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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말 경(S22:95)중에서
Phe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아욧자에서 강가 강의 언덕에 머무셨다.
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이 강가 강이 포말덩이를 싣고 흐르는데 눈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비구들이여, 포말덩이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
4.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비구는 그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물질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
5.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가을에 굵은 빗방울의 비가 떨어질 때 물에 거품이 생겼다가는 사라지는데 눈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하자. 그가 그 [거품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비구들이여, 거품에 무슨 실체가 있는가?”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비구는 그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그가 그[느낌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
6.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무더운 여름의 마지막 달 한낮에 신기루가 생기는데 눈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하자. 그가 그[신기루를]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비구들이여, 신기루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 비구는 그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그가 그 [인식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
주석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거품은 연약하고 잡을 수가 없다.쥐는 순간에 터져버리기 때문이다.그와 같이 느낌도 항상하지 않고 견고하지 않아서 연약하고 잡을수가 없다.마치 거품이 조그만한 물에서 생겼다가는 사라지고 오래 가지 않듯이 느낌도 그와 같다.손가락 한 법 튀기는 순간 십만 꼬띠(1꼬띠는 천만임,그러므로 십만꼬띠는 1조가 됨 )개의 느낌들이 일어나고 사라진다.
제4장 인식의 길라잡이
인식과정은 남방 아비담마의 백미인 인식론의 결정판이다. 다음 몇 가지를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⑴ 인식과정은 크게 외부의 대상을 인식하는 五門인식과정과 마음의 대상을 인식하는 意門인식과정으로 나누어진다.
⑵ 물질이 일어나서 머물고 멸하는 시간과 마음이 일어나서 머물고 멸하는 시간은 다르다. 한 번 물질이 일어났다가 멸하는 순간에 마음은 17번 일어났다가 멸한다.
⑶ 그러므로 오문인식과정에서 예를 들면 눈에서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는 ‘같은 대상’을 두고 17번의 마음이 생멸한다. 이것도 대상에 따라서 ① 매우 큰 것 ② 큰 것 ③ 작은 것 ④ 매우 작은 것의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지며 이것은 다시 여러 등급으로 나누어져 총 15가지 경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여기서 크고 작다는 말은 물질적인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충격을 주는 힘의 ‘강약’을 나타낸다.
다섯 가지 감각의 대상은 하나의 마음순간이나 혹은 여러 마음순간이 지난 뒤 ‘머무는 순간’에 다섯 가지 감각의 문에 나타난다
물질이 오문 가운데 하나에 부딪치게 되면 오문인식과정과 의문인식과정이 일어납니다.이 과정들을 요약하면
-지나간 바왕가
-바왕가의 동요
-바왕가의 끊어짐
(이 바왕가의 끊어짐은 감성의 문을 통해 대상이 나타나기 바로 전에 마지막 일어나는 바왕가를 의미함)
-오문전향의 마음 (작용만 하는 마음)
-오식(안식등) (과보심)
-받아들이는 마음 (과보심)
-조사하는 마음 (과보심)
-결정하는 마음 (작용만 하는 마음)
-7개의 자와나(유익한 마음 혹은 해로운 마음+아라한이 아님 경우)
-2개의 등록하는 마음(이 등록은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음)
이 마음의 뒤로 마지막 바왕가 2개가 의문을 통해 대상이 나타나기 바로 전에 일어납니다. 요약하면
-바왕가의 동요
-바왕가의 끊어짐(이 바왕가는 의문인식과정의 마음들이 대상을 경험하는
문이다)
-의문전향의 마음
-7개의 자와나
-2개의 등록(이 등록은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음)
⑷ 매우 큰 대상일 경우에 17번 일어나는 마음들은 바왕가(지나간 바왕가, 바왕가의 동요, 바왕가의 끊어짐), 오문전향, 받아들임, 조사, 결정, 7가지 자와나(javana, 速行), 2가지 등록이다. 이 가운데서 15가지 인식의 등급으로 나누어지는 키워드는 ‘지나간 바왕가(아띠따 바왕가, atiita-bhavan#ga)’인데 이것은 일단 대상이 나타났지만 그 대상의 충격이 미약하여서 마음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것을 뜻한다고 받아들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충격이 매우 작은 대상들은 바왕가의 동요만 일으키고 인식과정이 끝나 버린다. 그 가운데서도 제일 마지막 15번째 경우에는 대상이 문으로 들어왔는데도 15번째의 마음 순간까지 그것을 알지 못하고 흘러가 버려 겨우 두 번만 바왕가의 동요가 일어나고서 인식과정이 끝나 버리는 경우이다. 이렇게 15가지를 음미해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도표 4.2> 참조)
⑸ 의문인식과정은 오문인식과정보다 단순한데 그 이유는 오문전향, 받아들임, 조사, 결정의 과정이 없고 의문전향 다음에 바로 자와나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음의 대상은 이런 과정이 없이 즉각적으로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이것은 마노의 대상에 따라 선명한 것과 희미한 것의 둘로 나누어진다.
⑹ 이런 관점에서 본삼매 속행과정도 본문을 보면서 숙지하면 된다.
⑺ 여기서 유념해야할 것은 각각의 인식과정은 반드시 하나 이상의 잠재의식을 거쳐서 그 다음의 인식과정으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1. 인식과정의 뜻
①‘마음이 진행되어 가는 진로나 과정’을 뜻한다
②‘마음은 어떻게 대상을 인식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2. 인식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중요한 전제들
①모든 마음은 대상을 가진다
하나의 인식과정은 모두 하나의 같은 대상을 두고 일어난다
②마음은 물질보다 16배 빠르다
그래서 하나의 물질이 ‘머물 때’ 최대 16번의 마음이 생기고 머물고 멸한다
③그래서 인식과정은 한 대상을 조건으로 하여 최대 17마음순간을 넘지 못한다
즉 물질이 일어나는 순간에 개재된 지나간 바왕가를 포함하면 마음순간은 17번 일어난다
④이렇게 최대 17번 일어나는 마음들은 엄격한 법칙에 따라서 선후의 순서가 분명하게 정해져서 일어난다
이런 엄격한 법칙에 따라서 순서대로 일어나는 것을 ‘마음의 정해진 법칙’이라 부른다
* 마음의 수명, 몸의 수명이 일어나는 모습의 비유
과일 나무 꼭지에서 과일과 나뭇잎이 동시에 떨어진다(재생연결의식 순간에서 몸과 마음의 법들은 한순간에 일어남).
마음==과일이 무겁기 때문에 땅에 먼저 떨어진다(몸의 법이 소멸되기 전에 마음의 법들이 16차례에 걸쳐 일어나고 사라짐).
물질==나뭇잎이 가볍기 때문에 나중에 땅에 떨어진다(물질의 법들이 17번째의 마음과 함께 소멸된다).
참고0)
* 물질의 수명이 17심 찰나인 이유는?
물질의 법들은 마음의 순간17번의 지속에서 뿌레자따빳짜야purejatapaccaya8)등의 연기법에 적용되는 작용과 물질의 변화하고 전도함의 작용이 완성되기 위하여 마음의 순간 17차례의 수명이 지속되어야만 한다.
Q)몸과 마음들은 무상의 법, 상카따(sankhata9)형성된것․유위)서로 간에 같으면서 무엇 때문에 마음의 법은 생명의 지속이 짧고 몸의 법은 긴가?
A)「칸다위방가아누띠까」에서 정신nama의 법들 중에서 마음은 주요핵심이다. 주요핵심인 마음은 대상을 얻는 성품만 있다. 대상을 얻음과 동시에 의식이라는 자연적 성품의 법은 소멸한다. 마음이 소멸되면 그 뒤를 따르는 심소들 역시 소멸된다. 물질의 중요핵심인 4대 요소들은 느리고 무거운 성품이 있으므로 결합하는 몸(물질)들 역시 4대 요소 처럼 생명의 지속이 길게 된다.
3. 그 외 사항들
① (가) 살아있는 일생동안 경험하는 마음의 인식과정과
(나) 이런 일상적인 인식과정을 벗어난 마음들이 일어나는 과정을 구분하여 설명한다
(가)는 ‘삶의 과정’으로 설명하며 4장에서 다루고, (나)는 ‘재생연결’로 설명하며 5장에서 다룬다
②마음은 분명한 순서에 의해서 아주 체계적으로, 일어나야 할 곳에서 일어나야 할 마음이 반드시 일어난다
(아래첨부된 그림들은 제따와나 선원장 일묵스님이 작성한 것입니다)
참고1) 마음의 역할
마음의 역할
마음은 일어나는 곳에 따라서 89가지로 분류된다. (혹은 121가지로 분류된다)
마음은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으로서, 특징으로는 하나다.
그러나 마음은 역할은 14가지다.
첫째, 재생연결의 역할을 한다.
* 재생연결 (빠띠산디)
빠띠산디 : ‘다시 함께 만남’이며, ‘연결, 재생, 재생연결, 입태’ 등의 의미다.
이 ‘빠띠산디’의 역할을 하는 마음을 ‘재생연결식’이라 한다. (‘빠띠산디윈냐나’라고 부른다)
재생연결식 : 금생과 내생을 연결하는 알음알이
두 번째의 역할은 바왕가의 역할이다.
. 바왕가
1. ‘바왕가’란 무엇인가?
①‘존재의 요인’, ‘존재의 구성요소’라는 의미다
②이 바왕가들은 한 개체가 삶의 과정에서 생명이 끝날 때까지 그 연속성을 유지시켜주는
요인이 되는 역할을 한다
③그래서 ‘생명연속체’, ‘존재지속식’이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有分으로 직역했다
④이 바왕가들은 색, 성, 향, 미, 촉, 법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마음이 아니다
⑤이 바왕가들은 ‘재생연결식’이 가진 대상을 자신의 대상으로 삼아서 일어나는
아주 미세하고 알기 어려운 마음이다
⑥이 바왕가는 내 의식의 기저에 놓여있는 저 깊은 곳의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의 덩어리가 아니다
⑦오히려 이 바왕가도 마음이라서 마음이 가지는 일반적인 특징을 가진다
⑧바로 자신의 대상을 가지며 찰나생 찰나멸한다
六根으로 대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재생연결식의 대상과 같은 바로 그 대상을 자신의 대상 으로 삼아서, 이 바왕가의 심찰나는 계속 흐른다, 이렇게 바왕가가 육근의 대상을 만나지 않고 자신의 대상으로 계속 흐르는 것을 상속[相續]이라 한다
⑩그래서 바왕가는 항상 강이나 물에 비유되며 ‘바왕가의 흐름’이라는 용어로 주석서에
아주 많이 등장한다
확인사항
①초기불교와 남방불교에서 모든 마음은 대상을 가진다
②바왕가도 마찬가지로 대상없이 일어나지 않고 대상을 가진다
③이 바왕가의 대상은 전생의 죽기 직전에 나타났던 ‘업’, ‘업의 표상’, ‘태어날 곳의 표상’중 의 하나를 대상으로 가진다
④그래서 전생과 금생을 연결하는 ‘재생연결식’과 같은 대상을 가진다
⑤금생의 모든 바왕가들은 모두 이것을 대상으로 가지며, 모든 바왕가의 대상은 똑같다
⑥이 바왕가도 ‘모든 곳에 공통되는 반드시들’ 7가지 마음부수들을 가지고 있다. 즉 ‘감각접 촉, 느낌, 인식, 의도, 집중, 생명기능, 마음에 잡도리함’의 마음부수들과 같이한다
⑦이렇게 해서 비록 깊은 잠속에 들었더라도 존재의 동일성이나 구성요소는 매찰나 유지되 는 것이다
인식과정에서 바왕가의 역할
①인식과정은 모두 이 바왕가를 거쳐서 다음의 인식과정으로 넘어간다
②인식과정에서 어떤 대상이 일어나면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들은 일정한 과정을 거치고 난 뒤 사라진다
③그러면 이제 바왕가의 흐름으로 흘러들어가서 다음 대상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바왕가가 흐르는 것이다
④바왕가가 흐를 때의 대상은 바로 재생연결식의 대상과 같은 것을 자신의 대상으로 한다
⑤이렇게 바왕가가 지속되다가 한 대상이 나타나면 바왕가가 움직인다. 이것을 <바왕가의 동요>라고 부른다
⑥이렇게 움직인 바왕가는 바왕가의 상태에서 동적인 마음으로 전환된다.
이것을 <바왕가의 끊어짐>이라 부른다
⑦이렇게 바왕가가 끊어지면 마노는 대상으로 전향(轉向)을 한다. 이것을 <전향>이라 부른다
⑧<지나간 바왕가>는 4장을 참조바람
바왕구빳체다(bhavangupaccheda;바왕가의 끊어짐)
대상이 면전에 드러남으로써 가지고 있던 대상인 업, 업상, 취상중의 하나인 대상을 버리고 새로운 대상을 취해야 하므로 2차례의 바왕가가 진동한다
*진동에 대해 논의하자면,
Q)시각기관에 색이 부딪힐때 심장토대를 의지하는 바왕가가 어찌 그렇게 빨리,동시에 흔들리는가?
A)시각기관에 색이 부딪칠때 의문인 바왕가에서도 그 대상(색)이 드러난다. 이와같이 바왕가에서 한순간 성품의 접촉이 있기 때문에 바왕가는 흔들린다.
예)새가 나무끝에서 쉬려고 할때, 새가 나무끝가지에 접촉함과 동시에 아래 땅바닥에 새의 그림자가 드러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앗타살리니」주석서에서는 하나하나의 대상은 2가지 문에서 드러난다고 한다. 그러나 의문은 공통되기 때문에-5문의 대상 모두와 연관되어 있음-특별히 보지않고, 공통되지 않은 방법으로 ‘안문에서 드러난다’ 라고 표현한다.
다른예)
설탕 * ==(지각기관) ☛ 두들김 ☛ 지각기관에 대상이 부딪쳐옴.
설탕 * 파리 ==(의문의 의지처인 심장토대) ☛ 두들기는 여파로 파리 날아가 버림 ☛부딪친 여세의 반사로 인하여 파리의 흔들림 바왕가의 흔들림 일어남
지각기관과 바왕가의 의지처인 심장토대는 장소가 서로 가깝지 않을지라도 성품의 자연적 본질로써 하나로 연결되어 일어나기 때문에 지각기관에 대상이 부딪힐때 심장토대를 의지하는 바왕가 역시 흔들리게 된다.
Q)대상의 드러남으로 인하여 의문인 바왕가가 흔들릴때 무엇 때문에 한 차례만 흔들리지 않고 두 차례에 걸쳐 흔들린뒤 바왕가의 연속이 끊어지는가?
A)바왕가의 연속은 새로운 대상이 드러나는 동시에 멈추지 못한다. 바왕가는 두차례에 걸쳐 진동한 뒤에 끊어진다. 예를들면 경주에서 빠르게 달리던 사람이 결승점에 도착하였을때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한 채 두어 걸음 정도 넘어선 뒤에만 멈출 수 있는 것과 같다.그래서 2번째마음순간을 바왕가짤라나(bhavangacalana:바왕가의 흔들림)라고. 3번째는 바왕구빳체다(bhavangupaccheda;바왕가의 끊어짐)라고 이름했다.
청정도론의 설명
①재생연결식이 사라지면 그 재생연결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그것을 뒤따라서
그와 같은 종류의 마음이 동일한 대상에 바왕가로 일어난다
②이 마음(바왕가의 마음)은 재생연결을 가져왔던 그 업과 동일한 과보의 마음이다
③계속해서 그와 같은 바왕가가 생긴다
④다른 알음알이가 일어나 이 잠재의식이 지속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강물의 흐름처럼 꿈없이 숙면을 취할 때에도 끊임없이 생긴다
* 원인없는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 3가지 (28~30) 중에서
(28) 평온이 함께 한 오문전향(五門轉向)의 마음
(29) (평온이 함께 한) 의문전향(意門轉向)의 마음
(30)기쁨이 함께한 미소짓는 마음
세 번째의 역할은 전향의 역할이다.
전향 (아왓자나)
아왓자나 : ‘돌아 옴, 돌아서 향함’. 그래서 전향(轉向)으로 옮긴다
전향 : 마음이 그 대상이 되는 다섯 감각의 문[五門]이나 마노의 문[意門]으로 향하는 역할을 말한다. 즉, 바왕가가 끊어진 뒤 마음이 대상으로 향하는 역할을 한다
전향의 종류
①오문전향[五門轉向] : 안, 이, 비, 설, 신의 다섯 문으로 향한다
②의문전향[意門轉向] : 마노(意)의 문으로 향한다
오문전향 - 마노(意) (청정도론의 설명)
①바왕가가 지속된다. 그러다가
②중생들의 감각기관이 대상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 형색(色)이 눈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다고 해보자
③이렇게 형색이 눈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면 눈의 감성은 그 형색과 부딪힘이 있다
④이 부딪힘 때문에 바왕가가 흔들린다
⑤그러다가 바왕가가 사라진다
⑥바왕가가 사라지면 마치 바왕가를 끊어버리는 것처럼 동일한 형색을 대상으로 전향의 역 할을 하는 단지 작용만 하는 마노의 요소[意界]가 일어난다 - (28) 평온이 함께 한 오문 전향(五門轉向)의 마음
⑦귀를 문으로 생기는 마음 등에서도 전향의 역할은 여기서 설한 방법대로 알아야 한다
의문전향 - 마노의 알음알이 (意識) (청정도론의 설명)
①여섯 가지 대상이 마노의 문으로 들어온다
②그러면 바왕가가 흔들리고
③그 뒤에 마치 바왕가를 끊어 버리는 것처럼 전향의 역할을 하는 평온이 함께 하고 원인없 는 단지 작용만 하는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意識界]가 일어난다 - (29) (평온이 함께 한) 의문전향(意門轉向)의 마음
④이와 같이 단지 작용만 하는 두 가지 마음 ((28), (29))은 전향하는 것으로 생긴다고 알아 야 한다
참고 1 : 아비담마해설서1, 강종미, 도다가 마을, 2009, p.366 에서 인용
- 새로운 대상이 드러날 때에 “헬로우,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는 것처럼 새로운 대상을 생 각하는 것이 전향마음의 작용이다.
- 다른 식으로, 바왕가의 흐름을 되돌리게 함을 전향이라 한다.
- 바왕가가 연속하여 흐르고 있을 때 새로운 대상이 나타나면 바왕가의 흐름을 멈추고 주 의를 대상에게로 돌리는 것이 전향마음의 작용이다
네 번째 ~ 여덟 번째의 역할은 이름 그대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닿는’ 역할이다.
.봄
. 들음
. 냄새맡음
. 맛봄
. 닿음
참고 말룽까뿟따경 중에서
12. “말룽꺄뿟따여, 그대가 보고 듣고 감지하고 알아야 하는 법들에 대해서 볼 때는 단지 봄만이 있을 것이고131) 들을 때는 단지 들음만이 있을 것이고 감지 할때는 단지 감지함만이132) 있을 것 이고 알 때는 단지 앎만이 있을 것이다.”133)
13. “말룽꺄뿟따여, 그대가 보고 듣고 감지하고 알아야 하는 법들에 대해서 볼 때는 단지 봄만이 있을 것이고 감지 할때는 단지 감지함만이 있을 것이고 알 때는 단지 앎만이 있을 것이면 그대에게는 ‘그것에 의함’이 있지 않으면 그대에게는 ‘거기에’라는 것이 있지 않다.135) 말룽꺄뿟따여, 그대에게 ‘거기에’가 있지 않으면 그대에게는 여기 [이 세상]도 없고 저기 [저 세상도] 없고 이 둘의 가운데도 없다.136)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다.”137)
131)주석서는 이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다.
“‘볼 때는 단지 봄만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이것은 다음의 세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1.눈의 알음알이로 형색의 감각장소를 보는 단지 봄만이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눈의 알음알이는 단지 형색에서 형색만을 볼 뿐이지 항상하다거나 하는 그런 고유성질은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알음알이들[속행의 마음들, 즉 업을 짓는 알음알이들 -SAT]에 대해서도 단지 봄만이 있는 알음알이가 있을 것(혹은 있게 할 것)이라는 뜻이다.
2. 혹은, 볼 때에 있는 봄이란 것은 눈의 알음알이인데 이것은 형색에서 형색을 아는 것을 말한다. ‘단지’리는 것은 제한을 뜻한다. 그러므로 ‘단지 보는 것일 뿐이라고 해서 단지 보는 마음을 말한다.[여기서 본문의 (문자적으로는 봄뿐임을 뜻함)를 소유복합어로 해석해서 D;것이 마음보는 것일 뿐인 마음’을 뜻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 뜻은 ‘나의 마음은 단지 눈의 알음알이일 뿐이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뜻이다. 눈의 알음알이는 눈의 영역에 들어온 형색에 대해서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다. 그와 같이 속행의 마음(
javana,즉 업을 짓는 알음알이)도 탐욕 등이 없는 단지 눈의 알음알이와 같아지도록 할 것이다. 나는 눈의 알음알이를 한계로 가진 속행의 마음을 확립되게 할 것이다.
3. 혹은 ‘봄’이란 눈의 알음알이로 보여진 형색이고 ‘볼 때는 봄만이는 마음’ 결정하는 마음 이라 불리는 세 가지 마음을 말한다.‘마치 이것이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듯이 나는 눈의 영역에 들어온 형색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마음 등을 한계로 가지는 속행의 마
음을 일어나게 할 것이다. 나는 그 한계를 넘어서서 탐욕 등을 통해서 일어나게 하지 않게 할 것이다. 라는 뜻이다. 이것은 들음과 감지함에도 적용된다.(SA.ii.383~384)
본 주석을 이해하려면 상좌부 아비담마에서 설하는 인식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상좌부에서는 다섯 가지 감각의 문으로 대상을 받아들일 때는 오문전향의 마음, 전오식(안식부터 신식까지) 가운데 하나, 받아들이는 마음, 조사하는 마음, 결정하는 마음, 속행의 마음, 등록의 마음의 순서로 마음ㅇ이 찰나생멸하면서 대상을 인식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속행의 마음만이 업을 짓는 마음이고 다른 마음들은 과보로 나타난 마음이거나 작용만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전오식 등의 마음들에서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 대표되는 업을 짓는 마음이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마음은 볼 때는 봄만 있는 마음이 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업을 짓는 속행의 마음에서도 이런 마음들처럼 볼 때는 봄만 있는 그런 마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주석서는 해석하고 있다.여기에 나타난 여러 마음들에 대해서는 [아바담마 길라잡이] 제 3장 8의 해설 등을 참조할 것
132)“‘감지할 때는 단지 감지함만이’라는 것은 코와 혀와 몽의 알음알이로 얻은 뒤에 받아들일 때에는 단지 받아들임만이 라는 뜻이다.”(ND1A.ii.347)
133)"‘알 때는 단지 앎만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앎’이란 것은 의문전향의 마음을 통해서 알아지는 대상을 말한다. ‘알 때에는 단지 앎만이 있다.’는 것은 전향의 마음을 한계로 하는 것이다. ‘마치 단지 전향만으로는 사람이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는 것처럼, 나도 탐욕 등을 통해서[속행의 마음이] 일어나게 하지않고 오직 전향의 마음만을 한계로 하는 마음을 확립할 것이다.’ 라는 것이 그 뜻이다.(SA.ii.384)
마노의 문으로 대상을 받아들일 때는 의문전향의 마음 바로 다음에 업을 짓는 속행의 마음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단지 작용만하는 마음인 의문전향의 마음에서 탐.진.치로 대표되는 업을 짓지 않듯이 수행자는 그와 같이 속행의 마음에서도 그런 업을 짓지 않아야 한다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
1. 어떻게 이들 역할을 수행하는가?
인식과정에서 감각의 문들에서 ‘전향’이 일어나면 직접 대상을 인식하는 역할을 가진 마음들이 일어난다
①만일 대상이 형색이면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나서 그것을 보고
②만일 대상이 소리이면 귀의 알음알이가 일어나서 그것을 듣고
③만일 대상이 냄새이면 코의 알음알이가 일어나서 그것을 냄새 맡고
④만일 대상이 맛이라면 혀의 알음알이가 일어나서 그것을 맛보고
⑤만일 대상이 감촉이라면 몸의 알음알이가 일어나서 감촉을 알아차리게 된다
. 여기서 주의할 사항
①여기서 봄, 들음, 냄새 맡음, 맛봄, 감촉함등은 그 대상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②단지 그 대상이 있음을 즉각적이고 찰나적으로 알아채는 알음알이의 순간적인 행위라고 해야 한다
③그 대상들을 명확하게 알게 되는 것은 그 이후의 무수한 후속인식과정이 일어난 이후의 일이다
④이들 다섯 가지 알음알이는 과보의 마음이다
- 따라서 미래에 업(業)을 생산할 유익하거나[善] 해로운[不善]마음이 아니다
⑤유익함이나 해로움은 그 이후의 자와나(속행)의 과정에 해당된다
청정도론의 설명
①전향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 다음에는, 예를 들어 보는 역할에서,
②눈의 문에서 보는 역할을 수행하고 눈의 감성(感性)을 의지처로 삼는 눈의 알음알이[眼識]가 생긴다
②눈의 문(門)에서 눈의 알음알이[眼識]가 눈의 감성(感性)을 의지처(토대)로 생겨나서, 순 간적으로 보는 역할을 수행하고 멸한다
③나머지 감각기관의 알음알이가 생기는 것도 이와 같다
④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닿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귀, 코, 혀, 몸의 알음알이가 생긴다
⑤그 알음알이가 ‘원하거나’ 보통으로 원하는 대상에‘ 관해서는 유익한 과보의 마음이고
⑥‘싫어하거나’ ‘약간 싫어하는 대상’에 관해서는 해로운 과보의 마음이다
⑦이와 같이 열 가지 과보의 마음이 봄, 들음, 냄새, 맛, 감촉으로 생긴다고 알아야 한다
-> * 해로운 과보의 마음 7가지 중에서 5가지
(13) 평온이 함께 한 눈의 알음알이[眼識],
(14) [평온이 함께 한] 귀의 알음알이[耳識]
(15) [평온이 함께 한] 코의 알음알이[鼻識]
(16) [평온이 함께 한] 혀의 알음알이[舌識]
(17) 고통이 함께 한 몸의 알음알이[身識]
* 유익한 과보인 원인없는 마음 8가지 중에서 5가지
(20) 평온이 함께 한 눈의 알음알이[眼識]
(21) [평온이 함께 한] 귀의 알음알이[耳識]
(22) [평온이 함께 한] 코의 알음알이[鼻識]
(23) [평온이 함께 한] 혀의 알음알이[舌識]
(24) 즐거움이 함께 한 몸의 알음알이[身識]
아홉 번째는 ‘받아들임’의 역할이다.
받아들임 (삼빠띳차나)
‘삼빠띳차나’는 ‘받아들임의 뜻이다.
대상을 놓치지 않고 잘 확인하여 받아들이는 작용이다.
오직 五門인식과정에만 나타난다.
1. 五門전향과 意門전향의 차이점
①‘받아들임’, ‘조사함’, ‘결정함’은 오직 五門전향을 통해서 일어나는 마음의 역할이다
②즉 위의 세 가지 역할은 <안, 이, 비, 설, 신> 의 다섯 가지 알음알이(前五識)를 통해서 일어나는 五門인식과정에만 나타난다.
③그래서 ‘받아들임’, ‘조사함’, ‘결정함’의 세 가지는 意門전향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작용이 다.
④의문전향은 (한 쌍의 전오식을 제외한) 마음의 현상을 그 대상으로 한다
⑤그래서 의문전향은 ‘받아들이고 조사하고 결정하는 역할 없이’ 즉각적으로 자와나(속행)가 일어난다.
청정도론의 설명
①“눈의 알음알이의 요소가 생겼다가 사라진 다음 ‘마음(心), 마노(意), 정신작용’이라 적절 히 불리는 마노의 요소(意界)가 일어난다.” 라는 말씀이 있다
②그러므로 눈의 알음알이[眼識] 등의 다음에 각각의 동일한 대상을 받아들여 [眼識 등의]
유익한 과보의 마음 다음에는 유익한 과보의 마음으로서 마노의 요소(意界)가 일어난다
③[눈의 알음알이 등의] 악한 과보 마음 다음에는 악한 과보의 마음으로서 마노의 요소(意 界)가 일어난다.
⑥이와 같이 두 가지 과보의 마음이 받아들임으로써 생긴다고 알아야 한다
(18) 평온이 함께 한 받아들이는 마음
(25) 평온이 함께 한 받아들이는 마음
열 번째는 ‘조사’의 역할이다.
조사 (산따라나)
산따라나 : ‘함께 건넌다’라는 뜻에서 ‘대상을 조사함’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대상을 받아들여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조사하는 마음의 역할이다
청정도론의 설명
①“마노의 요소[意界]가 생겼다가 사라진 다음, 마노, 정신작용이라 적절히 불리는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意識界]가 일어난다.” 라는 말씀이 있다.
②그러므로 마노의 요소가 받아들인 동일한 대상을 조사하는 원인없는 과보인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意識界]가 일어난다 ((19), (26), (27))
③이것은 해로운 과보의 마음인 마노의 요소 다음에는 해로운 과보의 마음이고,
(19)펑온이 함께한 조사하는 마음
④유익한 과보의 마음 다음에는
④-1 그 대상이 열렬히 원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기쁨이 함께 하고
(26)기쁨이 함께한 조사하는 마음
④-2 그 대상이 보통으로 원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평온이 함께 한다.
((27))펑온이 함께한 조사하는 마음
⑤이와 같이 세 가지 과보의 마음이 조사로 생긴다고 알아야 한다
(19) 평온이 함께 한 조사하는 마음
(26) 기쁨이 함께 한 조사하는 마음
(27) 평온이 함께 한 조사하는 마음
참고 1 : 아비담마해설서1, 강종미편역, p.367
낯선 손님이 왔을 때 우선 집안에 들인 후 무슨 일로 왔는가 조사하듯, 받아들이는 마음은 받아들인 대상을 ‘원하는 상태인가’, ‘원치 않는 상태인가’ 로 조사하고 저울질한다. 이것이 조사의 작용이다.
열한 번째는 ‘결정’의 역할이다.
. 결정 (옷타빠나)
옷타빠나 : 문자적으로 ‘굳게 세운다’는 뜻에서 ‘확립, 확정’의 뜻이 있다
대상을 조사해서 결정하는 마음의 작용을 나타낸다
29) (평온이 함께 한) 의문전향(意門轉向)의 마음
참고 1 : 아비담마해설서1, 강종미편역, p.367
각각으로 지정 결정하여 둔다. 그러므로 결정하는 마음이라 부른다
조사하는 마음이 조사한 뒤 대상을 원하는 상태, 원치 않는 상태라고 각각 분류 결정하는 것이 결정의 작용이다
열두 번째는 ‘속행(자와나)’의 역할이다.
속행 (자와나)
자와나 : 강한 속력으로 일어나기에 속행이라 부른다 (아비담마해설서1, 강종미편역, p.368)
1. 자와나에 대하여 알아보면
①‘재빠름, 신속함’의 뜻을 가졌다. 그래서 速行이라 직역했다
②일단 대상이 무엇이라고 결정되고 나면 일어나는 일련의 인식과정을 모두 자와나(속행)라고 부른다
③일반적인 인식과정에서 자와나는 모두 일곱 번 같은 대상을 가지고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④이것은 결정된 대상에 대해서 마치 벼락치듯 재빠르게 그것을 이해하는 작용을 한다
2. 자와나(속행)의 중요성
자와나는 인식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①자와나의 단계에서 의도적인 행위가 개입된다.
②즉 유익하고[善] 해로운[不善] 마음들이 일어나는 순간들이다
③아라한의 경우에는 이 자와나는 선 ∙ 불선이 아니고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이다
④아라한의 경우를 제외하고서 모든 존재들에게 속행은 유익한 마음으로 일어나거나 해로 운 마음으로 일어난다
⑤이것이 바로 업을 초래하는 마음이요 업을 짓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⑥‘인식과정’과 ‘인식을 벗어난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음들 가운데서 이 자와나들 이외에는
유익함[善] 과 해로움[不善]의 개념이 개입되는 마음은 없다
⑦그럼 수행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자와나의 단계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⑧이 자와나 과정에서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如理作意]’의 마음부수를 극대화하여
⑨이 마음이 해로운 것[不善]이 되지 않고 유익한 것[善]이 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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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행의 마음은 과보로 나타난 마음이나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과 마음부수의 측면이나 활동적이라는 면에서 많이 다르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속행의 마음은 과보의 마음이 아니고 업을 짓는 과보를 생기게 하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속행의 마음은 한 마디로 하자면 업을 짓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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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의문은 속행의 마음이 과보의 마음이 아니므로, 느낌(受)을 느끼느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89가지 모든 마음에는 반드시 느낌(受)이 들어간다고 각묵스님께서 답변을 해주셨는데 속행의 마음에서 느낌을 느끼지 못한다면 89가지 모든 마음에 느낌(受)이 반드시 들어간다고 하신 말씀과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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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행의 마음이 과보의 마음은 아니지만 느낌은 있습니다. 느낌은 89가지 마음이 일어날 때 항상 함께 일어나는 마음부수법(반드시들)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속행의 마음에도 반드시 느낌의 마음부수법은 마음과 함께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청정도론 17장 229에서도 <그러나 분류에 따라 그들 [느낌]은 89가지 마음과 관련되어있기 때문에 89가지이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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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청정도론 3권에서 연기부분인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라는 글에 보면,
<의문에서의 감각접촉은 (속행에서의 감각접촉은) 등록의 마음의 느낌과 함께생긴 조건등 8가지로 조건이 된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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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에서의 감각접촉은 속행에서의 감각접촉과 결코 동의어가 아닙니다. 이 부분이 법우님께서 크게 오해하시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의문은 의문인식과정 전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청정도론 17장의 이 부분은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있다(촉연수)>는 연기각지를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촉과 수는 <함께 생긴 조건, 서로 지탱하는 조건, 의지하는 조건, 과보의 조건, 음식의 조건, 서로 관련된 조건, 존재하는 조건, 떠나가버리지 않은 조건의 여덟 가지 조건>이 적용된다는 설명입니다. 이것은 24가지 조건(연, paccaya)를 이해해야 해결이 되는 구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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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속행의 마음과 같이 일어나는 감각접촉이 속행의 마음과 같이 일어나는 느낌과 함께생긴 조건등 8가지 조건으로 조건이 되지 않고, 속행다음에 일어나는 등록의 마음의 느낌에 8가지 조건으로 조건이 된다고 하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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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이 법우님이 가지신 의문의 핵심인 듯합니다. 12연기의 구성요소들 가운데서 식 명색 육입 촉 수의 다섯은 현재의 결과(과보)입니다. 그리고 애 취 유의 셋은 현재의 원인이고 생 노사는 미래의 결과이고요.(길라잡이 673의 도표를 참조하세요) 그래서 촉연수의 문맥에서 수(느낌)는 항상 과보로 나타난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느낌만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청정도론 17장 230에서도 <이 [89가지] 느낌들 가운데서 32가지는 과보로 나타난 마음과 관련되어있나니 오직 그들이 여기서 뜻하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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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글을 읽고, 속행에서는 느낌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으며, 그 결과 속행의 마음은 과보의 마음이 아니므로 느낌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생겨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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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느낌은 89가지 마음과 더불어 항상 함께 일어나는 마음부수법(반드시)입니다. 그러므로 업을 짓는 마음인 속행의 마음에서도 반드시 함께 일어납니다. 그러나 12연기에서 나타나는 느낌에는 32가지 과보로 나타난 마음과 함께하는 느낌만이 적용됩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좋은 질문해주셔서 거듭 감사드립니다. 여러 법우님들이 올려주신 글들을 읽노라면 법우님들의 법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이 깊이 심화되어가는 듯하여 행복하고 초불까페의 존재이유를 보는 듯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각묵 합장
3. 청정도론의 설명
①결정하는 마음 다음에, 만약 형상 등의 대상이 크면
②그 조사된 대상에 다음의 [29가지 마음] 중의 하나가 6 ~ 7 번의 속행(자와나)으로 일어 난다.
③29가지 : 욕계의 유익한 마음 8가지, 해로운 마음 12가지, 욕계의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8가지, 기쁨이 함께 한 미소짓는 마음 1가지
④이것은 5문에 해당된다
⑤의문(마노의 문)에서는 이 속행들이 의문전향 다음에 일어난다
⑥종성의 경지 위로는 다음의 26가지 속행들 중에서 하나가 조건을 가졌을 때 일어난다
⑦26가지 : 색계 유익한 마음 5가지, 색계의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5가지,
무색계의 유익한 마음 4가지, 무색계의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4가지,
출세간 도의 마음 4가지, 출세간 과의 마음 4가지
⑧이와 같이 55가지 마음이 속행으로 생긴다고 알아야 한다
⑨즉 유익한 마음, 해로운 마음,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과보의 마음이 속행으로 생긴다
* 책의 내용으로 보충설명
①일어나는 순서 : 받아들이는 마음 -> 조사하는 마음 -> 결정하는 마음 -> 속행(자와나)
②p.300의 주 187)을 보면, ‘자와나 일곱 번은 모두 꼭 같은 마음이다.
첫 번째 자와나가 유익한 것[善]이면 나머지 (6개의) 자와나 모두가 유익한 것이고,
해로운 것[不善]이면 나머지 (6개가) 모두 해로운 것이다.
일곱 개 중에서 몇 개는 유익한 것이고 몇 개는 해로운 것일 수는 결코 없다
③욕계의 유익한 마음 8가지 : (31) ~ (38)), 해로운 마음 12가지 : (1) ~(12)),
욕계의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8가지 : (47) ~ (54), 기쁨이 함께 한 미소짓는 마음 1가 지 : (30)
④이상은 욕계 속행 29가지다
⑤의문에서는 5문에 있었던 받아들이는 마음, 조사하는 마음, 결정하는 마음이 필요없이
전향마음 다음에 바로 속행이 일어난다.
⑥종성(種姓) : 성인의 반열에 드는 순간의 마음
⑦26가지 : 색계 유익한 마음 5가지((55) ~ (59)), 색계의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5가지 ((65) ~ (69)), 무색계의 유익한 마음 4가지((70) ~ (73)), 무색계의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4가지((78) ~ (81)), 출세간 도의 마음 4가지((82) ~ (85)), 출세간 과의 마음 4가 지((86) ~ (89))
⑧욕계 속행 29가지 + 본삼매속행 26가지 = 55가지
⑨유익한 마음 21, 해로운 마음 12,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18, 과보의 마음 4 = 55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은 미소짓는 마음1을 합한 것임)
열세 번째는 ‘등록’의 역할이다.
. 등록 (따다람마나)
따다람마나 : 문자적으로는 ‘그것을 대상으로 가진 [마음]’이라는 뜻이다.
등록은 속행(자와나) 다음에 일어나는 마음이다. 즉 속행(자와나)이 가졌던 그 대상을 자기의 대상으오 삼아 일어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두 심찰나 동안 일어난다고 한다
1 등록의 설명
①다음의 두 가지 경우에만 나타나고
ⓐ오문으로 큰 대상이 들어왔을 때 와 ⓑ마음에 선명한 대상이 일어났을 때,그 이외의 인식과정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②자와나가 일곱 번 일어난 뒤 바로 사라져 버리고 나면 인식과정이 끝났으므로 다시 원래 의 마음, 즉 대상이 나타나기 전의 마음인 ‘바왕가’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바왕가가 일어나기에는 대상이 너무 크거나 분명할 경우에 나타나는 마음의 역할이다
③즉 자와나가 너무 강해서 바로 바왕가의 마음이 일어나지 못하고 두 번 단지 그 속행(자 와나)의 대상을 (자기의) 대상으로 가져서 일어나는 일련의 마음이라고 여겨야 한다.
④이 등록이 끝나면 바왕가로 들어가고 그 바왕가는 다른 대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계속된다
2. 청정도론의 설명
①속행이 끝났을 때 만약 ‘5문에서 대상이 크거’나 ‘의문에서 대상이 선명’하면
②욕계 중생들에게 욕계 속행이 끝났을 때 ‘원하는 대상 등’이나 ‘과거 업’이나 ‘속행의 마음 등’에서 조건을 얻는다
③그 조건을 따라 ‘원인을 가진 욕계 과보의 마음 8가지’ 나 ‘원인없는 과보인 마노의 알음 알이의 요소 [意識界]’ 중에서 과보의 마음 하나가 일어난다
④그것은 역류하는 배를 잠시 후에 따라 올라가는 물처럼, 바왕가가 가지는 대상이 아닌 다 른 대상에 속행을 따라 바왕가가 1 ~ 2 번 일어난다
⑤이것은 속행이 끝났을 때 바왕가의 대상에 일어날 수 있지만, 그 속행의 대상을 대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등록이라고 부른다
⑥이와 같이 11가지 과보의 마음이 등록으로 생긴다고 알아야 한다
(원인을 가진) 욕계 과보의 마음 8가지 (39~46)
(39)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의 하나
(40)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은 마음의 하
(41)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의 하나
(42)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은 마음의 하나
(43) 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의 하나
(44) 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은 마음의 하나
(45) 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의 하나
(46) 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은 마음의 하나
* 원인없는 과보인 마노의 알음알이의 요소[意識界] 3가지
열네 번째는 ‘죽음’의 역할이다.
죽음 (쭈띠)
쭈띠 : ‘죽음’을 뜻하며, 아비담마에서는 ‘죽음의 마음’(쭈띠 찟따)으로 사용된다
1. 죽음의 마음
①한 존재의 생에서 마지막 순간에 일어나는 마음
②이 마음으로 한 생명의 일생은 종결된다
③이 ‘죽음의 마음’의 대상은 아래와 같으며, 그 대상을 가지고 한 생을 종결짓는다
재생연결식의 대상 = 바왕가의 대상 = 죽음의 마음의 대상
아래는 몇 가지가 생략되었지만 마음의 역할을 대충 간략히 제시한 것입니다
(바왕가의 흐름 -> (어떤 대상이 나타남) ->오문전향 -> 봄 -> 받아들임 -> 조사 -> 결정 -> 속행(자와나) -> 등록 -> 바왕가(의 흐름) -> 계속 반복 -> 죽음 -> 재생연결 -> 바왕가의 흐름 -> (어떤 대상이 나타남) -> 오문전향 -> 들음 -> 받아들임 -> 조사 -> 결정 -> )
2. 청정도론의 설명
①‘등록’이 끝났을 때 다시 ‘바왕가’가 생긴다
②바왕가가 끊어지면 다시 ‘전향’등이 생긴다
③이와 같이 마음이 조건을 얻어 계속 흘러서
④바왕가 다음엔 전향이, 전향 다음엔 봄 들이 마음의 법칙에 따라 계속해서 일어나
⑤(마음의 흐름은) 한 생의 바왕가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⑥한 생에 있어서 모든 알음알이 중에서 마지막 바왕가를 ‘죽음’이라 한다
⑦왜냐하면 죽음은 그 생으로부터 끝나기 때문이다
⑨그러므로 [‘재생연결’과 ‘바왕가’처럼] 19가지 과보의 마음 중의 하나가 죽음의 마음으로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
⑩죽음의 마음으로 일어나는 19가지 과보의 마음
* 조사하는 마음 3가지 중에서 평온이 함께 한 조사하는 마음 2가지
(19) 평온이 함께 한 조사하는 마음
(27) 평온이 함께 한 조사하는 마음
* (원인을 가진) 욕계 과보의 마음 8가지 (39~46)
(39)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 하나
(40)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은 마음 하나
(41)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 하나
(42) 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은 마음 하나
(43) 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 하나
(44) 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으며, 자극받은 마음 하나
(45) 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지 않은 마음 하나
(46) 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없으며, 자극받은 마음 하나
* 색계 과보의 마음 5가지 ((60) ~ (64))
(60)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과 희열과 행복과 집중을 가진 초선의 과보의 마음
(61) 지속적인 고찰과 희열과 행복과 집중을 가진 제2선의 과보의 마음
(62) 희열과 행복과 집중을 가진 제3선의 과보의 마음
(63) 행복과 집중을 가진 제4선의 과보의 마음
(64) 평온과 집중을 가진 제5선의 과보의 마음
* 무색계 과보의 마음 4가지 ((74) ~ (77))
(74) 공무변처에 속하는 과보의 마음
(75) 식무변처에 속하는 과보의 마음
(76) 무소유처에 속하는 과보의 마음
(77) 비상비비상처에 속하는 과보의 마음
참고2)대념처경 심념처중에서(묘원법사)
인식할 수 있는 마음과 인식할 수 없는 마음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음은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이 있고,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이 있습니다.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을 ‘인식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을 ‘길을 벗어남’이라고 합니다.
이는 인식하는 과정을 벗어난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보이지 않고 무아라고해서 제멋대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도 일정한 과정을 거쳐서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그래서 마음은 마음의 길이 있고, 마음과 함께 있는 몸은 몸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초월적인 존재가 모든 것을 만들고, 우리는 그 힘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지혜로 마음을 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마음은 일정한 질서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원인과 결과의 지배를 받는 것을 부처님께서 아신 것입니다.
여기에 자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원인과 결과라는 조건만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종류가 많고 서로 결합하는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 많아서 복잡해보이지만 사실 내용은 하나입니다.
지금 우리가 계속해서 마음공부를 하는 것은 마음의 실제를 알아야만 무아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실제를 알아야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무아를 알아야 비로소 욕망과 집착이 끊어져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무아를 알기 위해서 여러 가지 분석을 하고 실천적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으로만 알아서는 집착을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이론적인 이해와 더불어 수행을 해야 합니다.
자기가 몸소 체험해서 얻은 지혜라야 무아를 알아서 집착을 여의고 그리고 번뇌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식할 수 있는 마음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은 욕계, 색계, 무색계, 출세간계의 모든 마음입니다.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으로는 하나이지만,
이상 크게 분류한 네 개의 세계 중에서 일어나는 곳에 따라서 다르게 분류합니다.
또 일어난 곳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전부 89가지 내지는 121가지가 있습니다.
마음은 대상을 안다고 해서 마음이라고 했는데, 이때의 마음은 모두 대상이 있어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일어난 대상을 마음이 압니다. 그래서 이때의 마음은 모두 인식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은 제멋대로 아는 것이 아니고, 일정하게 정해진 과정을 통해서 압니다.
이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러한 기준을 바르게 알아야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알아야 비로소 궁극의 진리인 무아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마음은 반드시 대상을 갖습니다. 그래서 대상이 없으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인식과정은 모두 하나의 같은 대상을 가지고 일어납니다. 눈이 물질을 보고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도 대상이 없으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또 마음이 없으면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모두 똑 같습니다.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이 없으면 아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인과 결과입니다.
이렇게 일어난 마음은 일어나는 순간에 사라집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찰나생, 찰나멸이라고 합니다.
이때 일어난 마음도 새로운 마음이고, 대상도 역시 새로운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마음도 변하고, 변한 마음이 새로 인식하기 때문에 대상도 같은 것이 아니고 새로운 대상입니다.
그래서 조금 전의 마음과 현재의 마음이 같은 마음이 아니고,
현재의 마음이 조금 지난 뒤에 마음과 같은 마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매 순간 변하는 새로운 마음밖에 없습니다.
둘째, 물질도 마음처럼 변합니다.
그러나 물질과 마음은 변하는 속도가 다릅니다. 물질이 한순간에 머물 때 마음은 16번 일어나서 머물고 소멸합니다. 이처럼 물질에도 수명이 있습니다.
어떤 물질이나 변하는데 일어남과 머물음과 소멸의 세 가지 단계를 거칩니다. 이때 마음도 일어남과 머물음과 소멸의 똑같은 과정을 거치는데, 마음이 물질보다 16배가 빠릅니다.
셋째, 마음은 하나의 물질이 머물 때 16번 머무는데 물질이 일어나는 순간에 지나간 잠재의식이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전체를 포함하면 사실 17번 일어납니다.
물질이 일어나는 순간에 감각기능들이 대상을 인식하기에 너무 미세하므로 이 순간에 잠재의식 하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래서 지나간 잠재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16배 빠른 것에 지나간 잠재의식 하나를 넣어서 17번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은 한 찰나 간에 꾸테떼떼인이 일어납니다. 빨리어 꾸테떼떼인은 천만 곱하기 십만이라는 숫자입니다. 그러므로 한 찰나 간에 천만 곱하기 십만이라는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사실 그 숫자는 상상을 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그래서 선한 행동을 하면 그 숫자만큼 선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선하지 못한 행동을 하면 한 찰나 간에 그 숫자만큼 선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전류가 흐를 때 하나의 전류가 흐르는 것이 아니고, 최소의 미립자들이 진동하면 전류가 흐릅니다. 이때 한순간의 진동의 숫자를 모두 헤아리기란 어려운 것이겠지만,
마음은 전류가 흐르는 진동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동하면서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마음은 빛이 번쩍하는 순간에도 수백만 가지의 생각이 일어나므로, 한 찰나에 16번 일어나는 것은 사실 매우 짧은 순간입니다. 이처럼 마음은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순간적 정신 상태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때 조건에 의해 빠르게 일어나서 사라져버리는 마음에 나라고 하는 자아는 없으며, 내가 소유하는 그런 마음도 없습니다. 단지 원인과 결과에 따라서 흐르는 마음만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아입니다.
넷째, 물질이 한순간에 머무는 것에 비해 마음은 17번 일어나서
머물다 사라지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17번의 과정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서 진행됩니다.
이것을 빨리어로 찌따 니야마(citta niyama)라고 하는데 ‘마음의 결정’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마음이 아무렇게나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법칙에 의해 항상 일정하게 진행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은 비물질이라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분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혜안이 없으면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단지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혜안을 얻어 마음을 바로 보니 이러한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얻은 인류사상 최고의 지혜인 무아를 아신 것입니다.
사실 이 무아는 역대의 모든 부처님께서 발견하신 진리입니다.
그래서 무아가 없으면 해탈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누구도 마음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무지 속에서 헤매야 했습니다.
마음이 항상 하는 줄 알아서 초월적 존재를 상상하게 되었고,
그것이 나의 마음이라고 알아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노예로 산 것입니다.
항상 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고 영원한 줄 알아서 진아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항상 하지 않고 매 순간 변하는 마음이라고 알면
무아를 알아서 집착을 여의고 해탈의 자유를 얻습니다.
마음은 수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심찰나라고 합니다.
이 마음은 워낙 빠르기 때문에 감지하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이 한순간에 머무는 것이 빛이 한순간에 머무는 것의 백만분의 일보다 짧다고 합니다.
이 말을 바꾸어서 말하자면 마음의 속도는 빛보다
백만분의 일보다 빠르게 일어나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에도
다시 한 순간에 17번의 일정한 과정을 거치면서 대상을 인식합니다.
그러면 물질이 한순간에 일어나고 사라질 때,
마음은 어떻게 17번 진행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다음은 마음이 대상을 인식하는 기본적 단면을 보는 것입니다.
먼저 잠재의식이 흐르고 있는 상태에서 시작이 됩니다.
1번, 지나간 잠재의식이 일어납니다.
2번, 잠재의식이 동요합니다.
3번, 잠재의식이 끊어집니다.
4번, 오문전향이 일어납니다.
5번, 오식이 일어납니다.
6번, 받아들입니다.
7번, 조사합니다.
8번, 결정합니다.
9번에서 부터 15번까지 속행이 일어납니다.
16번, 등록을 합니다.
17번, 등록을 합니다.
이러한 인식의 과정을 거친 뒤에 다시 잠재의식으로 되돌아가서 흐릅니다.
우리가 한순간에 대상을 아는 인식과정은 이렇게 17번인데,
아직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이 아닌 잠재의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잠재의식을 빨리어로 바왕가 찌따라고 합니다.
이 말은 생명의 요소라고도 하고 잠재의식이라고도 합니다.
잠재의식은 마음이 어떤 대상을 갖지 않고 있을 때 흐르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표층에 드러나지 않는 마음으로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면서 흐르게 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잠자고 있을 때는 마음이 잠을 대상으로 하는데 이때의 마음이 잠재의식입니다.
잠재의식도 대상이 있어서 일어납니다.
잠재의식은 흔히 말하는 무의식과는 다릅니다.
잠재의식은 다른 마음과 똑같이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흐릅니다.
이러한 잠재의식은 인식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잠재의식의 상태에서 오문전향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잠재의식이 이렇게 흐르다가 대상을 향해서 일어날 때
1번, 지나간 잠재의식이 있습니다.
마음이 워낙 빠르게 흐르고 미세해서 처음에 일어난 잠재의식은 알기가 어려워
1번은 지나간 잠재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2번부터 잠재의식이 대상을 향해서 움직입니다.
이것이 잠재의식의 동요입니다.
3번에서 잠재의식이 동요했으면 다음에 끊어집니다.
4번에서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문으로 전향합니다.
이것을 오문전향입니다.
이때 안, 이, 비, 설, 신이라는 오문이 밖으로 향하기 때문에 전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5번에서 다섯 가지 아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오식입니다.
그런 뒤에 6번에서 대상을 받아들이고 7번에서 조사를 합니다. 조사한다는 것은 일단 받아들인 대상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8번에서 결정을 합니다.
결정은 대상을 살펴본 뒤에 무엇이라고 확정을 하는 것입니다.9번부터 15번까지는 속행으로 7번의 빠른 속행이 일어납니다. 속행은 마음이 빠르게 진행하는 것으로, 8번에서 대상이 결정되면 빠르게 일어나는 일곱 번의 인식과정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속행입니다.
그런 뒤에 16번과 17번에 등록을 합니다.
등록은 아는 마음이 대상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앞서 일어난 속행이 갖고 있는 마음을 다시 아는 마음이 받아들여서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등록이라는 것은 무엇이라고 아는 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때 하나만 아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두 번이나 아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때의 등록은 쉬는 마음이며 가라앉히는 마음입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십시오.
진정한 이익은 바른 마음을 가져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적 이익을 위해서는 물질적 손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물질적 이익은 필요한 것이지만 잘못하면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쪽으로 발전하기 쉽습니다.
또한 물질로 인하여 스스로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알아차리는 마음이 있으면 계율이 청정해져서
마음이 청정해지고 견해가 청정해 집니다.
이것이 지혜를 얻는 것으로 가장 큰 이익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는 것은 이러한 인식과정을 연속적으로 거치면서 진행됩니다.
눈이 형상을 볼 때에도 빠르게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인식하며
귀가 소리를 들을 때에도 빠르게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인식합니다.
그리고 코와 혀와 몸이 감각대상과 부딪힐 때에도 똑같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인식합니다.
이처럼 마음이 대상을 인식할 때에는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과정을 순서에 의해서 분명하게 지키면서 가기 때문에 이것을 마음의 결정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인식 과정은 모든 것이 6개의 범주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 세상은 6개의 범주 안에 있습니다.
6개의 범주를 벗어난 것은 인식할 수 있는 실재가 아니라서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세계관은, 6문(門)이 6경(境)에 부딪혀서 6식(識)을 하는 18계(界)라고 합니다.18계를 전부, 일체, 모든 것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일체를 알았다는 것은 몸과 마음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 이외의 것을 모두 아시지만 그것은 번뇌를 해결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는 것의 범주에 넣지 않습니다.
이상의 6가지의 범주를 좀 더 자세하게 분류하면
첫째, 6가지의 토대가 있습니다.
둘째, 6가지의 문이 있습니다. 이것이 감각기관입니다.
셋째, 6가지의 대상이 있습니다. 이것이 감각대상입니다.
넷째, 6가지의 아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6식입니다.
다섯째, 6가지의 과정이 있습니다. 6가지의 감각기관이 있으면 저마다 6가지의 과정이 있습니다.
여섯째, 6가지의 대상의 나타남이 있습니다.
이상이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전부입니다.
모두 이 범주 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보면 이세상이라는 것이 6가지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이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는 부처님의 선언도 이런 맥락에 기인한 것입니다.
불교가 인식의 범주를 벗어난 것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은 바로 그것이 해탈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제멋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도 모두 하나같이 원인과 결과로 일어나고 사라집니다.그리고 반드시 자신이 지은대로 받습니다.
더 자세하게 보면 마음이 한 순간에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도 이처럼 질서 있게 진행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런 것을 움직이게 하는 자아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도 아닙니다.
자아가 있어서 움직이게 하거나 어떤 초월적 존재가 있어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원인과 결과라는 조건이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조건들이 일정한 질서를 가지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을 인식과정이라고 합니다.
다음 두 번째는 인식할 수 없는 마음입니다.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을 벗어난 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은 인식의 과정을 벗어난 마음이라서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인식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통하여 지혜로 알아야합니다.
원래 불교에서는 6가지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부딪혀서
6가지 아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인식의 세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세계가 아닌 것은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은
6가지 감각기관 안에서 일어난 마음이지만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을 말합니다.
인식과정에서 벗어난 마음은 재생연결식과 잠재의식과 죽음의 마음입니다.
태어날 때 재생 연결식과 재생 연결식이 일어난 뒤에 흐르는 잠재의식과
마지막의 죽음의 마음은 인식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도 엄연히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들에 의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마음을 알아야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과정에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인식의 과정을 벗어난 마음을 통하여 인식하는 세계에 삽니다.
그러다가 다시 인식할 수 없는 마음에 의해 윤회가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이라고 간과해서는 안 되며,
인식할 수 있는 마음과 똑같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재생의 바른 의미와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다음 사항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재생 연결식과 잠재의식과 죽음의 의식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범주에 있는 것들은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밝혀진 것들입니다.
처음에 이것을 이해할 수 없지만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지혜가 나면
이러한 현상계의 진실을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네 가지의 세계입니다.
둘째, 네 가지의 재생 연결식입니다.
셋째, 네 가지의 업이 있습니다.
넷째, 네 가지의 죽음입니다.
이상 네 가지의 분류는 윤회하는 세계에서 거듭되는 마음들입니다.
태어날 때 재생 연결식의 상태에 따라서 네 가지 중의 하나의 세계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잠재의식이 흐르면서 업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죽음의 마음을 갖습니다.
죽을 때의 마지막 마음은 평생 동안 살아 온 마음의 결정체입니다.
그래서 죽음의 마음에 있는 과보가 다음 마음에 전해져서 다음 생의 재생 연결식이 일어납니다.
이 재생 연결식에 의해 어느 세계에서 어떤 생명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환생이 아니고 여기서 재생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되풀이 하는 것이 바로 윤회입니다.
죽을 때의 마음과 재생 연결식은 같은 마음이 아닙니다.
죽을 때 이미 마음과 몸은 모든 기능을 상실해서 끝납니다.
그러므로 전생과 현생은 전혀 다른 생명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종자가 있어서 살아있는 동안 행한 과보심이 다음 마음에 연결되므로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같은 마음은 아니고 다른 마음이지만,
과보가 전해졌기 때문에 단지 원인과 결과만 있습니다.
이것이 윤회의 실체입니다.
그래서 전생과 현생이 같은 생이라거나 아니라거나 할 것이 없고,
단지 원인과 결과만 있다고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 네 가지의 세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네 가지의 세계는 욕계 악처, 욕계 선처, 색계, 무색계입니다.
생명이 사는 이 세계는 모두 31개입니다.
이 세계는 윤회하는 세계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도과를 성취하면 이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윤회가 끝납니다.
이 세계를 출세간계라고 말합니다.
이상의 31개의 세계에는 지옥이 있고 천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천상에 사는 생명을 천인이라고 하고 천신이라고도 합니다.
사악도는 고통만 있고 행복이 없으며 수명은 정해지지 않고 업대로 삽니다.
천상에는 행복이 있고 고통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고통과 행복을 함께 경험할 수 있어, 바로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가 인간에서만 나옵니다.
인간도 업대로 살기 때문에 수명이 정해지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31개의 세계에서 주목할 것은 귀신의 세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귀를 중국에서는 귀신이라고 말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귀신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귀신은 상상으로 만들어 낸 것들입니다.
이것을 표상작용이라고 합니다.
정신적으로 바른 상태가 아니거나 특별한 경우에 매우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환청과 환시를 통해서 이런 현상들이 실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표상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하나님을 보았다면 본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보았다면 본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를 본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낸 상상이라는 것을 알아야하겠습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여러 가지 생명들이 있지만,
모두 각각의 세계에 살고 있고 아귀만 자기 세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들이 우리와 파장이 맞지 않아 교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명들이 우리와 파장이 맞지 않지만 환청과 환시를 통해서 경험하면,
없는 것을 사실처럼 받아들여서 이것을 실제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럴 때는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느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환시는 자신의 느낌에 의해서 일어난 표상이라고 아셔야 되겠습니다.
이상 네 가지의 세계는 네 가지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따라 세계가 결정되므로 마음과 세계는 분리할 수없는 원인과 결과만 있습니다.
선한 마음이면 선한 세계에 태어나고, 선하지 못한 마음이면 선하지 못한 세계에 태어납니다.
이것이 모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죽음의 마음과 재생 연결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둘째, 네 가지의 재생 연결식입니다.
네 가지의 재생 연결식은 욕계 악처, 욕계선처, 색계, 무색계의 재생 연결식입니다.
어느 세계에 태어나거나 반드시 새로 태어나는 조건을 만드는 재생 연결식이 있어야 하므로
그 세계에 몸이 만들어 집니다.
그래서 먼저 죽음의 마음이 그대로 재생 연결식으로 전해져서 태어나는 세계가 결정되고,
다음에 태어나는 세계에 몸이 만들어집니다.
재생 연결식은, 죽음의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면 죽음의 마음에 담긴 종자가,
다음 마음인 재생 연결식으로 전해져서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일어나서 새로운 생을 시작하고 새로운 생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이 마음의 상태에서는 아직 몸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재생 연결식 뒤에 재생 연결식의 상태에 따라 새로 태어나는 세계와
여러 가지의 기능들이 만들어 집니다.
그러므로 그 세계에서 태어나는 몸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재생 연결식은 즉시 사라집니다.
그런 뒤에 잠재의식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재생 연결식은 일생에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12연기에서 세 번째, 행(行)을 원인으로 식(識)이 일어난다고 했을 때 식(識)이 바로 재생 연결식입니다.
그리고 식(識)을 원인으로 정신과 물질이 일어난다고 했을 때
이때의 정신과 물질은 색(色), 수(受), 상(想), 행(行)만을 말합니다.
그래서 식과 정신과 물질을 모두 포함하여 오온이 만들어집니다.
이처럼 욕계 악처, 욕계 선처, 색계, 무색계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재생 연결식도 이상 네 개의 세계에서 태어나는 최초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과 직결된 일에 대해서도 똑같이 관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완전한 관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관용이 있는 자리에는 탐욕이 없고,
탐욕이 있는 자리에는 관용이 없습니다.
관용은 선한 마음이고 탐욕은 선하지 못한 마음입니다.
받아들이는 마음에는 반드시 베푸는 마음이 따릅니다.
받아들여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므로 자연스럽게 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관용은 선한 덕목의 으뜸입니다.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원인과 결과를 알아
모든 것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면 지혜가 생겨 모든 일에 걸림이 없어집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셋째, 4가지의 업입니다.
업은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나 업이라는 말의 정확한 뜻은 ‘의도를 가진 행위’입니다.
이때의 의도는 갈애를 말합니다.
그래서 갈애를 가지고 하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한 행위가 바로 업입니다.
그러므로 의도가 없는 행위는 업이 아니기 때문에 과보를 받지 않습니다.
아라한과 부처님은 모든 번뇌가 완전하게 불타버렸기 때문에 업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성자들은 행위는 하지만 의도를 가지고 하지 않기 때문에 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때는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가 끊어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아라한이나 부처님은 받을 과보가 없기 때문에 윤회에서 끝나고
다시 재생을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나 아라한이라고 해서 모든 업이 면죄되지는 않습니다.
성자들도 이미 과거에 지은 업은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자들은 이미 모든 번뇌가 끝났기 때문에
아무리 고통을 겪어도 새로운 업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범부는 업의 과보를 받고 계속해서 새로운 업을 일으키고
성자는 지은 업을 받되 새로운 업을 일으키지 않는 차이가 있습니다.
업은 선업과 불선업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익한 업과 해로운 업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항상 선하거나 선하지 못한 마음을 갖기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
이러한 업은 다시 선과보와 불선과보를 일으킵니다.
마음이 원인이라면 행위는 결과입니다.
다시 어떤 행위인가라는 원인에 따라서 그에 따른 과보의 결과가 있습니다.
이것이 업의 법칙입니다.
불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업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지혜가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업을 잘못 이해하면 지나치게 업에 의존하여
모든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숙명론자나 운명론자가 될 위험도 있습니다.
업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 업의 종류를 살펴보겠습니다.
업은 4가지가 있는데
첫째, 기능에 따라 일어나는 업이 있습니다.
둘째, 과보가 발생하는 순서에 따라서 일어나는 업이 있습니다.
셋째. 성숙하는 시간에 따라서 이러나는 업이 있습니다.
넷째, 과보가 발생하는 장소에 따라서 일어나는 업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4가지 업 중에서 기능에 따라서 일어나는 업이 있습니다.
기능이란 역할을 뜻하며, 업이 행해지는 작용을 말합니다.
기능에 따라서 일어나는 업은 다시 4가지의 업이 있습니다.
어떤 업이 일어나거나 다음 4가지의 기능 가운데서 하나 내지는 여러 가지 기능을 합니다.
하나, 발생하는 업입니다.(생산업)
발생하는 업은 정신적이거나 물질적인 과보를 낳는 업을 말합니다.
죽은 뒤에 재생을 연결하는 순간에 과보를 낳는 업이 바로 발생하는 업입니다.
이때뿐만 아니고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과보의 마음이나 업에서 생긴 물질을 생산하는 업도 발생하는 업입니다.
그래서 모든 선하거나 선하지 못한 의도를 발생하는 업이라고 합니다.
이 업의 과보로 새로운 몸이 만들어집니다.
둘, 돕는 업입니다.
마음이 과보를 발생시키지 못할 때는 다른 업이 발생하도록 돕는 업입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날 때 인간으로 태어나도록 다른 업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수명을 연장하여 돕는 역할을 합니다.
축생으로 태어날 때도 축생으로 태어나도록 다른 업이 끼어들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수명을 연장하여 돕는 역할을 하는 업입니다.
셋째, 방해하는 업입니다.
마음이 과보를 발생시키지 못할 때 다른 업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방해하는 업입니다.
그래서 괴롭거나 즐거운 과보에 대항하여 기간을 단축하는 업입니다.
돕는 업이 기간을 연장한다면 방해하는 업은 기간을 단축합니다.
그래서 선업이 더 높은 세계로 재생하도록 하는데
방해하는 업이 끼어들어서 단축시키면 더 낮은 세계에 태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축생을 태어나게 하는 업이 작용할 때 방해하는 업이 끼어들어서 단축시키면
축생보다 더 높은 세계에 태어나는 역할을 하는 업입니다.
넷, 해치는 업입니다.(파괴업)
약한 업을 눌러서 없애버리는 역할을 하는 업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업이 성숙되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날 때 발생한 업에 따라 오래 살다가
해치는 업이 일어나 갑자기 죽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업입니다.
죽을 때 나쁜 업에 의해 악처에 떨어지는 표상이 나타나서 악처에 떨어지는 것을
선업이 나타나서 악업을 해치는 역할을 하여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합니다.
이상 4가지의 업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둘째, 4가지 업 중에서 성숙하는 순서에 따라서 일어나는 업이 있습니다.
다음 생의 재생연결식이 발생하도록 역할을 하는 업입니다.
재생연결식이 발생하도록 과보를 만드는 순서에 따라서 4가지 업이 있습니다.
성숙하는 순서라는 것은 익어가는 방법에 따라서 일어나는 업을 의미합니다.
성숙하는 순서에 따라서 일어나는 업 중에 하나, 무거운 업이 있습니다.
무거운 업이란 자체의 힘이 너무 강해서
다른 어떤 업도 이 업을 없애고 재생연결식이 될 수 없는 업을 말합니다.
선한 업에서는 선정의 경지에 이르는 업입니다.
불선업에서는 도덕적 기준을 부정하여 지옥에 떨어지는 업입니다.
이때의 불선업을 중국에서는 무간업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사이가 없는 업입니다.
지옥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런 지옥으로, 빈틈이 없는 지옥을 무간지옥이라고 합니다.
가장 무거운 업에 속하는 5가지 무간업은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 어머니를 살해하는 것,
아라한을 살해하는 것,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는 것, 승가를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이상 5가지의 업은 그 과보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선업으로 무거운 업일 때는 선정수행을 닦은 마음입니다.
이 선정의 업은 사소한 악업의 힘보다 무겁기 때문에
다음 생에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습니다.
불선업으로 무거운 업일 때는 선정수행을 닦았다할지라도
나중에 무간업을 지으면 선정수행의 업이 나타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무간업의 지배를 받아 지옥에 떨어집니다.
선정수행을 해서 천상에 태어난다고 해도
다음 생에 반드시 천상에 태어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사실은 일시적인 행복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은 아예 괴로움뿐인 세간을 완전하게 벗어나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을 하는 것입니다.
둘, 죽음에 가까운 업이 있습니다.
이것은 죽기 전에 지은 업입니다.
현생에 마지막 마음이 일어나서 마지막 업을 짓습니다.
죽기 전에 선한 마음을 먹으면 선한 업을 짓습니다.
그런 뒤에 선한 과보를 받아 선한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러나 죽기 전에 선하지 못한 마음을 먹으면 선하지 못한 업을 짓습니다.
그런 뒤에 선하지 못한 과보를 받아 선하지 못한 세상에 태어납니다.
상좌불교 국가에서는 죽기 전에 금생에서 지은 선업에 대하여 말해줍니다.
이렇게 해서 죽을 때의 마음이 선업을 기억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불심이 두터운 신도일 경우에는 죽기 전에 스님께 올릴 가사를 준비하여
만지게 하고 돌아가신 뒤에 가사공양을 올리겠다는 것을 죽어가는 사람에게 알려줍니다.
이런 형식이 모두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하는 의식입니다.
실제로 미얀마에서는 죽음 직전에 이른 부모님께 이런 효도를 합니다.
셋, 실행된 업입니다.
이 업은 평소에 습관적으로 한 행위를 죽기 전에도 그대로 하는 업입니다.
평소에 한 행위는 축적된 성향이 되어 죽기 전에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만약 평소에 수행을 해서 알아차림이 확립된 사람은
죽기 전에도 알아차리면서 죽어서 선한 업을 만듭니다.
그러나 평소에 불선업을 많이 행하고 산 사람은 역시 죽기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해서
불선업의 과보를 받아 좋지 못한 세계에 태어납니다.
넷, 이미 지은 업입니다.
이미 실천을 해서 가지고 있는 강하지 못한 미약한 업을 말합니다.
죽기 전에 무거운 업이나, 죽음에 가까워 일어난 업이나, 실행된 업이 나타나지 않을 때는
이미 지은 미약한 업이 나타나 재생연결식이 일어나도록 합니다.
주석서에서는 업의 과보가 우선적으로 나타난 순서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다른 4가지 업이 있다.
무거운 업, 가까운 업, 실행된 업, 이미 지은 업이다.
선한 것이든 선하지 못한 것이든 무겁거나 가벼운 업 중에서
어머니를 살해한 업이나 혹은 고귀한 경지의 선정의 업이 무거운 업이고
이것이 먼저 과보를 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실행된 것과 실행되지 않은 것 중에서
좋은 행위이든 나쁜 행위이든 실행된 업이 먼저 과보를 준다.
가까운 업은 죽을 때의 기억이 나타난 업이다.
죽음에 가까운 사람이 그 업을 기억할 수 있다.
그것에 따라 태어난다.
이 3가지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자주 반복하여 지었기 때문에 이미 지은 업이라고 한다.
앞에 있는 3가지 업이 없을 때 바로 이것이 재생연결을 일으킨다.’
이상의 주석서의 내용을 보면
죽을 때 살아서 지닌 무거운 업은 피할 수 없이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습관적인 행위를 한 실행된 업이
죽음에 가까워서 일어난 업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죽음에 가까웠을 때 일어난 업은 특별한 경우에 행해질 수 있는 업이고
그렇지 않다면 평소에 살던 그대로의 습관적인 업이 나타날 것입니다.
죽을 때의 마음이 업이 되어 다음에 재생연결식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살면서 어떤 경우에나 선하지 못한 무거운 업을 짓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평소에 수행을 해서 죽을 때 수행자의 알아차림이 유지되면
더 나은 세상에 태어나거나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경전에 밝혀진 것을 보면 죽을 때 아라한이 된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소에 수행을 한다는 사실은
죽을 때 어떤 마음을 먹어서 어떤 업을 짓고 그 업이 어떤 과보를 결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수행을 죽는 연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 먹지 않던 마음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상시의 습관대로, 살아온 대로 마음을 갖고
그 마음에 따른 업을 받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고
지금 현재 무엇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고
현재 알아차리는 수행을 계속해야 하겠습니다.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느냐가 바로 죽을 때의 그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얻지 못합니다. 하고 있는 그 결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같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모두 동지가 아닙니다.
같은 뜻을 가졌다고 해도 바르지 못하면 동지가 아닌 것입니다.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뜻을 같이 한다면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 없습니다.
뜻이 같아도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동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같은 종교, 같은 지역, 같은 성씨, 같은 동문이라고 해서 모두 동지가 아닙니다.
이것들은 관념일 뿐이지 바른 정신으로 모인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무리를 만들고 여기에 안주합니다.
이것으로 세속의 이익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고귀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진정한 동지입니다.
여기에는 나의 이익과 함께 상대의 이익을 배려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동지입니다.
셋째, 네 가지 업 중에서 성숙하는 시간에 따라서 일어나는 업이 있습니다.
두 번째가 성숙하는 순서에 따라서 일어나는 업이고
세 번째가 성숙하는 시간에 따라서 일어나는 업입니다.
재생 연결식이 발생하도록 과보를 만드는 시간에 따라서 일어나는
네 가지의 업이 있습니다.
하나, 현생에 받는 업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현생에 받는 업입니다.
만약 현생에 받아야 할 업이 조건이 성숙되지 않으면 이 업은 사라집니다.
둘, 다음 생에 받아야 할 업입니다.
업의 과보를 현생이 아닌 다음 생에서 받는 업입니다.
만약 다음 생에 받아야 할 업의 조건이 성숙되어서 나타나지 않으면 이 업은 사라집니다.
셋, 연속적으로 받는 업입니다.
업의 과보를 받는 시기가 연속적으로 계속해서 받는 업입니다.
현생과 다음 생이 지나가서 과보가 나타나는 업입니다.
넷, 잠재적 힘을 갖고 있지 않은 업입니다.
더 이상 과보가 나타날 만한 잠재적인 힘을 갖고 있지 않은 업입니다.
더 큰 힘에 의해서 방해를 받는 업으로 효력이 상실한 업을 말합니다.
힘을 상실한 업이기 때문에 현생이나 다음 생이나 계속해서 나타나는 업과 달리
시간을 넘긴 것입니다. 이때 힘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업의 과보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라한은 죽음의 마음에서 과거에 지은 모든 업의 힘이 소멸하여 사라집니다.
그래서 태어남이 없습니다.
주석서에서는 업의 과보가 성숙하는 시간에 따라서 일어나는 업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이 중에 업은 네 가지가 있다.
현생에서 받는 업, 다음 생에 받는 업,
연속적으로 받는 업, 잠재적인 힘을 갖고 있지 않은 업이다.
이중에 첫 번째, 금생에서 받는 업은 하나의 속행의 과정에서 속행의 마음 7가지 중에
선하거나 선하지 못하거나 그 첫 번째 속행의 의도가 현생에서 받는 업이다.
그것은 현생의 몸에 과보를 준다.
첫 번째, 잠재적 힘을 갖고 있지 않은 업은, 그렇게 할 수 없을 때 업은 있지만
업의 과보는 없었고, 업의 과보는 없을 것이고, 업의 과보는 없다는
세 개조의 방법에 따라 잠재적 힘을 갖고 있지 않은 업이라고 한다.
두 번째, 다음 생에 받아야 할 업은
행위를 성취한 7번째 속행의 의도가 다음 생에 받는 업이다.
세 번째, 연속적으로 받는 업은 속행의 첫 번째와 마지막 일곱 번째 사이에 있는
다섯 개의 속행의 의도가 연속적으로 받는 업이다.
그것은 미래의 기회를 얻을 때 과보를 준다.
윤회가 계속되는 한 이것은 끝나버린 업이 되지 않는다.‘
이상의 성숙하는 시간에 따라서 일어나는 업 네 가지는
앞서 공부한 17개 인식의 과정 중에서 모두 7개의 속행에서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업이 시간을 넘기면 소멸하는 이러한 과정은 수행과도 연관됩니다.
현재의 행위가 선한 의도를 가졌을 때는 선한 과보가 나타납니다.
그러면 이 때 나타날 수 있는 불선 과보가 힘을 잃어버립니다.
수행을 해서 계속해서 선한 의도를 내면 계속해서 선한 행위를 하게 되고
계속해서 선한 과보가 나타나기 때문에 불선 과보가 나타날 기회를 차츰 잃게 됩니다.
물론 이런 와중에도 나타날만한 무거운 불선 과보가 나타나지만,
대체로 수행을 해서 선한 의도를 내면 선한 과보의 힘이 커져서
불선한 과보가 힘을 쓰지 못하도록 합니다.
마찬가지로 불선한 의도를 내면 불선한 행을 해서 불선한 과보를 받습니다.
그러면 이때 선한 과보가 힘을 잃습니다.
선한 의도에 의한 업이나 불선한 의도에 의한 업이나
모두 저마다 가속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체적인 힘을 가지고 속력을 냅니다.
그래서 수행을 하면 선한 의도에 의한 선한 행을 해서 선한 과보가 나타납니다.
이때의 이익은 선한 과보가 나타나서 이익이며,
이 순간에 불선한 과보가 나타나지 않아서 또 이익을 얻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이때 불선 과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역시 불선 과보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오랫동안 살면서 행해 온 선하지 못한 행으로 인해서 받는 과보로부터
한 번에 벗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 한 번에 벗어났다면 그 수행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사람으로
마지막으로 조건이 성숙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인내하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지금 가지 않으면 영원히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면 언젠가는 궁극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넷째, 네 가지 업 중에서 성숙하는 장소에 따라서 일어나는 업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네 가지 업 중에서 두 번째가 성숙하는 순서에 따라서 일어나는 업이고,
세 번째가 성숙하는 시간에 따라서 일어나는 업이고,
이번 바로 네 번째가 성숙하는 장소에 따라서 일어나는 업입니다.
마지막으로 업이 성숙하는 장소에 따라서 네 가지로 분류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소는 위치, 요점, 이유, 원인 등등의 뜻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 선하지 않은 업입니다.
선하지 않은 업은 착하지 않은 업을 말합니다. 그래서 불 선업입니다.
선하지 않은 업은 열 가지입니다.
몸으로 짓는 업 세 가지와 말로 짓는 업 네 가지와
마음으로 짓는 업, 세 가지를 합쳐서 모두 열 가지입니다.
이상 열 가지를 ‘선하지 않은 업의 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상 열 가지의 반대가 되는 것은 ‘선한 업의 길’입니다.
몸으로 짓는 업 세 가지는 살생, 도둑질, 음행입니다.
말로 짓는 업 네 가지는 거짓말, 중상모략, 욕설, 잡담입니다.
마음으로 짓는 업 세 가지는 탐욕, 성냄, 사견입니다.
여기서 사견은 잘못된 견해로, 허무주의적 견해와 업의 과보를 부정하는 견해와
원인을 부정하는 견해, 세 가지입니다.
둘, 욕계의 선한 업입니다.
욕계의 선한 업은 몸으로 짓는 업 세 가지와 말로 짓는 업 네 가지와
마음으로 짓는 업 세 가지입니다.
불선업 열 가지의 반대가 되는 선한 업, 열 가지가 욕계의 선한 업입니다.
셋, 색계의 선한 업입니다.
색계 선한 업은 색계 5선정의 세계입니다.
색계 초선정을 닦으면 색계 초선정의 세계에 태어나고
나머지도 5선정까지 선정을 닦으면 각각의 선정의 세계에 태어납니다.
수행을 해서 아나함의 도과를 성취하면
색계 5선정의 정거천에 태어나서 아라한의 도과를 성취합니다.
왜냐하면 아나함은 욕계의 감각적 욕망이 모두 제거되었기 때문에
색계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넷, 무색계의 선업입니다. 무색계도 4선정이 있습니다.
선정 수행을 해서 무색계 4선정을 얻으면 각각에 맞는 무색계 선정의 세계에 태어납니다.
무색계의 마음도 색계의 마음처럼 과보의 마음을 일으켜,
무색계에 태어나는 재생 연결을 하고 잠재의식과 죽음의 마음을 갖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 따라서 결정된 고귀한 덕은 재생 연결과 삶의 과정에서
그와 비슷한 과보를 발생시킵니다.
여기서 이것이 네 가지의 업입니다.
이상으로 여러 가지의 업을 모두 설명하였습니다.
이상의 업으로 인해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인 재생 연결식과 잠재의식과
죽음의 마음이 무엇이며, 여기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인식할 수 없는 마음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네 가지의 세계와 네 가지의 재생 연결식과 네 가지의 업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네 가지의 죽음이 있습니다.
죽음의 네 가지 원인과 죽음과 태어남인 재생 연결식의 업이 일어나는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죽음은 무엇이며 어떻게 죽고, 그리고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죽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죽음이 의미하는 진정한 내용을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인식할 수 없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혜안으로 본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죽음이 무엇인지 알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죽음이나 오온의 기능이 모두 정지됩니다.
사실은 마음이 찰나 생, 찰나 멸하기 때문에 매 순간에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한 일생을 기점으로 태어나고 죽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죽음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각각의 원인이 있습니다.
이러한 죽음을 등잔불에 비유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등잔불의 심지가 다 타서 불이 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직 기름은 남아있지만 심지가 다 탄 것은 생명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과 물질의 에너지가 끝난 것입니다.
살고자 하는 의도가 없으면 이미 죽음을 향해서 간 것입니다.
불행한 상태에서 이러한 경우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둘째, 등잔에 있는 기름이 다 타서 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업이 다 하여 죽는 경우입니다.
심지는 있지만 기름이 없으면 등잔불이 탈 수가 없습니다.
업이 다 했다는 것은 늙어서 수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생명들이 태어나는 곳에 따라서 일정한 수명이 있는데
이것이 모두 업에 의해서 결정되는 수명입니다.
천상에는 천상의 수명이 있어서 그 곳의 수명대로 삽니다.
그러나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 인간은 업대로 살다가 죽습니다.
살생을 많이 했으면 단명한 것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셋째, 등잔불의 심지와 기름이 다 타서 불이 꺼지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살고자 하는 생명력과 업이 모두 소멸하여 죽는 경우입니다.
업의 에너지의 소멸과 수명이 다 하여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죽음입니다.
넷째, 등잔불의 심지와 기름이 모두 소진되지 않았지만
바람이 불어서 불이 꺼지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업의 에너지와 수명이 아직 남아있지만 과거 생이나 현생의 업 중에서
하나가 들어와서 생명을 파괴하여 죽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뜻하지 않은 재앙으로 인해
갑자기 목숨을 잃는 것을 말합니다.
이상의 네 가지 죽음 중에서 앞선 세 가지 경우는 자기 수명대로 살다가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적당한 시기에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네 번째 죽음은 자기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적당한 시기가 아닌 상태에서 죽은 것입니다.
이처럼 죽음은 네 가지 유형을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이 안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죽습니다.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는 각자의 업의 조건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천상의 수명은 정해져 있지만 사악도와 인간의 수명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업의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은
평소에 자기가 한 행위대로 죽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유념하셔야 하겠습니다.
'범주의 열거‘ 를 간략히 정리
1. 인식과정에 관계되는 여섯 가지의 범주
(1) 여섯 가지 토대
(2) 여섯 가지 문
(3) 여섯 가지 대상 - 토대, 문, 대상은 3장에서 설명했다
(4) 여섯 가지 알음알이
(5) 여섯 가지 과정
(6) 여섯 가지 대상의 나타남
이렇게 6개조로 이루어진 여섯 개의 범주를 알아야 한다
2. 인식과정에서 벗어난 마음의 대상은
- 3가지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업’과 ‘업의 표상’과 ‘태어날 곳의 표상’이다
3. 여섯 가지 알음알이는
눈의 알음알이
귀의 알음알이
코의 알음알이
혀의 알음알이
몸의 알음알이
마노의 알음알이
4-1. 여섯 가지의 인식과정은 문에 따라 여섯이다
(1) 눈과 연결된 인식과정
(2) 귀와 연결된 인식과정
(3) 코와 연결된 인식과정
(4) 혀와 연결된 인식과정
(5) 몸과 연결된 인식과정
(6) 마노와 연결된 인식과정
4-2. 알음알이에 따라서도 여섯이다
(1) 눈의 알음알이
(2) 귀의 알음알이
(3) 코의 알음알이
(4) 혀의 알음알이
(5) 몸의 알음알이
(6) 마노의 알음알이
(따라서) 문과 열결된 마음의 일어남은 상응하는 알음알이들과 대응해야 한다
5.해설
①마음들은 감각의 문에서나 마노의 문에서 대상을 인식하면서 일어난다
②마음들은 결코 닥치는대로 일어나거나 홀로 격리되어 일어나지 않고,
‘마음의 정해진 순서’(=마음의 법칙)에 의해서 일어난다
③각각의 인식과정이 일어나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조건들 (p.350)
참고 마음에 잡도리함(제따시카-정명스님)
마음에 잡도리 한다는 뜻인 ‘주의’는 모든 마음과 함께 하는 공통된 마음부수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문전향의 마음도 마니시까라입니다. 이 마음은 오문인식 과정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마음으로 대상으로 전향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오문인식과정의 통제자”라고 하지요. 다른 마나시까라는 의문인식과정에서 대상으로 전향하는 의문전향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의 뒤를 이어 속행(자와나)의 마음들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것을 ‘속행의 통제자'라고 합니다. 앗타살리니에도 이 ’주의‘라는 마음부수에 대한 정의가 청정도론과 같습니다.
주의는 관련된 마음부수들을 대상으로 몰아가는 것이 특징이다. 묶어 주는 역할을 한다. (대상으로 관련된 마음부수들을 주목시킨다) 대상과 직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상카라의 무더기에 포함되며 관련된 마음부수들을 조정하여 대상으로 몰아가는 것이 마부와 같다고 여겨야 한다. 대상이 가까운 원인이다.
‘주의’로 번역되는 마나시까라는 ‘대상에 대한 통제자’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대상으로 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관습적으로 ‘산만’하다고 할 때에는 주의력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의’는 모든 마음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그 순간에도 있습니다. 들뜸과 함께 하는 탐욕에 뿌리를 둔 마음이 일어날 때에도 마음은 대상을 인지합니다. 주의는 마음 그리고 함께 하는 다른 마음부수들을 '묶어서'대상으로 보냅니다. 그래서 모든 마음들이 대상을 알려면 이 마나시까라가 필요 합니다. 바로 이 순간에도 마음은 있습니다. 그래서 역시 마나시까라도 있어야 합니다. 마나시까라는 마음이 대상을 경험할수 있게 부딪치게 초점을 맞추는 집중이라는 마음부수와도 다릅니다. 마나시까라는 자신의 일도 하고 마음이 대상을 인지하도록 지원하는 역할도 합니다. 마나시가라는 육문(六門)가운데 하나를 통해서 나타난 대상이 무엇이건 간에 그 대상에 주목하고 마음과 동반하는 마음부수들을 ‘묶어서’ 대상으로 전송합니다. 다른 종류의 마음들과 함께하는 마나시라는 종류도 다릅니다. 예를 들어 안식이 일어날 때 마나시까라는 안식 그리고 안식과 함께 하는 마음부수들을 묶어서 형상이라는 대상으로 전송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때 안식(眼識)은 과보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마나시까라도 역시 과보에 해당합니다. 안식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 어떤 형태와 모양에 대한 주의(주목)가 있습니다. 이때의 대상은 개념이 아니고 형상입니다. 이 순간의 마음은 안식(眼識)에 있는 주의 와는 ‘다른 주의’로 이때의 마음은 다른 유형의 마음입니다. 탐욕에 뿌리를 둔 마음과 함께 하는 주의도 앞의 주의와 다릅니다. 탐욕에 뿌리를 둔 해로운 마음과 함께하는 ‘주의’는 해로운 것입니다. 유익한 마음과 함께 하는 주의도 역시 유익한 것입니다. 사마타를 닦을 때에도 주의는 그 마음과 함께 하는 다른 마음부수들을 묶어서 명상주제로 보냅니다. 시체에 대한 명상이나 붓다의 덕성에 대한 회상과 같은 명상은 사마타입니다. 마음이 색계(色界)의 유익한 마음이면, 함께 하는 ‘주의’도 역시 색계의 것으로 욕계의 것과는 다릅니다. 색계의 마음은 본 삼매의 마음으로 함께 하는 ‘주의’는 마음과 함께하는 마음부수들을 ‘묶어서’ 명상주제인 대상으로 전송합니다. 무색계의 마음과 함께 하는 주의는 색계의 마음과 함께하는 주의보다도 훨씬더 고요하고 미세합니다.
나마와 루빠에 대한 바른 통찰지를 닦는 위빳사나를 할 때에도 챙김의 주제인 나마와 루빠에 대한 ‘주의’가 있습니다. ‘주의’는 마음을 다른 담마들과 묶어서 명상주제인 나마나 루바로 전송합니다. 초세간의 마음과 함께 하는 ‘주의’ 역시 초세간입니다. 이때는 마음과 망ㅁ부수의 대상인 닙바나로 이들을 묶어서 전송합니다. 우리는 이 대상이나 저 대상에 주목하는 것이 자아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주의’는 조건 지워진 담마입니다. 이것은 마음 그리고 함께 하는 다른 마음부수들에 의하여 조건 지워집니다. 그것들과 함께 일어나서 함께 사라집니다. 서로 다른 마음 순간들에 있는 ‘주의’는 같은 ‘주의’ 가 아닙니다. 7가지 공통된 마음부수들은 자기 고유의 특징, 역할, 나타남 그리고 가까운 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종류, 다른존재계의 마음들과 함께 일어나기 때문에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통되는 7가지 ‘반드시들’이란:
-감각접촉
-느낌
-인식
-집중
-생명기능
-마음에 잡도리함
모든 마음과 함께 일어난 모든 ‘반드시들’은 그 마음과 같은 대상을 공유합니다. 그들은 함께 하는 마음과 같은 종류이고 같은 존재계의 것입니다. 정신과 물질이 함께 존재하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마음부수들은 함께하는 마음과 같은 토대에서 일어납니다. 즉 눈의 토대, 귀의 토대, 코의 토대, 몸의 토대 혹은 심장토대에서 일어나게 합니다. 마음부수들은 결코 홀로 일어나지 못합니다. 언제나 마음과 다른 마음부수들과 함께 일어나지 못합니다. 언제나 마음과 다른 마음부수들과 함께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부수들을 공부하려면 그들과 함께 하는 다른 마음들도 이해하여야 합니다. 마음과 함께 일어날 수 있는 마음부수는 반드시들 말고도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들도 같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반드시들만 동반하는 마음에는 전오식(前五識) 다섯 쌍으로 열 가지입니다. 즉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그리고 신식(身識) 이지요. 이러한 마음들은 뿌리 없는 과보의 마음들입니다. 이것들은 이러한 마음들은 뿌리 없는 과보의 마음들입니다. 이것들은 유익한 과 보나 해로운 과보입니다. 그래서 다섯 쌍이지요.
안식이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는 반드시들은 자신들만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안식과 함RP 하는 감각접촉은 형상을 접촉하는 눈의 접촉입니다. 눈의 접촉이 일어난다는 것은 눈의 토대, 형상이라는 대상과 안식이 동시 발생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의 느낌은 형상이라는 대상의 ‘맛’을 경험하는 무덤덤한 느낌입니다. 인식은 형상이라는 대상에 ‘표시’를 하고 기억을 합니다. 의도는 함께 하는 담마들의 과제들을 조정합니다. 안식(眼識)은 과보의 마음이므로 여기서의 ‘의도’는 단지 조정만 합니다. 즉 유익하거나 해로운 행위를 하려는 ‘의지’가 없습니다. 집중은 형상이라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지 다른 대상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생명기능은 마음과 함께 하는 마음부수들이 사라질 때 까지 생명을 유지시켜 줍니다. 주의는 마음과 함께 하는 마음부수들을 대상으로 전송합니다. 안식(眼識)은 형상을 인지하기 위하여 함께 하는 ‘반드시들’을 필요로 합니다. 함께 하는 마음부수들의 도움 없이는 안식은 대상을 인지할 수도 없고 마음부수들의 도움 없이는 안식은 대상을 인지할 수도 없고 이렁날 수도 없습니다.
지금 본 것처럼 오직 전오식(前五識) 에는 반드시들만 함께 하고 다른 마음부수들은 없습니다. 오문인식과정(五門認識過裎)에서 일어나는 모든 마음들과 의문인식과정(意門認識過裎)에서 일어나는 모든 마음들 그리고 재생연결식, 바왕가 마음, 죽음의 마음은 반드시들 이외에 다른 마음부수들과 함께 일어납니다. 이 반드시들은 다른 마음순간들에서도 일어나므로 그 마음들에 해당하는 특징을 가지고 습니다. 예를 들어 유익한 마음과 함께 하는 반드시들 및 함께하는 다른 마음부수들은 유익한 것입니다. 유익한 마음과 함께하는 느낌은 즐거운 느낌이나 무덤덤한 느낌일 수 있습니다. 유익한 마음과 함께 하는 의도는 두 개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하나는 함께 하는 담마들의 과제를 조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익한 행위를 ‘하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만약 이 의도가 유익한 행위를 자극한다면 바른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과보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유익한 의도는 과보의 마음과 함께 하는 의도와는 다릅니다.
(1) 눈의 문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을 위해서는
눈의 감성, 형상, 빛, 마음의 잡도리함[作意]이 있어야 한다
(2) 귀의 문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을 위해서는
귀의 감성, 소리, 허공, 마음의 잡도리함[作意]이 있어야 한다
(3) 코의 문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을 위해서는
코의 감성, 냄새, 바람, 마음의 잡도리함[作意]이 있어야 한다
(4) 혀의 문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을 위해서는
혀의 감성, 맛, 물의 요소, 마음의 잡도리함[作意]이 있어야 한다
(5) 몸의 문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을 위해서는
몸의 감성, 감촉, 땅의 요소, 마음의 잡도리함[作意]이 있어야 한다
(6) 마노의 문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을 위해서는
심장토대, 법인 대상, 바왕가가 있어야 한다
(6)-①(마노의 인식과정인 경우) 물질의 세계에서는 심장토대가 단 하나의 조건이다
참고)
1. 문의 길라잡이와 토대의 길라잡이에 대해 반복해 읽어 봐도 정확한 개념이 서지 않습니다.
문, 토대, 감성물질에 대해 다시 한번 간략히 정의를 내려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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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란 알음알이가 대상을 아는 문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문에는 모두 눈 귀 코 혀 몸 마노의 여섯 가지 문이있습니다. 이가운데 눈 귀 코 혀 몸(안이비설신)을 오문(다섯 가지 문)이라 부르고 마노의 문을 의문(意門)이라 부릅니다.
토대란 알음알이가 일어날 때 의지하는 물질적 토대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눈의 알음알이(안식)는 눈이라는 감성의 물질을 토대로 하고 같이하여 이식은 귀를, 비식은 코를, 설식은 혀를, 신식은 몸이라는 감성의 물질을 토대로합니다. 그리고 의식인데 의식은 모두 심장토대를 토대로 합니다.
감성의 물질이란 대상을 감지하는 특정한 기능을 가진 물질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눈의 감성은 형상이나 색깔을 감지하는 기능을 가진 물질을 뜻합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여기서 요점을 간추리면 전오식 즉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은 모두 문과 토대가 같습니다. 즉 안식은 눈이라는 감성을 그 문으로 하고 눈이라는 감성을 토대로 하여 일어납니다.
모든 의식은 반드시 마노(의)를 그 문으로 가집니다. 즉 모든 의식은 반드시 심장토대를 토대로 하여 일어납니다. 그러나 모든 의식은 그 문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눈의 인식과정에서 일어나는 의식은 눈을 문으로 가지면서 심장토대를 토대로 합니다. 귀의 인식과정에서 일어나는 의식은 귀를 문으로 가지면서 심장토대를 토대로 합니다. 의문인식과정에서는 모든 의식은 마노를 문으로 하고 심장토대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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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업에서 생긴 물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거기에는 무엇 무엇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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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에서 생긴 물질이란 말 그대로 업을 원인으로 하여 생긴 물질입니다. 물질은 업과 마음과 온도와 영양분에서 생긴다고 아비담마는 말합니다. 특히 유정의 몸은 업과 마음과 온도와 영양분에 의해서 생깁니다. 업에서 생긴 물질은 길라잡이 <도표6.3> 2권 585쪽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각묵 합장
6. 여섯 가지의 인식과정을 편의상 다시 나누면 두 가지다
(1) 오문인식과정 :
①5가지 감각의 문에서 일어난다
②오문과 의문을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잡문인식과정이라고도 부른다
③다섯 문에 각각 상응하는 감각기관에서 전체적으로 통일된 방식으로 일어난다
(2) 의문인식과정 :
①마노의 문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들을 전부 포함한다
②순전히 마노의 문인 바왕가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에 순의문인식과정이라고도 부른다
③외부의 감각의 문들과는 관계없이 다양한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자로 표기 : 五門인식과정, 意門인식과정, 雜門인식과정, 純意門인식과정)
여섯 가지 대상의 나타남
마음은 대상을 통해서 일어나므로 먼저 대상을 분석한다
5문에서는 - ‘①매우 큰 것 ②큰 것 ③작은 것 ④매우 작은 것’이
의문에서는 - ‘⑤선명한 것 ⑥희미한 것’ 의 여섯 가지로 대상이 나타난다
[ 해설 ]
1. 대상의 나타남 :
①6문 가운데 하나에서 알음알이의 대상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②이것을 5문과 의문으로 나누어서 보면
5문 - 네 가지로,
의문 - 두 가지로 대상의 나타남을 분류한다
③5문에서 - 대상이 ‘크다’ 와 ‘작다’의 뜻
(가) 이것은 ‘대상의 크고 작음’ 또는 ‘거칠거나 미세함’을 뜻하지 않는다
(나) 이것은 알음알이에 충격을 주는 ‘힘의 강약’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눈의 문에서 대상이 나타날 때,
①‘눈의 감성이 약한가 강한가’,
② ‘대상이 일어날 때 최초의 상태로 눈에 충돌하는가 아니면 최초의 상태를 지난 후인가’,
③ ‘빛의 밝고 흐림’ 에 따라 큰 대상과 작은 대상으로 나누어진다
(다)그래서 크다 작다는 것은
대상이 감각의 문의 통로에 들어와서 알음알이에 그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에 작용하는
인식과정에 나타나는 ‘마음들의 개수’를 의미한다
④마노의 문에서는 - ③의 (다)와 같은 원칙에 따라서 대상을 ‘선명한 것’과 ‘희미한 것’으로 분류한다
3. 하나의 마음순간이 지난 뒤 :
①마음이 물질인 대상을 인식할 때 일어나는 순간의 물질은 미약하고 빨라서
②마음은 이를 인식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의 마음순간이 지나가버린다
③이것을 후대 주석가들은 ‘지나간 바왕가’라는 전문술어로 정착시켰다
④이렇게 ‘한 물질이 머무는 순간에 마음은 16번 일어나고 멸한다’는
전통적인 1 : 16 의 물질과 마음의 관계는
⑤물질과 마음이 ‘일어나고 머물고 소멸하는’ 전체과정에서는 1 : 17 로 고정된다
4. 혹은 여러 마음순간이 지난 뒤 :
①나머지 ‘큰 대상’이나 ‘작은 대상’이나 ‘아주 작은 대상’은 여러 마음순간이 지난 뒤에
인식과정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②이것은 2개에서 14개까지의 지나간 바왕가를 가지는 인식과정들이다
③이렇게 해서 형색, 소리, 냄새, 맛, 감촉의 5가지 감각 대상은 물질이므로 17심찰나 동안 지속되며
④지나간 바왕가의 개수에 따라 모두 15가지의 인식과정을 상정할 수 있다 <도표 4.2 참조>
5. 머무는 순간에 :
①아누룻다 스님의 설명 : 감각의 대상은 일어남의 아찰나에서는 아직 미약하기 때문에
머묾의 단계에 가서야 감각의 통로로 들어올 수 있다
②‘정정도론’이나 ‘위방가’에 나타나는 전제 : ‘[하나의] 물질이 머물 때 16번의 마음이 일어나고 멸한다’
결국 ①과 ②는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결론 :
(1) 물질이 일어나고 머무는 순간하고 마음이 일어나고 머무는 순간은 서로 다르다.
(2) 물질찰나 1개가 머무는 그 동안에 마음찰나는 16번 일어난다는 뜻이다
五門인식과정
<매우 큰 대상>
‘일어남[生], 머묾[住], 무너짐[壞]’의 세 순간을 하나의 ‘마음순간[心刹那]’이라 한다
물질의 수명은 이 17개의 마음순간에 존재한다
다섯 가지 감각의 대상은 하나의 마음순간이나 혹은 여러 마음순간이 지난 뒤
‘머무는 순간’에 다섯 가지 감각의 문에 나타난다
참고 아난다경(S22:37)중에서
그때 아난다 존자가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만일 사람들이 그대에게 묻기를 “도반 아난다여”어떠한 법들이 일어남이 알아지고 사라짐이 알아지고 머문 것이 다르게 알아집니가?라고 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세존이시여 만일 사람들이 제게 묻기를 ”도반 아난여“어떠한 법들이 일어남이 알아지고 살라짐이 알아지고 머문 것의 다르게 됨이 알아집니까?라고 한다면 저는 이렇게 설명할 것입니다.
“도반들이여,물질의 일어남이 알아지고 사라짐이 알아지고 머문 것의 다르게 됨이 알아집니다.느낌이...인식의...심리현상들의...알음알이의 일어나고 사라짐이 알아지고 머문 것의 다르게 알아집니다.도반들이여 이러한 법들의 일어남이 알아지고 사라짐이 알아지고 머문것이 다르게 됨이 알아집니다”라고
세존이시여 그런 질문을 받으면 저는 이렇게 설명할 것입니다.
[해설]
1. 하나의 마음순간[心刹那] :
①아비담마에서는 마음의 수명을 마음순간[心刹那]이라고 부른다
②이 마음순간은 너무나 순간적인 기간이며, 극미의 순간적인 존재이다
③이 마음순간은 다시 ‘일어남, 머묾, 무너짐’의 세 순간으로 이루어진다
④마음은 이 극미의 마음순간에 일어나서 자기의 역할을 수행하고 소멸되며
⑤이 마음은 바로 다음에 일어나는 마음의 조건이 되어 그 조건의 힘에 따라서 다음 마음이 일어난다
1-1. 마음순간의 ‘머묾’에 대한 주장들
①아난다 스님 : 마음에는 머묾의 단계가 없고 다만 일어남과 무너짐만이 있다
②아누룻다 스님과 후대의 ‘상가하’의 주석가들 : 아무 언급이 없다
③‘위바위니 띠까’ : (가)머묾은 일어남이나 무너짐과는 다른 현상이 일어나는 단계로서
(나)이 기간에 그 현상은 ‘무너짐을 대면하면서 머문다’고 표현
④레디 사야도 :
(가)머묾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중간지점이라고 여긴다 마치 돌을 위로 던지면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그 방향을 전환하는 시점이다
(나)다시 이렇게도 말한다 : 머묾의 순간은 일어나는 순간과 무너지는 순간 이외의
모든 기간을 뜻한다고
⑤“증지부”에서 부처님의 말씀
“조건지워진 것에는 조건지워진 특징이 있나니 일어남과 사라짐과 머물러 있는 것의 변화이다.”
여기서 머묾의 순간은 ‘머물러 있는 것의 변화’와 일치한다
2. 물질의 수명 :
①물질의 현상도 일어남과 머묾과 무너짐의 세 과정을 거친다
②물질의 일어남, 머묾, 무너짐에 요구되는 시간은 17개의 마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같다
2-1. 16배 빠르다, 17마음순간
①전통적으로 마음은 물질보다 16배 빠르다
②그러나 물질은 일어나는 순간에 감각기능들이 파악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므로 그 순간에는 바왕가가 그냥 하나 지나간다. 이것을 ‘지나간 바왕가’라 부른다
③후대로 내려오면서 이 지나간 바왕가까지 포함하여 17개의 마음을 설한다
2-2. 아찰나
①한 찰나의 마음이 일어나고 머물고 멸하는 각각의 단계를 아찰나라고 부르자
②물질이나 마음이나, 일어남의 순간과 무너짐의 순간의 기간은 같다고 한다
③그러나 물질의 머묾의 기간은 마음 현상의 49아찰나와 같다고 한다
④ 일어남 머묾 무너짐
물질 * * *
마음 *** *** *** *** --- *** ***
마음순간1개 마음순간15개 마음순간1개
(3-1=2) (15×3=45) (3-1=2)
(물질은 아찰나인 *이 모두 3개이고, 마음은 아찰나인 *이 모두 17×3=51개인데,
물질이 일어나고 무너지는 순간의 아찰나인 *를 각각 제하면 51-2=49가 된다)
p.359, ‘<도표 4.1> 눈의 문에서의 인식과정(매우 큰 대상)’
* 바왕가가 계속 흐르고 있다 : 바왕가의 흐름
이때 형색인 대상이 눈의 문에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가? (매우 큰 대상인 경우)
(1) 하나의 마음순간이 지나간다 : ①지나간 바왕가
(2)~(3) 두 마음순간동안 바왕가가 흔들리고 바왕가의 흐름이 끊어진다 :
②바왕가의 동요, ③바왕가의 끊어짐
(4) 그때 그 色의 대상으로 전향하는 五門전향의 마음이 일어났다가 멸한다 : ④오문전향
(5) 그 다음에 곧바로 그 色을 보면서 눈의 알음알이[眼識]가 : ⑤안식
(6)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받아들이는 마음이: ⑥받아들임
(7) 그것을 조사하면서 조사하는 마음이 : ⑦조사
(8) 결정하면서 결정하는 마음이 차례대로 일어났다가 멸한다 : ⑧결정
(9)~(15) 그 다음에 29가지 욕계의 자와나(속행) 가운데서 조건을 얻은 어떤 것이 주로 일곱 번 일어난다 : ⑨~⑮자와나
(16)~(17) 자와나 다음에 두 개의 등록이라는 과보의 마음이 적절하게 일어난다 : ⑯~⑰등록
* 그 다음에 바왕가로 들어간다 : 바왕가의 흐름
[해설]
(1) 하나의 마음순간을 지난 뒤 :
①인식과정이 능동적으로 진행되지 않을 때 바왕가들은 모두 같은 형태로서 연속적으로 계속 흘러간다
②그러다가 일단 감각의 대상이 일어나 (그 대상이) 감각의 문으로 들어오는 그 순간에
하나의 바왕가가 흘러가 버린다(지나간 바왕가)
(물질이 일어나는 순간은 너무나 미약하므로 그냥 바왕가가 하나 지나간다)
(2)~(3) 바왕가의 동요, 바왕가의 끊어짐 :
①지나간 바왕가 다음에 두 개의 바왕가가 대상의 충돌 때문에 흔들린다
②이 두 개 중에서 나중 것이 바왕가의 흐름을 끊는다
③그래서 복주석서들에서는 앞의 것을 ‘바왕가의 동요’, 뒤의 것을 ‘바왕가의 끊어짐’ 이라 부른다
(4) 오문전향의 마음 :
①오문전향의 마음이 일어남과 함께 바왕가의 흐름은
②‘과정을 벗어나 있는 상태’ 로부터 나와서 ‘인식과정’으로 돌입하게 된다
(9)~(15) 29가지 욕계의 자와나(속행) 중에서 :
①29가지 : 12가지 해로운 마음, 8가지 유익한 마음, 8가지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미소짓는 마음
②속행에서는 오직 하나의 마음이 일곱 번 계속 일어난다
(7번 속행 중에서 다른 마음들이 섞여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⑨번 자와나는 해로운 마음이었는데 ⑩번 자와나는 유익한 마음이었다라는 것은 없다)
4. p.361의 망고 먹는 비유에서
①망고나무 아래서 잠에 들어있다 - 바왕가의 흐름
②익은 망고가 잠자는 사람의 귀를 스치며 떨어진다 - 지나간 바왕가, 바왕가의 동요, 바왕가의 끊어짐
③그 소리에 깨어난다 - 오문전향
④눈을 떠서 바라본다 - 눈의 알음알이
⑤손을 뻗어 망고를 잡는다 - 받아들임
⑥망고를 압박하여 짠다 - 조사
⑦냄새를 맡는다 - 결정
⑧망고를 먹는다 - 자와나(속행)
⑨망고의 맛을 느끼며 삼킨다 - 등록
⑩다시 잠에 든다 - 바왕가의 흐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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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해서 질문드리자면
인식과정의 어디에서 어떤식으로 내 의지가 개입이 되나요?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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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담마에서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는 마음(citta) 혹은 알음알이(식, vin$n$aan*a)입니다. 이런 마음은 찰라생찰라멸하는 것으로 앞의 마음과 뒤의 마음이 시로 상속합니다. 하나의 마음이 한 찰라에 일어나서 대상을 알고 멸하면 이것을 조건으로 하여 다음 마음이 일어나서 대상을 알고 멸하고 다시 이것을 조건으로 다음 마음이 ... 이렇게 마음은 찰라생찰라멸을 하면서 연속합니다. 조건생조건멸인 중중무진한 연기로 마음은 상속합니다. 이것은 아비담마 길라잡이 8장과 청정도론 17장에서 철저하게 분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기에 바탕한 마음의 흐름을 심상속(citta-santati)라합니다. 소위 말하는 나의 의지는 마음이 일어날때 반드시 함께 일어나는 여러 마음부수들 가운데 특히 모든 마음이 일어날때 반드시 함께 일어나는 일곱가지 반드시들 가운데 하나인 의도(cetanaa)입니다.
이것은 아비담마의 상식 중의 상식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정신 부분을 마음과 마음부수들의 결합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비담마고 이것은 초기불교의 오온가운데 수상행식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식은 마음이고 수상행은 마음부수입니다. 아비담마에서는 이렇게 정밀하게 분석하여 우리의 모든 심적 물적인 현상을 철저하게 설명합니다. 아비담마에 대한 차분한 사유를 하시면 법우님이 가지신 모든 의문은 아비담마를 통해서 명쾌하게 이해될 것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간략히 이정도로 답변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4-1. 망고 먹는 비유에서 알 수 있는 사실들
①이런 전체 인식과정은 어떤 ‘자아’나 ‘주체’가 배후에서 ‘경험자, 지배자, 아는 자’로 있는 것이 아니다
②즉 ‘자아’나 ‘주체’가 이런 인식과정을 경험하거나 지배하거나 저 밖에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다
③찰나적인 마음들 그 자체가 인식과정에 필요한 모든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④이 인식과정에 개재된 마음들은 마음의 정해진 법칙에 따라 생겨난다
⑤그것은 ‘이전의 마음’과 ‘대상’과 ‘문’과 ‘육체적인 토대’ 등의 조건에 의지해서 일어난다
⑥일어나서는 그 자신의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고 다음 마음의 조건이 되어 소멸하고
⑦다시 다음 마음도 일어나서 같은 방법으로 소멸한다
⑧이렇게 우리의 마음은 정해진 법칙에 따라서 끊임없이 생멸을 거듭하면서 흘러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17개의 마음순간이 완성되었다
14개의 인식과정에 일어나는 마음과 3개의 바왕가를 합한 것이다
이 대상을 ‘매우 큰 것’이라고 부른다
[해설]
1. 이 대상을 매우 큰 것 이라고 부른다 :
①이 대상이 ‘매우 큰 것’은 지나간 바왕가가 일어나는 순간에 같이 일어난다
②그리고 두 번째 등록의 마음과 더불어 소멸한다
②-1 감각대상과 감각기관은 둘 다 물질로 17심찰나 동안 존속하기 때문에 하나의 인식과정에서 마지막인 17번째의 마음순간에 해당하는 두 번째의 등록의 마음이 소멸할 때 대상이었던 그 물질도 소멸한다
③하나의 인식과정에서 ‘오문전향’부터 ‘등록’까지 14가지 마음들이 인식과정에 속하는 마름들이다
④이런 인식과정은 ‘등록에서 끝나는 과정’으로 불린다
2. 대상이 ‘매우 큰 것’의 인식과정을 정리하면
①형상을 가진 대상이 눈의 감성에 부딪치면 눈의 알음알이가 일어난다
①-1 이 눈의 알음알이는 눈의 감성에 부딪친 그 형상을 대상으로 눈의 토대를 의지하여 일어난다
①-2 눈의 알음알이의 토대는 눈의 감성이고 그 문도 눈의 감성이다
②오문전향, 받아들임, 조사, 결정의 마음들, 속행들, 등록의 마음들은 모두 마노의 알음알이들이다
③이들도 모두 같은 형상을 대상으로 가지며 눈의 감성을 문으로 하지만, 토대는 심장토대를 의지하여 일어난다
④그런데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마음들은 모두 바왕가를 문으로 가진다고도 할 수 있다
④-1 전체과정은 모두 바왕가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3. 그러므로 모든 감각의 문에서 일어나는 생각과정은 두 가지 문을 가진다
①(각각 일어나는 그) 물질의 감성을 특별한 문으로 가지고
②마노의 문, 즉 바왕가를 공통의 문으로 가진다
③예를 들면, 눈의 문에서 일어난 인식과정에 대해서
‘눈의 문의 인식과정’이라 하고, ‘눈의 알음알이의 인식과정’이라고도 한다
* 그리고 17마음순간은 매우 큰 대상에서 일어난 인식과정이므로
‘매우 큰 대상에서 일어난 인식과정’이라고 한다
<큰 대상>
등록이 일어날 때까지 존속할 수 없고 [2~3개의 마음순간이] 지나간 뒤 영역에 나타난 대상을 ‘큰 것’이라 한다
여기서는 자와나(속행)의 끝에 바왕가로 들어간다
등록은 일어나지 않는다
[해설]
1. ... 나타난 대상을 ‘큰 것’이라 한다 :
①이와 같은 인식과정에서는 대상이 일어난 후 2~3개의 ‘지나간 바왕가’가 흘러간다
(왜냐하면 이때는 ‘형상, 눈의 감성, 빛’ 중의 어느 하나가 대상이 ‘매우 큰 것’만큼 부딪치는 충격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②그러면 등록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물질찰나1개는 마음찰나17개 만큼의 시간인데, 지나간 바왕가가 2~3개이면 전체마음순간은 18~19개가 되기 때문이다, 물질찰나1순간에 대해서 마음찰나는 17개를 넘을 수 없다)
③그럼 지나간 바왕가가 2개인 경우와 3개인 경우에 대상은?
(가) 2개 : 대상과 감각의 문은 모두 물질인데, 이들은 속행들 다음에 따라오는 ‘첫번째 바왕가의 소멸과 동시에 소멸한다
(나) 3개 : 마지막 속행의 마음이 소멸하는 순간 동시에 소멸한다
④그래서 이런 인식과정을 ‘속행으로 끝나는 과정’이라고 부른다
<작은 대상>
자와가(속행)가 일어날 때까지 존속할 수 없고 [4개에서 9개의 마음순간이] 지나간 뒤 영역에 나타난 대상을 ‘작은 것’이라 한다
여기서는 속행이 일어나지 않고 두 번 혹은 세 번의 결정만이 일어난다
그 다음에 바왕가로 들어간다
[해설]
1. 나타난 대상을 ‘작은 것’이라 한다 :
①이와 같은 인식과정에서는 4~9개의 지나간 바왕가들이 먼저 지나간다
②여기서는 결정하는 마음만이 두 번 혹은 세 번 일어나고 속행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③그 다음에 인식과정은 바왕가로 들어간다
④이 인식과정은 지나간 바왕가의 차이만큼(4~9개이므로) 여섯 종류가 있다
⑤이런 종류의 인식과정은 ‘결정으로 끝나는 과정’이라 부른다
<매우 작은 대상>
결정이 일어날 때까지 존속할 수 없고 [10개에서 15개의 마음순간이] 지나간 뒤 영역에 나타난 대상을 ‘매우 작은 것’이라 한다
여기서는 바왕가의 동요만 있을 뿐이다
인식과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해설]
1. ... 나타난 대상을 ‘매우 작은 것’이라 한다 :
①여기서는 인식과정의 마음은 일어나지 않고 바왕가의 동요만이 일어난다
②그래서 대상은 결정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까지 존속할 수 없다
③대상이 너무 작은 것이라서 바왕가의 동요만 있을 뿐 실제 인식과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④그래서 ‘효과가 없는 과정’이라 부른다
이와 같이 눈의 문에서처럼 귀의 문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다섯 가지 문에서 (1) 등록에서 [끝나는 과정] (2) 속행에서 [끝나는 과정] (3) 결정에서 [끝나는 과정] (4) 효과가 없는 과정 이라 불리는 네 가지의 대상의 나타남을 네 종류로 순서대로 알아야 한다
[해설]
1. 이와 같이 눈의 문에서처럼 귀의 문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①눈의 문에서 대상이 ‘매우 큰 것’ ‘큰 것’ ‘작은 것’ ‘매우 작은 것’이 있었다
②이것을 달리, ‘등록에서 [끝나는 과정]’ ‘속행에서 [끝나는 과정]’ ‘결정에서 [끝나는 과정]’ ‘효과가 없는 과정’의 네 가지로 말할 수도 있었다
③그것을 다시 ‘지나간 바왕가’의 개수로 분류하면, 15등급이 된다
④눈의 문에서처럼, 귀, 코, 혀, 몸의 문에서도 ‘지나간 바왕가’의 개수로 분류하면 15등급이 된다
⑤그래서 모두 75가지 감각의 문의 인식과정이 존재한다 15×5=75
인식과정의 마음은 7종류이고 마음은 14번 일어난다
상세하게 설하면 5문에서 적절하게 54가지 마음이 있다
[해설]
1. 인식과정의 마음은 7종류이고 ... :
①‘지나간 바왕가, 바왕가의 동요, 바왕가의 끊어짐’은 인식과정의 마음으로 안 본다
②‘오문전향, 알음알이, 받아들임, 조사, 결정, 속행7, 등록2’ 의 7종류의 마음이 인식과정의 마음들이다
③이 7종류의 마음은 모두 14가지다 (1+1+1+1+1+7+2=14)
④그리고 욕계의 마음 54가지 모두가 이 五門에서 일어난다
2. 지나간 바왕가, 바왕가의 동요, 바왕가의 끊어짐 :
①이들은 모두 바왕가의 한 형태다
②그래서 육문으로 들어온 감각의 대상을 아직 자기의 대상으로 삼지 못한다
③이들의 대상은 바로 전생의 죽음 직전의 속행이 취한 ‘업’이나 ‘업의 표상’이나 ‘태어날 곳의 표상’ 중에서 하나다
④단, ‘외래의 바왕가’는 바왕가라는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감각의 대상을 자기의 대상으로 가진다
이하는 모두 레디 사야도의 설명입니다.)
3. 후속의문인식과정 = 五門에 뒤따르는 인식과정(의 상세한 설명)
* 예를 들어 눈의 문에서의 인식과정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 먼저 ‘그와 일치하는 意門에서의 인식과정’이 생기는데, 이것은 오문(여기서는 눈의 문)에서의 인식과정에서 인지된 대상을 마노의 문에 재생하는 역할을 한다
①그러면 그 대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이 뒤따르고
②그 다음에는 색깔을 주시하는 과정이
③그 다음에는 실체를 파악하는 과정이
④그 다음에는 실체를 인식하는 과정이
⑤그 다음에는 이름을 파악하는 과정이
⑥그 다음에는 이름을 인식하는 과정이 뒤따른다
4. 다시 설명하면
(1) 대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과정
①이전의 원래 오문에서의 인식과정과 그와 일치하는 의문에서의 인식과정의 두 가지 과정을 통해 반복인식된 것을 전체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이다
②이 과정은 종합하는 역할을 실행하는데, 마치 빙빙 돌리는 횃불을 불의 바퀴처럼 인식하는 것과 같다
(2) 색깔을 주시하는 과정
①이것이 생겨야 색깔을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다
②그래야 비로소 ‘나는 푸른색을 본다’와 같이 색깔을 인식하게 된다
(3)~(4) 실체를 파악하는 과정, 실체를 인식하는 과정
①실체를 인식하는 것이 일어날 때 비로소 실체, 즉 형태를 인식하게 된다
②여기서 실체란 자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어떤 형태’를 말한다
(5)~(6) 이름을 파악하는 과정, 이름을 인식하는 과정
①이름에 대한 인식이 일어날 때 이름을 인식하게 된다
(②‘나무구나’라는 등으로 이름을 인식하게 된다)
예를 들면
물질이 오문 가운데 하나에 부딪치게 되면 오문인식과정과 의문인식과정이 일어납니다.이 과정들을 요약하면
-지나간 바왕가
-바왕가의 동요
-바왕가의 끊어짐
(이 바왕가의 끊어짐은 감성의 문을 통해 대상이 나타나기 바로 전에 마지막 일어나는 바왕가를 의미함)
-오문전향의 마음 (작용만 하는 마음)
-오식(안식등) (과보심)
-받아들이는 마음 (과보심)
-조사하는 마음 (과보심)
-결정하는 마음 (작용만 하는 마음)
-7개의 자와나(유익한 마음 혹은 해로운 마음+아라한이 아님 경우)
-2개의 등록하는 마음(이 등록은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음)........(17찰나)
더러운 대상(똥)을 만졌다고 했을 때
오문인식과정(17심찰나)에서 그 대상에 대한 감촉의 느낌을 경험하는 인식과정이 일어나고
그 다음에 그 감촉에 대한 인식과정이 마노에서 그대로 재생되어 의문인식과정이 발생하는데
대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의문인식과정(12찰나)
감촉을 전체적으로 느끼는 의문인식과정(12심찰나)
실체를 파악하는 의문인식과정(12심찰나)
실체를 인식하는 의문인식과정(12찰나)
이름을 파악하는 의문인식과정(12찰나)
이름을 인식하는 의문인식과정(12찰나)
이런식으로 일어나다고 합니다.(최대 총 89심찰나)
이와같은 인식과정이 지나고 나서 똥을 대상으로 놀라고 성을 내고 화를 내는 과정이 일어나고 성냄이라는 마음부수가 일어나서 성을 낸다고 합니다.
5. 위의 설명에서 알 수 있는 사실
①오문인식과정만으로는 대상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다
②뒤따라서 (1)~(6)의 의문속행과정이 일어나야만 우리는 이런저런 특별한 생김새에 대해,
‘나는 이런저런 특별한 생김새를 본다’라고 알게 된다
③결국 우리는 오문인식과정 뒤에도 무수히 일어나는 의문인식과정들을 거쳐서 대상을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意門인식과정
[해설]
1. 오문에서의 인식과정은
(1) 육체적인 감각의 문과
(2) 마노의 문, 이렇게 두 가지 문이 실재로 개입한다
2. 그러나 의문에서의 인식과정은 오직 마노의 문에서만 일어난다 그래서 이 인식과정을 순수한 의문인식과정이라고 부른다
2-1. 의문인식과정에는 두 종류가 있다
(1) 제한된 속행과정 : 제한된 속행을 가진 욕계의 인식과정이고
(2) 본삼매 속행과정 : 색계, 무색계의 고귀한 마음과 출세간의 증득과 관계되는 본삼매에서의 인식과정이다
제한된 속행과정
1. 뜻
①자와나(속행)가 7번으로 제한되었으므로 제한된 속행과정이라 한다
②이 제한된 속행과정에는 두 종류가 있다
(가) 五門에 뒤따르는 인식과정과
(나)독립된 인식과정이다
2. 레디 사야도의 기본 설명(이하 다른 번호도 모두 레디 사야도의 설명임)
①일단 하나의 오문인식과정이 끝나면 (이) 과거의 감각대상은
②마노의 문의 영역에 들어와서 많은 의문인식과정들을 생기게 만든다
③이것은 오문인식과정의 속편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후속과정으로 명명되기도 하며
④이런 인식과정은 오문에서 벌어지는 ‘맨인식과정에서는 일어나지 못하고,
이 후속과정에서야 비로소 선명한 대상의 인식이 일어나므로
(⑤오문인식과정을 ‘오문 맨인식과정’, 후속인식과정을 ‘의문 후속인식과정이라 부르자)
독립된 인식과정
1. 뜻
①눈의 문 등과 결합하지 않고 ‘마노의 문, 하나에서만 일어나는 인식과정’이다
②따라서 이 인식과정은 다섯 가지 감각의 문에 뒤따르는 인식과정이 아니고
③여섯 가지 대상들이 직접 마노의 문의 영역으로 들어와서 일어나는 인식과정이다
2. 어떻게 대상이 가까운 감각기관과 충돌하지 않고 직접 마노의 문으로 들어올 수 있는가?
(아래는 모두 레디 사야도의 셜명입니다)
(가) 이전에 직접 본 것을 통해서
(나) 직접 본 것을 바탕으로 추론함으로써
(다) 구전으로 배운 것을 통해서
(라) 구전으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추론함으로써
(마) 믿음이나 견해나 추론이나 숙고함을 통해 견해를 받아들임으로써
(바) 업력이나 신통력이나 사대의 부조화나 천신의 영향이나 이해나 깨달음 등을 통해서
오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의문에서 인식과정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3. 다시 설명하면
①누가 대상을 단 한번이지만 분명하게 경험했다면 그 대상을 의지하여 어떤 조건이 생겨나서 나중에 바왕가를 동요하게 만든다
②그 시기가 백년 혹은 다음 생이든 수십 생 다음이든 상관없이 이전에 경험했던 것이 마노의 문에 대상으로 나타난다
③이렇게 마음은 단 한 순간에 이전에 경험한 수천 수만의 대상들에게까지 퍼져나가는,
극도로 예민하고 민감한 것이므로
④五門을 거치지 않고 바로 마노의 문에 대상이 일어나는 독립된 인식과정이 있는 것이다
4. 어떻게 바왕가의 흐름이 인식의 알음알이로 전환되는가?
①마음의 흐름[相續]은 끊임없이 마음과 대상의 인과관계의 영향에 자극받아
②항상 바왕가의 흐름으로부터 나올 기회를 찾으면서 대상을 분명하게 인식하려 한다
③이렇게 마음은 끊임없이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마음에 잡도리함[作意]),
④이 ‘마음에 잡도리함’이라는 마음부수법이 바왕가를 계속 동요하도록 만들고, 마음이 일어날 조건을 이미 갖춘 대상들로 거듭거듭 전향하게 한다
⑤그래서 레디 사야도는 비록 바왕가가 자기의 대상을 가지고 있지만,
“바왕가는 다른 대상으로 기우는 형태로 일어난다”라고 설명한다
⑥바왕가에 내재해 있는 이 ‘작의’ 때문에 바왕가는 영속적인 경고음을 내다가
⑦어떤 대상이 아주 현저한 상태가 되면 바왕가의 흐름으로부터 알음알이의 흐름을 끄집어낸다
⑧그리고 그 대상은 마노의 문에서 일어나는 인식의 영역으로 바로 들어온다
이렇게 해서 독립된 인식과정이 성립된다
5. 독립된 인식과정은 여섯 종류로 분석된다
①직접 본 것을 바탕으로 한 인식과정
②직접 본 것으로부터 추론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 인식과정
③구두로 전달된 것을 바탕으로 한 인식과정
④구두로 전달된 것으로부터 추론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 인식과정
⑤인지된 것을 바탕으로 한 인식과정
⑥인지된 것으로부터 추론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 인식과정
* 여기서 ‘인지된 것’ : 믿음, 이해, 견해, 깨달음을 포함하고,
‘인지된 것으로부터 추론하는 것’ : 귀납적이고 연역적인 논법으로 도달한 판단들을 포함한다 만약 마음의 문의 영역에 <선명한 대상>이 나타나면 그때 바왕가의 동요와 의문전향과 속행과, 속행의 끝에 등록의 과보가 일어난다. 그 다음에 바왕가로 들어간다
<대상이 희미>할 때 속행의 끝에 바왕가로 들어간다. 등록은 일어나지 않는다
[해설]
1. 욕계와 관련된 의문인식고정은 :
①대상이 <선명한 것>과 <희미한 것>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된다
②레디 사야도는 마음의 문에서도 역시 대상은 ‘매우 선명한 것’, ‘선명한 것’, ‘희미한 것’,
‘매우 희미한 것’의 4가지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2. 선명한 대상이 영역에 나타날 때 :
①선명한 대상이 마노의 문의 통로에 들어오면 바왕가는 동요한 뒤 끊어진다
②그러면 의문전향의 마음이 대상으로 향하게 되고
③바로 이어 7번의 속행과 2번의 등록이 일어난다
④그 다음에 다시 그 과정은 바왕가로 내려앉는다
⑤그러나 색계, 무색계의 존재들에게는 선명한 대상이더라도 등록의 순간은 일어나지 않는다
3. 대상이 희미할 때 :
①어떤 경우에도 등록은 일어나지 않는다
②레디 사야도는 이 경우를 3가지로 본다
(가) 단지 바왕가의 동요만으로 과정이 끝나는 경우
(나) 2~3번의 의문전향이 일어나는 것으로 과정이 끝나는 경우
(다) 속행이 일어나고 등록은 안 일어나는 인식과정의 경우
3. 그래서 레디 사야도는 마음의 문에서도 대상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①매우 선명한 것 : 등록으로 끝남
②선명한 것 : 자와나(속행)로 끝남
③희미한 것 : 의문전향으로 끝남
④매우 희미한 것 : 단지 바왕가의 동요만으로 끝남
⑤여기서 대상의 선명도는 대상의 탁월함이나 알음알이의 강도에 달린 것이다
⑥예를 들어, 빚쟁이가 생각나면 대상이 선명한 것이고, 통찰지가 일어날 때도 대상은 선명한 것이다
(욕계 속행의 의문)인식과정의 마음은 3종류이고 마음은 10번 일어난다
상세하게 설하면 41가지 마음이 있다
이것이 여기서 제한된 속행의 과정이다
[해설]
1. 인식과정의 마음은 3종류이고 : 의문전향, 속행, 등록
2. 마음은 10번 일어난다 : 의문전향1, 속행7, 등록2
3. 41가지 마음 : 욕계 마음 54 - (한 쌍의 전오식10 + 오문전향1 + 받아들이는 마음2) = 41
4. 여기서 세 가지 조사하는 마음은 등록의 역할로 나타나고,
결정하는 마음은 의문전향의 역할로 나타난다
의문에서 본삼매 속행과정의 예비지식
[해설]
1. 삼매와 본삼매
①삼매 : 유익한 마음의 하나됨(善心一境性) (청정도론 제1권, p.268)
②본삼매 : 삼매를 근접삼매와 본삼매의 두 가지로 나눌 때의 본삼매 (같은 책, p.270)
2. 본삼매의 뜻
①‘[마음을 한 곳으로] 향하게 함, 고정시킴’이 일차적인 뜻이다
②‘일으킨 생각[尋]’이 크게 계발된 상태다
③이 일으킨 생각이, 함께 생긴 마음부수법들과 더불어 아주 깊게 대상에 몰입하여,
이 모두가 그 대상에 몰입된 경지다
④본삼매에 드는 과정 : 하나의 명상주제에 집중 -> 익힌 표상 -> 닮은 표상 -> 근접삼매 -> 본삼매에 이른다
⑤본삼매라는 술어는 색계와 무색계와 출세간의 禪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정의 증득에 다 사용된다
3. 인식과정과 관련하여 :
①본삼매에서는 모두 속행(자와나)만이 일어난다
②속행의 끝에 그 본삼매에서 나올 때 바왕가로 가라앉게 된다
③그래서 본삼매 속행과정이라 한다
본삼매 속행과정
본삼매에서 [일어나는] 속행의 과정에는 대상이 선명하고 희미한 차이는 없다
마찬가지로 등록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본삼매 속행 과정의] 경우에 8가지 지혜와 연결된 욕계의 속행 중에서 어떤 하나가 순서대로
‘준비, 근접, 수순, 종성(고뜨라부)’으로 네 번 혹은 세 번만 일어났다가 멸한다
멸한 다음 곧 바로 적절하게 네 번째나 혹은 다섯 번째에 26가지 고귀한 속행과 출세간의 속행 중에서 어떤 하나가 마음을 기울인 것에 따라 본삼매의 과정으로 들어간다
그 다음 본삼매의 끝에 바왕가로 들어간다
[해설]
1. 대상이 선명하고 희미한 차이는 없다 :
왜냐하면 선정의 경지는 대상을 분명하게 파악했을 때 얻어지기 때문이다
2 8가지 지혜와 연결된 욕계의 속행 중에서
(1) 본삼매에 이르는 과정
①수행자가 禪이나 도나 과의 경지에 들려할 때 먼저 의문전향이 일어난다
②그 다음 아주 빠르게 일련의 욕계의 자와나들이 일어난다
이 자와나들은 ‘근접, 준비, 수순, 고뜨라부의 마음들’이다
③그리고 마음은 욕계에서 본삼매로 나아간다
(2) 본삼매 속행으로 일어나는 마음
①범부나 유학 : 지혜와 함께 한 네 가지 유익한 욕계의 마음들 중의 하나가
②아라한의 경우 : 지혜와 함께 한 네 가지 단지 작용만 하는 욕계의 마음들 중의 하나가
속행으로 일어난다
3. 순서대로 ‘근접, 준비, 수순, 고뜨라부...’ :
(1) 준비 : ‘주위를 정돈함, 준비, 봉사, 시중들기’ 등의 뜻으로 쓰이며
본삼매를 증득하도록 다음의 정신적인 과정을 준비한다
(2) 근접 : ‘다가감, 접근, 들어감, 입구’ 등의 의미로 쓰이며
본삼매에 가까이 간 경지이므로 근접[삼매]라 부른다
(3) 수순 : ‘자연적인 순서대로, 순리대로, 적당한’ 등의 뜻을 가지며
본삼매에 들기 두 단계전의 심찰나인데
뒤의 본삼매와 앞의 근접삼매 둘 모두에 수순하는 경지다
(4) 고뜨부라 :
①종성(種姓)으로 옮기며, ‘성을 가지게 되는 경지’다
②근접삼매에서 본삼매로, 즉 욕계에서 색계로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의 심찰나를 나타내는 술어이며, 이런 의미에서 계통을 바꾸는 마음이다
③종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
(가) 선의 증득의 경우 : 범부혈통에 속하는 마음들을 극복하고 -> 고귀한 혈통의 마음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나) 첫 번째 도의 경우 : 범부의 혈통에서 -> 성자의 혈통으로 바뀌기 때문에 종성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④결국 종성은 : 욕계로부터 -> 본삼매로 들어가거나 범부에서 -> 성자가 되는 것이다
4. 멸한 다음 곧 바로 ... :
①종성의 마음의 바로 다음에
예리한 기능[根]들을 갖춘 자 - 네 번째 자와나(속행)에서
보통의 기능을 갖춘 자 - 다섯 번째 자와나에서 본삼매에 속하는 첫 번째 자와나가 일어난다
②이것은 ‘색계 유익한 마음5, 색계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5, 무색계 유익한 마음4, 무색계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4, 도의 마음4, 과의 마음4’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모두 26가지다.
③본삼매 속행과정에서 주의할 점
(가) 이들 각 순간의 자와나(속행)들은 각각 다른 종류일 수 있고, 일어나는 곳까지도 다를 수 있다
(나) 물론 욕계의 한 인식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와나 7개는 반드시 같은 종류의 자와나다
5. 마음을 기울인 것에 따라 :
①본삼매의 속행에서 일어나는 마음들은 수행자가 그의 마음을 기울이는 방향에 조건 지워져 있다
②만일 그가 초선을 증득하기를 원하면 그는 고요한 사마타를 닦아서 그의 마음을 초선에 도달하도록 한다
②-1 같은 방법으로 나머지 禪의 방법에 도달하도록 한다
③만일 수행자가 도나 과를 증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그는 위빳사나를 닦아서 그의 마음이 그런 경지에 도달하도록 한다
6. 본삼매의 끝에 :
①본삼매의 끝에는 바로 바왕가로 가라앉게 된다
②등록은 일어나지 않는다
준비단계의 마음들과 본삼매 마음들과의 상관관계
기쁨이 함께 한 속행의 바로 다음에는 본삼매도 오직 기쁨이 함께 한 것이 기대된다
평온이 함께 한 속행의 바로 다음에는 본삼매도 평온이 함께 한 것이 일어난다
그곳에서 유익한 속행 바로 다음에는 유익한 속행과 낮은 단계의 세 가지 과를 통해 본삼매에 든다
단지 작용만 하는 속행 바로 다음에는 단지 작용만 하는 속행과 아라한과를 통해 본삼매에 든다
요약
지혜와 기쁨이 함께 한 유익한 마음 다음에는 32가지
지혜와 평온이 함께 한 유익한 마음 다음에는 12가지
지혜와 기쁨이 함께 한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다음에는 8가지
지혜와 평온이 함께 한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다음에는 6가지 [본삼매속행]이 일어난다
범부와 유학의 경우 세 가지의 원인을 가진 욕계의 유익한 마음 다음에 [본삼매속행]이 일어나고
탐욕을 여윈 [아라한의 경우] 세 가지 원인을 가진 욕계의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다음에 [본삼매속행]이 일어난다
[해설] : (여기서는 도의 마음과 과의 마음을 8가지에서 -> 40가지로 확대한다)
1. 기쁨이 함께 한 유익한 마음 다음에는 : 즉 (31)(32) 마음 다음에는
①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는 마음 2가지가 본삼매에 들기 위한 준비단계의 역할을 할 때 ->
②초선~제4선의 고귀한 유익한 마음4 + 초선~제4선까지의 경지에 있는 도의 마음16 + 아라한과를 제외한 초선~제4선의 경지에 있는 과의 마음12 = 32가지 마음이 본삼매에서 속행으로 일어난다
2. 평온이 함께 한 유익한 마음 다음에는 : (35)(36) 마음 다음에는
①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는 마음 2가지가 본삼매에 들기 위한 준비단계의 역할을 할 때 ->
② 제5선의 고귀한 유익한 마음1 + 무색계의 고귀한 유익한 마음4 + 제5선의 경지에 있는 도의 마음4 +
아라한을 제외한 제5선의 경지의 과의 마음3 = 12가지 마음이 본삼매에서 속행으로 일어난다
3. 기쁨이 함께 한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다음에는 : (47)(48)의 마음 다음에는
①기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는 (47)(48)의 마음인 아라한의 경우 ->
②초선~제4선까지 경지의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4 + 초선~제4선 까지의 경지에 있는 아라한과의 마음4
= 8가지 마음이 본삼매에서 속행으로 일어난다
4. 평온이 함께 한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다음에는 : (51)(52)의 마음 다음에는
①평온이 함께 하고 지혜가 있는 (51)(52)의 마음인 아라한의 경우 ->
②제5선의 고귀한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1 + 무색계의 고귀한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4 + 제5선의 경지에 있는 아라한과의 마음1 = 6가지 마음이 본삼매에서 속행으로 일어난다
5. 범부와 유학의 경우 세 가지의 원인을 가진 욕계의 ... :
①이 말은 ‘예류와 일래와 불환의 도와 과를 얻을 원인을 가진’이란 뜻이다
②범부와 유학들이 지혜와 함께 한 유익한 마음 4가지((31)(32)(35)(36))로 본삼매에 들 때
-> 44가지 마음이 본삼매에서 속행으로 일어난다 (앞의 1, 2 에 있는 32+12=44)
③지혜와 함께 한 4가지 욕계의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으로((47)(48)(51)(52)) 본삼매에 든 아라한의 경우
-> 14가지 마음이 본삼매에서 속행으로 일어난다 (앞의 3, 4 에 있는 8+5=14)
2. 그곳에서도 기쁨이 함께 한 단지 작용만 하는 속행 끝에는 등록의 마음이 기쁨과 함께 한다
평온이 함께 한 단지 작용만 하는 속행 끝에는 등록의 마음이 평온과 함께 한다 (재인용)
2. 그곳에서도 ... :
①이 문장이 여기에 포함된 이유는 과보의 마음은 대상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②아라한의 단지 작용만 하는 욕계의 자와나들도 대상과 일치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③아라한이 열렬히 원하는 대상을 경험할 때
그의 자와나는 -> 기쁨과 함께 하는 네 가지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중의 하나가 일어나고
등록은 -> 기쁨이 함께 하는 다섯 가지 과보의 마음 중의 하나가 일어난다
④아라한이 원하지 않거나 보통으로 원하는 대상을 경험하면
자와나는 -> 평온이 함께 하는 네 가지 과보의 마음 중의 하나가 일어나고
등록은 -> 평온이 함께 하는 여섯 가지 과보의 마음 중의 하나가 일어난다
2-1. 레디 사야도의 설명
①아라한들의 대상과 단지 작용만 하는 자와나들의 상관관계는
그들의 자와나가 일어나는 자연적인 방식에 관해서 말한 것일 뿐이며
②적절한 결심에 의해서
아라한은 열렬히 원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평온이 함께 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고
원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도 기쁨이 함께 한 마음들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③여기에 관해서 레디 사야도가 인용한 ‘인드리야 바와나 숫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난다여, 여기 비구가 눈으로 형색을 볼 때 기쁨이 일어나기도 하고, 불만족이 일어나기도 하고, 기쁨과 불만족 둘 다 일어나기도 한다. 만일 그가 원하기만 하면 그는 혐오스러운 것을 혐오스럽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며 머문다. 만일 그가 원하기만 하면 혐오스럽지 않은 것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며 머문다. ... 만일 그가 원하기만 하면 그는 혐오tm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 둘 다를 피하고 마음챙기며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평온하게 머문다.”
등록의 법칙
특정한 순간에 일어나는 특정한 마음은 제멋대로 일어나는 게 아니고 엄격히 정해진 법칙에 의해서 일어난다
등록의 분석
1-1. 모든 경우에 대상이 원하지 않은 것일 때 다섯 가지 알음알이[前五識]와 받아들이는 마음과 조사하는 마음과 등록의 마음은 해로운 과보의 마음이다
1-2. 원하는 것일 때 그들은 유익한 과보의 마음이다
1-3. 대상이 열렬히 원하는 것일 때 조사하는 마음과 등록하는 마음은 기쁨이 함께 한다
2. 그곳에서도 기쁨이 함께 한 단지 작용만 하는 속행 끝에는 등록의 마음이 기쁨과 함께 한다 평온이 함께 한 단지 작용만 하는 속행 끝에는 등록의 마음이 평온과 함께 한다
[해설]
1. 대상을 세 가지로 분류하면 :
①감각의 대상은 ‘원하지 않는 것’, ‘원하는 것’, ‘열렬히 원하는 것’의 세 가지로 분류된다
②아비담마에 의하면 대상에 드러나는 이 차이점은 그 대상에 본래부터 내재해 있다고 한다
③이것은 대상을 경험하는 자의 기질이나 선호도에 따라서 다르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④‘위방가’의 주석서인 ‘삼모하 위노다니’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등으로 다르게 여기는 것은 그 사람의 인식의 전도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⑤누가 아무리 다르게 보더라도 그 대상은 본성적으로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⑥이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대상이 가지는 고유한 성질의 차이는 보통사람에 의해 알아진다고 한다
⑦이렇게 대상을 ‘원하지 않는 것’, ‘원하는 것’, ‘열렬히 원하는 것’으로 경험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의 업에 의해 지배된다
⑧그러므로 경험된 대상은 업이 과보의 마음으로 익도록 업에게 기회를 부여한다
⑨과보의 마음들은 아무 고의성이 없이 대상의 성질과 자연히 일치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실제 얼굴의 특징과 일치하는 것과 같다
1-1. ‘원하지 않는 것’을 경험하는 경우
①해로운 업[不善業]의 힘으로 우리는 원하지 않은 대상과 마주치게 된다
②그래서 인식과정에서 대상을 인식하는 과보의 마음들은 그 해로운 업이 익어서 나타난 것이다
③이런 경우에 전오식, 받아들이는 마음, 조사하는 마음, 등록의 마음은 필연적으로 해로운 과보의 마음들이다
④이때 느낌은 身識은 고통이고, 나머지는 모두 평온이다
1-2, 1-3. 대상이 ‘원하는 것’, ‘열렬히 원하는 것’일 때
①이것은 유익한 업의 힘을 통해서 마주치게 된다
②그래서 인식과정에서 대상을 인식하는 과보의 마음들은 그 선업이 익어서 나타난 것이다
③이런 경우에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가지 알음알이, 받아들이는 마음, 조사하는 마음, 등록의 마음은 필연적으로 유익한 과보의 마음들이다
④이때 몸의 알음알이는 즐거움이고 나머지는 모두 평온이다
④-1 ‘열렬히 원하는 것’일 때에는 조사와 등록의 마음은 기쁨과 함께 한다
1-4. 등록의 역할을 담당하는 마음
(1) 대상이 원하지 않는 것 - 해로운 과보인 조사하는 마음이 전적으로 담당한다(19)
(2) 적당히 원하는 대상 - 유익한 과보인 평온이 함께 하는 조사하는 마음이나(27)
평온이 함께 하는 네 가지 큰 과보의 마음이 담당한다((35)~(38))
(3) 열렬히 원하는 대상 - 일반적으로 유익한 과보인 기쁨이 함께 하는 조사하는 마음(26)이나 기쁨이 함께 하는 네 가지 큰 과보의 마음이 담당한다((31)~(34))
1-5. 여기서 주의할 점
①과보의 마음들은 대상의 성질에 의해서 지배되지만 자와나(속행)는 결코 그렇지 않다
②자와나는 경험자의 기질이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③예를 들면,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서도 스님들께는 지혜나 평온이 함께 하는 유익한 마음들이 일어날 수 있고
④부정관을 닦는 스님은 섞어가는 시체를 기쁨과 지혜가 함께 하는 유익한 마음으로 주시할 수 있다
388 외래의 바왕가
그러나 불만족이 함께 한 속행 끝에는 등록의 마음들과 바왕가는 평온이 함께 한다
그러므로 만약 기쁨이 함께 한 재생연결을 가진 자의 경우 불만족이 함께 한 속행의 끝에 등록의 마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때 이전에 익숙한 어떤 작은 대상에 의지하여 평온이 함께 한 조사하는 마음이 일어난다(이것을 외래의 바왕가라 한다)
그 다음에 곧바로 바왕가로 들어간다고 스승들은 말씀하신다
[해설]
1. 그러나 불만족이 함께 한 속행 끝에는 ... :
①즐거운 느낌과 고통스런 느낌은 정반대의되는 것이므로
②둘 중의 하나의 느낌과 함께 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 바로 다음에 이 둘 중의 다른 느낌과 함께 하는 마음은 일어나지 못한다
②그렇지만 중립적인 느낌과 함께 한 마음은
이 둘 중의 하나와 함께 하는 느낌의 바로 앞이나 바로 다음(뒤)에 일어날 수 있다
③그러므로 자와나(속행)들이 불만족과 함께 할 때, 즉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일 때,
(가) 등록의 마음이 일어나면 -> (자와나들 다음의 이 등록은) 반드시 평온과 함께 하고
(나) 등록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 불만족과 함께 하는 자와나들 바로 다음(에) 바왕가가 일어난다. 물론 이때의 바왕가는 중립적인 느낌을 수반할 것이다
2. 그러므로 만약 기쁨이 함께 한 재생연결을 가진 자의 경우 ... :
①"만약 그가 불만족과 함께 한 자와나(속행)의 과정을 거쳤고, 또한 등록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②그의 바왕가는 기쁨이 함께 한 네 가지 큰 과보의 마음 중 하나이므로, 기쁨이 함께 하기 때문에 그의 속행의 불만족한 느낌과 바왕가의 기쁨의 느낌은 서로 상반될 것이다."
③그래서 이 경우에는 마지막 자와나(속행)가 바로 바왕가로 가라앉을 수도 없다
속행은 불만족이었고 바왕가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④이것은 ‘바로 앞의 마음과 정반대되는 느낌들을 수반하는 마음은 바로 다음에 일어날 수 없다는 법칙 때문이다
⑤이렇게 서로 상반된 느낌이 뒤따르게 될 때 에는 어떻게 되는가?
⑥아비담마의 스승들에 의하면 이 둘 사이에서 평온이 함께 하는 조사하는 마음이 단 한 심찰나 동안 일어난다고 한다 - 이것을 ‘외래의 바왕가’라 한다
⑦그것은 불만족이 함께 하는 자와나와 기쁨이 함께 하는 바왕가의 완충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⑧이런 경우 이 마음은 조사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⑨그것은 이 인식과정과는 다른 대상과 역할을 가진다. (이때 다른 대상과 역할이란?)
⑨-1 대상 - 이 인식과정과는 관계없는 자신에게 아주 익숙한 욕계의 대상을 가진다
⑨-2 역할 - 단지 바왕가의 정상적인 흐름으로 돌아가도록 길을 밟는 것(역할)일 뿐이다
⑨-3 이 특별한 역할을 하는 마음을 - ‘외래의 바왕가’라 한다
3. 다른 바왕가와 외래의 바왕가의 차이점
①지나간 바왕가, 바왕가의 동요, 바왕가의 끊어짐 - 도두 전생의 마지막 속행과정에서 나타난 ‘업, 업의 표상, 태어날 곳의 표상’ 가운데 하나를 그 대상으로 한다
②외래의 바왕가 - 자신에게 익숙한 욕계의 대상을 대상으로 가진다
속행의 법칙에 대한 예비지식
①속행도 역시 제멋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②속행도 정해진 법칙에 따라서 정확하게 일어난다
욕계의 속행
속행 중에서 제한된 속행의 과정에서 욕계의 속행은 일곱 번 혹은 여섯 번 일어난다
그러나 임종시와 같은 느린 과정에서는 다섯 번만 일어난다
세존께서 쌍신변(雙神變)을 나투시는 때와 같은 빠른 과정에서는 네 번 혹은 다섯 번의
반조하는 마음이 일어난다고 그들은 설한다 (1,29일 수정함)
-> "마음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그들은 설한다
[해설]
1.제한된 속행의 과정에서
①이 제한된 속행의 과정이라 불리는 욕계의 속행은 일곱 번 일어난다
②대상이 아주 약할 경우에는 여섯 번만 일어날 수도 있다
③죽음의 마음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에 진행되는 인식과정에서는 자와나가 다섯 번만 일어난다 - 심장토대가 약하기 때문이다
2. 세존께서 쌍신변을 나투시는 때와 같은 ... :
(1) 쌍신변의 뜻 :
①불과 물이 동시에 나타나게 하는 등 정반대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나타나게 하는 신통이며
②신통 가운데서 가장 나투기 어려운 신통이다
(2) 쌍신변을 나투는 과정
①한 순간에는 불의 까시나를 통해서 색계인 제5선에 든 다음 불을 나타내 보이려 결심하고
②다음 순간에 다시 욕계로 나와서 그것을 반조해보고,
③다음 순간에는 물의 까시나를 통해서 색계인 제5선에 들어서 결심을 하고
④다시 욕계로 나와서 그것을 반조하여 신통을 보인다고 한다
(3) 욕계에서 가장 빠른 마음 과정은 쌍신변이다
①쌍신변에서 두 가지 신통을 하나씩 하나씩 실행하는데는 오직 네 다섯 번의 마음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②이 쌍신변은 제5선의 신통지의 마음으로 나타내 보이고 禪의 요소들을 반조하는 마음은 욕계에 속한다
③그래서 쌍신변은 욕계에서 실행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마음의 과정이다
증득에서의 속행
1. 본삼매의 첫 번째 과정에서 초심자에게 일어난 고귀한 속행과 신통지의 속행은 항상 한 번만 일어난다. 그 다음에는 바왕가로 들어간다
2. 네 가지의 도의 일어남은 하나의 심찰나 동안만 지속된다. 그 다음에 두 세 개의 과의 마음이 적절하게 일어난다. 그 다음에 바왕가로 들어간다
[해설]
1. 초심자에게 일어난 고귀한 속행과 ... :
①어떤 종류의 禪이든 그 선을 처음으로 증득할 때의 인식과정에서 고귀한 자와나(속행)는
단 한번만 일어난다
-> 그것은 아직 반복하여 닦지 않아서 미약하기 때문이다
②신통지를 나투는 제5선의 자와나는 그것에 통달한 사람에게도 단 한번만 일어난다
-> 왜냐하면 단 한번으로도 그것의 의무를 충분히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네 가지 도의 일어남은 ... :
①각각의 도의 마음도 오직 한 심찰나만 지속된다
②이 동안에 그 특정한 도에서 멸절해야 할 번뇌들을 모두 제거하거나 엷게 하는 역할을 완수한다
③보통의 기능{根)들을 가진 사람의 경우
도의 인식과정의 예비적인 단게에 준비라고 불리는 순간이 포함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도 다음에 두 개의 과의 마음들이 일어난다 (p.379 <도표 4.4> 참조)
바왕가 - { 바왕가의 동요 - 바왕가의 끊어짐 - 의문전향 -
‘준비’ - 근접삼매 - 수순 - 종성 - 도 - 과 - 과 }
④아주 예리한 기능들을 가진 사람에게는 -
준비의 순간은 나타나지 않고 지나간다
그러므로 그 도 다음에 세 개의 과의 마음들이 일어난다
바왕가 - { 바왕가의 동요 - 바왕가의 끊어짐 - 의문전향 -
근접삼매 - 수순 - 종성 - 도 - 과 - 과 - 과 }
멸진정에 들 때
멸진정에 들 때 네 번째 무색계(비상비비상처)의 속행이 두 번 일어난다. 그 다음에 멸진정에 든다
[멸진정으로부터] 출정할 때 불환과 혹은 아라한과가 적절하게 한 번 일어난 뒤 멸할 때 바왕가로 들어간다
[해설]
1. 멸진정에 들 때 :
(1) 멸진정의 뜻
①색계와 무색계 禪을 통달한 불환자와 아라한은 도닦음에 의해서 알음알이의 흐름과 그 마음부수들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수행의 증득에 도달할 수 있다
②이런 경지를 ‘니로다사마빳띠’라 하고 중국에서는 滅盡定으로 옮겼다
(2) ‘니로다’와 ‘사마빳띠’의 뜻
1) 니로다
①아래로 내려 누름 -> 억압, 지멸, 소멸 등의 뜻으로 쓰인다
②경에서는 문맥에 따라서 ‘일어남’을 뜻하는 samudaya의 반대어로 ‘없어짐, 사라짐’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열반의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2) 사마빳띠
①함께 받아들임 -> 증득, 얻음, 획득의 뜻으로 쓰이며 중국에서는 等知로 옮겼고
②九次第滅로 표현한 四禪 四處 想受滅의 경지 가운데 하나를 증득하는 것을 뜻한다
③이것은 초기경의 상수멸과 완전한 동의어이며
④초기경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상수멸로 나타나고
아비담마와 주석서 등에서는 니로다사마빳띠(=멸진정)란 용어가 더 많이 나타난다
(3) 멸진정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면
①이 경지는 몸은 살아있지만 인식과 느낌으로 대표되는 모든 마음작용, 즉 마음과 마음부수법들이 멸해버린 상태이다
②‘청정도론’ 등의 주석서에 의하면, 이 경지를 얻으려면 수행자는 모든 禪의 경지, 즉 초선에서 비상비비상처까지 차례로 들어갔다 나와서
③이런 경지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이 모두 무상이요 괴로움이요 무아라고 주시한다
④여기서 중요한 점은 무소유처에 도달하였다가 그 경지로부터 나와서 수행자는 준비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점검해야 한다
⑤그리고 나서 멸진정에 드는 것이다
⑥그러면 네 번째 무색계 禪(비상비비상처)에서 두 개의 마음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나서 알음알이의 흐름은 끊어져버린다
2. 멸진정에 들어가는 기간과 출정
①기간 : 수행자가 무소유처의 禪애서 나와서 준비과정으로 점검할 때 결심한 기간 만큼이다 이것은 수행의 정도에 따라서 최대 칠 일까지 가능하다
②출정할 때 : 제일 먼저 불환자에게는 불환과가, 아라한에게는 아라한果의 마음이 일어난다 그 다음에 마음은 바왕가로 가라앉는다
(멸진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비담마 길라잡이 9장 p.828~830,
청정도론 제3권, p.407~421을 참조바람)
증득의 과정에서는 바왕가의 흐름에서처럼 인식과정의 법칙이 없다
[고귀한] 속행과 [출세간] 속행은 많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고 알아야 한다
[해설]
1. 증득의 과정에서는 :
①본삼매의 기간은 수행의 정도에 따라 늘릴 수가 있다
②초심자에게 - 증득은 오직 한 자와나(속행)의 순간만 존재한다
수행을 거듭함에 따라서 - 증득은 두 자와나, 세 자와나 등으로 점점 증가되어 본삼매의 증득은 반나절, 한나절, 하루 밤 낮 등으로 증득의 자와나가 끊어지지 않고 지속된다
(참고 : p.379, ‘<도표 4.4> 본삼매를 처음 증득할 때의 속행과정’을 보면)
③처음 증득할 때 : 색계, 무색계의 경우에는 - 생애 최초의 본삼매 Jh가 한 심찰나이고
처음 증득할 때 : 도의 경우에는 - 도의 증득 Mg가 한 심찰나이다
④그리고 禪을 많이 닦은 수행자는
색계, 무색계의 경우에는 - 본삼매속행 Jh가 무수히 많이 일어날 수 있고
출세간 果의 경우에는 - 果의 속행 Ph가 무수히 많이 일어날 수 있다
요약
제한된 속행은 일곱 번이고
도와 신통지는 오직 한 번이라고 알려졌다
나머지 [고귀한] 속행과 [출세간의] 속행은 많다
이것이 여기서 속행의 법칙이다
[해설]
(①욕계의 제한된 속행은 일곱 번 일어나고, (6번, 5번 일어나는 경우도 있기는 있다)
②도의 마음은 오직 한 번만 그것도 한 마음 순간[心刹那]에만 일어난다. (신통지도 그렇다)
(③색계, 무색계 속행과 果의 속행은 수행 정도에 따라 무수히 많이 일어날 수 있다)
개인에 따른 분류
[해설]
①여기서는 89가지 마음으로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존재의 마음을 분석하려고 한다
②즉 이들에게는 어떤 마음들이 일어나고 어떤 마음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③먼저 아비담마에서 원인(헤뚜)은 모두 여섯 가지이다 : 탐, 진, 치, 불탐, 부진, 불치
④그래서 ‘원인없는 자’ - 이런 원인을 갖지 않은 마음을 재생연결의 마음으로 태어난 자
⑤‘두 개의 원인을 가진 자’ - 탐, 진, 치 가운데 두 개의 원인을 가진 마음이나, 불탐, 부진, 불치 가운데 두 개의 원인을 가진 마음을 원인으로 하여 태어난 자란 뜻이다
⑥여기서 재생연결과 바왕가와 죽음의 마음의 대상은 항상 같다
아울러 이 세 마음은 89가지 마음 가운데서 19가지 마음 중의 하나다 (19가지 마음은 p.304를 참조)
두 개의 원인을 가진 자와 원인없는 자
두 개의 원인을 가진 자와 원인없는 자에게
단지 작용만 하는 속행과 禪의 속행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선처에는 지혜와 연결된 과보의 마음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악처에는 지혜와 연결되지 않은 큰 과보의 마음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설]
1. 원인을 구분하는 방법
①‘재생연결의 마음’과 ‘바왕가의 마음’과 ‘죽음의 마음’의 역할을 어떤 마음이 하는가에 따라 원인없는 자, 두 개의 원인을 가진 자, 세 개의 원인을 가진 자로 구분한다
②마음을 89가지로 분류했을 때
②-1 원인없는 마음은 18가지인데(13~30), 그 중에서 두 가지 평온이 함께 하는 조사하는 마음 ((19), (27))이 위의 ‘재생연결, 바왕가, 죽음’의 마음의 역할을 할 때 그들은 ‘원인없는 자’이다
②-2 욕계과보의 마음 8가지((39)~(46))를 큰 과보의 마음이라 부르는데,
그 중에서 지혜와 함께 하지 않는 큰 과보의 마음들 중의 하나가 위의 ‘재생연결, 바왕가, 죽음’의 마음의 역할을 할 때 그들은 ‘두 개의원인을 가진 자’이다
②-3 지혜와 함께 한 재생연결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자들은 ‘세 개의 원인을 가진 자’이다
2. 원인없는 자와 두 가지 원인을 가진 자의 특징
①이들은 미혹없음, 즉 지혜를 원인으로 가지지 못했다
②이런 존재들은 아라한들에게만 존재하는 단지 작용만 하는 자와나(속행)들이 일어나지 않으며
③이런 존재들은 禪을 통해서나 도를 통해서 본삼매를 얻지 못한다
④등록의 경우 : 이 존재들에게 등록의 역할을 실행할 수 있는 마음들은 세 가지 원인이 없는 조사하는 마음들 뿐이다 ((19)(27)(26))
->"[원인이 없는 세 가지 조사의 마음이나 불탐과 부진의 두 개의 원인을 가진 4가지
큰 과보의 마음들이다.]" ((19)(27)(26), (41)(42)(45)(46))
3. 이들 존재들의 등록을 다시 살펴보면
(1) 인간이나 천상 등 욕계 선처에 태어나면
①이들은 지혜가 없는 재생연결의 마음으로 그곳에 태어났다
②그래서 재생연결의 마음이 하열하기 때문에 세 가지 원인을 가진 큰 과보의 마음들이
등록의 마음으로 일어나지 못한다
③(그래서) 이들에게 등록의 마음들은 원인이 없거나 두 개의 원인을 가진 것이다
(2) 이들이 악도에 태어나면
①이들은 원인이 없는 재생연결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다((19))
②그래서 이 경우 두 개의 원인을 가진 큰 과보의 마음들조차도 등록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③단지 원인없는 과보의 마음들이 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일어날 뿐이다((19))
세 개의 원인을 가진 자
세 개의 원인의 재생연결을 가진 자들 중에서 번뇌 다한 [아라한들에게는] 유익한 속행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유학과 범부들에게 단지 작용만 하는 속행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견이나 의심과 연결된 속행도 유학들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불환자에게 적의와 연결된 속행은 일어나지 않는다
출세간의 속행은 적절하게 성인들만이 경험한다
[해설]
①지혜가 함께 한 재생연결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자들은 (탐욕없음, 성냄없음의 원인도 가지므로)
세 개의 원인을 가지고 태어난 자라고 한다.
②범부이거나 유학이거나 아라한이 이런 존재들에 해당한다
③그런데 여기서 유학이나 아라한은 태어나고 난 다음에 (수행하여) 유학이나 아라한이 된 것이지
④단지 재생연결의 마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저절로 유학이나 아라한이 된 것은 아니다
⑤예류도에서 사견과 의심이 제거되기 때문에 유학에게는 사견이나 의심과 연결된 속행들이 결코
일어날 수 없다 (해로운 마음 12 중에서 ((1)(2)(5)(6)(11))은 일어날 수 없다)
⑥불환자들은 성냄의 번뇌를 제거했기 때문에 적의와 연결된 속행을 경험할 수 없다
(해로운 마음 12 중에서 ((1)(2)(5)(6)(11), (9)(10)은 일어날 수 없다)
상황에 따라 무학자들은 44가지 마음을 경험하고
유학자들은 56가지 마음을
나머지는 54가지 마음을 경험한다고 설했다
이것이 여기서 개인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해설] ; 마음의 분류는 89종 분류에 따름
1. 세 개의 원인을 가진 재생연결의 마음을 가진 범부들은 -
①최대 54가지 마음들을 경험할 수 있다
②12가지 해로운 마음 + 17가지 유익한 마음(4가지 道는 제외) + 23가지 욕계 과보의 마음 + 2가지 전향하는 마음 = 54
(1~12) + (31~38, 55~59, 70~73) + (13~27, 39~46) + (28,29) = 54
2. 악도에 태어난 중생들은 -
①원인이 없는 재생연결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직 37가지 마음만을 경험한다
②12가지 해로운 마음 + 8가지 큰 유익한 마음 + 15가지 원인이 없는 과보의 마음 + 2가지 전향하는 마음
(1~12) + (31~38) + (13~27) + (28,29) = 37
3. 원인이 없거나 두 개의 원인을 가진 재생연결의 마음을 가지고 선처에 태어난 자들은 -
①앞의 경우에 더하여 지혜와 함께 하지 않은 4가지 큰 과보의 마음들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41가지의 마음을 경험할 수 있다
앞의 37가지 + (41,42, 45,46) = 41
4. 세 가지 원인을 가진 재생연결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들은 -
①9가지 禪의 경지를 포함해서 모두 54가지 마음을 경험할 수 있지만
위 41가지 + (39,40, 43,44) + (55~59) + (70~73) = 54
②특정한 禪에 들지 못하면 그만큼이 줄어든다
5~6. 예류자와 일래자
①예류도에서는 사견과 의심의 번뇌가 제거되었다
②즉, 그릇된 견해와 함께 하는 4가지와 의심과 함께 하는 1가지 마음이 제외된다
②그래서 예류자와 일래자는 禪의 경지들을 포함한 50가지 마음을 경험할 수 있다
③7가지 해로운 마음 + 17가지 유익한 마음 + 23가지 욕계 과보의 마음 + 2가지 전향하는 마음 + 1가지 果의 마음
(3,4,7,8, 9,10, 12) + (31~38, 55~59, 70~73) + (13~27, 39~46) + (28,29) + (86혹은 87중의 1개) = 50
7. 불환자
①성냄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적의에 뿌리한 두 가지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불환과를 경험하게 된다
②그래서 모두 48가지의 마음이 일어날 수 있다
위에서 (9,10)의 두 가지 마음을 빼면 50 - 2 = 48
* 위의 5~6, 7의 유학은, "道의 마음은 별도로 하며, 道의 마음까지 포함하면 유학은 56가지 마음을 경험할 수 있다"
8. 무학이라고 언급된 아라한들은 -
①모든 번뇌들을 다 멸했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떤 해로운 마음도 경험하지 않는다
②그래서 아라한들이 경험할 수 있는 마음은 44가지다
③18가지 원인없는 마음 + 8갸지 큰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 8가지 과보의 마음 + 5가지 색계의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 4가지 무색계의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 1가지 아라한과
(13~30) + (47~54) + (39~46) + (65~69) + (78~81) + (89) = 44
(단, 위의 마음의 숫자는 모두 욕계의 경우를 계산한 것임)
세상에 따른 분류
[해설]
①여기서 세상으로 옮긴 bhūmi는 존재들이 거처하는 땅 혹은 거주처,
즉 욕계세상, 색계세상, 무색계세상의 삼계를 말한다
②그럼 출세간은 어디에 있는가?
③출세간이라는 세상이 삼계 세상 이외에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④존재들의 거주처는 오직 삼계 뿐이다
⑤출세간의 도와 과의 마음은 이 삼계에 거주하는 존재들이 예류도 이상의 경지를 증득한 자에게 일어나는 마음이다
욕계세상에서는 모든 인식과정의 마음들이 적절하게 일어난다
색계세상에서는 적의와 연결된 속행과 등록의 마음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일어난다
무색계세상에서는 첫 번째 도와 색계의 마음과 미소짓는 마음과 낮은 무색계의 마음을 제외한 나머지가 일어난다
[해설]
①욕계세상에 속하는 모든 존재가 똑같이 모든 인식과정의 마음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태어난 세상에서 각자의 경지에 따라 적절하게 경험하는다는 뜻이다
②적의와 함께 한 마음들은 색계세상에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禪을 증득하기 위한 준비과정에서 적의는 완전히 억압되었기 때문이다
③적의와 함께 하는 마음들과 등록의 마음들은 무색계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소짓는 마음은 육체적인 몸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무색계에서는 없다)
무색계세상에 태어난 존재들은 색계禪에 들 수 없으며 자신보다 더 낮은 무색계禪에도 들 수 없다
특별한 경우
모든 세상에서 어떤 感性이 결여된 자들은 그 문과 연결된 인식과정의 마음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식이 없는 중생들에게 인식이란 아예 없다
[해설]
1. 어떤 감성이 결여된 자들은 :
①이들은 눈먼 자나 귀먹은 자 등의 욕계의 중생들과
냄새맡거나 맛보거나 촉감을 느끼지 못하는 색계의 존재들을 말한다
2. 인식이 없는 중생들에게 :
①이들은 마음이 아예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인식과정이 없다
②이들은 無想有情天에 거주한다
욕계에는 80가지 인식과정의 마음이 있고
색계에는 64가지가 있고
무색계에는 42가지가 적절하게 있다
[해설]
1. 욕계에서 일어나는 인식과정의 마음 80가지
①9가지 고귀한 과보의 마음들을 제외한 모든 마음들이다 (60~64, 74~77을 제외)
②이들 9가지는 (욕계의) 인식과정에서는 결코 나타날 수 없다
2. 색계의 인식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음 64가지
①10가지 해로운 마음(적의와 함께 하는 2가지는 제외 (1~8, 11,12)
②9가지 원인없는 과보의 마음(색계에서는 코, 혀, 몸의 알음알이가 존재하지 않음
(13,14,18,19, 20,21,25~27)
③3가지 원인없는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28~30)
④16가지 큰 유익한 마음과 단지 자용만 하는 마음 (31~38, 47~54)
⑤10가지 색계의 유익한 마음과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55~59, 65~69)
⑥8가지 무색계의 유익한 마음과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70~73, 78~81)
⑦8가지 출세간 마음 (82~89)
3. 무색계에서 일어나는 마음
①10가지 해로운 마음 (1~8, 11,12)
②1가지 의문전향 (29)
③16가지 큰 유익한 마음과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31~38, 47~54)
④8가지 무색계의 유익한 마음과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 (70~73, 78~81)
⑤7가지 출세간의 마음 (예류도는 제외) (83~89)
결론
이와 같이 여섯 문과 연결된 인식과정이 적절하게 바왕가에 의해 차단되면서 수명이 계속되는 한 끊임없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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