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다닌 학교는
칠판도 없고
숙제도 없고
벌도 없는
조그만 학교였다.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쳐도
걱정이 없는
늘 포근한 학교였다.
나는
내가 살아가면서
마음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귀한 것들을
이 조그만 학교에서 배웠다.
무릎 학교
내가 처음 다닌 학교는
어머니의 무릎
오직 사랑만이 있는
무릎 학교였다.
- 하청호, <무릎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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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 마지막 주일에는 온 교우들과 졸업예배를 드립니다. 올해에도 6명의 아이들이 졸업을 하고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온 교우들이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가며 그들의 현재와 앞날을 축복하는 것이 참으로 귀합니다. 졸업은 인생이라는 긴 여정 가운데 현재의 자리에서 한 단계 올라서 성숙해지는 의미 있는 순간입니다. 유치원에서 천진난만함 속에 햇병아리처럼 자란 민석이, 유아, 수아, 정원이는 이제 초등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놀기 좋아하던 도균이와 시후도 이제 어엿한 중학생이 됩니다. 한 과정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새롭게 출발하는 이 아이들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건네줄 꽃다발을 손수 만들었습니다.
이들의 졸업을 지켜보면서 문득 학교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학교가 배움이 있는 곳이라면, 우리의 인생 자체가 학교이지 싶습니다. 배움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이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확장되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미처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지요. 배움은 좋은 경험을 통해서만 얻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좋지 못한 경험들이 인생에 큰 깨달음을 줄 때도 있지요. 그렇기에 배움에서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입니다. 언제든, 누구에게서든 배우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향해 열려있을 때 자기 안에 갖힌 존재가 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열려진 존재가 됩니다. 관계 단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진정한 배움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주변에 있는 생명들과의 의미 깊은 관계 맺기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타인이 벗이 아닌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시대에서 세상이 따뜻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신 분은 어머니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하청호 시인이 소개한 학교는 우리에게 있어 너무도 소중한 학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람됨의 의미를, 사랑을 주고 받는 법을, 힘겨워도 인내하는 법을 깨우쳐 주신 분은 우리들의 어머니이십니다. 우리가 이만한 사람이 된 것은 어머니 무릎 학교를 다녔기 때문입니다. 이 학교엔 아마도 졸업이 없겠지요? 아무리 잘나고 성공했다 해도 우린 여전히 어머니의 무릎에서 배워야 할 학생입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의 역할을 교회가, 지역사회가, 국가가 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졸업식을 앞두고 그런 어머니가 되겠다 다짐해봅니다. <2023.1.28.>
첫댓글 💌 내가 처음 다닌 학교도 어머니의 무릎 학교였습니다. 하청호 시인의 무릎 학교처럼 칠판도 숙제도 벌도 없는 조그만 학교였습니다.
무릎은 한자로는 膝(슬). 슬하(膝下)는 그러므로 무릎 아래라는 뜻입니다. 달(月) 나무(木) 사람(人) 물(水)의 집합체인 이 膝자에서 은은한 달빛(月) 아래 숲(木)과 호수(水)가 있고 거기 사람(人)이 있는 목가적 풍경을 떠올렸다면 너무 도식적이고 작위적인 해석일까요? 글쎄요, 하지만 어머니의 무릎 학교가 그처럼 평화롭고 아늑한 공간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아직 어려 키가 작았을 때, 걸음마도 할 수 없었을 때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무릎 아래 있었지만 어머니는 우리를 당신의 무릎 위에서 키우셨습니다. 나는 그래서 슬하(膝下) 하면 슬상(膝上)이란 말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무릎 아래서 자라고 무릎 위에서 키우다...
이제 어머니는 떠나시고 없지만 비바람 불고 눈보라 쳐도 걱정이 없는 건 어머니의 무릎 학교, 그 졸업장이 비바람 눈보라를 막아주고 있기 때문일까요? 나의 무릎 학교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 옛날 어머니의 무릎 학교처럼 포근하고 사랑 가득한 울타리가 돼주고 있는 걸까요? 그런 생각이 가슴을 스칩니다.
지난 설에 홀로 계신 엄마(저는 아직 엄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를 찾아뵙고 왔습니다. 엄마 앞에 서면 저는 늘 아이가 됩니다. 엄마의 손을 잡으면 제 안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고민과 시름들이 눈녹듯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든든할 수가 없어요.. 마치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이 시를 만나고는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엄마는 우리를 무릎으로 키우셨구나!' 자신의 생을 위해서는 엄두도 못내는 것을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기꺼이 무릎을 꿇는 엄마.. 무릎이 닳고 닳아 이제 제대로 걷는 것이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자식들에 사람노릇하며 제 길을 꼿꼿이 잘 걸어가는 것을 보며 흐믓하게 웃으시는 엄마.. 신은 당신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주시고자 엄마를 보내주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밖은 엄동설한이지만 '엄마'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져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