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 듬, 듦!
조망권이란 말이 있습니다. 주로 먼저 자리한 주택 입주자들이 주장하는
시야 확보 권리입니다. 세상살이의 년수가 더해가면서 인생에 대한 조망을
어떻게 하는가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거칠것이 없을 것 같았고, 일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던
젊은 시절과 달리 세상살이가 뜻만으로 되지 않음을 절감 한다는 것은
이미 세파에 휘둘렸다는 반증일것입니다.
세상사가 의지만으로 되어지기보다 그렇지 않음을 인식하는 이라면
인생살이 자체도 노력의 산물적 측면보다 덤으로 주어지는 측면이
많음을 인지할것입니다.
흔히 덤이라는 말은 재래시장에서 상인들의 후한 인심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지역에 따라 듬(방언)이라 사용한다 합니다.
그런데 연륜이 깊어질수록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덤의 측면이
강하지 않나 싶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데는 자신의 노력과 노동의 댓가로
이어가지만, 우리의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주어지는 모든 것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과 무관하게 하늘이 베푸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점이 우리의 호흡에 필요한 공기(산소)입니다.
목회자로서 간혹 중환자실을 방문하면서 가지는 생각은 일명 자가 호흡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고 감사의 제목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수년전 자가 호흡을 하지 못하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교우를 거듭 심방하면서
알게 되었던 점은 최첨단 의료장비로 인위적 호흡을 하는데 발생하는
고비용이었습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하루에 얼마를 벌었느냐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삶으로
하루에 소비하지 않은 비용 산정도 산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생살이는 덤(듬)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덤으로 살아가는 삶속에는 동반되어지는 것이 듦이라 하겠습니다.
대체로 듦이라는 말은 힘, 나이, 철이라는 명사 뒤에 붙는 꼬리말입니다.
“힘듦, 나이듦, 철듦”이 대표적 예라 하겠지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생살이가 힘듦을 인식한다는 것과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은 비례하는 것이고, 힘듦을 알게 되면 삶에 대한 자세에도
책임감을 가지기에 철이 들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역과 지역민을 섬기고자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복음광고 현수막 게시 26번째는<“나 이제 생명 있음은 주님의 은혜요
저 사망권세 이기니 큰 기쁨 넘치네”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살이입니다.
국토정중앙교회(482-6691)>로 정했습니다.
비록 타인보다 더 많이 수고하고 봉사했다 하더라도 자랑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은 그 또한 은혜가 아니면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열정과 능력의 근원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내게 위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호흡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생명과 호흡의 주인은 만물을 친히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호흡이 있는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편150:6)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