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매蠟梅 Wintersweet

[월성]

몇 년 전에

기청산식물원에서

분양 받아

우리 학교에 심은

납매가 작년까지는 몇 송이만

피었는데

오늘 보니

올해는 수십 송이 꽃이 피어나고

새큼한 향기가 좋네요.

매화와는 다른 녹나무과 식물인

납매를 1월 달 한겨울에

 중국 여행가서 고적지마다

개나리꽃처럼 피어난 것을

처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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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매

  출근하며 무심코 고개를 돌려 교정의 화단을 보니 내가 지난봄에 심은 납매(蠟梅)가 시린 날씨 속에서 몇 송이 꽃을 피웠다. 늦가을에 갈잎이 지더니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작은 봉오리가 강추위를 무릅쓰고 여린 꽃잎을 열었다. 다가가니 새큼한 향기가 코끝에 전해졌다.

  작년 일월 한겨울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의사 분이 휴대폰으로 백설이 솜처럼 덮인 샛노란 납매 꽃송이 사진을 보내왔다. 납매의 개화 소식에 향기를 맡고 싶어서 가까이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반갑게 맞아 주셨지만 꽃은 볼 수가 없었다. 당신도 식물원 원장님으로부터 받은 사진이라고 하였다. 독서 모임을 같이하는 분이 친구 분과 함께 병원에 들렀다가 납매를 보러 식물원으로 갔다고 하였다. 뒤따라 차를 몰고 호학산(呼鶴山) 아래 청하(淸河) 고을의 식물원으로 예정에 없던 길을 나섰다. 고개를 넘고 벌판을 가로질러 해가 짧은 겨울 오후의 시간 속으로 바삐 달려갔다.

몇 해 전 세모에 식물원의 주인옹께서 휴대폰으로 납매 사진을 띄웠다. 앙증스런 꽃송이와 꽃봉오리가 마치 매화송이를 닮아 있었다. 조화옹이 밀랍으로 빚은 듯 샛노란 꽃잎이 어찌나 고운지 햇빛이 투영되어 마치 너울을 걸친 것만 같았다. 서리치는 겨울날에 피어난 귀한 납매를 만나러 식물원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일었다.

납매의 개화 소식을 듣고 한 주일이 지나고 새해가 되어 나는 가방을 꾸리고 방한복을 입고서 중원(中原) 대륙으로 여행을 떠났다. 첨성대가 서 있고 왕릉들을 품고 있는 고도(古都) 월성(月城)의 선생님들을 따라 간 길이었다. 버스는 인천항의 부둣가에 늦은 오후에 도착했다. 사람과 화물을 실은 거대한 여객선이 굴뚝에서 연기를 뿜어내며 엔진 소리를 울리며 정박해 있었다. 초저녁에야 뱃고동을 울리며 항구를 벗어나고 황해 밤바다를 밤새도록 항해했다. 밤이 깊어지자 퀴퀴한 냄새가 나는 객실에서 나왔다. 창밖의 어둠을 우두커니 응시하다가 문을 열고 나가 세찬 바람을 맞으며 갑판에 섰다. 어둠 속에서 흰 이빨을 드러내며 부서지는 검푸른 물살을 헤치며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의 난간에 기대어 서서 나는 상념에 잠겼다.

  선덕여왕님을 연모하여 가슴에서 솟은 불꽃이 영묘사(靈廟寺)를 새까맣게 다 태워버린 지귀(志鬼)가 살았고, 미륵의 화신 화랑(花郞)이 노닐었던 금성(金城)에서 신라 사람들은 한 달을 걸어서 당항성(黨項城)에서 배를 탔다. 원효(元曉) 스님은 당나라로 가는 배를 기다리며 바닷가 무덤 속에서 잠을 잤고, 혜초(惠超) 스님은 천축국(天竺國)으로 순례 갔다가 고향 계림(鷄林)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원의 우타이산(五臺山)에서 입적하였다.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은 열두 살 어린 나이에 험난한 파도를 헤치며 장안성(長安城)에 유학 갔다. 선묘(善妙) 낭자는 바다에 몸을 던져 의상(義湘) 스님의 뱃길을 수호하는 용이 되었다. 소정방(蘇定方)과 설인귀(薛仁貴)가 군사를 싣고 몰려왔고 의자왕(義慈王)과 흑치상지(黑齒常之) 장군은 망국의 설움을 안고 포로의 몸이 되어 이 바다를 건너 남의 나라로 끌려갔다. 장보고(張保皐)와 신라 상인들이 난파의 위험을 무릅쓰고 건넜던 바다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저 험난한 파도를 헤치며 공포와 설렘에 젖어 미지의 세계로 건너갔을까 싶었다. 중국 혁명의 대업에 헌신한 쑨원(孫文)의 대련(對聯)이 생각났다. “바람을 타고 만 리의 물결을 부수며 나아가길 원하고, 면벽하며 십 년 독서를 달게 하리라.(願乘風破萬里浪, 甘面壁讀十年書)”

  밤새도록 잠을 설쳤다. 바다에 아침 해가 밝아오고서야 배는 고달픈 몸을 항구에 뉘였다. 진시황제가 신기루를 보았고, 서복(徐福)이 불로초를 구하러 삼신산으로 떠났던 산둥 반도의 뭍에 내렸다. 제국주의가 각축하던 시대에 독일의 조차지로 개발된 칭다오항(靑島港)에는 유럽의 어느 도시에라도 온 듯하였다. 주황색 지붕의 건물이 빼곡하고 백년 전통의 맥주 공장도 보였다. 5.4운동의 횃불을 표현한 조형물이 있는 바닷가 시청 광장을 거닐며 바다 동쪽 끝 내 나라를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 너머로 바라보았다. 춘절(春節)을 앞둔 흥겨운 분위기의 시장에서 나는 그립고 고마운 분에게 띄우고픈 연하장을 고르고, 어린 것들에게 줄 세뱃돈을 담을 빨강 봉투도 샀다. 중국인 엄마들은 어린 자식을 데리고 나와 새봄의 서기를 맞아들이는 붉은 종이에 금빛 글씨로 대련을 써놓은 춘첩(春帖)을 골랐다. 손수레에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파는 강남의 귤이 달콤하고 싱그러운 향기를 피웠다. 귤을 한 봉지 사들고 버스에 올라 태산 아래의 도시, 태안(泰安)으로 향했다.

  버스의 창 밖 경치가 자욱한 안개에 묻혀 있었다. 공기 중의 미세먼지가 아침 안개와 뒤섞여 시야를 가렸다. 시청 건물도 희미하고 태산 줄기도 실루엣만 드러내었다. 버스가 선 곳은 벽돌로 쌓은 높은 성문 앞이었다. 정양문(正陽門)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성벽 위의 누각에 대묘(岱廟)라는 웅장하고 힘찬 금빛 글씨의 예서체 편액이 붙어 있었다. 오악독존(五嶽獨尊)이라고 부르는 태산(泰山)의 신을 모신 사당이었다. 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여기에서 제사를 지내고 태산에 올라 하늘에 봉제(封祭)를 올리고, 양보산(梁父山)에서 땅의 신에게 선제(禪祭)를 지냈다.

  산둥의 벌판에 우뚝한 태산은 중국인의 자궁과도 같은 시원의 산이다. 너새니엘 호손의 소설, ‘큰 바위 얼굴’에 나오는 소년처럼 공자님도 지평선 끝에 아득히 솟은 태산을 어린 날부터 바라보며 자랐다. 공자님은 태산의 기운이 잉태한 성현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탄식을 최후를 맞은 백조의 울음처럼 애제자 자공 앞에서 토해내는 거인, 인간 공자의 모습을 사마천(司馬遷)은 어제일인 듯 그려내고 있다.

 <그 다음해 자로(子路)가 위(衛)나라에서 죽었다. 공자가 병이 나서 자공(子貢)이 뵙기를 청하였다. 공자는 마침 지팡이에 의지하여 문 앞을 거닐고 있다가 물었다. ”사(賜)야, 너는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 그리고 탄식하며 노래를 불렀다.

태산이 무너진다는 말인가! 泰山壞乎

기둥이 부러진다는 말인가! 梁柱摧乎

철인이 죽어간다는 말인가! 哲人萎乎

그리고는 눈물을 흘렸다. 또 자공을 보고 말하였다.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아무도 나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장사를 치를 때 하나라 사람들은 유해를 동쪽 계단에 모셨고, 주나라 사람들은 서쪽 계단에 모셨으며, 은나라 사람들은 두 기둥 사이에 모셨다. 어제 밤에 나는 두 기둥 사이에 놓이어 사람들의 제사를 받는 꿈을 꾸었다. 나의 조상은 원래 은나라 사람이었다.“ 그 후 칠일이 지나서 공자는 세상을 떠났다. 그때 공자의 나이는 일흔셋으로, 그것은 노나라 애공 16년 4월 기축일의 일이었다.>

툇마루에 앉아 부처님 손바닥처럼 생긴 오봉산(五峯山) 바위 봉우리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남모를 실존의 경험이 있다. 서른다섯 해 전 고등학교 이학년 시절이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던 순간에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수백의 선비들 틈에 끼어 휘황찬란한 불이 밝혀진 공자님 사당에 참배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나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기적처럼 살아났다. 내 존재의 심연 속에는 성인 공자님이 살아 계셨던 것이다. 칼 융이 말하는 집단무의식, 우리문화의 원형질 속에 만고의 스승이 태산의 봉우리처럼 우뚝 서 있었다. 태산을 등정한 그날 밤은 공자님의 고향마을 취푸(曲阜)의 궐리(闕里)에서 묵었고, 새날이 밝자 ‘만인궁장(萬仞宮牆)’ 안의 성인, 공자님의 묘소와 사당을 참배하였다.

  대묘의 뜰에는 진시황이 태산에 올라 봉선을 할 때 수행했던 재상, 이사(李斯)가 쓴 비석이 보존되어 있었다. 이천이백 년 전, 고조선 시대의 비석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태산각석(泰山刻石) 앞의 화단에 우리의 눈길을 끄는 꽃이 한겨울 찬 날씨에 꽃망울을 한창 터트리고 있었다. 언뜻 보면 영락없는 개나리꽃이었다. 가까이로 다가서니 향긋하고 진한 냄새가 코끝에 묻어왔다. 식물원의 주인옹이 휴대폰으로 보내 준 사진을 보며 난생 처음 알게 된 바로 그 납매였다. 중국에 와서 태산신의 뜰에서 납매의 꽃향기를 맡을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방을 여행하는 것은 모험이고 발견의 연속이었다. 타성에 젖은 나의 감성을 깨어나게 하고, 가슴속의 온갖 시름들을 내몰며, 무디어지는 지성을 날 서게 하였다. 여행은 게으르고 나른한 몸을 긴장시키고 활기를 불어 넣는 영약이었다.

  지독한 미세 먼지 속에서 여로는 송나라의 도읍이었던 카이펑(開封)에 이르렀다. 고려의 상인이 등장하는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의 현장이었다. 그곳에는 시민들의 성금으로 세운 판관 포청천의 사당이 있었다. 이름이 포증(包拯)이고 시호가 효숙공(孝肅公)인 그를 민중은 ‘靑天(청천)’이라고 불렀다. 얼굴에 철판을 두르고 인정사정없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탐관오리를 엄하게 처벌하였다. 포청천 이야기는 원나라 시대에 희곡으로 각색되어 널리 공연되었고 오늘날에도 드라마로 상영되어 민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송나라 개국 이래 148년 동안 개봉부 부윤을 역임한 183명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에는 포증의 이름에 얼마나 많은 손길이 닿았는지, 비석이 움푹 패여 있었다. 날개가 좌우로 길게 나 있는 사각형 관을 쓰고 큰 홀을 손에 잡은 마른 얼굴의 포청천 모습을 새긴 빗돌과 ‘齊山(제산)’이라고 쓴 웅장한 글씨는 그의 호방한 기상을 느끼게 했다.

<관직 생활하면서 훔치고 낭비를 하는 자가 있으면 종가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죽은 뒤에도 선영이 있는 묘역에 장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라. 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내 자손이 아니다. 내 아들 공(珙)은 돌에다 이 말을 새겨서 우리 집의 동쪽 벽 앞에 세워서 후손에 알리어라.>

포증이 남긴 가훈은 그가 청백리이었음을 잘 보여줬다. 유학으로 몸을 닦고 과거 시험으로 선발된 사대부 문신들이 통치한 문치주의 국가, 송나라는 관리들의 도덕성이 국가를 바르게 통치하는 관건이 되었을 것이다.

  사당의 뜰에는 납매가 꽃을 활짝 피우고 진한 향기를 뿌리고 있었다. 겨울의 한가운데서 차가운 날씨를 이기고 샛노란 꽃을 피우는 납매가 포청천의 청렴하고 강직한 인품을 닮았다. 송나라 선비들은 납매를 어여삐 여겨 시로 읊었고, 휘종(徽宗) 황제가 그린 납매산금도(蠟梅山禽圖)는 지금도 전해온다. 여선생님들은 꽃가지 아래에서서 어린아이처럼 환한 얼굴로 사진을 촬영하였다. 동행한 화가는 수채화로 그 모습을 그렸다. 천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포청천이 지녔던 인품은 납매 꽃 매운 향기로 피어나고 있었다.

  중원 여행의 발걸음이 낙양(洛陽)의 룽먼(龍門) 이궐(伊闕)에 닿았다. 서녘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살 속에서 룽먼 불적의 남쪽 문을 빠져나와 이수(伊水)에 놓인 다리를 건넜다. 모래톱엔 오리들이 쉬고 있었다. 벌집처럼 뚫린 불감(佛龕)들과 측천무후(則天武后)를 닮은 장대하고 미려한 노사나불을 강물 너머로 바라보았다. 버드나무 가로수가 심어진 강변의 석굴들과 그 위의 산 등성이를 덮은 상록수 숲이 그림자를 이수의 수면에 드리우고 해는 자꾸 서녘하늘로 기울어 갔다.

  백거이(白居易)가 지은 시 삼천여 수 가운데 룽먼의 산수와 향산사(香山寺)를 읊은 시가 일백 수가 넘는다. 신라 원측(圓測) 스님의 다비도 향산사 북쪽 언덕에서 하였다. 향산사에서 석양에 굽어보는 이수의 물이 찰나에 생멸을 하며 유장하게 흐르고 있었다. 황홀한 아름다움을 토해내는 풍경이 눈 감으면 지금도 선하게 떠오른다.

  향산사에서 돌아 나와 白園(백원)으로 들어갔다. 정원이 꾸며져 있고 백락천(白樂天)의 시에 나오는 주점들이나 별장 같은 건물들이 조성되어 있었다. 꽃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오르자니 여기도 노란 납매가 피어 해동(海東)에서 온 나그네들을 반겼다.

  향산거사(香山居士)의 묘비에는 금빛 글씨로 크게 ‘唐少府白公墓(당소부백공묘)’라고 쓰고 녹색 글씨로 시인의 이력을 새겨놓고 있었다. 백거이는 원진(元稹)과 더불어 ‘원백’이라 불렸고, 원진이 죽은 뒤에는 유우석(劉禹錫)과 같이 ‘유백’이라 불렸다. 그의 시는 평이하여, 대표작 <비파행(琵琶行)>, <장한가(長恨歌)>는 문사에서 백성들까지 널리 애송하였다.

  무덤 둘레에는 시인을 추모하는 비석들이 열 지어 세워져 있었다. 일본인이 세운 감은비(感恩碑)에는 ‘당신의 만고에 향기로운 이름을 우리는 길이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일본인들은 어찌나 백거이를 사모하는지 시인이 살던 마을에 벚나무 삼백 그루를, 묘소가 있는 그곳 비파봉에 열 그루를 심었다. 시인의 후손이 세운 비에는 퇴기(退妓)의 몸으로 강변의 갈대숲에 정박한 배에서 비파를 안고 연주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비파행’을 표현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와 싱가폴의 백씨 종친회가 세운 참배 기념비도 있어서 반가웠다. 일본이나 위그르족은 물론이고 신라의 상인들도 백거이의 시집을 수입하였다.

  나는 누군가 꺾어서 버려둔 납매 가지를 주워 시인의 무덤 앞에 올리고 저녁 어스름에 비파봉에서 돌아 내려왔다.

 식물원에 들어서니 주인옹은 불청객을 반겨주었다. 앙상한 가지를 하고 서 있는 풍향수(楓香樹) 아래 카페에 들어갔다. 무쇠 솥 화로에 담긴 잿불의 은근한 온기를 쬐며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두 여인이 기쁜 얼굴로 맞아 주었다. 따끈한 차와 누룽지를 대접 받으며 정담을 나누었다. 주인옹은 올 겨울에는 유난히 춥다고 하였다. 겨울의 신, 엘사가 심술을 부리는지 수은주가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였다. 텔레비전의 일기예보는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제트기류 울타리를 벗어난 북극의 한랭 기류가 남하하고 있다고 하였다. 벽에 걸린 천문도를 보니 조선 개국 시기에 고구려 천문도를 수정하여 돌에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였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하늘에는 성근 별/…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아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의 시, ‘향수’의 구절이 절로 생각나는 겨울날의 오후였다.

  주인옹을 따라 온실에 들어가 정결(淨潔)하게 피어나 있는 납매와 반갑게 해후하였다. 코를 가까이하며 응향(凝香)을 맡았다. 중국여행에서 처음 만났던 고결한 납매를 몇 해 만에 우리 강산에서 다시 보고 향기를 맡으니 새해를 맞는 내 몸에 내밀한 희열이 잔잔하게 물결쳐왔다.

  식물원에서 납매 묘목 세 그루를 사왔다. 이듬해 봄이 오고 녹색 잎이 자라난 납매를 한 그루는 내가 다니는 절의 뜰에 심고, 또 한 그루는 우리 학교 정원에 심었다. 천지간에 뭇 꽃이 자취를 감추고 벌과 나비도 숨어버리는 삭풍한설(朔風寒雪)의 계절에 금빛 납매가 홀로 청향(淸香)을 뿌리며 피어날 날을 기다렸다. 납매 향기를 맡을 양이면 나는 중원을 여행하며 만났던 옛사람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주인옹은 식물원을 나서는 우리에게 봉오리가 맺힌 납매 가지를 잘라 건넸다. 귀가하여 유리컵에 청수(淸水)를 담고 납매를 꽂아서 식탁에 두고서 아침저녁으로 지켜보았다. 매화를 지극히 아꼈던 퇴계(退溪) 선생의 시 한 머리를 가만히 읊조렸다.

봄을 맞는 매화송이

찬 기운을 띠었기에

한 가지 꺾어내어

옥창(玉窓)에서 마주 보네

산 첩첩 저 밖의

벗님네 그리워라

여위고 축나가는

천향(天香)을 못 견디리

-<<포항문학>> 제46집(2019.7.2.)

[서연]

납매에서 풍기는 그윽한 꽃향기가 그립습니다.
이른 봄 전령사인 납매는 중국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꽃 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