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1일 지인이 보내 준 "일제하 연천지역의 민족운동(1920~1945)"
제하의 논문에서 조부이신 박인서 선조께서 장동강습소 발기인으로 참여하신
기록을 최초로 발견하면서 그 여정이 시작되었다.
장동강습소는 2023년 이전까지 그 존재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데 전혀 생각치도
않은 장동강습소를 발견하면서 필자 인생의 관심사가 한순간에 장동강습소로
전환하였으니 실로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다.
그동안 장동강습소와 관련된 두편의 칼럼에서 그 역사에 대하여 자세히는 아니라
해도 어느 정도 윤곽은 소개했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이틀전에 완성한 칼럼에 이어서 장동강습소 명칭과 관련해 추가로 발견된
사실을 전한다.
미리 언급할 내용은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은 지인들의 도움이 대단히 컸다는 점을
강조한다.
첫째.장주천의 동쪽과 관련된 내용이다.
고산자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 연천 항목에 의하면 고려 태조 대에 연천을
장주라고 하였으며, 장주천에 대해서 소개하기를 철원땅에서 흘러나와 웅연을 지나
연천현 남쪽에 이르러 장주천이 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볼 때 장동강습소의 명칭은 장주천의 동쪽에 있어서 붙여진
명칭이거나 장주 즉 연천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명칭으로
추정된다.
둘째.연천과 철원의 고지명인 장주와 동주와의 관련성이다.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고려 태조 대에 연천을 장주라 하였으며, 또한 철원 역시
고려 태조 대에 동주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동강습소 명칭을 정할 때 장주와 동주 각각 첫번째 글자를 인용해 최종적으로
장동강습소로 결정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장동강습소 명칭 유래 못지 않게 누가 이러한 명칭을 지었는지 궁금하게
생각되는데, 과연 오늘 소개한 2개항 중에서 어느 안이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인지
현재로선 그 실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외에 다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그동안 조사한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볼 때 명칭과 관련된 사안은 위에 소개한 2개항중에서 하나로 최종 결정되었을 것으로
본다.
결론적으로 장동강습소 명칭과 관련된 진실의 실체가 좁혀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2024년 1월 30일(화) 문암 역사작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