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이따금 숨은 진주를 찾아낼 때가 있다. 잘 생기고 명민한 흑인 배우를 대표하는 덴젤 워싱턴의 아들이며 영화 '테넷'(2020)의 주인공 존 데이비드 워싱턴의 연기력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베킷'(2021)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제목이 참 짧고 무미건조하다. 그래서 평단과 관객의 눈길을 붙잡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긴축재정 반대 시위가 뜨겁던 그리스로 휴가를 떠난 젊은 연인들이 우연한 사고로 여자는 죽고 남자만 살아남는다. 언어도 안 통하는 곳에서 죽자살자 안간힘을 쓰다 결국 자신들이 왜 그런 곤경에 처해졌는지 밝혀낸다.
이탈리아 추린 페르디난도 치토 필로마리노 감독의 연출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별 것 아닌 일로 조마조마 가슴이 방망이질치는 느낌을 안겨준다. 예를 들어 반정부 시위로 시끄러울 아테네를 떠나 이오안니아 산골 마을로 떠나는 자동차 안에서 베킷(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에이프릴(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주고받는 사랑의 밀어다. 밀어는 달달하지만은 않았다. 그보다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게 했다. 에이프릴이 주유하러 가는 베킷을 마지막으로 눈동자에 담겠다는 듯 그윽하게 바라보는 장면도 침을 꿀꺽 삼키게 했다.
나중에 자신을 죽이려는 일당의 마수를 한사코 벗어나려는 베킷이 달리면 관객도 함께 달리는 느낌마저 들고, 반대로 일당을 쫓아 베킷이 긴박한 추격전을 벌일 때는 관객도 덩달아 뛰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스릴러나 서스펜스 장르를 표방하는 영화에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넘쳐나는 음악, 음향 효과도 거의 없다. 오직 대사와 배우 움직임만으로 숨막힐 듯한 긴장감을 끌어낸다.
그런데 영화음악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팬들이 무릎을 치는 순간이 엔딩 크레딧에 나온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만들었다. 역시, 그래서였구나, 그렇게 자제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싶은 것이다.
플롯을 끌어가기 위해 고비고비 떡밥을 놓고 이것을 하나씩 걷어내는데 그 솜씨가 참 대단하다. 초반 그저 시시껄렁한 로맨스 휴가 드라마처럼 보이게 하다가 스릴러로 전환하고, 막바지에 사회고발성 드라마로 다시 전환하는데 이 모든 일의 발단이 된 유력 정치인 아들 납치 사건이 너무 쉽게 우연에 의해 풀리고 여기에 버락 오바마 정부의 미국 대사관 직원이 그리스 극우의 음모 공작에 가세했다는 것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2015년 '안토니아'로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 특별언급상을 수상한 감독의 연출력에 대해 액션이 부족하며 치밀하지 못하다, 캐릭터 발달이 덜 돼 있다는 혹평도 적지 않다. 하지만 조용하고 내밀한 스릴의 맛을 제대로 살리며 사회고발 드라마까지 손을 뻗으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감독의 어깨를 토닥거리고 싶다.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SYRIZA) 정권이 구제금융 국민투표를 시행한 2015년 무렵을 배경으로 삼은 것 같다. 그리스에서 세 번째 구제금융을 선택한 대가로 유럽연합(EU)이 긴축재정을 받아들이라고 압박하는 바람에 사회적 갈등이 심화된 시점이었다. 거리 곳곳에 노숙자, 술에 취한 중년 아저씨들이 거리에 널부러져 있는 모습이 그것이다. 버락 오바마 2기 정부는 그리스가 EU 대신 러시아나 중국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떨어져나갈까 전전긍긍하던 시점이었다. 이런 사정을 치밀하게 그려넣지 못한 채 낯설고 고립된 환경에 뚝 떨어진 관광객 베킷의 눈으로 그리스의 혼란을 담아내려니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앞에 얘기했듯 이 영화는 관객과 평론가, 관객 중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품이다. 긍정적이고 배울 점이 있다는 쪽과 형편 없으며 시간 낭비라고 투덜거리는 쪽으로 확연히 갈라질 수 있다. 컵에 물이 절반 차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