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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릴 열도Kurilskiye Ostrova)
위치 : 러시아 연방
캄차카 반도와 일본의 홋카이도 사이
면적 : 15,600㎢
대륙 : 태평양
국가 : 러시아, 일본
캄차카 반도의 남단에서 시작하여
일본 홋카이의 북동부까지
1,200㎞에 걸쳐 뻗어 있다.
열도를 이루는 섬의 수는 56개이다.
최초로 정착한 사람들은
러시아인들이었으나
1855년부터 75년까지
일본인들이 손에 넣었다.
1945년 얄타 협정에 따라
쿠릴 열도는 소련에 양도되었으나
일본은 여전히 남단부의
4개의 섬들에 대한
역사적인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기후는 혹독한 편으로
겨울은 길고 추우며
눈이 많이 내리고,
여름에는 안개가 많이 끼고
습윤하면서 서늘하다.
러시아 연방 캄차카 반도의
남단에서 시작하여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북동부에 이르기까지
1,200㎞에 걸쳐 뻗어 있으면서
오호츠크 해와 태평양을 가른다.
이 열도를 이루는 섬의 수는 56개이다.
이 열도는 태평양을 둘러싸고 있는
불안정한 지질대의 일부이다.
100개 이상의 화산 중
35개는 활화산이며,
온천 역시 많다.
이 열도에서는 지진과 큰 해일이
일상적으로 느껴질 만큼 흔하다.
특히 1737년에 발생한
해일의 높이는 64m에 이르렀는데
이는 기록상 세계 최고높이이다.
이 열도와 나란히 뻗어 있는
태평양 기저의 쿠릴 해구는
깊이가 1만 542m이다.
쿠릴 열도(Kurilskiye Ostrova)
기후는 혹독한 편으로
겨울은 길고 추우며 눈이 많이 내리고,
여름에는 안개가 많이 끼고
습윤하면서 서늘하다.
연평균강수량은 760~1,000㎜이며,
9월말부터 6월초까지 내리는 눈이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북쪽 섬들의 툰드라에서 시작하여
아래로 내려오면서
다양한 식생이 분포하며,
남쪽의 보다 큰 섬들에는
울창한 산림이 형성되어 있다.
게잡이를 비롯한 어업이
유일하게 중요한 산업이다.
주요중심지는 가장 큰 섬인
이투루프 섬에 있는
쿠릴스크 시와
파라무시르 섬의
세베로쿠릴스크 시이다.
이곳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들은
러시아인들로
그들은 17~18세기에
열도를 탐험한 후 정착했다.
그러나 1855년
일본인들이 남쪽의 섬들을 점령했고,
1875년에
열도 전체를 손에 넣었고
이름을 지시마(千島) 열도라 고쳤다.
1945년
얄타 협정에 따라
쿠릴 열도는 소련에 양도되었으며,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들은 추방되고
대신 소련인들이 들어왔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열도의 남단부에 있는
4개의 섬들에 대한
역사적인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의 영토 분쟁 -
사할린과 쿠릴열도 분쟁
극동아시아의 근현대사의 집약
러일전쟁, 포츠머스 조약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소련과 러시아를 상대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쿠릴열도 남단 4개의 섬에 관한
분쟁이다.
사할린과 쿠릴 열도 부근에는
아이누의 분파인 쿠릴 아이누라고 하는
원주민들이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었다.
17세기 중반
러시아 탐험대가
쿠릴 열도에 상륙하게 되고,
북쿠릴부터 홋카이도까지
탐험을 하면서
아이누족에게 모피 등을
수탈하는 등
조공을 받으며
해당 지역 지배의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러시아의 무지막지한 수탈을
견디지 못한
쿠릴 열도의 일부 섬 주민들은
러시아의 지배를 거부하고
일본을 선택하면서
러시아와 일본의 본격적인
쿠릴열도 영토 분쟁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 지역은
러시아가 먼저 진출했기 때문에
이곳에는 아이누족과 함께
러시아인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일본인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1845년,
일본은 쿠릴 열도 전부가
자신의 영토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하였고,
그에 대한 명목이
아이누족 역시 일본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고,
남 쿠릴 섬 4개가
일본의 땅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당시 러시아는
영국, 프랑스에게
지속적으로 견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이같은 행보에
대응할 만한 국가적 응집력이
부족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1855년 북 쿠릴은
러시아 영토, 남 쿠릴은
일본 영토라고
일본과 합의를 함과 동시에
러일 화친 조약을 맺고
분쟁은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그러나 이 조약에는
또 다른 분쟁 지역인 사할린 섬에 대한
명확한 합의는 없었다.
그리고 1875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
(사할린-치시마 교환 조약)을 맺고
사할린은 러시아가 갖고,
일본이 쿠릴열도를 소유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맺게 된다.
그러나 이 조약을 통한 평화는
얼마 가지 않게 된다.
1904년 일본은
러시아를 선제공격하며
러일 전쟁이 일어났고,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러시아의 패배로 끝이 난다.
그리고 일본은 승리의 대가로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사할린 섬 절반뿐 아니라
쿠릴 열도 전체를 차지하게 된다.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러시아는 적백내전으로
내부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일본은 이틈을 타
러시아 영토를 조금씩
점령하기 시작한다.
당시 레닌은 독일과 평화조약을 맺고,
연합국 전선에서 이탈하게 되는데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연합국은
러시아의 이런 행보에
불만을 내비치면서
러시아의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본은 이틈을 타
북사할린을 포함한
러시아 영토 내륙으로 침략했고,
1918년 전쟁이 끝났음에도
계속해서 러시아 땅을 점령하면서
제국주의를 넘어선
더 큰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1922년
길고 길었던 적백내전이 마무리되면서
러시아는 소련으로 다시 태어나고,
내부적인 결속을 다진 소련은
3년 후인 1925년
일본과 서로의 내정을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약을 맺었고,
북사할린을 포함한
러시아의 영토에서
일본이 철수한다.
그리고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소련은 연합군으로 참전하고,
일본을 치는 조건으로
남사할린과 쿠릴열도를
연합군에게 요구하는
미영소 3개국간의
얄타협정을 맺게 된다.
그리고 서쪽에서 까불던 독일과
이탈리아를 혼내주고,
1945년 8월 9일
일본에 전쟁을 선포한다.
당시 이미 연합군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 되어 가는 와중이었기에
소련은 전쟁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일본이 점령했던 땅들을
하나씩 하나씩 야금야금
점령해 나간다.
일본이 원폭을 맞고 항복한
8월 15일,
러시아는 그 이후에도
남사할린과 쿠릴열도를 밀고 들어갔고
9월 4일까지
일본군을 굴복시키며
쿠릴열도의 대부분을 점령하면서
침공을 마무리한다.
1951년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통해
최종적으로 남사할린과
쿠릴열도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한다는
평화 조약을 연합국과 맺으려 했으나
일본은 한국전쟁으로
관계가 개선된
미국을 등에 업고
쿠릴열도와 사할린에 대한
애매한 조항을 넣었고,
러시아는 자신들에게 불합리했던
평화조약에 합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러시아는
독자적으로 일본과 평화협정을
추진하면서
일본에게 쿠릴 열도 남단의
섬 몇 개를 떼어줄 테니
펑화 협정을 하자는 조건을 내거는 등
협정을 맺기 위한 노력을 했으나
미국의 개입으로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두 나라의 관계 개선이 절실했기에
지속적으로 협상을 시도한다.
그러나 냉전 시기였던 만큼
미국과 가까운 관계인 일본과의 협상은
순조롭게 이루어지기 어려웠고,
소련이 망하고 지금 푸틴 때까지
수차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합의가 되지 않아 아직도
분쟁 중인 지역이다.
러시아가 남쿠릴열도 4개 섬을
절대로 포기 못 하는 이유
군사적, 전략적 요충지로
또한 천연가스 비철금속 등
자원이 엄청나게 매장돼 있어 그 가치 커
일본 북방 4개 도서가
일본과 러시아의 영토분쟁인데
여기에 미국이 가세하고 나섰다.
일본의 외교적 영악함이
러시아와의 영토분쟁에
미국을 끌어들였고
이미 센카쿠열도를 놓고도
중공과 대립하면서
미국을 끌여들여
침략본성을 은폐한 채
야쿠자 칼날을 갈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국무부가
최근 남쿠릴열도 4개 섬
(일본명 북방영토)에서 태어난
러시아인들을
일본 국적자로 간주한다고
밝힌 것과 관련,
지난 6일 러시아 외무부가
텔레그램 공식 계정을 통해 밝힌
내용 가운데 하나가
"미국 자신들의 경계와
레드라인(한계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실효 지배 중인
남쿠릴열도 태생의 러시아인들을
일본 국적자로 간주하겠다는
미 국무부의 조치에
유리 트루트녜프 러시아부총리 등
정부의 주요 관료들은
상당한 불쾌함을 나타냈다.
남쿠릴열도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러시아가 이렇게 발끈하는 것일까.
남쿠릴열도 4개섬은
러시아와 일본이
오래전부터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며
갈등을 겪고 있는 지역이다.
남쿠릴열도는
지도상으로
러시아 극동 캄차카반도에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방향으로
쭉 늘어진 쿠릴열도의
남쪽에 위치한
4개 섬(이투루프, 쿠나시르,
시코탄, 하보마이)을 말한다.
크기로는 서울시 전체면적(605㎢)의
8배 이상인 5천㎢로
제주도(1천849㎢)보다도 크다.
4개 섬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갈등의 역사적 배경은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인들이
북방지역으로 진출하면서
대응에 고심하던 러시아는
1855년 2월
일본과 러, 일 통상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으로
남쿠릴열도는
일본 영토가 된다.
일본은 이 조약을 근거로
현재까지 여전히 이 섬들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생각은 완전히 다르다.
남쿠릴열도 4개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인
이투루프 섬의 모습.
러시아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등에 따라
남쿠릴열도가 합법적으로
자국에 귀속됐다고 강조하고 있어
러시아는 2차 대전 종전 후
전승국 러시아와 패전국 일본 간
배상 문제를 규정한
국제법적 합의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등)에 따라
남쿠릴열도가 합법적으로
자국에 귀속됐다고 강조하고 있다.
4개 섬 문제를 두고 양국이 해결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55년 당시
소련이 일본과 평화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일본에 가까운 2개 섬
(시코탄, 하보마이)을
반환하겠고 밝히기도 했지만,
일본이 4개 섬 일괄반환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틀어진 바 있다.
이후 냉전체제가 붕괴하면서
양국 간 협상이 이뤄졌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과거 남쿠릴열도 2개 섬 반환까지는
입장의 변화가 있었던 러시아는
최근 실효 지배를
공고히 하는 정책을 강화하면서
절대 4개 섬의 영유권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이는 남쿠릴열도가 차지하는 위상이
과거와 비교해 상당히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쿠릴열도 인근 해상은
북극항로 활성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길목이며
또한 태평양에 진출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요충지이기도 하다.
'쿠릴 절대 포기 못 한다'는
내용의 팻말을 든 러시아 공산당원.
4개 섬 인근에는
천연가스와 석유,
비철금속, 수은 등
각종 자원이
엄청나게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Korea가 무역 통상으로
먹고 사는 나라라면
러시아는 석유 가스 등의
천연자원으로 먹고 산다.
무엇보다 4개 섬을
일본에 넘겨줬을 경우
미군이나 일본 자위대의 군사시설이
이곳에 들어설 가능성을
러시아는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집권 하에서
영토 문제를 민감하게 바라보는
러시아 사회의 시선을 고려한다면
남쿠릴열도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실제 사할린 지방정부는
회의에서
쿠릴열도의 일부가 일본 영토로 표시된
지도를 사용했다면서
공무원을 해임하기도 했다.
당시 발레리 리마렌코 사할린 주지사는
"왜곡에 대해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서
"공무원의 태만에 대해
제일 강한 벌을 내려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 푸틴대통령의 젊었을 때의 모습
러시아 푸틴대통령은
2년 전부터 이곳에
2개 육군 사단을 추가로 배치하고
해안방어포 진지를 구축했으며
최신 전투기들을
인근에 배치하여
4개섬의 분쟁에
종지부를 찍은 바 있다.
자원이 풍부한 쿠릴열도 4개섬을
푸틴대통령이
일본에 외교적으로 넘겨줄리는
만무하다.
일본도 하루 빨리 그들만의 꿈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
필자의 리뷰 쪼개기
2차대전의 패배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신사참배를 하는 등의
전범국가로서 해서는 안될
영토 분쟁을
동북아 3개국(한중러)과 빚고 있는데
이것을 달리 말하면
침략적 언행을 지속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2차 대전의 패전국 일본은,
1. 러시아와 쿠릴열도 4개섬으로
영토분쟁을 겪고 있고
2. 중공과는 센카쿠열도로
영토분쟁을 빚고 있으며
3. 한국과는 독도를 놓고
분쟁화를 시도하고 있다.
힘이 강한 자가
국경분쟁에서 항상 승리를 하고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나라가
결국 영토분쟁에서 주인이 된다.
일본은
남쿠릴열도 4개섬의 주민에게
주민투표를 하자고
러시아에 제의해야 한다.
이게 해결의 답이라 본다.
동북아의 한중일러 4개국은
영토분쟁에서 편안할 날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미국이 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과 일본은
힘의 균형이 고점을 점하고 있어
중공이나 러시아에게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같은 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독도문제를 갖고
미국은 어떤 자세를 취할까?
미국은 내심 발표를 안하고 있지만
일본과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하여
독도를 일본의 섬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고
청일전쟁 이전에
미국과 일본이 맺은
카쓰라 태프트 밀약을
상기해야 한다.
필자는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고 하고 싶다.
앞으로 일본과의 크고 작은
기회가 생기면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일본 대마도는 부산생활권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긴 안목으로 대처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동북아를 객관적으로 본다면
중러는 북한과 함께
1950년 공산화 침략전쟁을 했고
휴전 이후에 Korea와 일본이
미국과 동맹을 맺은 후에는
전쟁은 없었다.
동북아에서 67년간
전쟁이 없었던 이유중의 하나는
Korea와 일본과 동맹을 맺은
미군이 주둔해있다는
실체적 사실을 부인할 수 없고
앞으로도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는 한
미군이 주둔해야 하는
당위성이 Korea와 일본에
있다 할 수 있다.
손자병법에도 없는
Korea의 문정권 집단의
근거리 북중러와의 친교정책은
스스로 국격을 낮추거나
어리석은 외교라는 것을
동북아를 놓고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한일중 정상회담을
한일중러가 참여하는
4개국 정상회의로
확대 발전시키는
외교전략이 필요하고
한미일 3개국의 정상회담은
매년 개최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동북아에서 문을
철통같이 걸어 잠그고
구시대의 병정놀이 하는 북괴는
하루빨리 동북아 정세를 파악하고
한미일 정상회담에 참여하여
문호를 개방하고
대륙의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나
문명세계의 밝은 곳에
참여하는 노력을 함께 해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