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아드보카트 감독이 제2의 히딩크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2002년 여름의 환희를 다시금 재현할 수 있을지의 가능성에 대한 물음이다. 이럴 때 마다 참으로 곤혹스럽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역동성이 강하고 의외성이 짙은 축구에서 결과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축구의 신이 존재하다면 맞힐 수 있을까. 축구황제 펠레가 매번 예측에 실패한 것을 보면 꼭 그렇지 만도 않은 것 같다. 전문가 그룹 혹은 언론도 전망이 빗나갈 때 마다 ‘이변과 충격’이란 표현으로 은근슬쩍 넘어가길 반복하지 않았는가. 공감 못할 때도 있지만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그것이 바로 축구이기 때문이다.
▲ 펀더멘털리즘을 말한다
제2 히딩크에 대한 바람은 다분히 결과론적이다. 16강 이상의 목표 성취라는 결과에만 주목하는 흐름이다. 결과에 치우친 것 아니냐고 씁쓸해 할 수 있지만 승패를 나눠야 하는 축구에서 결과에 대한 착목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일는지 모른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자신의 축구철학 중 하나가 “모든 경기는 승리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다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정 없는 결과란 없다는 사실이다. 과정에 충실할 때 기대한 결실을 손에 쥘 수 있다. 기둥을 세우지 않고 지붕을 올릴 수 없는 이치다. 히딩크 감독 시절 예서도 알 수 있다. 선수의 네임 밸류나 재능 이전에 기초체력을 강조했다. 그 유명한 파워프로그램이다. 이를 가리켜 펀더멘털리즘이라 했는데 기초과학 없이 과학발달을 꾀할 수 없다는 논리의 원용이기도 했다.
▲ 업적에 대한 당당한 도전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만약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직접 “제2의 히딩크가 되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그렇다”일 것이다. 부임 기자회견에서도 밝혔듯이 이는 히딩크 개인에 대한 애정이 아닌 업적에 대한 도전이다.
히딩크 감독이 98월드컵 4강 결실 이후 승승장구하다 레알 마드리드, 레알 베티스에서 거푸 쓴잔을 들이킨 뒤 2002월드컵을 통해 재비상 했듯, 유로2004 4강에도 불구하고 여론 악화 등으로 흔들렸던 입지를 2006월드컵을 계기로 다시금 끌어올리고 싶을 것이다. 순수성이라는 잣대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 인간으로서, 팀을 이끄는 승부사로서 지극히 당연한 성취동기이기 때문이다.
▲ 시간과의 싸움이 결정적 변수
문제는 성취를 위한 과정이다. 성취는 히딩크가 일궈낸 업적의 재현이다. 과정은 재현을 위한 노력이다. 우선 아드보카트와 히딩크 감독이 닮은꼴이라는 점에서 전제는 갖춰져 있는 셈이다. 리누스 미셜 토털사커의 계승, 아인트호벤과 네덜란드대표팀 지휘 등의 이력, 강단이 느껴지는 카리스마 이면의 유머러스한 화법과 제스처 등 문득문득 지켜보는 아드보카트와 히딩크 감독이 오버랩 되곤 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바로 주어진 시간이다. 히딩크 감독에게 주어졌던 1년 6개월은 넉넉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표팀에 올인할 수 있었던 당시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짧지 만도 않은 시간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다르다. 본선을 9개월 앞두고 부임했고 히딩크 시절만큼 대표팀 소집이 용이하지도 않다. 때문에 아드보카트 감독의 시간과의 싸움은 제2 히딩크를 판가름 할 수 있는 결정적인 변수가 될 가능성이 짙다.
▲ 혹독한 시련을 경험하지 않은 아드보카트호
결정적 변수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드보카트 체제의 선수들이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2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히딩크호는 침몰 위기까지 내몰리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평가전 승리 등 눈앞의 성취에 매달리지 않았고 강팀과의 계속된 평가전을 치른데 따른 후과였다. 물론 극한의 위기를 자초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시련은 우리 대표팀을 강하게 만들었다.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과정이었다.
하지만 아드보카트호는 실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홍콩 칼스버그컵에서 덴마크에 무너지긴 했지만 혹독하다고는 표현할 수 없었다. 단기간의 성취를 저버리면서 체력훈련에 열중하고 강팀과의 평가전을 위해 지구촌 곳곳을 누빌 시간과 준비가 부족했던 아드보카트호였다.
▲ 주전경쟁의 서바이벌 시스템
결과적으로 시간의 부족은 크게 2가지의 숙제를 아드보카트호에 던지고 있다. 첫 번째는 감독의 몫이다. 시간의 부족은 긴장감의 약화로 이어질 공산이 있다. 시련을 겪지 않은데 따른 반대급부다. 그렇다고 일부러 시련을 겪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단련, 도전정신, 동기부여,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높일 수 있는 대체 상황과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으로선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 주전경쟁의 서바이벌 시스템이다. 최종 엔트리 제출 때까지 윤곽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나 우리로선 더욱 더 이 부분에 신경 써야 한다. 유도 차원이 아닌 실제적이어야 한다. 전지훈련 멤버가 아니었더라도 기량을 확인되고 검증된다면 대표팀 입성의 문을 열어야 한다. 반대로 전훈 멤버라 할지라도 K리그에서의 활약이 미진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 배제할 수 있는 결단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 유럽파의 모자이크 원칙
유럽파라고 예외일 수 없다. 유럽파의 기량과 경험은 높이 살 수 있으나 소속팀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대표팀의 일원이 되긴 힘들다. 경기 감각에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데다 팀 분위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축구는 특정 스타가 아닌 모자이크처럼 모든 구성원이 하나가 될 때 완성된 틀을 갖출 수 있다. 보름 동안 유럽파를 점검하고 돌아온 아드보카트 감독이 유럽파를 포함한 무한 주전경쟁을 재차 강조한 흐름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선수의 책임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체력훈련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 수비 등 전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훈련만으로도 숨이 벅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대축구의 특징을 살피거나 월드컵과 같은 단기간 승부에서 체력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것 없는 필수 요건이다.
▲ 셔틀런 체력테스트의 무언의 압박
체력은 선수의 몫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조건 속에서 최선의 판단으로 전술훈련을 택했다면 나머지 부분은 선수가 메워야 한다. 체력은 개인훈련을 통해서 일정부분 끌어올릴 수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5월 중순 재소집 이후 체력강화 프로그램을 예고하고 있지만 지구력과 근력 등 체력은 단기간에 향상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금 시점도 충분한 것은 아니나 몸을 만들어 놓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차이일 수밖에 없다.
3월1일 앙골라전을 앞두고 새로 부임한 네덜란드 출신의 닐스 드브리스 피지컬 트레이너에게 셔틀런(왕복달리기) 체력테스트를 실시케 해 선수들의 기초 자료를 챙겨놓았다. 재소집 후 측정을 통해 개개인의 노력과 변화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K리그에서 뛰는 동안 자기 몸 관리에 주력하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드보카트호의 시간과의 싸움은 선수들이 흩어져 있는 이 순간에도 쉼 없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음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