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100편-제68편]
이탈한자가문득... - 김중식 시,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이 시는 우리 마음에 악착스레 붙어사는 순응주의를 되돌아보게 한다. 보통 사람들의 비겁과 안일에 대해 울화통을 터뜨린다. 앞선 행로에 기생하여 '꼬리를 물고 뱅뱅'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야멸치게 묻는다. 좌충우돌이면 어떠냐고, 뒤죽박죽이면 어떠냐고 묻는다. 풍파(風波), 그것이 우리들 삶의 표정이며,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므로 안주(安住)하려 하거나 상처받지 않으려 하지 말라고 호통을 친다. 그러나, 이 야유는 좀 불편하다. "병 대신 병적인 것, 아픔 대신 아픔적인 것, 애인 대신 애인적인 것에서 우리는 위안받는다"('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그래서 만만히 볼 수 없는 이런 맹랑한 발언은 우리들의 속을 긁어 놓는다.
이 시가 실려 있는 김중식(41) 시인의 첫 시집 '황금빛 모서리'의 시편들은 길들여진 우리의 일상과 사고를 전복하려는 노력을 줄기차게 보여준다. 그의 시에는 우회(迂廻)가 없다. 그는 스스로 자초하는 존재들의 억센 자유의지를 격려한다. 시집 뒤표지 글은 이렇게 썼다. "자기 삶을 방목(放牧)시킨 그를 나는 존경한다. 자기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목된 삶은 야생마처럼 갈기를 세우고 주인의 울타리를 넘어서려 한다. 그 고투의 흔적이 역력한 그의 연보를 읽을 때 나는 열등감을 느낀다."
사는 일이 지치고 가야 할 길이 막막할 때 스스로를 이렇게 불러보자. "주인공아!" 생념(生念)이라 했으니 엄두를 내보자. 박약한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워보자. 당신은 당신의 삶의 후견인(後見人). 아무도 간 적 없는 길을 당신이 앞서가고 앞서간 당신을 당신이 뒤따라가는 것. 야단법석인 이 삶을 살아 가야 할 주인공아.
1967년 인천에서 태어나 1990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 1월 [문학사상]에 <아직도 신파적인 일들이> 등 몇 편의 작품이 추천되어 시단에 등장했으며 이후 ‘직장없이 사는 게 꿈’이기도 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2년여 동안 무직자로 생존했다. 간간히 출판사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을 모아 인도 등지를 배낭여행하고 절이나 선배의 집에서 기생하기도 했다. 1992년 “은행원이 돈 세듯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격주간 출판전문지인 <출판저널>에 취직했지만 석 달만에 “은행원이 돈 센다고 그 돈이 은행원 돈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995년 <경향신문>에 입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휴간일(休刊日)이 휴간일(休肝日)’인 생활을 하였으므로 서울의 밤에 관해서라면 따로이 취재를 하지 않아도 쓸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져 {서울의 밤문화}를 집필하게 됐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황금빛 모서리}(문학과지성사, 1993)가 있다. ‘21세기 전망’동인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