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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 39 계신 데를 보고 - 요 1: 42 장차 게바라 하리라.
요 1: 39 계신 데를 보고 -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 시쯤 되었더라. )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와 보라”고 대답하셨다.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는 함께 지내보면 다 알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계신 곳을 보고 그 날 주님과 함께 지냈다.
때는 제10시쯤 되었다. 그것은 오전 10시를 가리키는 것 같다.
1]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이 말은 워어상 '오다'(*, 에르코마이)의 현재 명령형과 '보다'(*, 호라오)의 미래 직설법, 그리고 접속사 '카이'(*)로 구성되어 있는 짤막한 문장이다.
여기서 '오라'는 말은 예수께서 계신 곳으로 오라는 초청의 말씀이며, '보라'는 말은 제자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을 확정하는 말씀이다.
따라서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는 자들을 향한 초대(超待)와 구원의 보장(寶藏)이다.
'와 보라'는 표현은 랍비들이 사용했던 권위있는 초청 표현 형식으로서,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라는 표현과 서로 상응한다. 즉 사도 요한은 본문에서 당시의 표현 어법을 재현하며,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모습과 그들을 초청하시는 예수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2]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와 보라'는 표현이 명령형과 미래 중간태 직설법으로 표현된 데 반해 '가서...보고'는 두 동사 모두 부정 과거형을 사용함으로써, 제자들이 예수를 따른 것이 실제의 사실임을 명시한다.
또한 본문은 '와 보라'는 예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표현하는 구절이다.
여기서 '계신 데'란 예수께서 가족과 함께 거처하시던 갈릴리 나사렛이 아니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베다니 근처의 어느 장소였을 것이다.
이처럼 구체적 장소를 명시하지 않고 단순히 '계신 곳'을 뜻하는 헬라어 관용구로써 예수의 거처를 처리해 버린 것은 그들이 추구해야 할 것이 어느 거처나 장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통해서, 그리스도 자신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사실을 나타내려는 저자 요한의 의도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3]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이 내용은 부가적 기록인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시각이 명시되어 있는 것은 그 만남이 역사적(歷史的) 사실임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열 시'란 유대 시간법을 따라 오후 네 시라는 견해도 있으나,
Ⓐ 본서의 저자가 바로 현장을 목격한 사도 요한이라는 점
Ⓑ 본서가 에베소에서 헬라인들을 위하여 기록된 점
Ⓒ '번역하면'(38절)이란 표현이 신약 성경 중에서 본서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등을 고려한다면 로마식 표기법을 따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예수를 만난 시간은 오전 10시에 해당한다. 이 시간은 예수 그리스도와 본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이 만난 시점으로 추정됨과 아울러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독교 '공동체'가 탄생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Westcott).
그 제자들은 그 날 그들의 생애에서 가장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만난 일이었다. 그 교제를 통해 그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던 상태에서 ‘메시아’라고 부르는 상태로 변하였던 것 같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그를 더욱 알고 더 깊이 교제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라고 말했다(딤후 3: 14 –15).
또 성도의 경건한 교제는 예수님을 아는 데 도움이 된다.
요 1: 40 예수를 따르는 -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
1]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른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이었다.
다른 하나는 아마 본서를 쓴 요한이었을 것이다. 본서의 저자는 자신을 항상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있으나 이 모든 일을 본 자임이 틀림없다.
그들은 그 날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해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확신케 되었다.
2]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안드레가 시몬 베드로의 형제라는 말로 지칭된 것은 주로 예수의 공생애 초기, 즉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였다(1: 44).
* 요 6: 8 -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 마 4: 18 –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 마 10: 2 -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 막 1: 16, 29 –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 눅 6: 14 –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그러나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떠난 이후로 안드레는 베드로와 결부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지칭되었다.
* 요 12: 22 –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 막 13: 3 –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 행 1: 13 -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한편 안드레가 베드로의 형제로 묘사된 것은 당시 베드로가 예루살렘 12 사도의 수반(首班)으로서 활동했다는 사실을 초대 교인들이 잘 알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동시에 이 표현은 사도 요한이 공관 복음서뿐만 아니라 교회 역사상 희미해져 가는 안드레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즉 안드레가 사도 요한과 함께 예수의 첫 제자였으며, 자발적인 최초의 복음 전도자였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사도 요한은 소상히 밝히고 있다.
요 1: 41 메시야를 만났다 -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
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안드레는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 말했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그는 그를 데리고 예수께로 왔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확신한 자는 그를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먼저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 읽기와 듣기, 성경 묵상과 연구를 통해 예수님을 확신하고 또 다른 이들에게 그를 전하거나 또 그들에게 성경책을 읽고 공부하게 하거나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를 듣게 함으로써 예수께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2]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우리'란 구체적으로 안드레와 사도 요한 두 사람을 가리키는 듯하며, 이는 재판정에서 증인의 최소 구성 인원인 2인을 상기시킨다.
* 신 19: 15 -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이 두 사람의 동시적 증언(testimony)은 이를 듣는 시몬에게도 놀랍고도 확실한 소식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옮기면 '우리가(찾던) 메시야를 발견했다'(We have found the Messiah;KJV, RSV, Living Bible)로 된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그토록 기다리던 대망의 메시야를 만나고서 그 놀라운 소식을 시몬에게 곧장 전하였다. '우리'란 구체적으로 안드레와 사도 요한 두 사람을 가리키는 듯하며, 이는 재판정에서 증인의 최소 구성 인원인 2인을 상기시킨다(신 19:15). 이 두사람의 동시적 증언(testimony)은 이를 듣는 시몬에게도 놀랍고도 확실한 소식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3]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그리스도는 '기름을 붓다', '기름을 바르다'라는 뜻의 헬라어 '크리오'(*)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본래 '크리스토스'(*)란 '기름을 발리워진'이라는 뜻의 형용사이며, 이 용어가 명사형인 '토크리스톤'(*)으로 쓰일 때는 '의료용 연료'를 가리켰다.
그러나 '크리오'는 헬라적 관점에서 보다는 동양(근동)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규명에 도움이 될 것이다.
헬라인들에게 있어서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종교적, 정치적 의미보다는 일상생활의 편의나 용도를 위함이었다.
근동에서는 '기름'을 붓는 것'이 정치적인 혹은 종교적인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의식이었다. 특히 구약에서는 왕, 제사장,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음으로써 그들이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대표자이며 책임자임을 명백히 하였다.
* 출 29: 7-9 – 7 관유를 가져다가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르고 8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9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 그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
* 삼상 10: 1 –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 삼상 16: 13 -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 왕상 19: 15-16 –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그러나 왕정 후기로 내려오면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곧 '메시야'임을 의미하게 되었다.
* 사 61: 1 -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 단 9: 24 -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그 후 바벧론 유수(幽囚) 이후에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이민족들의 침략하에 시달렸으며, 그 속에서 이스라엘을 구할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사상이 점점 더 고조되었다.
특히 이스라엘이 로마의 속주(屬州)로 전락하고, 에돔 족속인 헤롯 왕가가 이스라엘의 통치권을 장악하여 무자비한 권력을 행사하자 메시야 사상은 급진적 혁명 운동을 위한 신앙으로 변질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왜곡된 메시야 사상은 결국 성전 파괴와 이스라엘의 멸망을 초래한 요인이 되었다.
신약성경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칭한다. 이는 사도 베드로의 설교에서 명백히 제시되었다.
* 행 10: 38 –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이 되었다. 이 고백은 예수께서 구약의 완성자요 새 언약의 중보자(the Mediator)라는 신앙에 기인한다.
즉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지도자란 '기름부음 받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를 지칭했듯이, 예수는 이 세 가지 직분을 한 몸에 지니시고 죄에 빠진 인류와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새 예루살렘 성도들의 머리가 되신다.
한편 메시야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막 8: 27-38 강해 '메시아 사상의 전개'와 막 10: 35-45 강해 '메시야 예언의 양대 조류'를 참조하라.
요 1: 42 장차 게바라 하리라 -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
주께서 시몬을 게바 곧 반석이라는 부르신 것은 그의 믿음과 인격이 반석과 같이 견고해질 것을 암시하시는 것 같다. 베드로는 비록 부족이 많을지라도 반석 같은 믿음을 가질 것이다.
1]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이르시되는 원문은 '여블려사스 아우토...에이펜'(*)이다.
여기에서 '엠블려사스'는 '주목하다', '눈여겨보다'라는 뜻의 헬라어 '엠블레포'(*)의 부정 과거 분사로서 예수께서 베드로의 성격이나 사람됨을 통찰하셨음을 시사한다.
즉 예수와 베드로의 첫 만남은 비록 단시간이었음에도 직접적이고도 진지한 만남이었다.
2]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시몬'(Simon)과 '게바'(Cephas)가 서로 대조를 이룬다.
(1) 시몬'(Simon)
'시몬'이란 베드로의 다른 이름으로서 이는 예수께서 베드로의 자연적 성품을 꿰뚫고 계심을 나타낸다.
즉 '요한의 아들'이란 표현에서 예수는 베드로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 상태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시몬'은 '시므온'(*, 쉬메온)이라고도 불리었다.
* 행 15: 14 -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시몬' 이란 구약의 12지파 중 시므온 지파의 조상인 야곱의 둘째 아들 시므온(LXX)과 동일한 명칭이다. 시므온이 과격하고 성미가 급한 인물이었다.
* 창 34: 25-31 – 25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26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27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 28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읍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29 그들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자녀와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 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31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변화되기 이전의 시몬 베드로도 충동적이고 성미가 급한 사람이었다.
* 요 18: 10, 25-27 –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 마 26: 31-35 –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 막 8: 32-33 –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
* 막 14: 27-31 –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 눅 22: 31-33 –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이러한 시몬의 성격을 간파하신 예수는 시몬이 장차 '게바'로 불리울 것을 예언하신다.
(2) 게바'(Cephas)
'게바'(*, 케파)란 '반석'이란 뜻의 아람어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의 베드로의 성격을 잘 반영한다.
즉 '게바'라는 이름은 베드로가 교회를 위한 사도적인 터전을 구축(構築)한 여러 요긴한 반석 중의 하나가 된 사실을 상기하게 한다.
예수 공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 중에 베드로는 예수를 세 차례나 거듭 부인하는 나약함을 보였다.
* 마 26: 34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 갈 2: 11 –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우리는 베드로의 흔들리는 모습과 오히려 사도 바울의 견고한 반석같은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모든 인간적인 약점들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극복하고 초대 교회의 지도자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감당하였다.
* 행 1: 15-25 – 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후에 베드로에게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신앙 고백으로 인해 '베드로'라는 칭호가 공식적으로 부여되었다.
* 마 16: 16-19 –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는 '야곱'이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 되었던 것처럼, 요한의 자녀'인 시몬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중생하여 '하나님의 아들'인 게바(베드로)로 되었음을 시사한다.
* 창 32: 24-30 –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번역하면은 헬라어 '헤르메뉴에타이'(*)는 '헤르메뉴오'(*)의 현재 직설법 수동태로서 자세한 것은 38절 주석을 참조하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메시아시다.
세례 요한의 증언대로, 그의 제자들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랐다.
둘째, 처음 제자들은 예수님과 교제를 통하여 믿음의 성장을 갖게 되었다.
성도는 성경말씀을 읽고 성경적 설교를 듣고, 기도하고, 기도 응답을 체험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믿음이 자라고 확신하게 된다.
셋째, 성도는 받은 바대로 이웃에게 전도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의 소식을 우리의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지들에게 알려주어 그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도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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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름'을 붓는 것'이 정치적인 혹은 종교적인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의식이었다.
💖오늘이라는 아름다운 공간에 행복을 담아 나의 인연 모든 분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미소와 함께 전해 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 하십시오💖
'기름'을 붓는 것'이 정치적인 혹은 종교적인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의식이었다.
설교 감사합니다.
'기름'을 붓는 것'이 정치적인 혹은 종교적인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의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