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충청도 예산과 온양 사이에 유명한 고개가 하나 있었다.
5개의 고개가 연이어져 오 형제의 고개라고 불렀는데, 유명한 이유는 산림이 울창하고 경치가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도적이 들끓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개 양쪽에는 주막이 하나씩 있었다.
온양 쪽 주막을 구술막이라 불렀고, 예산 쪽 주막은 새술막이라 불렀다.
어느 해 봄, 새술막에 김도령이란 사람이 들렀다.
그는 충북 단양에서 김진사의 외아들로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자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새술막에서도 하루 이틀만 묵어가려 했는데 벌써 한 달째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주막 주인 문첨지의 딸 때문이었다.
문첨지의 딸 이쁜이는 막 16살이 되었는데 소박하고 청초하게 아름다웠다.
”저 아가씨 내가 도와줄게요.“
김도령은 이쁜이와 말할 기회를 만들려고 상을 치우고 물을 길어오는 등 주막 일도 나서서 도왔다.
이쁜이도 김도령이 싫지 않아서 못 이긴 척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주막 문을 닫는 문첨지를 누군가 불렀다.
“주인장, 술 한 동이만 주시오.”
“동이는 가져왔소?”
“거 주막 동이 좀 빌립시다. 이따 돌려주겠소!”
문첨지는 두말 않고 동이채에 술을 내줬다.
손님의 행색이 영락없는 산도적처럼 보였기 때문에 해코지라도 당할까 두려웠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오형제고개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 사람이 넷이나 죽었다는 것이다.
사건 현장은 좀 이상했다.
첫 번째 고개의 중턱에서 한 사람이 칼에 맞아 죽어 있었고, 네 번째 고개 위에서 두 사람이 돈 꾸러미와 술동이를 앞에 두고 죽어 있었다.
또 새술막 가까운 고개 턱에서 한 사람이 허리에 칼을 맞고 죽어 있었다.
포교들이 오형제의 고개로 모여들어 조사를 했지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사건 현장에서 찾은 단 하나의 단서가 있었다.
바로 새술막의 술동이었다.
즉각 주막 주인 문첨지가 용의자로 잡혀갔다.
그는 펄쩍 뛰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옥에 갇히고 말았다.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이쁜이는 울면서 김도령에게 매달렸다.
“도련님 저희 아버지 좀 구해주세요. 나이도 많으신데 저렇게 계속 갇혀 계시다가 어떻게 되실지도 몰라요.”
김도령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문첨지를 옥에서 꺼내어 이쁜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돈도 연줄도 아무것도 없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그때 온양 관아의 포교 하나가 이쁜이를 찾았다.
그는 이쁜이에게 첫눈에 반해 하루 걸러 주막에 오고 있었다.
“큼 안에 있나? 내가 오늘 첨지 어른을 좀 보고 왔는데 말이야.”
“아 정말요? 저희 아버지는 좀 어떠세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서 이쁜이가 달려나가 맞았다.
포교는 문첨지를 빼내도록 힘을 써보겠다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김도령은 속이 터지고 눈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지만 포교를 내쫓을 수도 없었다.
“저놈이 감히 누굴 보고”
포교가 옥에 갇힌 사람을 빼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옥바라지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도령은 빨리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문첨지의 무죄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이쁜이의 사랑도 얻을 수 있다고 방에 틀어박혀 끙끙대며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김도령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됐다! 바로 그거야!”
옆방에서 잠을 설치던 이쁜이가 달려왔다.
“왜 그러세요 도련님! 무슨 꿈이라도 꾸셨어요?”
“어르신을 구해낼 방법이 생각났어요!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었다고요!”
“네? 정말요?”
기뻐하는 이쁜이에게 김도령은 자세히 설명하고 다음날 일찍 관아를 찾아갔다.
김도령이 살인 사건의 진상을 알아냈다고 하자 원님은 깜짝 놀라 물었다.
“뭐라? 네가 사건의 진상을 알아냈다고? 어서 말해보거라.”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 미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면 누구의 의견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김도령은 차분하게 자신의 추리를 펼쳤다.
“네 먼저 사건이 일어난 날은 온양 장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 4명 중 3명은 도적이고 한 명은 양민이지요.”
도적들은 온양장에서부터 돈꾸러미를 가진 양민을 쫓아왔고 첫 번째 고개에서 그를 죽이고 돈을 빼앗았다.
그리고 고개를 넘다가 목이 마르자 한 사람에게 새술막에서 술을 사오도록 시켰다.
술을 사오면 죽일 속셈이었다.
“한 명을 없애고 둘이 돈을 나누려 한 것이지요.
그래서 새술막 근처 고개에서 칼로 베어 죽이고 도적들이 고개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제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그들이 몰랐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술을 사러 간 도적이 혼자 돈을 차지할 욕심으로 독을 탔던 것입니다.
그래서 독술을 마신 두 도적도 죽어버렸습니다.
모두 4명이 죽은 것이지요.”
“허! 과연 놀라운 추리로다!”
원님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아있던 술을 조사하자 정말 독을 탔던 것이 밝혀졌고 문첨지는 옥에서 풀려났다.
원님은 김도령의 지혜를 칭찬하고 큰 상도 내렸다.
그 후 김도령은 이쁜이와 혼인하고 잘 살았다고 한다.
출처 : 노가리 사랑방(유튜브)
첫댓글 지기님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김도령 추리력에 감탄합니다
속이 시원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