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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개발 작품의 최대 문제는 FTL이죠.
뭐 사실 이건 너무 당연한 얘기임. 현대 물리학에서 초광속은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생각해낸 우회로가 공간을 왜곡한다는 것인데, 그건 너무 엄청난 얘기라서 작동 원리를 상상하기도 어려울 지경... 아니 마법으로 공간을 왜곡하는 것을 글로 표현하는 데에도 애로사항이 불꽃을 튀기는데 하물며 과학기술이라니 크로스토퍼 놀란이 빙의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거라구요ㅠㅠ
가령 FTL이 불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움직이는 게임이 바로 림월드죠. 수백 년짜리 콜드슬립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항성 간 거리가 짧은 은하 중심부에서는 과학문명이 극도로 발전하였으나, 항성 간 거리가 한없이 멀어지는 은하 외곽에서는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어 문명 수준이 들쭉날쭉하기도 합니다. 하나의 행성에서도 우가우가 레벨의 부족들이 터미네이터 수준의 로봇 침략자들과 전면전을 벌이는 시드마이어의 문명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이 마구 터져나오는 세계관이라는 얘기. 근데 수백 년짜리 시간 격차가 있는데도 헤어진 가족들끼리는 어찌 그렇게 자주 상봉하시는지...?
스텔라리스는 기본적으로 우주제국 건설을 말하기 때문에 FTL을 기본 전제로 깔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FTL에는 한 가지 너무 기본적이어서 언급조차 안되는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초광속 항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엔진이죠. 그런 엔진을 장착한 선박은 FTL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딴 엔진이 없는 '전파'는 어쩔까요?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항성 간 통신속도가 광속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어? 교통은 초광속이 되는데 통신이 아광속이라구요? 제국의 확장은 비교적 수월하지만 중앙정부의 변방 관리능력이 부실하다구요? 그런데도 중앙정부에 반하여 함부로 날뛰다가는 언제 스페이스 마린이 머리통을 깨부수러 찾아올지 알 수 없으니 일단은 엎드려있어야 한다구요? 햣하 지방분권이다! 림월드다!
제국 중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제국과 이질적인 자연환경, 그리고 이질적인 사회문화가 펼쳐집니다. 그러면서도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절대적 우위를 유지하는 중앙정부에 대한 선망과 질투가 상존합니다. 당장의 문화적 이질감은, 그래도 우리는 아직 같은 운명공동체 속에서 살고 있다는 관습적인 믿음에 의해 상쇄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주개척 과정에서 근대적 국민국가가 전근대적 다문화제국으로 퇴보할 수밖에 없는 거군요?
여기에서 꺼내들어야 하는 것이 바로 유로파 유니버설리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텔라리스의 국제정치 모델을 구상할 때 전근대적 다문화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주요 내러티브로 작용하는 유로파 유니버설리스를 적극 참조해야 합니다.
어슐러 K. 르 귄의 헤인 연대기 시리즈에서는 초광속 항행이 불가능하지만 우주 어디에서나 동시적인 통신을 가능케 하는 앤서블이라는 기기가 발명되어,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헤인 연대기는 어떤 고립된 세계에 외부로부터의 전혀 새로운 사회문화과학기술이 유입될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에 주목하는, 전근대 시대의 고립적인 문명에 더 어울리는 사고실험이 이어집니다. 우주제국을 건설하는 스텔라 유니버설리스 프로젝트에서는, 초광속항행은 가능하여 물적 교류 자체는 원활하지만 아직 앤서블이 실현되지 못한 시점의 근세 거대제국과, 앤서블이 실현된 이후의 근대 신제국주의, 그리고 공통의 적에 맞서싸우는 과정에서 은하 전체의 이념이 두어 가지로 압축되고 최종적으로는 초거대 국가연합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설정하고자 합니다.
다양한 정부체제들 사이의 차별화된 컨텐츠 부족
스텔라리스는 이미 각 이념별로 다양한 정치체제를 구현하려는 노력의 흔적 비슷한 것을 보인 바 있습니다. 그 흔적이 너무 흐릿한 나머지 마치 지나가던 적 탱크에 짓밟혀 바위에 짓눌린 어느 군인의 핏자국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 문제이긴 한데, 아무튼 기존의 4X 게임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바로 이러한 정치적 요소입니다. 게이머가 역설사 게임에 보편적으로 바라는 부분이 바로 이러한 영역이기도 하구요.
버블경제 시절 수준으로 꿈과 희망이 가득찬 개발자 다이어리 시절, 야심차게 공개되었던 제국 기풍과 그로부터 영향을 받는 정부체제의 모습. 갇-텔라리스를 외치던 많은 사람들은 HOI2의 각종 국가정책 슬라이더를 떠올리며 마치 처음 대학교 캠퍼스로 들어서는 풋풋한 신입생마냥 가슴이 선덕선덕해졌으나, 현실은 이와 관련된 극단적인 컨텐츠 부족으로 사실상 흑역사에 가까워져따...
그렇다면 전근대적 다문화제국들의 모델을 살펴보며 이것을 스텔라리스의 세계관에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 생각해봅시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우선 통신기술 발전에 따른 3단계로 상정하고 싶습니다. 각각 게임 진행의 전중후반이 될 것이며, 그 기준은 '통신의 FTL(이하 앤서블) 실현'으로 보겠습니다.
초기 우주개척 시대의 특징
앤서블이 실현되기 이전, 가칭 '초기 우주개척 시대'에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확장은 수월하되 중앙정부의 관리능력이 부실하며, 우주제국은 필연적으로 느슨한 연맹체의 형태를 띠게 됩니다. 중앙정부 - 지방총독부 - 항성계 단위 민회로 이어지는 통치체계는 각자 국가체제별로 허용된 범위 내에서 독립적인 정치적 능력을 발휘할 것이며, 모든 백성들은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같은 뿌리라는 모호한 공동체 의식은 공유할 것이나, 단일국가에 소속된 국민으로서의 일체감은 거의 보이지 못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는 합스부르크 집권 이후의 신성로마제국을 상상하는 것이 바람직하겠고, 한편으로는 본토 영국을 바라보는 북미 13주의 시각이 더 적절한 사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동시적 통신수단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제국정부는 우체부 역할을 하는 연락선 체계를 유지하는 비용을 따로 지불해야 합니다. 이러한 연락선 체계는 경쟁국의 사보타주에 나약하므로, 플레이어의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항상 존재합니다. 중앙정부의 명령이 지연전달되는 것은 예사이고, 심지어 때로는 지방정부가 전달 자체를 받지 못해 명령이 씹혀버리기도 합니다. 지방 총독의 불만이 높다면 착륙을 시도하는 본국 연락선을 행성방위시스템으로 시밤쾅해버리고 "그런 명령 못받았는데염?" 하고 발뺌할 수도 있습니다.
중앙정부로부터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연락체계는 더 지연됩니다. 물론 AE 시스템도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기 때문에, 지방 총독이 "이건 내 권한 밖이니까 중앙정부의 명령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관료주의적인 한계에 봉착해서 코앞으로 다가온 위기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동안, 포위망을 구성한 반제국 동맹국가들은 제국의 변방을 사정없이 유린할 것입니다. 비상시에는 총독에게 전권을 위임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밸런스를 고려하여 해당 섹터 한정으로 내정 관리와 군대 사기에 디버프를 받게 되며, 비상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팝들이 느끼는 제국으로의 소속감이 점차 약화될 수 있습니다.
단, 함대의 경우엔 함대사령관에게 전권이 주어진다는 전제 하에 플레이어가 중앙정부가 아니라 함대사령관으로서 실시간 조종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내정 명령은 지연전달 또는 아예 씹힐 수도 있지만(특히 국가기밀에 해당하여 연락선을 적게 보낼 수밖에 없는 군비 관련 명령은 사보타주에 치명적입니다), 함대 컨트롤과 같은 전투 자체는 실시간으로 할 수 있습니다.
초기 우주개척 시대 제국들의 몇 가지 공통점
다신론적인 고대제국보다는 일신론적인 중근세제국에 가깝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제국 내부는 이질성보다 동질성이 더 강합니다. 주요문화에 해당하지 않는 외계인들은 현실 역사의 유대인 거주구역처럼 일종의 게토(작게는 행성 타일 한두 개~크게는 항성계 하나)를 형성하며, 정치사회적 자유를 어느 정도 보장받지만 제국정부의 변덕에 의해 언제든 쫓겨날 수도 있죠. 경우에 따라서는 후스 파가 장악한 보헤미아 왕국처럼 제국의 근간을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소수민족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제국 외부의 국가들은 제국의 세력권에 들어와 제국을 방어해주고 제국 질서에 반항하지 않는 대가로 제국의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얻으며, 위협을 당하면 제국군의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꼬꼬마 국가들을 두고 제국과 문화가 동질적이면 변경국, 이질적이면 보호국이라고 부릅니다.
제국은 이러한 변방의 보호국-변경국을 직접 점령하더라도 통신수단의 문제 때문에 직접적인 통치가 거의 불가능하며, 따라서 외부 침략에 훨씬 취약해집니다. 그러므로 보호국 또는 변경국 간의 마찰을 잘 중재해주고,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잘 지원해서 제국의 고기방패방파제 역할을 튼튼히 해줄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자신들의 혈세가 별 쥐뿔도 없는 보호국-변경국에게 뿌려진다는 사실에 많은 신민들이 분노하는 청문회 형식의 이벤트 체인이, 특히 제노포비아 국가이거나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더더욱 강하게,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플레이어가 대제국이 되기를 포기하고 이러한 보호국-변경국이 될 수도 있죠. 보호국-변경국이라도 또 주위의 더 작은 나라들과 결합하여 조공관계를 구축하면 소중화주의 비스무리한 중소규모의 제국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중견국들은 자신의 상전 역할을 하던 제국이 쇠퇴할 경우, 아래에서 언급하게 될 네덜란드 스타일의 상업제국 체제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플레이어의 제국은 크게 4가지의 체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문화제국 체제
첫번째는 가장 일반적인 다문화제국 체제이며, 이 제국의 모델은 오스만제국, 무굴제국, 청제국이 됩니다. 소수의 지배집단이 다수의 이질적 피지배집단을 '관용'으로 다스리며 압도적인 확장 속도와 군사력으로 극초반에 가장 유리하며 또한 보편적인 체제입니다만, 아무래도 사회학 분야의 기술진보가 약점인지라 문화동화가 어렵고 피지배집단의 원심력을 군사력으로 억누르는 방식이기 때문에 항상 내전의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이런 나라는 외곽 총독의 입지가 다른 체제보다 더 넓습니다. 빅토리아의 방임주의와 비슷한 것인데, 플레이어가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지방정부가 알아서 잘 움직여주고 내정 보너스도 받기 때문에 통신의 제약을 좀 더 무시하고 열심히 확장해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중앙정부로부터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제국 소속감이 줄어들고 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보장받으려 하거나 심지어는 아예 독립하려는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므로 결국 확장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제국의 국력이 치명적으로 약화되면, 오스만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이집트, 무굴로부터 독립하려는 마라타 연합, 만주족으로부터 독립하려는 한족과 같은 대규모 내전에 휩싸일 우려가 있습니다. 내전이 잘 진압되더라도, 내전 과정에서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 간의 민간인 학살이 자주 발생하게 됩니다. 따라서 제국은 언제나 일정 수준 이상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때때로 외곽 성계를 순회하며 군사력을 과시함으로써 내전을 예방하고 조기에 진압해야 합니다.
얼핏 봐서는 전형적인 스파르타식 제국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대체로 문화적으로 관용적이기 때문에 피지배민족의 정치참여에 상당히 적극적입니다. 내각에 진출해있는 피지배민족의 비율이 피지배민족의 제국 내 입지와 직결되며, 이것이 줄어들수록 피지배민족의 반감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아니면 내각과 같은 고위직 진출은 제한하더라도, 중간 계급까지의 진출은 그만큼 쿼터를 더 할당해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만약 확률적으로 터지는 민족분쟁이 발발하면, 내각 장관의 경우 자기 부서에서 사보타주를 벌이는데, 가령 외무부 장관의 경우 외교관계 개선의 효율이 떨어지고, 민족갈등에 대한 외국의 개입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제국 전체의 비효율성과 부패도가 상승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민족분쟁에는 신경을 잘 써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제국은 지배집단을 대표하는 최고통치자의 성향에 따라 피지배집단과의 관계가 결정됩니다. 통치자 후보군을 랜덤으로 구성할 때, 역설신게임시스템은 좋은 특성과 나쁜 특성의 비율을 적절히 조합하고자 할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대부분의 통치자 후보들은 피지배집단과의 융화력과 정치적 능력 사이에서 반비례 관계를 나타낼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명군이나 암군도 낮은 확률로 등장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민족분쟁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유능한(그러나 피지배집단에의 시각은 편협한) 인재를 택할 것인가는 플레이어의 몫입니다(만약 민주정 체제라면 플레이어조차 간접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죠). 만약 피지배집단에 고압적인 통치자가 연속으로 집권하거나 지나치게 장기간 집권할 경우, 민족분쟁의 가능성은 점점 높아질 것입니다.
해양제국 체제
두번째는 일종의 해양제국 체제이며, 이 제국의 모델은 에스파냐,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이 되겠습니다. 이 아래에는 또 3가지의 세부트리가 존재하는데, 영불 스타일의 직간접 통치 혼용 체제, 에스파냐 스타일의 거대 부왕령 체제, 네덜란드 스타일의 상업기지 체제가 되겠습니다.
극단적 해양제국 체제로는 네덜란드 스타일의 상업기지 체제로서, 이것은 비교적 근거리에 강대하고 호전적인 우주제국이 둘 이상 자리잡고 있어 영토 확장이 용이하지 못할 때 선택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상업제국은 다른 제국 소속 항성계에 상업기지를 건설하여 그곳을 경유하여 외부의 자국 식민지와 소통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상업제국은 특정 외국 항성계의 제국 소속감을 희미하게 만드는 데에 특화되어 있으며, 그 방법으로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침투하여 자국 종족들을 위한 게토를 형성시킨다든가, 때로는 사회불안을 조성시키며 타이밍을 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독립전쟁을 조장, 괴뢰정권을 세우고 보호국으로 만드는 것에 유능합니다(다른 체제들도 가능하긴 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약소국이기 때문에 외교에 실패하면 답이 없고, 보통 상업제국의 침투를 꺼리는 강대국들에 의해 외교를 강제로 실패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대비해 상업제국은 항성 간 암흑공간, 즉 '공해'를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신속하게 먼 거리를 지나갈 수 있는 특수한 무역선을 건조할 수 있습니다(물론 이런 특수함선들은 다른 함선들과 접촉할 일이 거의 없어 자기방위의 필요성이 낮기 때문에 경무장 상태인지라 해적한테 약하다는 것이 함정). 국력이 약하기 때문에 1:1 외교에 취약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상업제국은 범은하 규모의 초대형 외교기구 건설에 대단히 적극적입니다(물론 앤서블 발명 이전엔 완벽한 실현이 불가능한 장기 프로젝트가 되겠죠). 다자 간 외교 협상에 특화되어 있어, 1:1 외교협상 테이블에 제3국을 끌어들여 중재 역할을 강요하는 것을 특기로 합니다. 물론 자기가 중재해주는 것도 좋아합니다. 게임 중반 베스트팔렌 체제가 자리잡고 나서부터야 본격적으로 살아나는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국가네요.
일반적인 해양제국 체제가 영불 스타일의 직간접 통치 혼용 체제입니다. 만약 넓은 범위에 자기 종족을 흩뿌려놓은 거대제국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여 성단을 정복했다면, 그 지역에는 간접 통치를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정치적으로 자치권을 주되, 대신 동인도회사나 동양척식주식회사처럼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주식회사를 끼얹어서 지방정부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세워진 주식회사들은 총독 두어 명의 관할영역만큼 각자 영역을 차지하여 나눠먹는데, 국가 전체 또는 특정 주식회사의 부가 늘어날수록 해당 주식회사의 버블붕괴 이벤트가 터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반대로 소수민족들만 드글드글한 지역에는 총독을 파견하여 직접 통치를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런 곳은 군사적 확장이 아니라 '식민'에 걸맞게 본국의 지배민족이 대거 식민지로 이주하여 열심히 개척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과의 충돌이 빚어집니다. 이와 관련된 이벤트도 다수 마련될 것이며, 온건하게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원주민 대량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FBI 비스무리한 중앙정부 소속 에이전트가 파견되어 지방정부의 비협조나 개척민들과의 갈등을 극복하면서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는 추리 미스테리 형식의 이벤트 체인에서부터, 플레이 타임이 길어질수록 극단적으로는 원주민과 개척민 간 내전 사태가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전쟁으로까지 발전하는 이벤트 체인까지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할 것입니다.
해양제국이긴 한데 다문화제국의 특성도 어느 정도 공유하는 것이 에스파냐 스타일의 부왕령 체제입니다. 이러한 부왕령제국은 중앙정부에 절대복종하는 부왕령이라는 특수정부를 설립할 수 있습니다. 부왕령은 게임 중반까지 절대 반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충성도라는 개념 자체가 없으며, 중앙정부가 원하면 언제든 총독을 갈아치울 수 있습니다. 부왕의 정치적 입지는 해양제국의 직접 통치지역 총독~다문화제국의 지방총독 사이쯤에 위치해있으므로, 다문화제국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군사적 확장을 해도 됩니다.
하지만 부왕령 체제 하에서는 제국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원심력이 다른 체제들보다 더 강하게 작용하는데, 정작 앤서블 발명 이전까지는 이것이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으며 다만 서서히 축적되기만 합니다. 다른 제국체제들은 지방정부의 독자적 기술개발 역량이 전혀 없거나 상당히 뒤떨어져서 중앙정부의 기술적 진보를 얻어먹는 반면, 부왕령 체제에서는 부왕령 지역의 독자적인 기술개발능력이 중앙정부와 비슷한 수준이며, 그 방향성은 철저하게 생물학에 맞춰져있습니다. 그 결과 부왕령 지역에서는 적극적인 유전자 조작의 결과 새로운 종족 및 아종들이 쉽게 탄생하며, 시간이 갈수록 종족의 다양성에 비례하여 문화적 동질성이 높아지는 대단히 특이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요컨대 부왕령 체제 하에서는 종족의 차이가 더 이상 문화적 이질성의 근원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며, 따라서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특정 종족을 집중적으로 지원하여 충성파로 만드는 것마저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게임 중반 이후 부왕령 체제가 붕괴하는 이벤트 체인이 발동되기 시작하면, 이렇게 저하된 제국 소속감은 강렬한 독립열망으로 드러날 것이고, 어느 순간 초대형 독립전쟁이 되어 튀어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왕령제국은 사회학에 중점적으로 투자해서 제국 소속감을 열심히 관리하고 게임 중반 이후 부왕령 정부를 점진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제국 전체가 실시간으로 공중분해될 수도 있습니다.
제노포비아 특수체제 (제노포비아 국가라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음)
세번째는 제노포비아와 정신주의를 동시에 골랐다면 선택할 수 있는, 신성로마제국을 모델로 하는 영방제국 체제입니다. 대체로 단 하나의 유일신앙을 공유하며, 종족이 아니라 종교에 따라 자국민을 구별합니다. 그러므로 종족이 다르면 무조건 이질적 문화 페널티를 먹는 다문화제국이나 해양제국들과 달리, 영방제국 체제는 종족이나 문화가 다르더라도 종교가 같으면 똑같은 지배집단으로 간주합니다. 심지어 팝의 정보를 살펴보면 맨 위에 종족이 아닌 종교부터 나오는 식으로 아예 UI 자체가 바뀝니다. 영방제국 체제는 제국정부의 정통성을 종교집단 수장이 확인해주는 전용 이벤트가 존재합니다. 영방제국에서 '제노포비아'란, 곧 이교도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뜻합니다.
영방제국에는 총독이라는 제도가 없습니다. 각 시스템(특정 항성계들의 집단)의 대표자를 의회 의원으로 임명하며, 전쟁선포와 같은 매우 중요한 안건은 중앙정부의 호출을 받아 먼 거리를 여행해 온 의원들에 의해 의회에서 투표에 따라 결정합니다. 중앙정부에서 파견하는 총독이라는 개념이 없으므로 지방분권의 수준은 훨씬 높으며, 지방정부의 자율성이 좀 심하게 강합니다. 게다가 중요한 안건은 합의제로 결정하기 때문에, 앤서블이 없는 초기 우주개척 시대에는 다른 제국 수준의 적극적인 확장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대신 변경국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서 제국 외부로의 포교를 장려해야 합니다. 이런 조공국들도 마찬가지로 제국과 종족이 다르더라도 종교만 같으면 변경국으로 간주합니다. 제국의 방파제를 2중 3중으로 쌓아서 제국중심부의 성지를 보호해야 하죠. 또한 영방제국은 내정과 기술 개발에서 상당한 수준의 보너스도 받습니다. 전형적인 강소국이네요.
네번째는 러시아제국을 모델로 하는 짜르제국 체제입니다. 짜르제국은 특이하게도 제국중심부에 살고 있는 지배집단의 번식력과 환경적응력에 보정을 받습니다. 따라서 영불 스타일의 일반적 해양제국 체제가 사용하는 '식민'을 좀 더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사실 '식민'이라기보다는 '강제이주'죠. 다른 제국에선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강제이주'를 짜르제국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강제이주'는 법령으로 포고하여 특정 지역으로의 이주를 강요에 가까운 수준으로 장려하는 시스템이지만, 짜르제국에서는 지배집단 신민을 아예 팝 단위로 원하는 행성의 원하는 위치에 옮겨버릴 수 있습니다. 짜르제국의 중심부는 언제나 포화상태이고, 이들을 미친듯이 외부로 내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짜르제국은 지배집단이 다수, 피지배집단이 소수가 되는 거의 유일한 체제입니다.
짜르제국의 확장은 특정 '유목민' 집단이 전문적으로 수행합니다. 이 '유목민' 집단은 대개 다수의 피지배집단과 소수의 지배집단으로 구성되며, 플레이어의 명령에 따르거나 명령이 없으면 그냥 자기 맘대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살만한 항성계 아무 곳에나 개척민들을 대충 떨어뜨리고 다음 항성계를 향해 계속 방랑합니다. 따라서 다문화제국의 확장 속도를 넘어서는 미친 확장능력을 보여주지만, 이러한 '유목민' 집단을 발족하기 위한 특수기술이 해금되어야 하므로 타이밍이 약간 늦다는 것이 사소한 단점입니다. '유목민' 집단은 군사적 능력도 우월해서, 다른 제국의 소규모 방위함대 따위는 손쉽게 삭제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외교적 마찰이 좀 발생하긴 하겠군요. 물론 '유목민' 집단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명령이 아니고서는 강대국 근방으로 확장하는 것을 삼갈 것입니다.
짜르제국은 내정관리에 약간의 디버프를 먹으며, 제국 외곽으로 갈수록 지배집단 번식력이 낮아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짜르제국의 '제노포비아'는 좀 특이한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특정 피지배집단이 은하 전체에서 짜르제국과 그 보호국 및 변경국에 가장 많이 분포한다면, 이 피지배종족은 '제노포비아'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설령 그 피지배종족이 통치하는 다른 독립국이 존재하더라도, 수적으로 짜르제국에 더 많이 살고 있으면 '제노포비아'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짜르의 직간접적 지배를 가장 많은 숫자가 받고 있기만 하면 '2등신민'으로 약속되어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제노포비아'의 대상이 되지 않을 뿐 피지배집단으로서의 비효율은 그대로 남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니 게임 중반 이후의 양상은 2부에서 계속됩니다.
쓰고 나니 제2의 문명 비욘드 어스가 탄생할 수밖에 없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긴 하지만 어차피 망상글이니 알 게 뭐야
첫댓글 머엉...
우와...재밌게 잘봤습니다ㄷㄷㄷㄷ
오! 이런식으로 모드가 나오면 재밋을듯.
이런 모드가 나오면 괜찮겠네요
긴글 잘읽었습니다. 게임을 전반적으로 뒤엎어야 가능하겠지만, 스텔라리스에 애정이 대단하시네요 글에서 느껴집니다.
나사에서 연구중인 알큐비에르 드라이브 같은경우는 공간째로 움직여서 기존의 물리법칙을 무시... 초광속을 달성한다고 하네요.
물론 아직은 이론(가설)만요.ㅋ
공간의 밀도차를 이용해 공간째로 움직이고 버블로 둘러쌓인(보호받는) 공간 내부는 움직임이 없으니 전투기처럼 가속에 따른 부담도 없고...
이론상으론 10광속의 실질속도에 도달할 수 있을거라고 하네요.ㅋ
그리고 통신의 경우도 양자얽힘 같은걸 이용하면 이론상은(가설상) 초광속 통신이 가능할꺼라던데..
물론 저것도 이론(가설)단계고 당연히 현재 기술력으론 불가능하구요.ㅋ
지금도 이 정도니 미래가면 뭐 어떻게든 개발할듯요.ㅋ
둘 다 예전부터 읽어본 내용들이긴 한데, 일단 문돌이의 한계를 넘어선 부분이라 제가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도 의문이고, 버블이 풀리는 순간의 충격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고, 양자얽힘을 수백 광년 떨어진 위치까지 유지시키는 것도 방법이 없으니 둘 다 아직은 요원한 일이죠.
@인생의별빛 '아직'은 말이죠.
절때 불가능한거랑 기술적 문제만 해결되면 가능성이 보이는거랑은 천지차이죠.
우주개척을 지금당장할거도 아니니.;;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광속을 넘기는건 절때 불가능하니 미래에도 초광속여행은 불가능하다. /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공간째로 옮기면 상대성이론을 무시하고 초광속 여행이 가능하다. 다만 현 기술력으론 해결이 안된다.
요 두개의 차이는 아주 크죠.ㅋ
@nonononame 그니까 그걸 표현하기 곤란하다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요. 물론 가까이는 인터스텔라에서부터 멀리는 쥘 베른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표현의 적확성보다는 표현의 적절성이 창작자에게 더 중요한 과제이긴 하지만, 근래에 이르러서야 이론적 가능성 정도나 조금씩 엿보이는 영역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행동이고, 잘못하면 흔한 스페이스 오페라로 전락할 우려가 상존합니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를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고 저도 즐겨 보곤 합니다만, 소프트 SF 게임을 만들 역량이 되는 몇 안되는 게임사인 역설사가 스페이스 오페라를 내놓으면 너무 아깝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인생의별빛 역설사 소프트 sf 만들 역량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것 역설사가 직접 만든 게임이라곤 죄다 역사게임입니다.
비역사-가상스토리의 게임은 하나 만들려고 하다가 접었지요.(룬마스터) 혹은 제작관여는 전혀 안하고 배급만 담당했거나요.
그 말은 스토리텔링에 관한 역설사의 능력이 들어난적은 한번도 없다는 이야기죠.
스토리(세계관) 만들기 시작하면 이번이 처음이 될텐데 과연 그걸 역설사에서 소화할 수 있을지.
@인생의별빛 제 머릿속의 생각을 따로따로 꺼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기술쪽은 sf의 제약이 안걸린 스페이스 오페라쪽처럼 고증신경끄고 상상력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지금 똥텔라 수준으론 좀 부족)
2. 정치사회쪽은 말씀대로 현실고찰이 들어간 소프트SF 처럼 만드는것도 좋다. 근데 정치사회라는거 자체가 물질기술과도 연계가 되어 있어서 뭐라고해야하나.ㅠ 정리가 안되네요.
3. 근데 이쪽에 관한(스토리텔링-세계관작성) 역설사 능력이 의심스러움. 지금껏 있는것(역사) 줏어다 쓰는 게임만 만들어왔는데... 얘들 능력없어보임.
@인생의별빛 마지막으로 댓글을 다중이처럼 써서 죄송합니다.ㅠ
제가 읽어봐도 글이 오락가락하네요.ㅠ
아니. 앞 댓글들은 삭제하는게 좋겠네요.
뒤에 두개만 남기고 지우겠습니다.~
@nonononame 스페이스 오페라에 걸맞는 철학적 서사는 웬만큼 유명한 스토리작가들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걸작 게임을 뽑아내지만, 그들 중 중세시대 약탈경제 기반 봉건정을 넘어서는 정치체제를 설득력있게 표현해낸 작가는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선 한 명도 없었습니다. 어차피 다들 D&D의 아류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영웅들이 와아 하고 달려가면, 무뇌하기로는 언데드나 다를 바 없는 병사들은 덩달아 와아 하고 달려드는 수준이죠
@nonononame 인문사회학적 사고실험의 무대를 만들 기초적 시스템을 만들 역량이 되는 유일한 회사가 역설사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세계관이니 내러티브니 하는 거창한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어려서부터 스타트렉과 스타워즈와 닥터후를 보고 자란 상상력 풍부한 모더들은 차고 넘칩니다. 영웅이든 이벤트든 유닛이든 모더들이 다 만들어줄 것이고, 모드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순수 바닐라만으로 온갖 망상을 반복하는 저같은 설정덕후도 그 못잖게 많습니다. 역설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결국 국제정치학과 경제사학과 문화인류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자얽힘 관련 해서 한말씀 거들자면, "아직은" 양자얽힘상태의 입자를통해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할수 있는 방법이 발견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안된다고 보는 시각이 정설이에요. 하지만 말씀대로 과학이 조금만 더 발전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ㅋㅋ
모드건 디엘시건 좋으니 나오기만 해라..
오 이런 모드 재밌겠네요
키야
정말 설득력 있네요. 읽다보니 감화되더군요 ㅋㅋ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을 파라독스 포럼에 올려주신다면 더 감사할 것 같아요 ㅎㅎㅎ 물론 들어줄지는 미지수지만.
길어도 다 읽게 되는 설득력. 뭐든 좋으니 나왔으면...
긴 글이지만, 재미있게 잘 읽었네요.
저렇게만 된다면, 돈은 얼마를 주건간에 주고 즐기고싶지만... 현실을 아마...
기술적 한계와 얽혀있는 통치 시스템의 변화를 생각 못하진 않았을텐데
구현이 어려워서 안하는건지...다다다음 DLC로 몰래 만들고 있는건지...도통 속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