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5월27일 홍콩경마장에서 등려군님은
북경대학생의 민주화시위를 돕는 24시간 릴레이 콘서트에 참가하여 민주화를 위해
"我的家在山的那一邊"을 부릅니다(2429번에 동영상이 있습니다)
그후 예정된 일본행을 포기 하고 홍콩에 머무르면서 북경의 상황을 주시하였으나
결국 6월4일 비극적인 천안문사건이 발생되어 수천명이 목숨을 잃는 대참극을 맞이합니다
이 동영상은 그 충격으로 홍콩에 머무르고 있던 6월21일(아마일본에서 공연이 예정있는것 같았습니다)
일본 TV아사히가 홍콩과 위성중계를 한 동영상 입니다
아나운서의 멘트를 간단히설명하면
아나운서 - "오늘 원래 예정데로 라면 일본에 있어야 하는것 아닙니까?
등려군 - 저도 정말로 일본으로 가고싶었는데 중국문제가(천안문사건)안좋아서 여기 머무르기로
하였습니다
중간에 노래를 신청한건지 등려군님이 스스로 부른것인지 "홍콩"을 부릅니다
아나운서의 멘트가 "테레사텐이 필사적으로(억지로) 슬픔을 감추고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울면서 노래를 부르는 등려군님(아마 천안문에서 희생된 사람들 과 홍콩반환으로 인한 슬픔이라고 생각 됩니다
---노래중간에 자막 " 이 노래는홍콩의 중국반환을 의식하여 3월에 발표 하였다"라는 글도 보입니다
--- 아마도 중국에 대한 서운함을 담아 이 노래를 부른것같습니다//
앞으로는 음미하면서 노래를 들어봐야 할것 같습니다(이곡이 그런사연이 있는줄몰랐습니다)
노래의 마지막에 아나운서의 멘트 ..절망의 눈물이었다
등려군님이 사랑 받을수밖에 없는 이유는 물론 노래도 훌륭하지만 이런 인간적인면
때문에 더할 것입니다
오늘도 울었습니다
날이 더할수록 더욱 더 보고싶습니다
첫댓글 등려군님의 노래만 자주 들었는데, 영상이 담긴 동영상을 볼땐 왜이리 소름이 쫙 돋는지, 왜 그렇게 일찍 가셨는지, 정이 참 많은분 같아요
일곱가족을 5,6살때부터 노래를부르면 부양하였다고 합니다 가족들에 대한사랑이 모든이들을 사랑하신것같습니다
어제 밤에 '中華 TV'란 채널에서 등려군님이 왜 대륙을 그리워하고 중국정부를 미워했는지...자세히 나오더군요. 흐어베이 출신이고 쑤저우에 집을 짓고...중국에 여자학교를 세우고...등등 많은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남동생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중국 정부에서 등려군이 국민당 特務(간첩?) 이라고 오해했던거--대만에서는 외국에 나가는 유명인들에게 국민당 앞으로 각서 같은 걸 쓰고 당원으로 가입해야만 출국허가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등려군님은 대륙에 굉장히 가고 싶었다고 합니다....그 프로그램 마지막쯤에 그 당시 중국에서 등려군에 대한 방송이 딱 한번 나왔는데...그 방송이 태국에서 별세한 소식이었다고 합니다.
어제 가족들 만류에도 불구하고 리모컨을 꽉 쥐고...눈을 동그랗게 뜨면서...많을 걸 눈과 머리에 담았는데....지금 다시 끄집어낼려니....아른거리네요.....흑흑....이제는 모든 걸 2~3번 이상 접해야...기억에 많이 남는답니다.....
장개석의 국민당은 이기적인면이 많습니다 등려군님이 비자문제로 일본에서 대만으로 돌아오려하자 자국민인 등려군님의 입국을 거부하는 짓도 서슴치 않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입국이 허용되었으나 정부에 많은 기부금을 내고 군위문공연과 대만을 알리는일을 강요당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歌姬(우다 히메)로서는 가장사랑받고 존경받았지만 개인적으로 그리 행복한 삶은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분렬된나라에서 살고 있는 자국민들의 비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