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4.연중 제30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일요일>
<마태28,16-20>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오늘은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입니다.
복음화를 위해서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입니다.
즉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를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이 행위로가 아니 본성의 변화로 이루어짐을 믿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나 혼자가 아닌 그리스도를 머리로하여 우리가 한 지체임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개인주의로 인한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여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했습니다. 결국 코로나19라는 재앙을 맞게 된 것이지요.
이제는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합니다.
방법은?
가. 현존의식 및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경배
1.눈을 감고 깊은 호흡을 합니다.
“나”라는 의식이 머리에 있는지, 가슴에 있는지, 배에 있는지 느껴봅니다.
2.”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의 말씀을 세 번 외친 후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믿습니다!”
3.”나”라는 의식이 있는 곳(머리, 가슴, 배 중 한 곳)에 빛이신 예수님이 함께 계심을 느낍니다.
4.예수님과 함께 계신 삼위일체께 경배드립니다.
5.내 안에 계신 삼위일체 하느님께 경배하여,
외적인 침묵, 내적인 침묵, 신적인 침묵에 이르신 삼위일체 성녀 엘리사벳께 전구를 청합니다.
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로서의 공동체 의식
1.눈을 감고 깊은 호흡을 합니다.
2.내 안에 계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의식합니다.
3.마음(영)을 열어 나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통합이 되도록 합니다.
4.내 주위에 있는 형제 자매들 안에 계신 하느님을 의식합니다.
5.내 안에 계신 하느님과 형제 자매들 안에 계신 하느님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내 안에 계신 하느님과 형제 자매 안에 계신 하느님이 서로 통교하도록 마음을 엽니다.
6.그분을 머리로 한 몸을 이루며 우리는 그분의 지체임을 의식합니다.
다. 하느님 사랑, 이웃사랑 그리고 지구사랑을 위한 실천표 중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정해서 매일매일 실천합니다.
1.묵주기도(단/하루)
2.성서 읽고 맛들이기(장/하루)
3. 희생(번/하루)
1)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생활다시보기 실천하고 기록하기
영성체 모시기
주모경 바치기
성체조배하기
침묵하면서 하느님 안에 머무르기(최소1분)
마음속으로 고요히 주님께 사랑 고백하기
성가1곡 듣기 또는 따라 부르기
성당 마당 성모님께 인사드리기
식사 후 기도하기
가족들에게 눈웃음 짓기
부모님께 안부 전화 드리기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배달원, 택배 아저씨께 수고하신다고 인사하기
교우들에게 안부 톡 보내기
나 자신을 용서하기
어려운 이웃 돌보기
영성 서적 읽기
2) 지구 사랑
가까운 거리 걷기(대중교통 또는 자전거 이용하기)
낮은 층 계단 이용하기
개인 손수건 매일 세탁하여 들고 다니기(화장실 및 그외 장소 사용)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기
플라스틱 빨대 쓰지 않기
텀블러 사용하기
분리수거는 꼼꼼하게 하기(재활용이 가능한 포장재 반납하기)
의약 폐기물은 반드시 분리수거
양치와 비누칠 할 때 물 잠그고, 설거지할 때 물을 받아서 하기
샴푸, 물비누 대신 샴푸바, 비누 사용하기
사용하지 않는 가전제품 플러그 빼기
빈 방에 불 끄고, 적정 실내 온도 지키기
4.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요일별 성서 말씀 매일 3번 외치기
월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14,6)
화요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14,14)
수요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2,20)
목요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15,16)
금요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17)
토요일: “그분께서는 그 영광과 능력으로 여러분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2베드1,4)
일요일: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로마12,1)
5.( )소망이 농은 홍유한 선생님의 전구로 이루어지길 청하며,
‘수덕생활을 위한 기도문’ 하기
<수덕생활을 위한 기도문>
지극히 자비로우신 주님
이 땅에 교회가 생기기전
천주실의에 쉼취하여
칠극이 제시하는 신앙을 살고자
홀로 28년간 입산하여
최초의 수계생활을 한 농은(隴隱) 홍유한(洪儒漢, 1726-1785) 선생을
저희에게 보내주심에 감사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정결한 생활의 모범이 된 농은 수덕자의 정신이
그 후손인 순교 성인들 안에 다시 부활했듯이
기도와 수련중에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회개와 믿음 소망 사랑으로 저희를 이끄시어
삼위일체적 친교와 일치를 누리게 하소서.
아멘
2009년 12월 31일
천주교 의정부교구 교구장 주교 이한택 요셉 인가.
6.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음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matthew28,16-20>
16 The eleven disciples went to Galilee, to the mountain to which Jesus had ordered them.
17 When they saw him, they worshiped, but they doubted.
18 Then Jesus approached and said to them, "All power in heaven and on earth has been given to me.
19 Go, therefore,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20 teaching them to observe all that I have commanded you. And behold, I am with you always, until the end of the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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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잠재의식의 창고를
가득 채워라
이야기가 좀 거창해졌다. 우리가 무슨 세계를 놀라게 할 발견이나 발명을 할 것도 아닌데!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시험공부를 좀 잘할 수 있으면 하는 건데!
하지만 우리 일상의 모든 활동은 창조 그 자체다.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도 있고, 빠를 수도 느릴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건 창조적 행동이다. 더구나 시험공부는.
그리고 이 창조를 이해하기 위해 우린 잠재의식 속의 창고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학 문제 푸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많은 공식이 있다. 이 모든 게 의식선상에 있는 건 아니다. 많은 공식 중 쓸 만한 걸 골라 온다. 기억 창고, 즉 잠재의식 속에 있던 걸/ 의식선상에 올려놓고 문제를 풀기 위해 이래저래 추론하고 조합을 해 본다. 이게 수학 응용문제를 푸는 과정이다. 발산적 사고에서 수속적 사고로 가는 과정이다. 다만 시험이나 공부에는 시간 제한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기억 창고 속에 공식이 없다고 해 보라. 몇 시간을 끙끙거려도 풀 수가 없다. 맞는 열쇠 없이 문을 열겠다는 것과 같은 무모함이다.
수학도 암기라고 한 건 이래서 나온 소리다. 일단 창고에 많은 수학 공식을 넣어야 한다. 무슨 방법을 쓰든.
어떻게 무엇을 넣을 것인가? 필요할 때 무엇을 어떻게 끄집어내며, 이를 어떻게 추론하고 조합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이 모든 의식적 작업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할 것인가? 모든 뇌과학 지식을 총동원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보자. 열쇠는 잠재의식에 있다.
잠재의식의 존재는 안 보이고 만질 수 없으며 증명된 게 아니니까 과학적이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그건 에너지를 못 믿겠다는 소리나 같다. 에너지는 누구도 보지도 만지지도 못했다. 그러나 에너지가 만들어 내는 결과를, 차가 움직이는 걸로 우리는 보고 있다. 이 책에서도 지금까지 잠재의식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애증을 들어 설명했기에 그 존재에 대한 시비는 더 이상 없으리라 믿는다.
다만 잠재의식은 우리 의식으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잠재의식이 활동을 잘할 수 있게 의식적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다./. 많은 걸 공부하고 기억하면서 잠재의식 속의 창고를 채워야 한다. 그러면서 뇌가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성공의 이미지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모두 우리가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 다음 기다려야 한다. 무의식 속에서 숙성되어 어느 순간 문제가 풀려 ‘아!’ 하고 섬광이 의식 속으로 떠오를 때까지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한다. 창조는 좋은 와인처럼 숙성하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이시형, 중앙북스, 2011, p.13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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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정의롭게 행동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에게 속한 것을 본래의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일에 언제나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것은 정의로운 행동이 됩니다.[1807, 1836]
자비가 없는 정의는 불친절하고, 정의가 없는 자비는 명예롭지 못합니다.(프리드리히 폰 보델슈빙(1831~1910년), 개신교 신학자, ‘벧엘 요양원’ 설립자)(YO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250)/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2티모4,2)
정의의 요지는 ‘각자의 것을 각자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적 장애아는 재능이 매우 뛰어난 아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재능을 찾는 것을 재원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모두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게 됩니다. 정의는 균형을 추구하며, 사람들이 자기에게 귀속된 것을 얻는 것을 보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서도 정의롭게 행동해야 하므로, 본래 그분의 것인 우리의 사랑과 흠숭을 그분에게 돌려 드려야 합니다.
(YOUCAT 가톨릭 청년 교리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 최용호,2012,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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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 정의는 윤리적인 덕으로서, 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이다. 하느님을 향한 정의를 ‘경신덕’(敬信德, virtus religionis) 이라고 부른다.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는 각자의 권리를 존중하도록 하고, 사람들에 대한 공평과 공동선을 촉진시키는 조화를 인간 관계 안에 확립하도록 하는 것이 정의이다. 서서에 자주 나오는 “의로운” 사람은 사고의 올바름이 몸에 배고 이웃에게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영세민이라고 하여 두둔하지 말고, 세력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봐주지 마라. 이웃을 공정하게 재퍈해야 한다”(레위19,15). “주인 된 사람들은 여러분에게도 하늘에 주인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자기 종들을 정당하고 공정하게 대우하십시오”(콜로4,1)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676)/
간추림
->1836 정의는 하느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꾸준하고 굳은 의지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p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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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식사동성당 (성체성혈) | 2021.10.24.연중 제30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