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아이가 직장을 갖게 되면서 용돈을 가져왔습니다.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봉투에 넣어 수줍게 내밀었습니다. 직장 생활의 안부도 묻고 장래 계획도 들어보면서 조금이나마 부자지간의 정을 나누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지 계좌 이체로 바뀌었습니다. 전화로 잘 받았다는 인사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많이만 보내주면 좋다고 하기에는 뭔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는 월급은 현금으로 봉투에 넣어 받았습니다. 그때의 월급날은 가장이 가장으로서의 위신을 세울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밀린 술값도 갚고, 애들에게 줄 선물도 사고 그리고 얼마 정도는 자신의 것으로 챙기면서 아내에게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아내는 쥐꼬리만한 월급이라 타박은 하면서도 남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가 아니고 제가 결혼하기 전의 일반적인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언제부터인지 계좌 이체로 바뀌었습니다. 통장은 보통 아내가 관리하였고 남편은 월급날 현금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매일매일 용돈을 아내에게 받아쓰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신용카드가 등장하여 현금 없이도 결제가 가능해지고 선불카드니 체크카드니 하면서 카드도 다양해졌습니다. 모바일까지 가세하여 무슨 페이니 QR이니 바코드니 하면서 나이 든 사람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따라가기 어렵게 매우 빠른 속도로 새로운 것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느덧 현금은 거의 사라지고 "주고 받는 현금 속에 오가는 정"도 사라져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현금을 고수해주는 곳은 성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봉헌금은 현금 외의 방식은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제대 앞에 키오스크 같은 기기를 설치해 스마트 폰을 갖다 대면서 하는 봉헌은 상상해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교회도 시대의 흐름을 외면할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드디어 우리 성당에도 QR코드 봉헌이 도입된다고 합니다. 흐름을 외면할 수 없어 시도를 해 보았습니다. '
하상' 앱을 다운받고 '가톨릭 페이'에 가입한 후 충전할 계좌를 선택해 충전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봉헌 금액을 입력하고 성당 입구에 있는 QR코드를 찍었습니다. 확인해 보니 봉헌이 된 것 같았습니다. 미사 때는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행렬에 맞춰 봉헌함 앞에서 고개만 숙이고 돌아왔습니다. 좀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몇 번 하다 보면 자연스러워질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당 입구에서 사람들이 둘러싼 가운데 QR코드를 찍는다는 것은 쑥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감사와 희생의 뜻을 담아 행렬을 지어 성가를 부르면서 경건하게 바쳐 온 예식이 기계적인 거래 같은 것으로 바뀌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세상은 급하게 변하고 교회도 그 흐름에 맞춰야 할 텐데 흐름에 맞춰 바쁘게 따라가다가 정작 주님을 잊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해보면서 봉헌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예식을 찾아 발전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첫댓글 글을 읽으면서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공감이 가는 내용이라서 그런지요.
새로 도입된 방식에도 발빠르게 시도하시고 적응하시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저는...아마... 시간이 좀 걸릴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