떠나는 삶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늙었다고 해도 쓸모까지 없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요양원으로 가는 것은 자신을 쓰레기로 버려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긴다. 자신이 움직일 수만 있다면 움직이면서 하루 5천 원 벌이가 될망정 쓰레기도 줍고 폐휴지라도 주워서 스스로 살아내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돈이 모아지면 최대한 절약하면서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하는 삶에서 살아있다는 의미를 찾으려 한다. 병원이나 요양원에 입원시켜 놓고 죽기만을 기다리라는 가족과 친지의 기대를 과감하게 거부하고 병원을 뛰쳐나와 하고 싶은 것을 실천하는 영화 버킷리스트의 주인공(잭 리콜슨, 모건 프리먼 주연)들은 여생을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내는 것이 보람있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비록 네 선택은 아니고 사람들이 결정한 것이지만 네가 마지막에 자동차 휠에 묻은 기름때까지 닦고 세상살이를 끝내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은 너와는 달리 자신의 앞날에 대해 어느 정도 선택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냥 남들이 원하는 대로 요양원에 누워서 지내다 그냥 죽을 것인가 아니면 움직일 수만 있다면 뭔가를 하며 세상에 보탬이 되도록 지내다가 죽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수건의 일생 아니 걸레의 일생에게서 배울 필요가 있다.
마사이라마 : 아프리카 동부케냐와 탄자니아에 거주하는유목민족
하꾸나 마타타(hakuna :없다 matata : 문제) : 문제 없다. 즉, 근심 걱하하지 말라(라이온 킹 영화로 유명해 진 아프리카 스와힐리어)
* 2002년 월간 한맥에 시 “살다 보면, 몸이 말을 하네, 산비탈 토란 밭” 등을 발표하며 등단, 네 권의 시집 네 권의 산문집, 세 권의 유머집 등 33권의 저서가 있음. 대전작가회의, 호서문학회, 대전문인총연합회, 별곡문학, 한국해외문학교류회 회원, eastar5548@hanmail.net
첫댓글 이동규 선생님 원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