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의 착각
박옥희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 는 프로방스 지방을 배경으로 작품에 양과 염소를 자주 등장시킨다. 우리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그의 단편 <별>이 실려있다.
주인집 딸인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양치기 목동의 은은한 사랑 이야기로 전개되는 이 작품에는 양들의 꿈에 관한 구절이 나온다.
“ 바로 그때 갑작스레 싸립문이 열리면서 아름다운 스테파네트가 나타났다. 양들은 연신 움직이면서 지푸라기를 밟아댔고 꿈을 꾸면서 움메 음메 기도했다.”(김붕구역 알퐁스 도데 <<별>>중)
한동안 머리 속에서 맴돌던 장면이다. 양들이 꿈을 꾸다니. 동물들의 감정 세계가 궁금했었다.
나는 동물이 싫지는 않은데 무섭다. 특히 개의 경우가 그러하다. 어릴 때 집 지키던 덩치큰 개에게 놀란 이후로 지금까지 이웃집에서 기르는 작은 강아지도 피해 다니는 처지이다. 이걸 눈치챈 녀석은 만날 때마다 으르렁댄다. 주인의 호된 꾸중에 꼬리는 내렸지만 마주칠 때마다 나를 무시 한다는 눈빛을 여전히 보내온다.
얼마전의 일이다. 트렁크의 짐을 내려놓고 개주인과 잠깐 인사를 주고 받는사이에 내려놓은 장바구니에 소변을 본 것이다. 놀라 미안해하는 개주인을 봐서 웃는 얼굴은 보였지만. 언젠가 한번은 꼭 혼을 내 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우선 동물들의 감정 세계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TV프로 동물농장을 보기 시작했다. 15년째 방영되고 있다는 이 프로는 특별하거나 신기한 동물들의 행동을 시청자에게서 제보받아 다큐 형식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 알려진 개와 원숭이가 서로를 의지하는 각별한 사이가 되고,‘오리를 사랑한 거위’ 혹은 ‘말과 개의 우정’처럼 종(種)을 뛰어넘는 동물들의 애정관계도 펼쳐진다. 독특한 묘기를 보여주는 애완견부터 스킨 스쿠버 다이버 자격증을 갖춘 강아지까지 그들의 재능은 다양하다. 애완견들끼리의 서열 다툼과 질투, 거기다 삼각관계까지 갈수록 흥미진진하다. 때로는 불면증에 시달려 주변의 소음에 짜증을 내는 강아지를 보면서 사람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않는 녀석들에게 빠져들게 되었을 즈음 나는 황당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삼년 전에 입양했다는 반려견과 얼마전에 돌이 지나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하는 귀여운 남자 아기와 아기 엄마와의 이야기이다. 반려견은 엄마의 사랑을 독점한 아기를 질투한다. 아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입에물고 주인 부부의 침실에 숨겨놓는 등, 마치 두 살 터울의 동생을 시샘하는 인간의 형아인 것처럼 아기를 괴롭힌다. 심지어 엄마 품에 안겨있는 아기의 손등을 물어 피를 보이는 일까지 벌어진다. 내가 받은 놀라움은 강아지의 행동보다 흥분하는 기색없이 자주 일어나는 일인듯 태연한 아기 엄마의 태도였다. 그것은 마치 동생을 괴롭히는 형을 야단치는 엄마의 범위를 벗어나지않은 지극히 일상적인 꾸지람이었다.
다음날 놀란 마음을 젊은 친구에게 얘기했다. 그 친구는 흔한 일이라면서 흥미없어했다. 하나 더 덧붙여 준 일화는 더욱 가관이다. 노부부가 강아지 한 마리를 애지중지 기르고 있는데 가끔 찾아오는 손주들을 무섭게 공격했단다. 화가 난 주인 부부는 강아지를 거실 밖 마당으로 쫓아냈고 얼마 후 그 충격을 이겨내지못한 강아지는 죽고 말더라는 내용이다.
언젠가 반려견의 결혼식과 장례식 장면을 외국 필름에서 본 적이있다. 주인의 유산까지 물려받는 개들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웃음으로 흘려 보냈었다. 요즈음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된 모양이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반려견의 치장을 위한 미용 시설은 기본이고 전문 요리사가 만든 건강식, 거기다 건강검진까지 받는단다. 주인의 여행 중에는 호화 호텔에 투숙시켜 휴식을 취하게 한다는 등, 경쟁을 부추키는 애완견 관련 시장의 업자들과 더불어 개 주인들의 극성은 나열하기 민망할 정도로 끝이 없다. 넘치도록 화려한 호강 속에 있는 그들을 보면서 문득 뉴질랜드 여행 중 산중턱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양떼들이 생각났다. 굵은 비가 내리는 으스스한 날씨로 기억 되는데 온몸의 털을 모두 깎인채 양들은 서로의 몸을 부비며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유안진의 수필집 <<상처를 꽃으로>>에 <예수님은 개를 싫어 하시나봐요?!>라는 제목의 재미있는 글이있다. 성당의 출입구에 붙은 ‘애완견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무시하고 애완견과 산책을 즐기는 개 주인에게 주의를 주었더니 그가 작가에게 이렇게 항의 했다는 내용이다.
“예수님은 개를 싫어 하시나봐요?”
북 아프리카 튜니스(Tunis)출신인 이슬람 역사학자 이븐 할둔(Ibn Khaldun 1332-1406)은 이렇게 대답한다.
“ 인간의 사고능력은 인간과 동물을 구별짓고 (중략) 신은 모든 동물이 인간에게 복종하고 그 지혜를 받도록 했으며, 인간에게 사고의 능력을 주고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지배권을 부여했다.”.
<<역사서설-아랍.이슬람 문명>>) (김호동 옮김.)
세상의 모든 반려견들이여, 착각하지 말아라!
성경 어디에도 개가 사람된단 말은 없다더라.
<프로필>
불어불문학 전공
2013년 9월 한국산문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