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를 읽고 / 최종호
글감으로 내어 준 회의(懷疑), 기억을 이리저리 들춰 봐도 딱히 쓸 만한 내용이 없다. ‘한 번쯤 쉬어 갈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이 또한 마뜩치 않아 현 정국과 관련된 내용을 쓰려고 마음먹었다. 충신과 간신의 얘기가 있으면 참고하려고 예전에 쓴 독서록을 들추다가 2016년 7월 26일에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메모해 둔 것이 있어 이것을 옮겨 쓴다.
이 책은 작가 한강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맨부커상을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최근에 가장 잘나가는 베스트셀러다. 이처럼 인정받고 인기 있은 작품을 읽고 나서 서재에 보관하려고 인터넷 서점에서 다른 책 몇 권과 함께 주문했다. 얼마 전에 『소년이 온다』를 접했기 때문에 그냥 쉽고 편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이해하기 어렵고, 꽤 수준이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채식주의자』는 3부로 엮어진 소설이다. 1부 ‘채식주의자’는 고기를 거부하는 영혜 남편의 시점에서 얘기가 펼쳐진다. 그녀는 기괴한 꿈을 꾸고 난 뒤부터 육식을 거부한다. 언니가 새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 사달이 난다. 비쩍 여윈 그녀에게 가족들은 먹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급기야 아버지가 손으로 집어 억지로 입에 넣어주려고 하자 그만 분노가 폭발하고 칼로 자해한다. 응급실에 실려 가고 난 뒤부터 점점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는다.
이는 문화나 제도, 관행에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백안시하고, 틀 안에 가두려고 하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채식주의자’를 통해 얘기하는 것 같다. 나와 다르면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강요하고 틀렸다고 단정해 버리는 세태를 알리려는 의도가 행간에 숨어 있을 것이다.
2부의 ‘몽고반점’은 영혜 형부의 시점에서 얘기가 펼쳐진다. 그는 비디오 아티스트이다. 처제의 몸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있다는 얘기를 아내에게 듣고 예술적인 상상을 하며 몸에 그림을 그려 촬영하고 싶어하며 찾아가 자신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 설득한다. 결국 둘은 몸에 그림을 그리고 꽃이 되어 관계를 맺는다. 다음날, 언니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같이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우리 사회는 본질을 추구하는 사람보다 비본질적 요소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또, 섣부른 판단 때문에 후회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행간에서 말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3부의 ‘나무 불꽃’은 언니의 시점에서 얘기가 펼쳐진다. 남편과 영혜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두 사람을 입원시켰으나 남편은 정상으로 판명되고 풀려난다. 그리고 잠적한다. 병원에서는 거식증이 심한 영혜에게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고 안정제를 놓는다. 이를 본 언니는 입원시킨 것을 후회한다. 그녀는 점점 나뭇가지처럼 말라간다. 자신이 곧 나무가 되기를 바라며 기이하게 행동한다. 나중에 언니는 동생을 이해하고 정신병원에서 탈출시켜 대학병원으로 옮긴다.
국가나 대기업, 병원에서 부당한 대우을 받거나 폭력을 당해도 개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을 행간에 숨겨두지 않았나 싶다. 이해하기 보다는 강요하거나 강제하는 것이 많고, 인권보다는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를 널리 알리려고 하는 의도를 작품 속에 녹여낸 것이 아닌가 싶다.
독자의 수준이 낮아서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내가 쓴 줄거리를 잘 못 엮었는지 또, 행간에 숨어있는 뜻과 너무 동떨어진 느낌을 쓴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조만간 다시 읽고 실수가 있다면 바로잡고, 부족한 내용은 보충하련다.
첫댓글 <채식주의자> 제가 늦었습니다. 읽은 후 끄적 끄적 해 놨어야 하는데 선생님의 글을 읽고 그 잔상 때문에 생각이 비켜갈까 걱정입니다.
나중에 싸인 받으려고 책을 몇 권 주문해 읽고 부분 필사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줄이고 그 속으로 들어가 보려 노력했습니다. 깊이 있는 선생님의 글 고맙습니다.
'이는 문화나 제도, 관행에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백안시하고, 틀 안에 가두려고 하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채식주의자’를 통해 얘기하는 것 같다.' 이건 노벨상 위원회가 선정 이유로 밝힌 내용과 동일하네요. 대단하세요.
처음 책이 나왔을 때 읽고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내용은 또 왜 이렇게 난잡한지 행간을 읽어 내지 못했어요. 그런 것을 읽어 낸 최 교장님이 고수입니다.
지금으로 부터 꽤 오래 전, 젊은이들로부터 꽤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의 책이라며 조카가 보낸 책이라 읽었으나, 쉽게 읽어내려가지 못한 책이었네요.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난 개인의 사고나 본능을 끔찍하게 터부시하는 인간들의 폭력을 상징적으로, 예술적으로 승화시켰구나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주변에 영혜 남편이나, 아버지, 선을 넘는 형부 등, 다양한 인간성을 지닌 이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녀의 시각이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며 읽은 책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선생님 글을 읽으니 '채식주의자'가 선명해집니다. 처음에 '무슨 이런 책이?'하고는 겨우 읽었거든요. 다시 읽고 싶지 않았는데 선생님 덕분에 용기가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