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결혼 풍속도와 저출산율
얼마 전 시댁 조카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생화 장식으로 식장을 가득 채운 화려하고 근사한 예식이었습니다. 조카는 1년 전에 이 식장을 예약했습니다. 1년 전에 예약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봄이나 가을 예약은 이미 다 차서 한 겨울에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예약 전쟁’이라는 기사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던데 정말 심각한 모양입니다.
이미 여러 결혼식에서 보았듯이 주례는 없었고, 주례 대신 신부(우리 조카)의 아버지가 축사를 하고 성혼 선언을 하였습니다. 이건 꽤 오래 전에 바뀐 결혼 풍속이지요. 조카는 입장 때부터 시종일관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밝은 모습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속으로 ‘어지간히 좋은가 보네....ㅎ’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축사를 하고 성혼 선언을 하는 중에도 조카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당황한 아버지가 축사 중간에 “우리 딸이 너무 웃네요.”라는 애드리브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의 말에서 살짝 서운한 마음을 읽은 건 나의 선입견 때문일까요?
아무튼 그렇게 성혼 선언이 끝나고 신랑, 신부가 축가를 불렀습니다. 신랑이 리드를 하다가 신부가 같이 불렀습니다. 중간중간에 간단한 안무가 삽입되기도 했고요. 경쾌하게 노래하고, 춤추는 조카를 보면서 나의 결혼식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왜 그렇게 긴장이 되고 부끄럽고 힘들기만 했는지.... 아무튼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식은 완연히 다른 세상으로 보입니다.
식이 끝난 뒤 친지들과 식사를 하면서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 안 한다고 난리인데 예식장 잡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말 그렇죠? 아이러니하고 미스터리한 일입니다. 2021년 혼인 건수가 19만 3천 건으로 1981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20만 건 아래로 내려왔다니 결혼이 줄어든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세계일보 2022. 11. 29일자 결혼 줄어도 식장은 ‘예약전쟁’). 그런데 예비부부들은 결혼식장을 잡지 못해 아우성입니다. 왜일까요?
문제는 결혼식의 지나친 상업화와 예비부부들이 이런 상업주의에 휘둘려 초호화 결혼식장에 몰리는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웨딩 플래너’니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니 하는 용어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업체들이 일생 가장 중요한 행사인 결혼식을 아름답게 치르려는 예비부부들의 마음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고 있나요? 그 준비 과정이 얼마나 많고, 복잡하면 자신들의 결혼식 플랜을 남에게 맡겨야 할 정도일까요?
서울의 경우를 보면 신촌, 이대 앞에 즐비하던 웨딩 업체들은 거의 문을 닫고 지금은 상당수가 청담동에 몰려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기사를 쓴 기자가 자신의 결혼식을 위해 찾은 결혼 박람회에서 결혼 플래너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플래너는 명품 매장이 즐비한 청담동의 고급스러운 이미지 덕에 그곳에 ‘웨딩 클러스터’가 형성됐다고 했답니다. 이 말은 그곳에서 치러지는 결혼식은 그런 이미지에 어울릴 정도로 고급스럽게 치러진다는 말이겠지요? 소위 명품 결혼식으로요. 거기에 얼마나 많은 거품이 끼어 우리 젊은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할까요?
위의 기자는 “웨딩박람회에 예물, 예복, 한복, 가전, 신혼여행 등과 관련된 가지각색의 업체들이 나와 달콤한 프로모션으로 예비부부들을 유혹하고 있었다.”고 썼습니다. 예비부부들을 상대로 30분 정도에 불과한 결혼식에서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웨딩업계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지는 말투입니다.
식사비도 엄청나게 비싸서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을 지닌 친지들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축의금 액수를 놓고 왈가왈부 논란이 많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좋은 날짜를 잡아 결혼식을 했지만 지금은 결혼식장에서 결혼식 날짜를 잡아준다지요. 하객의 편의를 위해 일요일도 피했었는데 지금은 일요일 오후 늦게 결혼식을 치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초호화판 결혼식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도 많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통계청이 2022년 출생·사망 통계를 발표하면서 기사들이 떠들썩합니다. 어떤 기사는 '세계사 유례없는 인구소멸'이라는 극단적 표제어를 썼고,'역대 최저', '최악 시나리오보다 최악'이라는 부제를 붙였습니다
(한국경제 2023.2.22일자 '출산율 0.78명' 10년새 반토막…'세계사 유례없는 인구소멸'). 이미 이런 인구 감소로 인한 사회 변화/문제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산부인과를 찾아보기 힘든 건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이 줄어 소아과 의사가 줄어드는가 하면, 그렇게 인기 많던 교사는 기피 직업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유독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가 이리 심한 걸까요? 저출산을 막기 위해 그동안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었다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출산율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우리 젊은이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아이를 낳지 않을까요? 아니 못 하고 못 낳는 거 아닐까요? 물론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 우선 결혼식 단계에서 집값부터 결혼식 비용까지 거품이 잔뜩 끼어서 젊은이들이 이 비정상적인 시장에 뛰어들 의지를 꺾어버리는 것 아닐까요?
나는 우리 사회의 근시안적인 상업주의가 우리 젊은이들이 따뜻한 사랑을 나누고, 행복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오순도순 사는 꿈 자체를 앗아버린 것 같아 자꾸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일부 젊은이들의 허영심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냉철한 비판 정신없이 그런 상술에 휘둘리기보다는 지혜롭게 주체적 소비를 하면 사회 곳곳에서 우리 삶을 좀먹고 있는 거품이 꺼지지 않을까요?
결혼식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것이 마치 젊은이들의 문제처럼 글이 흘러갔지만 이는 우리 사회 전반의 뿌리 깊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명품 소비 세계 1위 국가라는 타이틀과 OECD 회원국 중 출산율 꼴찌 국가라는 타이틀이 영 무관한 것 같지 않습니다. 팽팽하게 부푼 풍선처럼 거품이 잔뜩 낀 채 터질 듯 터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우리 사회가 한쪽에서는 초호화 결혼식을, 또 한쪽에서는 비혼주의의 만연이라는 신 결혼 풍속도를 낳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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