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FA계약 마감 시한이 지나면서 FA의 자격을 갖추었던 12명의 선수들이 모두 거취를 결정지었다. 예상대로 큰 재미는 없었다.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봤을 때 현 FA제도상에서 이적을 할만한 선수들은 극히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FA 선수 당사자들의 명암은 크게 엇갈렸다. 대박을 터뜨린 사례도 있는 반면, 쪽박의 사례도 있다.
박명환, 진갑용, 이병규는 최대 수혜자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박경완, 전병호, 김원형, 김재걸, 권준헌은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은 사례에 속한다. 하지만 김수경, 김종국, 노장진, 차명주는 최악에 가까운 계약을 이끌어 내거나 혹은 계약 자체를 아예 맺지 못하였다. 이는 '부익부 빈익빈'이 될 수밖에 없는 FA 제도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LG 트윈스 이적, 투수 박명환 (4년 - 40억원)이병규를 잃은 LG는 40억원에 가까운 돈을 쓸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구단이었다. 마침 지난해 로테이션에서 두 자리 승을 거둔 투수가 심수창(10승) 밖에 없었던 관계로 선발투수가 어느 팀보다 절실했다.
박명환은 이러한 가뭄을 해소시킬 수 있는 카드였다. 박명환은 최근 5년간 두산 소속으로 49승(연평균 약 10승)을 올렸을 뿐 아니라 679.2이닝(연평균 약 136이닝)을 소화하며 수준급 투수로 입지를 굳혔다. 거액의 보상금과 보상선수를 감내할 수 있는 선수라는 판단을 한 LG는 4년 40억원의 FA 투수 최고대우를 보장했다.
아마도 박명환이 40억원에 상응하는 활약을 해내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목표를 연평균 15승, 150이닝 정도를 해줘야 '돈 값을 했다'는 평가를 받겠지만, 향후 4년간 규정이닝만 채워준다고 하더라도 팀에 큰 보탬이 될 것은 자명하다. 삼성 라이온즈 잔류, 포수 진갑용 (3년 - 26억원)
전력유지의 방법은 새로운 선수의 영입을 통한 보강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그간 뛰어왔던 유능한 선수들의 이탈을 막으면서 전력의 누수를 최소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삼성은 후자의 방법을 택했다. 스토브리그 시작과 함께 외부 FA 영입이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였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닌 FA를 선언한 소속팀 선수들의 재계약에 더욱 만전을 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따라서 진갑용의 이탈은 결국 외부의 포수를 영입한다는 의미가 되기에 잔류가 유력하게 점쳐진 바 있다. 이미 리그에서 수준급 포수로 인정받고 있었기에 삼성이 재계약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계약기간에서 다소 입장차이는 있었다. 진갑용은 4년 계약을 요구하였지만, 구단이 3년 계약을 완강하게 버티면서 결국 구단 제안대로 3년 계약이 이루어졌다. 대신 포수 최고대우인 26억원을 제시하면서 자존심은 지켰다.
이제 계약의 성패는 진갑용의 장타력 저하가 어느 정도까지 이어질 것인가 하는 문제와 백업포수들이 그의 체력안배를 얼마만큼 해줄 수 있느냐에 달렸다.
주니치 드래곤즈 이적, 외야수 이병규 (2년 - 32억원)이병규가 일본 무대를 밟게 되었다. 외부로 정확한 조건이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2년간 4억엔(약 32억원)의 괜찮은 조건이다. 국내에 잔류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었지만 해외진출을 택한 것은 도전정신이 배경에 있음을 의미한다.
주니치는 타이론 우즈와 클린업을 이룬 좌타자 후쿠도메 고스케의 이탈을 우려하고 있다. 후쿠도메는 이번 시즌이 끝나고 FA가 되는 터라 메이저리그 진출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어, 사실상 잔류가 힘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그 공백을 메울 카드 중 하나로 이병규를 택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지만 이병규의 성공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선구를 하지 않고 비교적 성급하게 방망이가 나가는 그의 타격 스타일은 전문가들이 흔히 지적하는 사항 중 하나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비웃고 국제 대회에서 일본 킬러로 맹활약했던 모습을 시즌 내내 보여줄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는 전적으로 이병규 자신이 얼마나 철저히 일본 프로야구의 스타일에 맞추어 준비하고 적응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SK 와이번스 잔류, 포수 박경완 (2년 - 10억원)
72년 생인 박경완은 포수로서는 상당히 많은 나이가 계약에 걸림돌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투수리드에 강점을 보인다는 점과 SK에 포수가 그리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점에서 잔류는 기정사실화 된 상태였다. 포수의 이적은 대안이 있지 않고선 정말로 어렵다.
결국 2년간 10억원의 무난한 재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하였다. 여전히 리그에 박경완 만큼의 수비능력을 갖춘 포수가 흔치 않다는 점과 간간이 나오는 장타의 위력은 살아있다는 것이 재계약의 원동력이 되었다.
2년 계약이라는 점에서 쉽게 부도가 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며, 지난해의 기량만 유지해 준다고 한다면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 라이온즈 잔류, 투수 전병호 (2년 - 9억원)
전병호는 지난해 97년 이후 무려 9년 만에 감격의 두 자리 승수를 달성했다. 잘 나와봐야 130km/h 중반에서 형성되는 패스트볼은 위력적이지 못하지만, 가감 조절이 가능하며 커브, 체인지업 등의 구질과 조화를 이룬다. 지난해는 이러한 완급조절의 진수가 유감 없이 나타난 한해였다.
FA를 앞두고 커리어상 거의 최고의 성적을 냈기에 성공적인 계약을 예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예상은 적중했고 구단은 2년간 9억원의 계약을 선물했다.
물론 전병호의 올해 성적은 전혀 장담할 수 없다. 전병호가 좋은 컨트롤을 가진 선수이기는 하지만, 지난해가 상한가의 성적을 냈다는 것과 좁아질 스트라이크 존을 생각해볼 때 성적의 하락이 유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로테이션에서 밀리지만 않는다면 책임감이 강한 선수인 이상 어느 정도의 이닝 소화는 기대할 수 있겠다.
SK 와이번스 잔류, 투수 김원형 (2년 - 7억 5천만원)
김원형의 지난해 성적은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2년간 팀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한(311이닝) 선수일 만큼 공헌도가 적지 않았다. 그 어느 팀보다 부상선수들로 고심하고 있는 SK에선 양질의 투구를 보여온 김원형을 잡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금액의 조율은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의외로 상호간 양보를 통해 제법 괜찮은 계약을 이끌어 냈다. 김원형은 재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면 보상금이 그리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라 충분히 매력있는 FA가 될 수 있었다.
삼성 라이온즈 잔류, 내야수 김재걸 (2년 - 5억 6천만원)
백업 내야수인 김재걸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실 있는 플레이어다. 유격수와 2루수의 투입이 자유자재이며 인상깊은 활약을 종종 보여준다는 점에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삼성의 경우 박종호가 예전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백업 내야수인 김재걸의 존재는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5억 6천만원의 제시에 김재걸이 흔쾌히 사인한 것만 보아도 구단이 박한 대접을 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해볼 수 있다.
한화 이글스 잔류, 투수 권준헌 (2년 - 5억원)
권준헌의 잔류도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바다. 셋업맨인 최영필이 부상으로 출장이 어려워지자 한화 불펜은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는데, 마운드가 전체적으로 흔들릴 뻔한 아찔한 상황까지 치달았다. 이런 한화야말로 불펜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을 팀이며, 아직 150km/h에 육박하는 양질의 패스트볼을 던져줄 수 있는 권준헌의 가치를 높게 보았을 것이다.
FA를 선언했던 선수 중 최고령이기도 한 권준헌에게 2년 계약을 선사한 것은 불펜에서 2년간 꾸준히 활약해 주길 기대하는 것이며, 꾸준히 출장해주지 못한다면 계약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현대 유니콘스 잔류, 투수 김수경 (1년 - 5억원)
최대어로 내다봤던 김수경의 계약은 안타까움 그 자체다. 하지만 문제는 김수경 자신에게 있었다. 김수경은 최근 2년간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하면서 건강에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그간 꾸준히 출장했던 선수도 향후 출장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그가 왜 매력적인 카드로 인식되지 못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결국 구단과 줄다리기를 하던 와중에 1년간 옵션 1억원이 포함된 5억원에 계약했다. 옵션을 달성할 경우 2년간의 추가적인 계약이 이루어지는 '1+2'의 계약이다. 79년생으로 가장 젊은 FA였던 김수경의 이번 스토브리그야 말로 본인에게는 생각하기도 싫을 악몽과도 같을 것이다.
KIA 타이거즈 잔류, 내야수 김종국 (2년 - 5억 5천만원)
김종국은 별탈 없이 계약한 것 같지만, 과정이 그리 순탄치 못했다. 김종국의 요구조건 중 하나였던 계약금 8억원 등은 팬들의 동의조차 얻지 못할 만큼 무모한 구석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KIA 구단측의 요구에 백기투항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불합리한 FA제도가 버티고 있었다.
김종국은 이미 팀에서 주장을 맡아본 경험이 있고, KIA의 색채가 강한 이유로 이적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보상금과 보상선수라는 규정이 없었다면 김종국의 이적은 충분히 가능했었을 것이다. 현재 리그에서는 공격과 수비 중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갖추고 있는 내야수가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김종국은 유격수가 가능한데다 정상급 수비를 갖춘 2루수라는 측면에서 타구단의 입질이 있었을 것이다.
미계약, 투수 노장진
노장진을 둘러싼 말들이 많다. 미계약으로 인해 야구를 1년 쉬거나 은퇴를 해야 될 상황이니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구단이나 팬들은 노장진의 재계약 실패를 두고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다.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150km/h에 육박하는 돌직구를 구사하는 것은 노장진의 매력이다. 하지만 야구선수가 잠재력만 가지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다. 그에 상응하는 노력과 함께 팀워크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잦은 무단 이탈이나 음주 등으로 코칭스탭과 동료들의 신뢰를 잃은 노장진은 마지막 보루라는 실력으로도 어필하지 못했다.
이번 재계약 불발은 노장진이 FA를 선언하지 않았거나 또는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해 백기투항을 했다면 괜찮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 결과론이지만 노장진은 좀 더 신중하고 영리한 거취가 필요했다.
은퇴, 투수 차명주
한화 구단이 1년을, 차명주가 2년으로 맞섰던 가운데 우선협상 기한은 훌쩍 넘어서 버렸다. 그리고 그 차이는 끝내 좁혀지지 못했다. 차명주는 주저없이 은퇴를 선언하고 말았다. 조건이 그리 심각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기에 양측의 양보가 있었다면 충분히 계약은 성사되었을 것이다.
차명주는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더라도 전력에 큰 상승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선수였다. 그런 이유로 좀 더 구단의 요구에 양보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차명주가 야구를 그만두고 시작할 예정에 있는 사업의 확실한 비전과 복안이 있다면 꼭 나쁜 선택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프로 스포츠의 선수에겐 현역 생활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은퇴 이후다.
이호영
첫댓글 40억은 너무 많은거 같네요 -_- 옵션으로 많이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