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꽃님이 울릉도에 다녀왔다.
저동, 도동, 죽도, 독도...
후박나무에, 촛대바위로 떠오르는 달.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려니 외로워보인다고 했다.
활주로 공사중이라니 머잖아 쉬 다녀올 수도 있으리라.
그 섬에 다시 가보고 싶다. 태평양 가운데의 섬, 피지.
그곳이 어찌 변했는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는데
최근의 사진으로만 보더라도 별천지가 되어있는 느낌이니
엉덩이가 들썩거리기도 한다.
허나 가본들 그때의 감흥이 살아날까?
여기저기 지구촌의 개발자금이 유입돼
원시의 섬을 확 바꿔놨으려니
가본들 낯설기만 하지 않을까?
하긴 잠간 다녀온 곳일뿐이니 내 고향이 되었을리도 없을뿐더러
두고 온 인연도 없으니 새로 여행하는 기분은 있으리라.
외로운 섬이기에 찾아봤고
외로웠기에 그 외로움의 끝을 보기 위해 들려봤던 피지.
이젠 외로움에 대한 면역력이 어지간히 형성된 터라
여행을 위해 그 먼 곳을 찾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이르니
조용히 눈감고 그때의 그 외로운 섬에 나를 잠시 뉘어볼 뿐이다.
피지, 비록 나와는 상관 없는 낯선 사람들이 들고 나겠지만
나는 한 번 조우한 인연만으로도 마음의 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23. 6. 5.
피지 여행을 마치고(지난 날의 단상)
여름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나들이에 나서보기로 했다.
남들은 삼삼오오 무리지어 산으로 바다로 간다지만
태양이 북반구에 올라와 머리 위에서 땡볕이 내리쬐고 있으니
반대쪽인 남반구로 가보기로 했다.
아마도 복잡한 주변관계를 잠시 접어보리란 생각도 했을 것이다.
열 시간여의 비행 끝에 8천여 킬로미터를 날아 도착한 곳은
다른 곳이 아닌 남태평양의 피지군도였다.
동경 174-178도 남위 12-22도에 위치한 330여개의 섬나라로
면적은 제주도의 열배에 달한다지만
인구는 84만 명(제주도 인구의 1.5배)에 지나지 않는
연평균 기온 23도의 상하常夏의 나라라 했다.
1643년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벨 타스만(Abel Tasman)에 의해
최초 발견되었다니 그 이전엔 이름 없는 군도群島였던 셈이지만
이젠 널리 알려져 계절에 관계없이 세계 각 곳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150여 년 전만 해도 식인종들과 공존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했다.
여장을 풀고 해변 가에 나서보니 여기저기 백사장에 살갗을 그을리거나
야자나무 그늘아래 해풍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이윽고 해가 넘어가자 게도 고둥도 모두 제 구멍으로 숨 듯 금세 인적은 사라지고
마치 무인도를 방불케 했다.
별빛이 한없이 쏟아지는 남국의 밤을 산호초를 덮쳐대는
파도소리만 홀로 휩쓸고 있었으니
신비감에 젖어든 나그네는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밤이 이슥토록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다.
숙소에 돌아와 바다를 향한 창문을 닫자
파도소리는 잦아들었지만
별빛은 여전히 방안에 들이비치고 있었다.
별을 사랑한 시인 윤동주는 ‘서시’를 노래했고
자연을 동경한 알퐁스 도데는 ‘별’을 이야기했는데
그들은 어떤 별빛을 바라보았을까?
누구보다도 별을 더 깊이 사랑했다던 생텍쥐페리는
‘어린왕자’를 탄생시키고 별나라로 갔다고 했는데,
마음은 그들의 뒤를 따라가 볼뿐이었다.
어린왕자는 별나라에서 내려와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부터 천마일이나 떨어진 사막 한 가운데에 서게 된다.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이렇듯 쓸쓸한 것이냐고 물어보지만
옆에 있던 뱀은 사람들 틈에 섞여있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나서 그럴 리가 있느냐는 듯 허공에 대고 “안녕!”이라 외쳐보지만
들리는 건 끝없는 메아리뿐이었다.
실망한 어린왕자는 모래벌판을 지나 바위와 눈을 헤치고 오랫동안 걸어
마침내 길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길이란 모두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통하기 마련이지만
거기엔 장미 오천 송이가 피어있는 정원이 있었던 것이다.
두고 온 별엔 세상에 한 송이밖에 없다고 생각한 장미가 있어
부자라고 생각하고 정성스레 가꾸어왔는데
이렇게 많은 장미를 본 순간 어린왕자는 어쩔 줄 모르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여우가 나타난 것은 바로 이때였다.
어린왕자가 여우에게 친구가 되어달라고 청해보지만
여우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기를 길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으니,
길들이기란 바로 관계의 설정을 말하는 것으로
너와 내가 우리라는 유대로 서서히 치환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곳이 사막이든 도회든 섬이든
외딴 곳에 이르러 타자를 길들이지 않는다면
존재계는 모두 모래알처럼 외롭고 서글플 뿐이요
장미 오천 송이도 마찬가지일 테니
외롭지 않으려면 저 많은 별빛 중에 잊었던 이름이라도 되살려보아야 할게다.
이튿날 숙소가 있는 비티레부 섬으로부터 뱃길로 한 시간여를 항해하니
그들이 말하는 로빈슨 크루소 섬에 닿았다.
이 섬은 세계지도에도 안 나타나있는 것으로 보아
자기들 맘대로 부르는 이름일 터이다.
로빈슨 크루소(다음부터 ‘폴’이라 한다)는
1719년 영국의 다니엘 디포가 펴낸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다.
작품 속의 그는 1632년 영국의 요크 시에서 출생해
평범한 중산층의 생활에 만족치 못하고 해외로 먼 바닷길을 항해하다가
남태평양의 어느 무인도에 표류해 갖은 고생 끝에
28년여 만에 귀환하게 된다는 게 대강의 줄거리지만
그 무대인 무인도는 허구 속의 섬일 뿐이므로 어디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작품 속에서는 인근 식인의 야만인들이나 가끔 올라와
사람을 잡아먹고 유희를 하다 가는 절해의 고도였다.
폴은 고립무원(孤立無援) 상태에서 오로지 안전과 생존욕구에 매달려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말상대는 난파선에서 데려온 앵무새 한 마리였을 뿐이니
그것을 길들여 자신의 이름을 들어보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폴은 앵무새와 인간의 몸짓을 흉내 내는 교감을 함으로써
어느 정도 실존을 느낄 수 있었겠지만,
표류생활 중반기에 무인도에 상륙한 한 식인의 야만인을 사로잡아
종복으로 부리기 시작한 동안을 제일 행복한 시기로 꼽는다.
어느 금요일에 사로잡았다 해서 그에게 붙여준 이름이 프라이데이지만,
식인 습성을 버리게 하고 서로 안전과 생존의 버팀목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인간의 몸짓을 통한 관계의 대상이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의 ‘꽃’ 부분
시인 김춘수는 한 송이 꽃을 보고
시적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를 시어로 형상화하고 있다.
모든 사물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되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 없는 무의미의 존재일 뿐이지만
서로의 관계성을 회복함으로써
각자의 ‘나’가 ‘우리’로 치환되어 의미를 갖게 됨을 떠올려준다.
그것은 시적 자아의 존재론적 소망으로써
원 존재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고독한 것이겠지만
서로의 이름을 부여하여 관계성을 가질 때
존재의 본질적 구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일 테니,
그것이 바로 시적 자아의 의지이기도 할 것이다.
어느 아이가 세계지도를 펴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본 그의 어머니가 무얼 그리 찾느냐고 물으니
아이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섬을 찾고 있노라고 대답했다 한다.
물론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겠지만
세계지도에 나타났다는 것은
신천지 발견과 이에 대한 이름 붙이기를 전제로 한 것임을 생각해보면
아이의 발상은 어처구니없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무지한 인간이 인식과 관계의 대상을 넓혀나가려는 의욕은
가상타 하지 않을 수 없다.
인식의 대상은 구체물일 수도 있고 추상적 관념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인식론은 실재론과 관념론으로 나뉘어 설명을 달리하기도 한다.
복잡한 주변관계를 잠시 접어보리란 생각에 멀리 나들이를 갔다가
다시 비행기 트랩에 오르려니 실재가 관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첫댓글 글이 좀 깁니다.
취미 없는 분은 지난 단상은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난석 선배님 피지 여행기
별꽃님의 울릉도 여행으로
선배님 추억 소환
지금쯤은 엄청 변했겠지요
두고온 인연
그 섬에 다시가고푼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인연이랍니다.
지난날의 단상
선배님 보고계실까
길어도 몽땅 눈인사했어요.ㅎ
네에 고마워요.
또 가보고싶어도 생각뿐이랍니다.ㅎ
좋은문구 있어 되뇌어 봅니다
길들이기란 바로 관계의설정을 말한다
우리~라는 유대로 서서히
치유 되는 과정
추억 여행 가끔저도 추억여행 한답니다
안단테님은 아직 젊으니
조금 더 추억을 쌓아가세요.
난석님~
외로운 섬이기에 감흥이 울어나오고
선율처럼 멋진 감성들이 되었습니다.
복잡한 주변관계과 있을때는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시어 좋은 인연도 맺고 오세요.
네에, 국내에도 많은 여행지가 있지요.
그러나 마음으로 선택하는 여행지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다시 갈 수는 어렵겠지요 ㅎ
난석님~
전 예전에 근무했던 백령도에 꼭 가고 싶은데
근데 언제 갈지 ㅠㅠㅠ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백령도, 좋은 섬이지요.
그런데 긴장 속에 머문 곳이기에 더 많은 생각들이 쌓였을 겁니다.
제주도는 비행기로 가기에 매년 몇번씩.
그리고 몇개의 이름있는 섬 몇개만 다녀왔지요
하지만 비행기에서 본 점.점 점.
우리나라의 자잘한 섬에 대해서 늘 환상이 따릅니다. 건강하십쇼
맞아요.
점 점 점
섬 섬 섬~
꽃이란 시어를 여기서 접하니
새롭네요 저는 마음이 울적하면 도심가를 걷는답니다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을 추수린답니다
선배님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자연속에 이야기를 소화하며 살아가시는 모습이
보기가 좋습니다^^
선생님 이라니요?
그저 같은 회원들이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