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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재벌이 여자를 너무 밝히다가 비명횡사한 이야기
하늘천주식회사의 박천순 상무는 ‘데스 밸리(Death Valley)’라는 클럽을 관리하고 있었다. 데스 밸리는 서울 시내에 있는 Top 10 안에 들어가는 명문 클럽이었다. 돈 많은 젊은 사람들이 주된 고객이었다. 하늘천의 맹을성 사장이 클럽을 인수하게 된 것은, 어린 여자들을 만나려면 물좋은 클럽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 클럽은 적자 투성이였다. 주류회사에서 외상으로 들여놓은 술값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었다. 전에 클럽을 경영하던 이호연 사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 바로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공부는 하지 않고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놀러만 다녔다. 여자를 꼬시는 능력은 부모 피를 받아 탁월했다. 호연 주변에는 여자들이 24시간 꼬였다. 마치 해충유인등을 푸르슴하게 켜 놓으면 밤새도록 파리나 모기가 달려들고 딱딱하는 소리를 내면서 죽어나가 자빠지는 것과 같았다.
시간이 가면서 영어도 여자 꼬실 정도가 되자 호연은 백인 대학생, 흑인 가수, 이탈리안 식당 종업원, 멕시코계 맥도날드 아르바이트생 등등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서 다양한 여자들을 애인으로 만들었다. 호연은 한국인이 미국에 와서 수많은 외국 여자들과 연애도 하고 섹스도 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K-POP 같은 한류 열풍의 덕분이라고 믿었다. 그러면서 더욱 자신감을 가졌다.
호연은 피나는 노력 끝에 마침내 로스앤젤레스에서 ‘연애의 황태자’ 자리에 올랐다. ‘연예계’가 아니라 ‘연애계’의 영역이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최단기간에 다양한 미모의 젊은 여자들을 동시에 애인으로 만들어 잘 관리하고 있는 사람은 처음이라면서, 방탄소년단이 미국의 음악계에서 명성을 떨친 것보다 월등한 업적이며, 한국인의 위상을 크게 높인 애국적 행위라고 칭송하였다. 그러면서 미국 전체 한인 회장이 감사장이라도 주는 게 마땅하다고 하였다.
호연의 비결은 여자들을 꼬시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한 것에 있었다. 어떻게 하면 여자들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지 연구했다. 데이트 비용은 각종 거짓말을 해서 부모로부터 송금을 받았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부동산 사업을 크게 하고 있는 재벌급이라고 떠벌렸다. ‘급’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급’을 빼고 그냥 재벌이라고 하면 아무리 어리숙한 외국인이라도 인터넷 검색으로 대번 거짓말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호연의 증조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서 고문을 당한 후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해방 후 광산업을 크게 성공했다고 가문의 영광을 크게 부각시켰다. 그러나 사실은 증조할아버지는 일본 경찰관 앞잡이였고, 할아버지는 탄광노동자로 일하다가 진폐증으로 돌아가셨다.
호연은 창덕궁 후원에 있는 한옥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그 건물과 정원, 연못이 자기 아버지가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별장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별장이 너무 커서 한 바퀴 돌려면 시속 4Km로 30분 이상 걸린다고 했다.
호연이 잠옷바람으로 나무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것을 찍었으니, 외국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찍은 자동차 사진도 벤츠 600의 다양한 칼라로 6대나 찍어놓았다. 모두 아버지 차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독일제 대형 캠핑카 앞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고기 구워먹은 사진도 여러 장 있었다.
그렇게 좋은 시절을 보내던 호연도 끝내는 한국에서 건너간 단기 유학생 여자에게 걸려 신세를 조지게 되었다. 그 여학생도 처음에는 호연을 좋아해서 몸 주고 마음 주고, 돈도 주었는데, 나중에 호연이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알고 다른 여자들은 다 떼어버리고 자신만 책임지라고 달라붙었다.
그 여자는 집념이 강해서 한 번 마음먹으면 반드시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하루에도 300회 이상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유서도 써놓았다. 유서 한 부는 엉터리 영어로 번역해서 호연에게 보여 주었는데, 호연의 영어 실력으로는 그 내용이 그 여자가 죽겠다는 것인지, 호연을 죽이겠다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기가 어려웠다.
다만, 유서라고 하는 종이에 ‘죽음(death)’이라는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용어가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 여자에게 잘못 걸리면, 적어도 호연이 그 여자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야 할 것은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법칙으로도 확실한 것 같았다.
그 여학생은 호연에게 ‘I will not meet anyone and have a sex with anyone except you.'라고 써달라고 요구했다. 호연은 별 생각없이 일시적인 곤경을 면하기 위해 써주었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곧 이어, ’If I break my promise, you may kill me.'라고 쓰라고 했다. 호연은 아차 싶었다.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 이제 미국에서 죽게 되었고, 한국에는 화장해서 뼈만 보내지게 되었다.’고 겁을 먹었다.
하지만 나중에 갈 때는 가더라도 여자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래서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 맹세를 썼는데, 다 쓰고 나서 보니까 처음 약속은 잘 써졌는데, 나중 약속은 마치 술에 취한 지렁이가 제멋대로 기어다니는 것 같아서 영어인지, 히브리어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3개월 후 호연을 하는 수 없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그녀에게 아무 연락도 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호연은 그렇게 한국으로 망명하다시피 돌아와서 몇 년을 건달로 보내다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돈 많은 과부를 한 사람 알게 되었다. 그 과부의 남편은 부동산투기를 해서 200억원을 벌었다. 수도권에서 개발되는 곳을 찾아다니며 싼 땅을 사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기고 팔았다. 부동산투기를 해서 눈덩이처럼 돈이 모여지자, 사채놀이를 시작했다.
깡패를 끼고 고리대금업을 하니까 떼어먹히지 않고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처음 시작할 때는 2억원도 안되었는데, 불과 10년만에 100배가 되었다. 그것도 10년 동안 돈을 펑펑 쓰고 남은 것이 그 정도니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 남자 생각만 하면 기분이 나빴다.
남자는 갑자기 졸부가 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지자, 젊은 여자들을 돌아가면서 애인으로 두고 밤의 황제가 되었다. 여자들은 황금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노예처럼 몸을 맡겼다. 뙤약볕 밭농사는 힘이 들지만, 달빛 밤농사는 같이 즐기면서 황금이 펑펑 쏟아지는 이상한 게임이었다.
남자는 신바람이 나서 새로운 여자, 젊은 여자를 탐닉하려면 왕성한 정력과 지치지 않는 체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뱀탕집에 부탁해서 일년에 한 달 정도는 뱀을 달여먹었다. 살아 있는 뱀을 물에 넣고 끓이면 꼿꼿이 머리를 위로 내밀고 선 채로 굳어있다. 남자는 그 장면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다음에야 비로서 탕을 먹었다. 가짜 뱀을 끓여서 주는지 검사처럼 철저하게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 남자가 단골로 정한 뱀탕집 주인은 경력이 50년이나 된 95세의 노인이었다. 뱀사장이 너무 젊고 동안이어서, 한번은 서울에 올라와 고급 사우나에 갔는데, 탕안에서 어떤 대학생이 뱀사장을 재수하는 학원생인줄 알고 바가지 좀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가, 95세라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기절해서 119 구급대원이 출동해서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뱀사장의 전설은 그가 직접 산에서 잡은 뱀이 만 마리가 넘는다고 했다. 그는 저수지에서도 뱀을 잡고, 강에서도 잡고, 심지어 바다에서도 잡았다고 하는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3백년 된 은행나무에서 뱀 다섯 마리가 동시에 떨어지는 기이한 현상도 그 노인은 직접 목격을 했다고 하는데, 다섯 마리의 하얀 뱀을 노인은 잡지 않고, 숲속으로 안전하게 돌아가도록 길을 터주었다고 한다.
노인은 뱀을 오래 잡아서 그런지 얼굴도 뱀 같았다. 말할 때도 혀가 길게 들락날락거렸다. 피부도 뱀비늘처럼 빛났다. 뱀사장은 꾸준히 뱀을 먹어서 그런지 95세의 고령에도 여자와 최소 두시간 이상 관계를 한다고 했다.
뱀사장의 첫 번째 부인은 일찍 죽었고, 후임 여자들도 육체적 중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임기 전에 대부분 중도 사퇴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건너온 옹녀 한사람만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고 했다.
뱀탕을 먹은 부동산 투기꾼도 일주일에 여섯 번 이상 여자들과 두시간씩 쉬지 않고 그짓을 했다. 일주일에 여섯 번만 한 것은 한주는 안식일을 준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면서 국회의원보다 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다. 모든 여자들이 혜성처럼 나타난 현대판 변강쇠 때문에 기절하고 자빠졌기 때문이었다.
술집에는 거의 매일 가서 살았다. 술집 마담 때문에 자주 가기도 했지만, 부동산 고급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공무원이나 부동산 전문가들과 수시로 술을 먹으면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학교 부설 부동산과정에도 등록해서 외국 단체여행을 여러차례 다녀오기도 했다. 막대한 경비를 들여 해외여행을 한 성과는 필리핀이나 태국에서 고급 맛사지를 한 것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막판에는 최소한 5억원은 벌 수 있는 개발예정 토지를 싸게 사서 전매하려다가 천하의 고등사기꾼을 만나 3억원을 하루 아침에 날리고 손해를 보았다. 사기꾼이 필리핀으로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강도 7.0 이상의 쓰나미를 당한 것처럼 심한 충격을 받고 어~ 어~ 하면서 쓰러졌다.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도중이었는데, 응급조치를 빠른 시간에 하지 못해 남자는 억울하고 안타깝게 존엄한 생애를 낙엽이 가득 떨어진 가을 산에서 등산복 차림으로 마감했다.
문상객은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장례식은 아주 조촐하게 가족 중심으로 치러졌다. 사업하다 망해 지하 단칸방에서 10년 이상 머물던 파산자보다 더 검소하게 허례허식 없이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사람들은 워낙 구두쇠라 죽어서도 문상객들이 와서 음식을 축낼까봐 생전에 자신이 죽으면 사망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유언을 해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자신이 죽으면 화장을 해서 땅값이 많이 오른 곳에 수목장으로 할 것이라고 수없이 되풀이했으므로, 부인은 남편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그린벨트가 해제되어 땅값이 폭등한 곳에서 수목장을 지냈다. 결국 그는 땅부자답게 공시지가가 엄청나게 비싼 토지 위에 한줌 재가 되어 부려졌다.
남자가 그렇게 돈을 떼어먹히고 억울하게 비명횡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워낙 술과 여자를 좋아했기 때문에, ‘오입하다 복상사를 했다’, ‘만취해서 싸우다 뇌진탕으로 죽었다.’, ‘조폭 부인을 건드리다가 칼에 맞았다’는 등의 해괴망칙한 소문이 퍼졌다. 부동산 전문가가 운영하는 1인 방송에서도 그의 사망소식이 전해졌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보다는 ‘잘 돌아가셨다’, ‘원없이 살았으니 무슨 여한이 있을까?’, ‘남의 땅을 싸게 샀으니 판 사람의 원한 때문에 벌을 받았다.’라는 말도 되지 않는 여론을 형성했다.
이렇게 허망하게 남자의 인생이 막을 내리자, 과부가 된 여자는 졸지에 거액의 상속세를 내야 했고, 그 때문에 세무사 사무장과 붙어 다니다가 사무장에게 몸까지 주는 불상사도 생겼다. 늙은 사무장은 세금 문제를 해결해 주고 성공보수로 여성 고객의 육체를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살아 생전에 육욕을 채우지 못하고 죽으면 육신이 썩지 못한다는 이상한 교리에 빠져 돈보다는 섹스를 중시하는 종파에 속했다.
상속세를 내고도 여자에게는 거액의 재산이 남겨졌다. 바람이나 피고 잔소리 하던 남자가 떠나니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었고, 세상이 완전히 달리 보였다. 그러나 여자가 혼자되어 재물이 있다는 것은 위험하기도 했다.
주변에서 이런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남자고 여자고 달라붙어 돈을 뜯어먹으려고 했다. 갖은 감언이설로 속이고, 매일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훌륭하다고 했다. 어떤 사기꾼은 여성 대통령도 나오는 세상이니, 최소한 국회의원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부추겼다.
사회 봉사를 하자고 하고, 교회에 가자, 절에 다니자, 춤을 배우러 가자, 골프회원권을 사자고 하는 사람 등등, 이 세상에는 돈 있는 여자를 위해 애쓰는 골빈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남편이 죽고 혼자 남은 채명숙은 시간이 갈수록 외로웠다. 남편이 남겨놓은 재산을 관리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 재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 고액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엄청난 세금을 내도록 하는 종합부동산세가 도입된 다음부터는 매년 12월이 되면 세금 때문에 너무 아까워서 노이로제에 걸리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일부 부동산은 임대를 하는데, 세입자가 항상 속을 썩였다. 불황이 심화되자 공실로 비워두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세입자와 내용증명을 보내거나 소송을 하는 것은 하루에 세끼 밥을 먹는 것과 같았다.
술집으로 세를 주면 깡패 건달 같은 사람들이 들어와 월세도 잘 안주고, 나가라고 하면 문신을 한 사람들이 몇 명 나타나서 인상을 쓰고 앉아있다. ‘돈 많은 할머님께서 양보를 해야지, 우리 같은 서민들이 먹고 살 것 아니냐? 돌아가실 때 돈을 가져가려고 그러느냐?’ 는 것이었다.
명숙은 52살 밖에 안되어 아직 청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할머님이라고 하니 모욕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왜 할머니라고 부르느냐고 호칭 가지고 싸울 수도 없었다. 깡패들은 가방끈이 짧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호칭을 제대로 구별할 능력이 부족한 것은 공지의 사실이었다.
그들은 싸움만 하고 돌아다녀서, 이종과 고종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종사촌은 조선 시대 왕이었던 고종의 사촌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고종까지는 알겠는데, 이종은 고려시대 왕이냐고 진지하게 묻는다. 중학교 때 고려시대에 대해서는 수업시간에 졸다가 놓쳤기 때문이다. 만일 할머님 호칭 문제로 째려보고 인상을 썼다가는 깡패들의 가슴에 새겨진 용이 눈에서 화염을 내뿜으면서 번개처럼 날아오면 명숙은 실명할 위험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