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한국해양문학상 대상작
홍어
하린
기억의 유속은 왜 이리 빠른가
끝까지 버티라고 참으라고 말한 사람까지 데려간다
그러니 새우깡에 소주를 마시며 밤새 과거를 더듬던
그는 한 마리의 홍어다
후일담을 위해 삭힐 대로 삭힌 분노의 맛
조절이 불가능한 어둠의 맛이 되어 취해간다
캄캄한 항아리 안에 날것의 기억 하나를 집어넣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그날의 심정, 한 줄기를 올려놓고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뚜껑을 닫고 지낸다
바깥은 내내 소란스러워도
어떤 기척도 쥐 죽은 듯한 시간 안쪽으로 흘러들지 못한다
잔인한 바다를 목격한 바람이 허청허청 지구를 떠돌다 돌아와
돌담집 마당에서 하룻밤을 묵어가려고 할 때
기억의 살점들이 들썩인 건 우연이 아니다
변질도 변절도 되지 않은 채 똬리를 틀고 있던 분노가
고개를 쳐드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럴 때 김빠진 소주는 맹물처럼 달다
녹아 없어진 줄 알았던 애간장에 피가 돌기 시작하면
삭힘은 썩음이 아니다 중독이 된다
남몰래 차려놓은 제삿밥을 먹으러 오는 자 누구인가
내장까지 통째로 넣고 끓인 톡 쏘는 맛 지닌
오욕이 둥둥 떠다니는 슬픔을 떠먹으려는 자 누구인가
바다와 대작하던 그의 눈빛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귀결점은 그믐을 닮은 한 사람 곁이지만
불콰하게 취한 시간과 시간이 만나
끝내 싱싱함을 잃지 않은 집착이 된다
숨 죽였던 계절의 맨살은 다시 붉어지고
하린 시인
2008년 『시인세계』 시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창작이론서 『시클』이 있음. 중앙대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음. 중앙대, 한경대, 광주대, 협성대, 서울시민대, 열린시학아카데미, 고양예고 등에서 글쓰기 및 시창작 강의. 계간 『열린시학』 부주간을 맡고 있음. 2011년 청마문학상 신인상, 제1회 송수권시문학상 우수상, 2016년 한국해양문학상 대상을 수상했음. 『시클』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6년 우수출판콘텐츠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