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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714
■ 3부 일통 천하 (37)
제11권 또 다른 난세
제 5장 개혁 (2)
3년 동안 울지 않는 새의 일화는 귀에 익는다.바로 제3대 패공 초장왕(초莊王)의 일화가
아닌가.초장왕(楚莊王)은 왕위에 오른 이후 처음 3년 동안 술과 여자와 사냥에 빠졌었다.
그때 신숙시(申叔時)라는 신하가 초장왕에게 바로 이 수수께끼를 내 초장왕(楚莊王)의 가슴
속에 내재해 있는 야망에 불을 질러 끝내는 제 3대 패공(覇公)에까지 오르게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순우곤(淳于髡)은 어떤 마음에서 이 수수께끼를 다시 거론한 것일까?
그는 제위왕(齊威王)이 '은(隱)'을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필시 초장왕의 '3년 동안 날지 않은 새'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제위왕에게 이 문제를 낸 것이다.- 초장왕의 일화를 알고 계십니까?
왕 또한 초장왕(楚莊王)에 버금가는 능력을 지니고 계십니다. 바야흐로 그 능력을
발휘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순우곤(淳于髡)이 낸 수수께끼는 바로 이런 뜻이었다.
과연 제위왕(齊威王)은 순우곤의 말 뜻을 알아 들었다.그래서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 나도 알고 있다. 내가 그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은 것은 다 뜻이 있어서다.
나는 이제 날개를 펼쳐 하늘을 날 것이요, 울음을 터뜨려 천하를 놀라게 할 것이다.
이런 문답이 있은 지 며칠 후였다.이번에는 추기(騶忌)라는 한 문사가 제위왕에게 알현을 청했다.
제위왕(齊威王)은 추기를 들어오게 하여 물었다."그대는 무엇 때문에 나를 보러 왔는가?"
"신은 오로지 거문고를 탈 줄 압니다. 듣자 하니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신다기에 특별히 거문고를
들려드리려 온 것입니다."제위왕(齊威王)은 자리를 주어 앉게 한 후 좌우 시종에게 지시했다.
"저 선비에게 거문고를 갖다 주어라."잠시 후 시종이 거문고를 가져와 추기에게 내주었다.
그런데 이상했다.추기(騶忌)는 거문고 줄만 만지작거릴 뿐 연주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제위왕(齊威王)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대는 어째서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는 것인가? 나를 위해 거문고를 탈 수 없다는 뜻인가?"
추기(騶忌)가 거문고를 밀어 놓으며 대답했다."신은 거문고의 이치를 알 뿐입니다.
거문고를 연주하여 소리를 내는 것은 악공들이 할 일입니다. 신의 연주 솜씨는 왕께
들려드릴 만한 것이 못됩니다."제위왕(齊威王)은 은근히 화가 나서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거문고의 이치를 말해 보라."이에 추기(騶忌)가 옷깃을 바로 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원래 거문고의 금(琴)은 '금(禁)' 입니다. 즉, 음(淫)과 사(邪)를 억제하고 모든 것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지요."옛날 삼황(三皇) 중 하나인 복희(伏犧)씨가 처음 거문고를 만들었을 때
그 길이는 3척 6촌 6푼이었다.그것은 1년이 366일로 이루어진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그 넓이는 6촌이었다.6합(合)을 상징하기 위함이다.
6합이란 동서남북에 상하(上下)를 합친 것이다.
거문고의 앞은 넓고 뒤는 좁다.그것은 존귀하고 비천한 것을 뜻한다.
위를 둥글게 하고 아래를 모나게 한 것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기 위함이다.
줄을 다섯 개로 한 것은 천지가 오행(五行)에 의해 돌아가기 때문이다.
"또 시위를 대현(大弦)과 소현(小弦)으로 나눈 것은 그 소리를 청탁(淸濁)으로 구별하기 위해서
입니다. 대현이 내는 탁음(濁音)은 넓고 온화하여 국왕의 도(道)를 상징합니다."
"소현이 내는 청음(淸音)은 청렴하고 맑으니 신하의 도리입니다. 이리하여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 다섯 음계가 나오니, 이는 명군과 명신이 서로 만나 나라를 잘 다스림을
뜻하는 것입니다."추기의 말을 한동안 듣고 있던 제위왕(齊威王)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옳고 옳도다. 그대는 거문고의 이치를 그토록 잘 아니 거문고도 잘 연주할 수 있을 것이오.
부디 과인을 위해 한 곡조를 들려주오."그러자 추기(騶忌)가 다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신은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겠습니다.""어째서 그러시오?"
"신(臣)이 거문고를 만지면서도 연주하지 않은 것은 왕께서 나라를 맡고 계시면서
국정을 돌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신이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으면 왕을 기쁘게 할 수 없듯이
왕께서도 나라를 맡고 계시면서 다스리지 않으신다면 백성을 기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제야 제위왕(齊威王)은 추기가 자신에게 간(諫)하러 온 사람임을 알았다.
그는 이미 순우곤의 간언을 받고 재상의 자격을 갖춘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추기의 방문을 받은 것이었다.'이 사람이야말로 재상 자격을 갖춘 인재가 아닐까?'
제위왕(齊威王)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했다."선생이 거문고의 이치로써 나라 일을 비유하시니
내 어찌 선생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으리오?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말투가 한결 공손해진 것이 마치 스승 대하듯 하였다.
추기(騶忌)는 더욱 몸가짐을 바로 하고 대답했다.
"왕께서는 우선 술을 줄이시고, 여색을 멀리 하십시오. 그런 후에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여
백성들을 지도하시면 능히 패왕(覇王)의 대업을 이루실 것입니다."
추기의 말을 들은 제위왕(齊威王)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추기(騶忌)를 궁궐 안에 머물게 하고 몇 날 며칠 나라 일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이치에 적합하여 제위왕의 막힌 귀를 뚫어주는 듯했다.
이윽고 제위왕(齊威王)은 조정에 나가 신료들에게 선포했다.
"순우곤을 객경(客卿)에 올려 국정 고문으로 삼고, 추기(騶忌)를 재상에 임명하노라."
모두가 경악했다.- 우리 왕께서 미치셨나 보다!일개 노비 신분이었던 순우곤(淳于髡)을
객경 반열에 올리고 정체불명의 떠돌이 문사(文士)를 재상으로 등용하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면서도 제위왕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난 9년간의 행동으로 볼 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긴 것이었다.
제(齊)나라 신료들은 그저 자신의 것만 빼앗기지 않으면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함께 벼락출세한 순우곤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나는 나를 안다.
내가 객경(客卿)에 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추기(騶忌)라는 자는 전혀 알지 못하겠다.
그는 과연 재상에 오를 만한 사람인가?'이렇게 생각한 순우곤(淳于髡)은 적당한 기회를 보아
추기(騶忌)가 거처하고 있는 상부(相府)로 찾아갔다.
715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715
■ 3부 일통 천하 (38)
제11권 또 다른 난세
제 5장 개혁 (3)
추기(騶忌)는 찾아온 순우곤(淳于髡)을 정중히 맞아 들였다.
순우곤(淳于髡)은 일부러 거만한 자세를 취하며 스스로 윗 자리에 가서 앉았다.
"내가 그대에게 물어볼 말이 있어 왔소. 그대는 능히 대답할 수 있겠소?"
추기의 능력을 시험해보겠다는 뜻이었다.하지만 추기(騶忌)는 조금도 불쾌한 표정을 짓지 않고
오히려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대답했다."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순우곤(淳于髡)은 앞서 얘기 했듯이 골계(滑稽), 즉 은유를 몹시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추기에게도 이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아들은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고, 아내는 남편의 곁을 떠나지 않는 법이오. 그대는 어떠하오?"
추기(騶忌)는 순우곤이 자신의 각오를 묻는 것임을 알았다.절을 한 번 하고 나서 대답했다.
"제가 알기로 신하 된 자는 임금에 대해 충성을 다하고 몸을 낮추면 몸과 명예가 창성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모두 잃을 것입니다. 저는 선생의 가르침에 따르고자 합니다.
절대로 이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순우곤(淳于髡)은 다시 물었다.
"수레바퀴에 돼지 기름을 바르면 수레는 잘 굴러가오. 하지만 기름칠을 하지 않으면
수레바퀴는 잘 돌아가지 않소. 그대는 어떻게 하겠소?"
추기(騶忌)는 그가 조정 신료들과의 관계에 대해 묻는 것임을 알았다.
"선생의 가르침을 명심하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화(和)'로 이루어집니다.
저는 모든 신료를 하나로 단결 시키고 화목하게 하겠습니다."
순우곤(淳于髡)은 다소 놀라는 표정을 짓다가 또 물었다."활을 만들 때 나무에 아교를 칠하는 것은
서로 쪽이 잘 맞게 하기 위함이오. 하지만 때로는 틈새가 생기어 잘 맞지 않을 때가 있소.
이럴 경우 그대는 어찌하겠소?"추기(騶忌)는 그가 백성들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묻는 것임을 알았다.
다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모든 강물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 하나로 합칩니다.
늘 백성들과 친하게 지냄으로써 그들과의 사이에 거리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우 가죽으로 만든 갖옷이 해어 졌다고 누런 개 가죽을 대어 기울 수는 없소. 그대는 어떻게 하겠소?"
추기(騶忌)는 인재 등용에 관한 일임을 알았다.
"반드시 어진 사람을 가려서 뽑고, 무능하고 간사한 자들은 기필코 물리치겠습니다."
"큰 수레일지라도 옆으로 기울면 능히 물건을 싣지 못하고, 거문고는 음을 맞춰 놓지 못하면
오음(五音)을 이룰 수 없소. 이런 경우 그대는 어찌하겠소?"
추기(騶忌)는 그가 법령과 그 시행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았다.
여전히 공손한 어조로 대답했다."삼가 선생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저의 경우라면 법령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교활한 관리들을 잘 감독하고 교화(敎化) 시키겠습니다."
질문하는 것 마다 주저함 없이 대답하는 추기의 모습에 순우곤(淳于髡)은 진심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넋을 잃고 추기를 바라보던 그는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나 아랫 자리로
내려오더니 크게 두 번 절을 올린 후 혼자 말투로 중얼거렸다."아, 우리 왕께서는 복도 많으시구나."
순우곤(淳于髡)이 대문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수행자들이 물었다.
"선생께선 처음 재상을 대할 때는 위세가 당당하시더니, 나오실 때는 두 번 절까지 하시니
무슨 까닭입니까?"순우곤(淳于髡)이 대답했다.
"나는 다섯 가지 비유를 들어 나라 돌보는 일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재상은 그 말뜻을 다 알아듣고
막힘없이 대답하였으며, 그 대답 또한 모두가 맞는 것들이었다. 추기(騶忌)는 큰 인물이다.
내가 미칠 바가 못 된다. 그래서 공손히 절을 올린 것이다."
과연 그 뒤로 추기(騶忌)는 성심성의를 다하여 나라 일을 처리해 나갔으며 수시로 순우곤을 찾아와
자문을 구했다.당시에는 문사(文士)들이 여러 나라로 떠돌아다니며 유세(遊說)를 일삼았는데,
그들 사이에 순우곤(淳于髡)과 추기(騶忌)에 관한 소문이 퍼지면서 수많은 문사들이
임치성으로 몰려들었다.순우곤과 추기를 등용한 제위왕(齊威王)은 사람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조정에 나오고 밤이 늦어서야 내궁으로 들어갔다.
그런데도 조정 신하들은 제위왕(齊威王)의 변모된 모습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품었다.
워낙 9년 동안의 '못난 임금'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러다가 말 것이다.
공공연히 이런 수군거림이 일었다.제(齊)나라 조정은 좀처럼 개혁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안위(安慰)만을 도모할 뿐이었다.제위왕(齊威王)도 그것을 알았다.
어느 때부터인가 제위왕(齊威王)은 대부들을 만날 때마다 물었다.
"각 고을에 나가 있는 현령(縣令)과 현장(縣長) 중 누가 가장 현명하며 누가 가장 무능한가?"
당시 제나라는 모두 72개의 현(縣)을 두고 있었다.그 중 가옥 수가 1만(萬) 호 이상인
현의 관리 책임자를 현령(縣令)이라 했고, 1만 호 이하인 현의 책임자를 현장(縣長)이라고 했다.
대부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동아(東阿)의 수령은 현명하고, 즉묵(卽墨)의 수령은 무능합니다.
동아는 지금의 산동성 양곡현 동북쪽에 있는 아성진(阿城鎭)을 말하며, 즉묵은 산동성 평도현
동남쪽 땅을 말한다.
이에 제위왕(齊威王)은 비밀리 자신의 심복 부하를 파견하여 동아와 즉묵을 시찰하여 오게 했다.
얼마 후 심복 부하가 돌아와 제위왕에게 두 고을에 관한 실태를 보고했다.
제위왕(齊威王)은 재상 추기를 불러 명했다."전국 72개 현(縣)의 수령을 모두 불러 모으시오."
소환을 받은 전국의 현령과 현장들은 즉시 임치성으로 달려왔다.
제위왕(齊威王)은 조정 대부들과 각 고을 수령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후 말했다.
"내 이제 가장 유능한 수령과 가장 무능한 수령을 뽑아 각기 상과 벌을 내릴 작정이오."
이 말을 듣고 모든 대부들이 속으로 생각했다.'동아(東阿)의 수령은 큰 상을 받을 것이요,
즉묵(卽墨)의 수령은 엄벌을 당할 것이다.'문무백관이 늘어선 정전(正殿)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그런 가운데 제위왕의 위엄서린 음성이 울려퍼졌다."즉묵(卽墨) 현장(縣長)은 앞으로 나오라."
즉묵 현장이 굳은 표정으로 제위왕 앞에 섰다."그대는 들으라. 그대가 즉묵(卽墨)으로 부임해간 이후
날마다 그대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비방이 내 귀에 들려왔다. 그래서 나는 은밀히 사자를 보내
즉묵의 실태를 알아보았다.""그런데 돌아온 사자의 보고에 의하면 즉묵(卽墨)은 논과 밭이
잘 개간되어 있고, 백성들은 수입이 늘어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며, 관청에는 밀린 문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대가 이렇듯 선한 정치를 했는데, 어째서 도성의 모든 대부들은 그대를 무능하다고
비난했던 것일까?""그 이유는 바로 그대가 도성에 있는 고관들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았고
아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즉묵(卽墨)을 잘 다스렸음에도 무능하다고 중상모략
(中傷謀略)을 당한 것이다. 이제 내가 모든 것을 알았으니, 나는 그대에게 1만 호의 식읍을 내리겠노라."
즉묵(卽墨) 현장이 재배(再拜)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자 제위왕(齊威王)은 이어 동아(東阿)
현장(縣長)을 앞으로 불러냈다."그대가 동아로 부임해간 이후로 날마다 그대의 현명함을 칭송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그래서 나는 은밀히 사자를 보내어 동아의 실태를 조사해 보았다."
"그런데 돌아온 사자의 보고에 의하면 동아의 논밭은 거칠고 자갈 투성이이며, 백성들은
굶어서 부황이 나고, 심지어는 조(趙)나라 군사가 그 곳을 쳐들어왔을 때도 그대는 물리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렇듯 그대가 폭정(暴政)을 했는데도, 어째서 도성의 대부들은 그대가
현명하다고 칭찬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그대가 도성에 있는 고관들에게 뇌물을 바쳐
과인의 귀에 좋은 말만 들어가도록 힘썼을뿐이기 때문이다. 내 이제 모든 것을 알았으니,
나는 그대를 팽형(烹刑)에 처하리라."팽형이란 끓은 가마솥에 집어넣어 삶아 죽이는 형벌이다.
탕확(湯鑊)이라고도 한다.제위왕의 서릿발 같은 말에 동아(東阿)의 현장(縣長)은 기겁을 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제위왕(齊威王)은 눈썹 하나 까딱 하지 않고 명했다.
"역사(力士)들은 무엇 하는가? 어서 뜰에 가마솥을 내놓고 물을 끓여라!"
끝내 동아(東阿) 현장(縣長)은 결박당하여 끓는 가마솥에 던져졌다.
이 광경을 보고 기겁한 사람들은 동아 현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아먹은 도성의 대부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사색이 되었다.아니나 다를까.그런 그들을 향해 제위왕(齊威王)이 두 눈을 부릅뜨고
꾸짖었다."너희들의 임무는 좌우에서 나를 돕는 일이다. 또 나를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떠했는가. 나를 돕고 대신하기는 커녕 뇌물을 받아먹으면서 나를 속여왔다!
이런 신하들을 장차 무엇에 쓸 것인가. 역사(力士)야! 이놈들도 모조리 끓는 가마솥에 집어넣어라!"
"왕이시여,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뇌물을 받은 대부들은 머리를 땅에 찧으며 애걸복걸했다.
그러나 제위왕(齊威王)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어서 던져 넣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마침내 동아(東阿) 현장(縣長)에게서 뇌물을 받은 대부들이 차례로 끌려나와 가마솥에 내던져졌다.
그 현장이 얼마나 참혹하고 처절했던지 죄없는 대부와 수령들까지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제위왕(齊威王)은 모두 10여 명의 대부를 삶아 죽인 후에야 가마솥을 치웠다.
이후 제(齊)나라 조정의 분위기는 쇄신되었다.제위왕(齊威王)은 재상 추기(騶忌)와 의논하여
수시로 어진 인재를 뽑고, 각 고을 수령을 대폭 경질했다.무예에 능한 장수들은 변방으로 내보내
국경을 튼튼히 함으로써 제(齊)나라는 일약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 전국시대에 칠웅(七雄)으로
활약하게 된다.
716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