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병천숲
하바나 ・ 2025. 2. 18. 11:13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병천숲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601번지
2024년 10월 17일
병천 동신나무숲도 용유리 산제당숲을 찾으러 갔던 곳과 시비공원 사이에 있었다.
동신나무숲은 용유계곡을 따라가다가 나오는 병천교 교량 아래였다. 용유천은 병천마을에서 청화산 계곡과 합수되어 문경시 농암면의 쌍용계곡으로 흐른다. 병천이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는 화북이 병 모양처럼 생겼는데 마을이 병 주둥이처럼 속리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아 쏟아내는 샘물과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병천교 아래로 내려가자마자 보호수로 지정된 소나무가 보였다. 소나무는 병천으로 기울어 도로 위를 덮고 있어 줄기에 쇠로 된 버팀목을 세워놓았다. 돌계단 틈에 쪽동백으로 보이는 치수가 자라고 있고 그 위에 산제당이 있었다. 상주에서 본 제당은 주로 시멘트로 지어진 것을 봤는데 외서면 우산리의 국사당처럼 기와지붕이었다. 우산리 국사당과는 달리 문도 있었고 문에 바른 창호지도 뚫린 곳 없이 번듯했다. 산제당은 2005년에 농촌체험마을 조성 사업으로 신축되었다. 돌탑도 산제당을 신축할 때 새로 쌓았다.
산제당이 용유구곡의 3곡이고 산제당 앞 물가가 4곡이어서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산제당이 왜 구곡에 속하는지 의문이 생기면서 용유구곡이 후대에 정해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제당 앞의 돌비에 산제당에 대한 안내가 적혀 있었다.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이곳이 우복동이라고 소개되면서 전국에서 모여드는 사람들로 인해 사백호에 이르는 큰 마을이 되었다. 속리산의 산세가 풍수지리학으로 용이 몸을 돌려 자신을 낳아준 조산(祖山)을 돌아보는 형태인 ‘회룡고조형’으로 그 안에 우복동이 있어 원의 중심인 영지산 자락에 제당을 건립하여 질병과 재앙을 물리치고 풍년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내왔다. 조선 영조 때는 사도세자의 스승인 송명흠이 낙향하여 서원을 짓고 동민과 함께 산신제를 올렸는데, 주변 칠리 내의 전 주민이 참여하를 제를 지냈다. 그 후 각각의 동네에서 동황제를 올리는 제당을 지었는데, 병천의 산제당은 풍수해로 인해 매몰되어 시멘트 블록으로 지어 산신제를 지내다가 녹색농촌체험마을 사업으로 복원하였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전통마을숲을 보러다니면서 이번처럼 가뭄에 콩 나듯이 만나는 유래비가 귀해서 더 반가웠다. 유래비를 읽고 보는 산제당과 숲은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산제당 문 앞에는 부정을 막기 위하여 문이나 길 어귀에 건너질러 매거나 신성한 대상물에 매는 새끼줄인 금줄을 걸어 놓았다. 올 정월 초에 동제사를 지낸 흔적이었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3월과 7월에 제사를 지냈지만 지금은 한 차례만 지낸다. 동제사는 산제당에 먼저 지낸 후 동신제당에 제를 올린다고 한다. 제를 지내면서 썼던 축문 중에 ‘호랑이와 승냥이와 같은 산짐승은 쫓아버려라’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곳만큼 골짜기가 깊지 않은 곳에 있는 고향집에도 내가 어렸을 때는 산짐승들이 드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깊은 산에서야 오죽했으랴 싶었다. 핸드폰으로 웬만한 일들을 해결할 수 있을 만큼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종교와 무속신앙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물며 그 옛날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 산제당과 동신에게 지내는 고사는 미래에 닥칠 온갖 불운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켜줄 단단한 동아줄이었고 그 동아줄은 일상을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병천가를 따라 난 길을 걷다 보니 용유구곡 2곡인 연좌암이 보였다. 연좌암을 소개하는 안내판에 연좌암은 ‘편안히 쉬는 바위’라는 뜻으로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작은 연못가에 편안히 앉았노라니 바람 불어와 때때로 옷자락을 들춘다’는 시에서 왔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거대한 중국의 자연을 용유 계곡에서 찾아내고 중국의 시인이 읊은 시를 가져와 바위의 이름을 지으면서 공자의 가르침을 찾으려 했던 조선 선비들을 연좌암에서 만났다. 지금은 선비들이 읊는 시 대신 소나무가 연좌암을 차지하고 있었다.
연좌암에서 산제당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밤송이 틈에서 알밤 하나를 주웠다. 여물대로 여문 밤의 보늬를 이빨로 벗기고 먹었다. 시장에서 사서 먹는 밤 맛과 달랐다. 이 맛 때문에 도시의 가을 산에 ‘밤과 도토리를 줍지 마세요. 다람쥐의 겨울 식량입니다’라는 현수막을 곳곳에 게시해 놓아도 사람들은 등산스틱을 들고 풀숲을 샅샅이 뒤지며 밤을 줍는구나 싶어 씁쓸했다.
산제당 옆 비탈에 배초향꽃과 노랗게 익은 탱자가 보였다. ‘여기에 웬 탱자가 있지?’ 하고 놀라다가 상주가 경상도 땅임을 떠올리고 혼자 웃었다. 골짜기로 다니다 보니 한쪽 머리에서는 이곳을 강원도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뭔가를 놓치고 가는 것 같아 돌아서서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사진에도 담지 못하고 봐야 할 어떤 것을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은 꼽지 못할 만큼 많겠지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여기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었을 것이다.
<참고 문헌>
.금중현(2011) 상주의 전통숲과 노거수. 상주문화원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dh.aks.ac.kr/sillokwiki/index.php/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8002
[출처]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병천숲|작성자 하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