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부모에 대한 공경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말로 공경의 사전적 의미는 '삼가차려 높임으로 사람 간의 위계질서를 전제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대한 예의 바른 행동'을 말하는 것으로 쓰인다.
우리말과 비슷하게 구약성서의 '공경하다'라는 뜻의 카바드(db'K;)는 무겁다, 힘겹다, 짐이 되다, 존경하다, 영화롭다, 존귀하다. 카바드 또는 카베드(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무겁다, 힘겹다, 짐(부담)이 되다, 영화롭다, 존귀하다, 견고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15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 히필, 푸알, 히트파엘형으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의 기본의미는 '무겁다'(be heavy), '중량 있다'(be weighty)이며, 이 단어의 의미는 거의 문자적 의미로 쓰이지 않고, 비유적 의미(예: "죄가 무거운")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비유적 용법으로부터 사회적 유명인사 즉 영예롭고 인상적이며 존경할 만한 저명인사에 대한 개념의 단계에 쉽게 이른다. 이러한 후자(비유적인 의미)의 용법은 출현 횟수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카바드의 문자적 의미는 다음 구절에서만 사용된다. 삼상 4:18, "엘리가...비둔한 연고라", 삼하 14:26, "압살롬...그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카바드는 세 가지 비유적 용법을 나타낸다. 첫 번째의 용법은 대부분 바로와 관계하여 발견되며 일곱 구절에서 쓰인다(출 7:14, 출 8:15, 출 8:28, 출 9:7, 출 9:34, 출 10:1, 삼상 6:6). 그 상황 혹은 히브리 백성의 청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 바로의 거부는 마음의 완악함 혹은 강퍅함으로 간주된다(참조: Gildlestone의 주장, SOT, pp. 66-67).
마찬가지로 귀(사 6:10, 사 59:1, 슥 7:11), 눈(창 48:10)은 둔하고 무디게 될 수 있다. 가혹함에 대한 비유로서 무거움은 노역(출 5:9 등), 멍에(왕상 12:10 등), 전쟁(삿 20:34 등)을 말해준다. 이러한 가혹한 재난은 3회에 걸쳐서 재앙으로 무섭게 내리치시는 하나님의 손으로 표현되고 있다(삼상 5:6, 삼상 5:11, 시 32:4).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람의 손은 다른 어떤 사람을 무겁게 누를 수 있다(삿 1:35, 욥 33:7). 또한 어떤 사람은 반드시 고의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다른 어떤 사람에게 짐이 될 수 있다(삼하 13:25, 대하 10:10, 대하 10:14, 대하 25:19, 느 5:15). 혹독한 속박이 비유적 의미, 즉 "무거운 멍에"에 의하여 표현된다는 사실(참조: 왕상 12:4, 대하 10:4, 대하 10:11)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인 "내 멍에는 쉽고"(마 11:30)라고 말씀하시도록 하였다. 가혹함에서 큼이란 의미가 되는 것은 단순한 단계이며, 여러 경우에서 함축적인 의미를 고려하여 완전히 명백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심히 중했다는 진술이 그것이다(창 18:20). 이러한 것은 죄가 컸다는 말인가, 아니면 죄가 심각했다는 말인가? 또한 사 24:20, 시 38:4, 욥 6:3 등도 그러하다.
어쨌든 죄는 그것을 지는 자로 하여금 무겁고 둔하게 하는 짐이라는 것이 분명하다(참조: 사 1:4, 잠 27:3). 합 2:6은 볼모 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 진 자를 공격할 때 이러한 방법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참조: 나 3:15). 한 경우에 아브라함은 재물이 풍부한 자로 언급되며(창 13:2), 그 문맥은 그의 재물의 풍성함이 언급된다는 것을 명백하게 한다. 이것은 잇따른 용법에 대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두 번째의 주요한 부류는 이 단어의 비유적 용법의 확대이다. 이 경우에 이 단어의 개념은 가치 있거나 혹은 인상적이라는 의미에서 무게가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번역은 "영예로운, 존경 받는, 영광스러운, 영화로운" 등과 같다. 니팔형과 피엘형의 어간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의미들을 지닌다. 개인의 평판은 이러한 용법의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고위층에 속하며 부유한 자는 자연적으로 사회에서 존경 받고 저명한 인사가 되었다(민 22:15 등). 이러한 지위와 부와 장수는 일반적으로 의로운 삶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생각되었다(참조: 왕상 29:28 등). 사람이 이와 같은 위치에 이르게 되면 자연적으로 존경을 받게 되는 반면에, 또한 그러한 존경과 영광을 받을 만하다고 기대되는 것이 분명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책임과 권한을 지닌 위치에 있는 자는 존경 받을 만하였다(출 20:12, 말 1:6). 존경 혹은 영예를 표하는 것이, 어떤 사람이 존경, 관심, 순종을 받을만하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으로 상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존경할만한 말을 뒷받침 못하는 생활은 지고한 형태의 위선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면서 행동으로는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는 죄를 거듭 거듭하여 저질렀다(사 29:13). 셋째 용법은 '크기, 숫자, 무게'에 대해 사용되었다(삼하 14:26, 시 8:24, 나 3:10). (참조: J. N. OSWALT; BDB). 히브리어는 '카베르(כַבֵּ֥ ד)로 본래 하나님, 부모 혹은 주인에 관계해서 주로 쓰였고 특히 명령형으로는 하나님, 부모에 대해서만 쓰였다. 이 단어가 명령어로 사용될 때, 그 공경의 대상은 하나님과 부모뿐이었다.
이는 부모 공경이 하나님 공경과 같은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부모의 권위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여겼다. 그에 따라 부모에 대한 반항이나 불순종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반역과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이에 따라 부모에 대한 정당한 관계를 갖지 않고는 하나님과 정당한 관계를 가질 수 없다. 기독교 효는 십계명에 기록되어 있다. 십계명의 권위는 기독교인의 생활규범에 중요한 근거를 지닌다. 이 십계명 중 제 5계명이 바로 부모공경에 대한 내용으로 제 5계명의 중요성은 10가지 계명을 구분하는 하나의 전환점을 이룬다. 제 5계명으로부터 이어지는 나머지 여섯 계명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윤리적 규정들이다. 그러기에 제 5계명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첫 걸음에 위치한다.
즉 제 5계명에서 말하는 부모와의 관계가 부모 이외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결정짓게 된다. 이것이 부모를 섬겨야 하는 윤리적 근거이다. 부모야말로 인간이 출생하면서 맨 처음 만나는 사람으로 낯선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기 전에 먼저 사랑하고 존경해야하는 처음이요, 근본인 사람이다. 제 5계명의 의미는 물질적인 생산성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인간존재 자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이러한 인간의 중요성은 공리주의나 실용주의적 입장처럼 인간의 가치를 그의 생산능력에 기초한다고 보는 경향과 대립적이다. 나이 들어 생산능력을 잃어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가 상실되었다고 부모를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 노후 생활을 위한 사회복지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노인들을 위한 가정의 역할은 중요했다.
구약의 가족은 혈연의 외연이 확대된 가족으로 공동체와 이웃들에게 확대되어 적용되었다. 이런 점에서 5계명은 공동체의 안위를 위한 계명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한 때 '고려장'이라는 악습이 있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에서도 그와 비슷한 것이 있었다. 매일 매일 힘겨움 속에서 살아가는 생활에서 노약자들은 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늙고 병든 부모를 몰래 내다 버리는 일도 생겼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십계명에서 그 어떤 계명보다 우선적으로 부모 공경에 대해 강조한 것으로 십계명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은 어린 자녀들도 포함되지만 일차적인 대상은 성인들이었다. 그들에게 부모는 생산 활동과 가족부양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노인 내지 예비 노인이었다.
이제 노쇠한 부모 세대는 그들이 이제까지 기르고 보호해 왔던 자녀들과의 역학 내지 의존관계가 역전되었거나 곧 역전됨을 직면하게 되었다.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 세대 간의 문제가 제 5계명의 관심사였다. 광야생활에서 세대 간의 일그러졌음을 보여주는 두드러지는 현상들이 늙은 부모에 대한 구타 또는 모욕이었다.
이는 대한 처벌이 지나칠 정도로 강하게 제시된 것은 그만큼 이 당시에 연로한 부모를 업신여기는 모습들이 많았음을 보여 주는 것이고, 그에 따라 이를 막으려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강하게 주어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약자인 부모에 대한 보호는 신약성서에도 이어졌다.
장성한 자식들에게 나이든 부모와 노인들은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겨질 수도 있다. 효율과 경쟁을 진리처럼 받들며 무한경쟁을 부추기고 고효율을 숭상하는 사회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가 관계를 평가하는 숨은 원칙이다. 이러한 이익추구는 부모에 대한 무시를 낳고, 부모에 대한 무시가 하나님의 뜻을 가볍게 여기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부모에 대한 무시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나이 들어 사회적 약자가 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인간의 끊임없는 이익추구의 욕망을 내려놓는 결단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효 윤리는 전통윤리인 효 윤리를 전통문화유산으로 존중하되, 그것이일반적인 강요의 이념이 되지 않도록 경계한다.
또한 기독교 효 윤리는 개인의 도덕규점이나 가정윤리로 이해하던 전통적인 효 개념을 사회와 국가적 차원을 함께 이해하는 공동체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 오늘날 구석으로 내몰린 노인들의 인권을 사회적 시각에서 재고하고, 노인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에 따라 자존감을 고양하여 자기표현의 노동을 통해 사회 공동체 안에서 한 인격으로 당당한 주체성을 발휘하도록 사회구조적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한다. 이렇게 될 때, 우리 사회의 연령 통합적 유대는 사회통합의 공동체적 경험을 풍부하게 할 것이다.
신약성서에서도 헬라어로 공경을 티마오(timavw)는 가격을 정하다(set a price on), 존경하다(honour).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티마오(Homer 이래)는 티메에서 유래했으며,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범죄를 사정하다, 정당한 형벌을 정하다, 선고하다', '평가하다, 존경하다, 경의를 표하다'. 수동태로 '존경할만하다고 여김을 받는다.', '선물하다, 상(또는 보수, 보상)을 주다, 구별하여 상을 수여하다', '평가하다, 과세하다, 가치나 값을 정하다'.
70인 역본의 용법. 동사 티마오는 70인 역본에서 약 48회 나오며, 6개의 히브리어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티마오는 부모에게(출 20:12; 집회서 3:3-16), 노인에게(레 19:32), 왕과 권세자에게(욥 34:19) 영예를 표하는 것, 랍비들은 율법 교사들, 그리고 또한 가난한 자와(참조: 잠 14:31; 집회서 10:23) 유대인 노예들을 포함하여 자기 이웃을 존경하는 것을 나타낸다.
신약성경의 용법. 티마오는 신약성경에서 2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티마오는 '존경하다'를 의미한다. 막 7:6에서 예수님은 입술로만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을 비판하신다.
막 7:10에서 예수님은 부모를 존경(공경)하라고 강조하신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엡 6:2). 딤전 5:5에서 과부를 경대하는 일은 존경은 물론 재정적 지원도 포함한다.
벧전 2:17에 의하면 신자들은 모든 사람을 존경하되, 특히 통치자들을 존경해야 한다. 행 28:10에서 멜리데에서 보볼리오의 부친과 그의 사람들을 고쳐준 것에 대해, 존경과 그리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많은 선물을 받았다.
요 5:23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대한 존경과 동일한 존경을 요구하시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종말론적인 심판자로 임명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예수님 자신이 아버지를 공경하실 뿐만 아니라(요 8:49), 그를 섬기는 자들은 아버지에 의해 귀중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티마오는 '값을 정하다'를 의미한다.
마 27:9의 토기장이의 밭을 매입하는 기사는 슥 11:12-13의 예언의 성취이다: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 된 자 곧 이스라엘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Schneider).
에베소서 6:1-4에 ‘자녀들이여 주님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님께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너희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라고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은 약속이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그러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아버지들이여 여러분의 자녀를 화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계와 권고로 양육하십시오.’ 순종이란 헬라어는 휘파쿠오(uJpakouvw)이다. 말을 듣다(listen), 순종한다 (obey).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으로 동사 휘파쿠오(Homer 이래로)는 (a) '듣다, 대답하다', (b) '복종하다, 따르다', (c) '열다'를 의미한다.
70인 역본의 용법에는 휘파쿠오는 70인 역본에서 약 75회 나온다. 휘파쿠오는 주로 히브리어 사마(듣다, 경청하다, 복종하다)를 번역하는데, 순종은 사람에게(창 16:2; 22:18), 지혜에게(시락서 4:15; 24:22), 그리고 하나님에게(예: 렘 3:13, 25)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사 50:2; 66:4 등에서 휘파쿠오는 히브리어 아나(대답하다, 응답하다)를 번역한다. 이 말은 사 65:24에서 인간의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의 용법으로는 휘파쿠오는 신약성경에서 2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a) 행 12:13에서 휘파쿠오는 '문에 응답하다(영접하러 나오다)'는 의미로 문을 '여는' 것을 의미한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b) 휘파쿠오는 '복종하다'는 의미로 아내, 자녀, 종(엡 6:1; 엡 6:5; 골 3:20; 골 3:22), 귀신, 자연(막 1:27; 막 4:41), 선한 능력이나 악한 능력에 일반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인간(행 6:7; 롬6:12; 롬 6:16-롬 6:17; 살후 1:8), 공동체(빌 2:12; 참조: 행 5:32)에 대해 사용되었다. (참조: Walter Bauer; G. Kittel).
바울을 여기서 자녀들과 부모들에게 권유할 때 사도는 먼저 자녀들을 언급했는데, 이것은 어려움이 대개 자녀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자녀와 부모의 관계를 언급했는데 이는 신앙공동체의 생활을 위해서 우리가 이 시대에서 합당한 인간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 안에서 자녀들이 첫째로 주님과 하나 됨으로, 둘째 그들 자신이 아니라 주님으로 말미암아, 셋째 천연적인 관념에 따르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서 그들의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이는 마땅하고 공정한 일이다. 공경하는 것은 순종하는 것과 다르다. 순종하는 것은 행위이고, 공경하는 것은 태도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지만 공경하지 않을 수 있다. 부모를 공경하려면 자녀들에게는 공경하는 태도 곧 공경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모든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한고 동시에 공경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째 계명일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첫째 계명이다(출 20:12). 우리가 잘 된다는 것은 물질적인 축복을 받아 번창하는 것이고, 오래 사는 것은 장수하는 것이다. 번창하고 장수하는 것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주시는 축복이다.
우리가 오래 살고 축복들을 누리기 원한다면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자녀를 화나게 하는 것은 자녀의 육체를 격동시켜서 자녀를 상하게 한다. 자녀를 화나게 하지 않으려면 아버지가 십자가로 분노를 처리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버지는 자녀를 합당하게 훈계할 수 있다. 권고는 가르침을 포함한다. 부모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가르쳐야 한다(신 6:6-7). 즉 자녀들이 성경을 알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자녀들이 어떻게 성장하는 가는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있다. 효를 기독교의 개념으로 말하면, ‘사랑의 실천’ 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돌봄이 누구에게나 미치고 있다는 인권의 보편성과 구체성에 근거한다. 심각성을 더해가는 노인의 인권침해와 자존감 저하의 문제를 전통적인 사적부양의 효로서는 어려운 현실이다.
현대사회의 효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 윤리를 새로운 관계적 틀로서 정립해 나가야 하고, 효의 이념을 사회와 국가로 확대하는 사회 윤리적의미를 갖춰나가야 한다. 이에 따라 사회와 국가는 가족 공동체가 부모부양의 효를 해나가도록 이러한 가족지원책을 구축하고, 국가나 사회적 차원에서 노인 부양을 공경의 차원에서 수행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자신의 형상대로 함께 협력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참되고 복되게 살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사회적 약자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으로 적극적인 보호자임을 자처하신다.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표준으로 제시되는 기도문인 주기도문에 보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해야 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마땅히 수행해야할 사명이다.
첫댓글 아주 좋은 글 작성 하시느라고 고생 많이 하셨어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명스러운 글 잘새겨 보았습니다. 배우고 깨달음의 실천에 정진해야 겠네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서에 부모나 상전에 恭敬하라는 단어나 스승을 尊敬하라는 단어는 모두 Honour (Timaw)를 사용합니다.
감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