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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RICS의 지정학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독자 행보를 보이는 글로벌 사우스(Golbal South)1)의 결집과 신흥국그룹 브릭스(BRICS)의 역할이 최근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다. 2001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의 짐 오닐(Jim O' Neill)이 미래 세계 경제성장을 주도할 새로운 신흥국그룹을 브릭스(BRICs)라 지칭한 이래 브라질(Brazil), 러시아(Russia), 인도(India), 중국(China)2)은 방대한 국토와 인구 규모를 바탕으로 더욱더 덩치를 키워 왔다. BRICs는 2000년대 초 원자재 ‘슈퍼사이클’을 계기로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한 데 이어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에도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세계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BRICs 경제는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국제적 경제 위상이 그리 높지 않아 2040년대 들어서야 선진국 그룹(G6)의 GDP를 추월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중국은 이미 2010년 세계 경제 2위 국가가 되었으며 브라질은 7위, 인도와 러시아 역시 10위권으로 진입하는 등 BRICs 국가들은 글로벌 경제 리더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가세한 BRICS3)로 확대되면서 선진국 그룹 G7 -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 에 대응하는 지정학적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림 1> BRICs 국가 경제 규모 전망
자료: Wilson D. and Purushothaman, R.(2003),
Dreaming with BRICs: The path to 2050, Goldman Sachas Global Economics Paper, 99, pp.1-24.
실제로 G7의 구매력평가(PPP) 기준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1992년 45.8%에서 2022년 30.39%로 줄어든 반면, BRICS의 비중은 1992년 16.45%에서 2022년 31.58%로 약 2배 가까이 증가했다4).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 GDP에서 G7의 비중은 감소하는 반면 BRICS의 비중은 계속 증가하여 2028년에는 33.66%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BRICS의 이러한 행보가 미국의 달러 독점에 대한 전쟁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예언하는가 하면, 다른 금융 언론들은 달러의 붕괴에 수십 년이 소요될 것이라는 반론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글로벌 신흥국그룹을 대변하는 비(非)서구 세계의 경제력과 독립성 증가는 BRICS 주도의 세계 경제 ‘다극화(multipolarization)’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그림 2> 참조)
<그림 2> BRICS와 G7의 세계 GDP 비중(GDP PPP 기준)
자료: Takushi, Christian(2023.04.17.),
"Geopolitical Update: BRICS overtake G7, 29 nations defy the USD and the West"
2. 브라질이 주장하는 다극화와 남아메리카 통합
BRICS가 주도하는 ‘다극화’는 전략적 측면에서 크게 두 가지의 활동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회원국으로 영입하여 아프리카 대륙에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한 시기, 미국이 통제하는 선진국 중심의 금융기관에 대응하여 신개발은행(NDB, New Development Bank)5) 을 설립하고 개도국 중심의 경제발전 대안을 찾는 시기이다.
기업 진출 측면에서 BRICS 국가 간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가운데 일반적으로 중국은 국영기업, 브라질은 민간기업을 통한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NDB는 세계은행(World Bank)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하는 민영화와 경제 긴축 조치 등 일련의 조건 없이 개도국에 저리 대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무역 차원에서 중국과 인도는 산업 및 기술 제품의 수출과 원자재의 대량 수입이 주를 이루는 반면 브라질,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산업기술 수입 외에 대량의 광물 및 농산물 수출에 역점을 두어 일종의 국가 간 분업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대외적 측면에서도 중국과 러시아는 엄격한 기조를 보이는 반면 그 외의 국가들은 중립적 위치를 고수하며 유연한 대응을 보이는 등 각 국가의 대처방식 역시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중국이 적극적으로 BRICS의 확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 중심의 확장이 아직은 완전히 현실화되지 않아 선진국 패권주의에 대응하는 개도국 차원의 모양새를 보이고 있으나 BRICS 내부에서는 중국에 의한 ‘제2의 패권주의’의 발현이라는 견해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과 유럽 연합의 영향력이 약한 지역에서 중국이 자국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으며, 신흥국그룹 확장에 더 많은 국가를 참여시킴으로써 기존 BRICS 국가와의 협의 비중은 축소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브라질은 BRICS 가입국 수가 많아질수록 브라질의 영향력이 희석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선진국에 대하여 개도국 전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대응 역량을 제고한다는 BRICS 그룹의 취지와 달리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글로벌 노스와 글로벌 사우스 간 불평등 관계 해결이 아닌 또 다른 강대국 출현과 이에 대한 이해관계 구축에 치중하여 개도국들에 대한 대안 구축은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BRICS 경제의 엄청난 잠재력과 달리 이들 국가의 공통된 문제점은 정치, 경제, 사회적 취약성이다. 실제로 BRICS의 주요 국가들은 권위주의 체제하에 상품과 자본, 노동력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시장 환경으로 인해 지속가능한 신뢰에 기반한 장기적 경제활동이 어렵다. 이에 브라질 정부가 아르헨티나와 남미 국가들을 BRICS와 NDB에 가입시키려고 하는 의도도 미국에 이어 패권을 노리는 중국의 행보를 일정 부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취지6)를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Luiz Inacio Lula da Silva) 브라질 대통령(이하 룰라 대통령)은 남미국가연합(UNASUR, Unión de Naciones Suramericanas) 내 구축된 국방 위원회(CDS, Conselho de Defesa da Sul-Americano)를 회복하여 남미국가들의 국경 안보와 국가의 주권을 보장하고 국가 간 협력을 통해 국경 방어는 물론 조직범죄와 마약 밀매 등을 퇴치할 수 있는 자체적 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7). 즉, 브라질 정부가 생각하는 BRICS 주도의 글로벌 사우스의 결집은 남미 대륙의 국가들을 하나의 블록으로 통합하여 개별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는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역내 모든 국가를 하나로 묶는 남미 협력 메커니즘을 만드는 데 있다.
3. 브라질식 ‘탈달러화’의 의미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에 따른 러시아 금융 자산 동결로 인해 세계 경제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일부 국가에서는 ‘탈달러화’ 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BRICS 수출의 74%를 차지하는 중국의 경우, BRICS 구성국 간 통화 스와프 라인이 늘고 있으며 그 밖의 국가에서도 자국 통화로 거래하기 위한 특정 계약 증가 및 지역 공동화폐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반면 최근 몇십 년간 세계적으로 달러의 비중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 간 외환 거래의 80% 이상, 결제의 50% 이상이 달러로 이루어지고 있다. 2022년 세계 외환 총보유액의 58%는 여전히 달러로 이용되고 있지만 중국 위안화는 2.75%에 불과하다.
2022년 6월 화상으로 진행된 BRICS 정상회의에서 국제연합(UN) 중심의 다자주의 체제 강화를 강조한 ‘베이징 선언’은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비판이며, 남미 대륙을 대표하는 브라질도 단일통화 패권주의가 전 세계 통화시스템을 지배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제2의 패권주의를 꿈꾸는 중국의 다자주의와 미국의 달러 패권주의에 대한 BRICS의 의존도를 줄여 통화 사용의 다양화를 강조하는 브라질의 주장은 얼핏 보기에 다른 국가들의 의도와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이지만 실제로 중국이 노리는 ‘제2의 패권주의를 위한 탈달러화’와 브라질이 말하는 ‘탈달러화’는 그 의미와 범위가 매우 상이하다.
지난 2022년 3월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Federal Reserve System)의 공격적 금리 인상으로 자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달러 부채 증가로 인한 비용 상승으로 개발도상국 경제는 대부분 큰 타격을 입었다. 더욱이 자본 도피로 인해 겪은 고통스러운 환율 변동으로 BRICS 국가들 사이에서도 자체 통화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즉 BRICS 회원국 통화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통화 사용의 다양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러한 통화의 다양화는 기존의 달러 기반에서 벗어난 ‘탈달러화’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의 주류 밖에서 개발금융을 제공하여 경제 사정이 어려운 개도국에 대한 혜택을 지속적으로 늘려가야 한다는 것이 브라질 정부가 주장하는 ‘탈달러화’의 근본적 취지이며 룰라 대통령이 주장하는 브라질 ‘탈달러화’는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의 저개발국에 대한 차관 제공을 위해 통화 사용을 다양화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NDB의 기본 목표는 인프라 투자에 대한 자금 지원으로, 브라질은 회원국들의 빈곤 퇴치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 촉진’을 위한 목표를 세우고 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남미국가 통합으로 연결되는 인프라 투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 실제로 NDB를 통해 이루어진 차관에서 브라질은 2020년부터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브라질 정부는 NDB가 남미국가에 대한 차관을 늘려 남미 인프라 개발 촉진을 위한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라고 있다. (<그림 3> 참조)
<그림 3> BRICS 은행의 연간 차관 변화
자료: Haubert, Mariana(2023.04.13.),
“Brasil é ‘grande’ e Banco dos Brics deve cuidar dos pobres, diz Lula”, Poder360,
무엇보다 2023년 3월 NDB의 새 총재로 지우마 호세프(Dilma Vana Rousseff)가 취임하면서 NDB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브라질 정부의 BRICS를 통한 행보는 과시적 측면에서도 두각을 보인다. 노동자당 출신의 브라질 전(前)대통령인 지우마는 2016년 재정회계법 위반 혐의로 탄핵당하여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적이 있지만 2014년 NDB 설립 당시 주요 멤버들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녀가 NDB 총재가 된 데에는 은행을 효과적으로 이끌어가려고 하는 중국 측의 의지가 반영되었으며, 실제로 브라질 신임 총재에 대한 BRICS 그룹 내 평가가 매우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전직 대통령으로 남미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내 다른 국가 원수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 새로운 파트너 위치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비롯하여 브라질 기업의 역량을 활용하여 새로운 재원 유입을 확대할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NDB 회원국은 증가 추세에 있다. 현재 BRICS 5개국 외에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방글라데시 등이 추가되었고, 우루과이가 가입 절차를 밟고 있으며 6월 초 아르헨티나, 사우디아라비아, 짐바브웨 등 4개국 가입이 추가로 승인된 상태에서 8월에 있을 BRICS 정상회의에서 공식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단, 아르헨티나의 경우 현재 100%를 넘나드는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경제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NDB 가입이 이루어질 경우의 위험성에 대해 회원국 간의 견해가 크게 엇갈리고 있으며, 실제로 브라질이 주장하는 BRICS의 행보가 순조롭게 진행될지의 여부는 국가 간 협의를 통해 결정될 것이다.
* 각주
1)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는 저개발국 또는 개발도상국을 가리키며 선진국을 뜻하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와 구분하여 사용되는 개념이다.
2) BRICs는 이들 4개국의 머리글자를 따서 부르는 명칭이다.
3) 이때부터 BRICs의 소문자 s가 BRICS의 대문자 S로 바뀌었다.
4)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GDP는 여러가지 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GDP(PPP 기준)는 환율 변동을 고려한 것이다. 이는 글로벌사우스에 속하는 개도국들의 경제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5) 신개발은행은 브릭스 은행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6) 브라질은 일부 특정 개별 국가의 패권주의를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왔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다수 개도국의 국익을 무시하고 독단적인 행보를 보이는 중국의 패권주의 역시 반대하는 입장에 있다.
7) 브라질을 포함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미국 패권주의에 대응해 오면서 ‘남미국가연합(UNASUR)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자유무역연합(ALALC)’, 라틴아메리카통합연합(LAIA),’‘안데스공동시장(ANCOM)’, ‘카리브공동체(CARICOM)’, ‘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동맹(ALBA)’, ‘남미공동시장(MERCOSUR)’,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국가공동체(CELAC)와 같은 다수의 지역협력체를 결성해 왔다. 이러한 협력체들이 많은 이유는 다른 지역과 달리 선진국이 주도하는 경제체제에 반대해 온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공통된 저항 의식과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는 경제적 측면만이 아닌 지정학적 측면까지 고려해야할 시점에서 안보 문제 역시 협력을 통해 대처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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