冬至 김문억
오늘이 冬至다 오후 2 시 반이 동지 팥죽을 먹는 시간이라고 한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팥죽 먹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을 것 같다 먹는 시간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24 절기 중에서 가장 나중에 있는 동지고 보니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 되면서 천문학적으로 계산하여 그 시간이 나온 것으로 안다 冬至 라고 하면 말 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이 된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겨울이 되면서 날이 몹시 춥다. 그러고 보니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면서 마음에서 정리를 하고 새 해를 맞을 준비를 하게 된다. 그래서 동짓날에는 달력을 나누어서 돌렸던 풍습이 있었다. 일컬어 작은설 이라고 했다. 매우 큰 명절이다. 실질적으로는 다음 해 농사도 지금부터 시작 되었으니 겨우살이 보리 싹을 밟아 준다거나 마늘밭을 돌보아주기도 하고 사랑방에서 가마니를 치고 새끼를 꼬면서 복조리도 같이 만들기 시작 했다. 긴긴 밤을 이용한 멋스러운 농촌 풍류였다. 그러자니 무엇보다 잡스런 귀신을 다스리는 일도 중요했던 것으로 귀신을 다스리고자 귀신이 싫어하는 핏빛 음식을 끓였던 것이다. 새해에는 잡스런 일 겪지 않고 좋은 일만 생기라는 기원이다.
신라의 설화에 의하면 어느 날 선비의 집에 과객이 찾아와 훈수를 두어 부자가 되었는데 항상 한 밤중에 왔다가 새벽에 닭이 울면 사라지곤 했다. 선비가 재산은 많아졌으나 몸이 아프고 야위어가기 시작해 근처의 스님에게 물어 보았다. 그 과객은 도깨비니까 흰말을 잡아 그 피를 뿌리면 없어진다고 해서 해마다 말을 잡아 뿌릴 수 없어 팥죽을 쑤어그 것을 집에 뿌려 도깨비를 물리쳤다는 등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귀신과 사람의 관계란 무엇일까 사전적 풀이를 보면 이렇게 기술 되어 있다.
귀신 : 죽은 사람의 넋 넋: 사람의 몸에 있으면서 몸을 거느리고 정신을 다스리며 목숨을 붙어 있게 하는 비물질적 존재, 몸이 죽은 뒤에도 영원히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영혼: 육체 속에 깃들어 생명을 부여하고 마음을 움직인다고 여겨지는 무형의 실체 마귀 : 요사스러운 잡귀를 통틀어 이르는 말
그러고 보면 넋과 영혼은 같은 뜻풀이로 들어도 좋을 것 같고 귀신 역시 죽은 넋을 이르는 말이고 보면 삶과 죽음의 같은 선상에서 무난할 것 같다. 그렇다면 귀신도 모두 임자가 있을 것이요 다만 문제가 되는 잡귀라는 것이 오늘의 화두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창조주의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도 귀신은 인정하는 것 같다. 창세기에 보면 하마 인간을 만들면서 뱀이라고 하는 마귀가 나오는데 이는 사람이 죽어 된 귀신이 아니고 태초부터 만들어진 마귀에 속하는가 보다. 난 기독교 경전을 잘 모르는데 지금 귀신 사전을 보다가 그 부분이 궁금하여 잠시 읽어 보았다. 마귀를 먼저 설정 해 놓고 성서가 시작 되는 것도 까닭이 다 있을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아무튼 동짓날 기승을 부리는 그 귀신은 핏빛을 싫어하고 빛을 싫어한다고 한다. 귀신은 어디까지나 야행성 발바리다. 그래서 첫 닭이 울기 전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 얼른 잡수시고 저승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밝은 대낮에 집 주위 사방으로 팥죽을 휘휘 뿌려서 냄새를 잔뜩 묻혀 놓고 귀신을 잘 모셔야 한다. 그래서 팥죽을 끓이면서 맛을 미리 보지 말라고 했나 보다. 귀신한테도 부정타는 일이니까 ㅎㅎㅎ 평생을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잘 살다가 가신 귀신은 저승에서도 괜찮은 아파트에 입주를 하여 편안하게 계시기 때문에 이승에 남아있는 식구들이 무탈하게 살고 있다. 파주나 용인에 가면 그런 저승 아파트 대단지가 있다. 그렇지 못하고 억울하게 가신 귀신은 저승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 사이를 떠돌면서 어느 귀신은 산사람에게 온갖 해꼬지를 하는갑다. 덕분에 무당이 먹고 살고 점쟁이가 먹고 산다. 억울하게 죽은 최영 장군이나 임경업 장군 같은 분들의 귀신을 극진하게 모시는 까닭이다. 미신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사람이 하는 일들이 나름대로 다 까닭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주의 해 보면 우리가 하는 일들이 무두 따듯하고 아름답다
어째 이야기를 쓰다가 보니 팥죽으로 귀신을 쫓은 이 대목에서는 말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귀신 이야기라서 그런가 말이 앞뒤가 안 맞고 잡다하다. 내 붓 끝에 지금 귀신 붙었나? 아, 說을 실재로 쓰다가 보니 그렇게 되는갑다. 그냥 그런 줄 넘어가자. 아침에 쓰는 일기니까 귀신이 붙는지 오시는지 가시는지 그런 것을 사실대로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저 건너 휑하니 드러난 산기슭에 누워서 추운 겨울을 같이 하고 있는 무덤 하나도 저승살이 단독주택쯤으로 치부하면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뜻이라면 온 백성이 집집마다 팥죽을 끓여 좋은 날 아니겠는가. 없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라면 얼마나 더 좋은 날인가. 이쯤에서 내 친구 김숙자 시인이 쓴 동지 시 한 편 읽고 가자 동지/김숙자 오늘은 내가 씨암탉이 되어야겠다 하얀 새알을 낳아야겠다. 어머니가 그랬듯이 식구들 나이를 헤아려가며 동글동글 예쁜 알을 빚어야겠다 액맥이 알을 낳아야겠다 팥죽이 하마 식긴 했지만 잡귀를 막아낸 어두운 그 길로 자정 전에 누구라도 돌아오겠지
그런 귀신에 대한 禮와 式도 모두 사라지고 비록 먹는 食만 남았지만 그나마 찾아 지키고 보면 무엇인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 진하고도 순수한 것을 느끼게 된다. 다만 추운 날 노숙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다시 감방을 가기위해 지하철에서 불을 질렀다는 가슴 아픈 소리가 들려온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 보다는 그런 사람이 주위에 많다고 한다. 문득 지난 해 동짓날 썼던 시 한 수가 떠오른다.
표독스런 저 바람소리 누가 또 끌려가나 신문지 한 장 덮고 지하철역에서 자는 사람 솜이불 끌어 덮다가 드는 잠을 물리네. -김문억의 冬至- |
첫댓글 여긴 오늘이 동지네요.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