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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잠언22:1-2 2024/11/03 성령강림 후 제24주
22: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2:2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고난 받는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할 때마다
김현승 시인의 시 감사하는 마음을 매번 묵상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의 마지막 연이 저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마음-그것은 곧 아는 마음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그리고
주인이 누구인가를 깊이 아는 마음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깊이 알 때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마음이 바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
이 아름답고 복된 마음이 내 안에 항상 머물기 위해서는
시편100편에 기록된 이 고백들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새)100:3 너희는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아라. 그가 우리를 지으셨으니, ①우리는 그의 것이요, ②그의 백성이요, ③그가 기르시는 양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의 실체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를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한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 성령을 믿고 사랑한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니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주춤하지 마시고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요10:11)’라고 말씀하신 나의 주이자 나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안에 머물러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피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잠언입니다.
잠언의 특징은 다양한 주제의 말씀들이 특별한 질서나 구조 없이 나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1장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잠1:3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떤 것이 지혜인지,
어떤 일이 공의롭고 정의로운 것인지,
또 어떤 행위가 정직한 것인지,
인생의 다양한 주제들,
특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서의 본질적인 질문들이 특별한 질서나 규칙 없이 나열되어 있는 것이 바로 잠언의 특징입니다.
중요한 것은 잠언 1장 33절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왜 지혜와 공의와 정의와 정직에 대한 질문들을 던져야하는가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던진 본질적인 질문들 곧 지혜와 공의와 정의와 정직에는 이런 능력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잠1:33 오직 (지혜와 공의와 정의와 정직이 담긴)내 말을 듣는 자는
①평안히 살며
②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기 때문입니다)
‘지혜와 공의와 정의와 정직’
이 질문들과 함께 우리가 꼭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고 잠언은 말합니다. ‘가난과 부’ 그리고 ‘가난한 자와 부한 자’입니다.
가난, 어떤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요?
부, 어떤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요?
가난한 자,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부한 자,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누구는 왜 가난하고, 누구는 왜 부자인가요?
사실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난과 부,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부자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자’로부터 시작해서 ‘어리석은 사람(지혜롭지 못한 사람)’으로 끝나는 비유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새)눅2:16 그리고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①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2: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 소출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 궁리하였다.
12:18 그는 혼자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겠다. ②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③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12:19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④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12:20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무슨 말입니까?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놓고
마음 놓고 먹고 마실 재물을 소유한 부자라 할지라도 소유할 수 없는 것이 잇다는 것입니다. 바로 살아 있는 생명(영생)입니다. 그러니 인생의 목적을 어리석게 가난과 부, 가난한 자와 부한 자에게 두지 마시고, 영혼(생명)을 사모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본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잠22:1a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좀 더 지혜롭게, 좀 더 공의롭게, 좀 더 정의롭게, 좀 더 정직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첫째 많은 재물보다는 명예를 택해야 한다고 잠언을 가르쳐 줍니다.
'명예' 히브리어 ‘셈’을 번역한 말입니다.
우리 성경은 ‘명예’라고 번역해 놓았지만 '좋은 평판' ‘good name’ ‘명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많은 재물을 모으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름이 더 낫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안개와 같이 곧 사라질 재물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는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세의 자랑이 아니라 좋은 평판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새)행2:44 ①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2:45 ②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2:46 그리고 ③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2:47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 결과 오순절 성령강림과 함께 시작된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 존경과 사랑을 받는 새로운 신앙공동체가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이런 역사가 지금 여기,
우리 장정교회에서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 우리가 이 세상에서 좀 더 지혜롭게, 좀 더 공의롭게, 좀 더 정의롭게, 좀 더 정직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은이나 금보다는 은총을 더욱 택해야 합니다.
잠22:1b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
‘은총’ 여기서 사용된 '은총'은 히브리어 ‘헨’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받는 ‘호의와 신뢰’를 뜻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을 좀 더 지혜롭게, 좀 더 공의롭게, 좀 더 정의롭게, 좀 더 정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예수님 하셨던 이 말씀을 꼭 새겨들으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6장 불의한 청지기 비유의 결론 바로 이 말씀입니다.
눅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하지만 세상은 반대로 말합니다.
‘사람은 배신해도 돈은 배신하지 않는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돈으로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여기십니까?
아직도 돈이 있어야 사람이 따라온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배신이 흔한 사회에서 물질이 중심이 되는 현실 속에서
어쩌면 사람보다 돈이 더 정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좀 깊이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돈으로 사람의 ‘호감’을 살 수는 있겠으나 ‘호의, 신뢰’까지 얻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뇌물로 사람을 매수하고, 선물로 ‘내 편’을 만들 수는 있겠으나 나를 환대해 주는 ‘친구’를 사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좀 더 지혜롭게, 좀 더 공의롭게, 좀 더 정의롭게, 좀 더 정직하게 하는 지혜 자의 말씀에 따라 재물을 의지하기보다 친구의 신뢰, 친구의 호의를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절입니다.
잠22:2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이 구절에는 적어도 ‘가난한 자와 부한 자’에 대한 두 가지의 가르침이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차별, 차등이 없다는 말입니다. 당연한 말씀이지요.
하지만 선민사상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에게는 이것이 결코 당연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선민사상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사람들은 부가 하나님의 축복이라면, 가난은 하나님의 저주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난한 자와 부한 자 사이에 차별과 차등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에도 그렇게 믿고 또 그렇게 설교하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 안에 넘칩니다. 부가 하나님의 축복이고 가난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믿고 또 그렇게 설교하는 이들이 한국교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그러한 오해를 수정하게 합니다. 가난과 부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부여해 주신 '분복'이라는 것입니다.
잠22:2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여기서 우리는 ‘가난한 자와 부한 자’에 대한 두 번째 가르침과 마주하게 됩니다. NIV 성경을 비롯하여 많은 영어 번역본들이 택한 번역인데 ‘부와 가난에 공통점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그 둘을 모두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가난과 부’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부여해 주신 '분복'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자라고 으스댈 이유도 없고, 가난하다하여 주눅들 이유도 없습니다. 이것에 대해 예수님의 젓 동생인 야고보도 한 몫 거듭니다.
약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낮은 형제란 경제적으로 가난한 형제를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 늘 낮아질 수밖에 없는 가난한 형제를 말합니다.
입이 있고, 생각이 있고, 헌신의 몸짓이 있어도, 자기주장을 말할 수 없는. 낮은 형제, 가난한 형제들을 말합니다.
그 낮은 형제, 가난한 형제는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주눅들이 말고, 이제는 당당하게 자기의 높임을 자랑하라고 야고보는 권면합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그리스도인이 자랑할 만한 ‘자기의 높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약1:18 그는 뜻을 정하셔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를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가난하다고 주눅 들지 말고,
우리를 낳아 주시고
모든 피조물 중에 첫 열매가 되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높임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한 자는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가난한 자와 달리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해야합니다.
약1: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말씀을 마칩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웨슬리(John Wesley)가 감리 교인이 된 어느 부자 여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당신의 대화가 교양 있고 품위 있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지 않게 하십시오. 당신처럼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매여, 당신도 나와 함께 그분이 사신 것처럼 사시기 바랍니다.(중간생략)
저는 당신이 가난한 사람들과 더 많이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만일 복음을 맛보지 않았다면, 당신이 천국으로 보내야 할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당신이 아는 어떤 사람들보다 더 많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 사이에 파고 들어가십시오. 진흙더미 속으로 그리고 구역질나게 하는 수많은 환경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그곳에서 숙녀 됨을 벗어 버리십시오.
크던 작든 우리에게는 노동과 인생의 대가로 금전적인 보상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요. 그 선물은 혼자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도록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그 선물로 친절을 베푸십시오.
특히, 가난한 이들 사이에 파고 들어가십시오.
진흙더미 속으로 그리고 구역질나게 하는 수많은 환경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렇게 해서 좀 더 지혜롭고, 좀 더 공의롭고, 좀 더 정의롭고, 좀 더 정직한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