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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넜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 게로 흘러간다.
앞장 선 허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줏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나,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편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 ―― 팔자에 있었나부지.”
아무렴! 하고 응답하면서 말머리를 아끼는 듯이 한참이나 담배를 빨 뿐이었다.
구수한 자줏빛 연기가 밤기운 속에 흘러서는 녹았다.
“날 기다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달리 기다리는 놈팽이가 있는 것두 아니었네.
처녀는 울고 있단 말야. 짐작은 대고 있었으나 성서방네는 한창 어려워서 들고날 판인 때였지.
한 집안 일이니 딸에겐들 걱정이 없을 리 있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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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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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돌뱅이 허생원 일행(조선달과 동이)은 당나귀 한 마리씩을 몰고 평창 일대의
면 단위인 봉평, 대화, 제천 등지로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여 하루하루를 먹고 산다.
그들은 다음 날 이웃면의 장터에 당도하기 위해서는 밤을 새우며 길을 걷는다.
그러한 여정(旅程)에서 허생원은 자신이 젊은 날에 겪었던 낭만을 반복하여 이야기한다.
자신과 평생 인연이 있는 것이라고는 암컷 나귀 한 마리 밖인데, 젊은 시절에 봉평 장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더운 객방을 피해 목욕하러 나왔다가 물방앗간에서 성서방네 처녀와 정분을 맺었던 얘기다.
그에게는 평생에 걸쳐 여자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개울을 건너고 밤길을 걸으면서
셋이 얘기를 나누다보니 동이가 ‘자신의 자식이 아닐까’하는 확신을 갖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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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의 일입니다.
저희 가족과 동생네 식구들은 함께 여름휴가를 평창으로 갔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한 겨울에도 제법 따뜻한 날도 있듯이 제 인생에서도 그러하였습니다.
우리는 약간은 흥분되기도 하고 여장을 풀자마자 주위에 대한 관심이 발동하였습니다.
헌데 이 강산 어디든 곳곳에 토신(土神)이 있거나 산신(山神)이 있기 마련이라,
타지(他地)에 오면 그 곳의 어른에게 인사를 먼저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또 우리식대로 대흥사에 들러서 참배를 하고 ‘웰컴투 동막골’로 달려갔습니다.
영화 촬영장은 워낙 산골짜기에 있어서 으스스하기도 했는데 너와지붕 아래 소품 장에서
사진도 찍고 서로를 놀래기도 하고 머리에 꽃도 꽂아봅니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이효석의 메밀밭으로 승용차 두 대로 시골길을 미끄러지듯이 갔습니다.
이효석의 생가라는 곳은 그 메밀밭 가운데 초라하게 앉아 있었는데 항아리들과 솟 단지들로
사진을 찍기에 알맞게 풍성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허생원이 일을 냈다는 소설의 그 장면을 목격이라도 하려는 듯 우리는 물방앗간에 들어가서
디딜방아도 디뎌보고 물이 칼칼 흘러넘치는 개울에 발도 담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서 영화 「식객」을 촬영하였다는 ‘정강원’에 들러서 깔끔한 한식을 즐겼습니다.
평소에 막걸리를 좋아하던 저는 기사(技士)라는 직책도 잊고 연거푸 대여섯 잔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그렇게 될 줄이야!
숙소로 돌아오는 길목에 경찰관들이 나와서 음주를 측정하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저보다 차 스무 대 가량 앞서 있었는데 동생이 음주 측정을 할 시점에 맞추어 차를 돌렸습니다.
저는 영리한 제 여동생이 경찰들을 잡고 시간을 끌 줄 알았거든요. 제가 차를 돌리자 경찰도 빨랐습니다.
계속 하던 일을 다 내버려두고 바로 저를 쫒아왔습니다. 동생도 뒤에서 차를 돌렸는데
그 앞에는 경찰차 한 대가 더 있었습니다.
뒤에서 동생은 저에게 계속 연락을 해 왔습니다.
“오빠,
물을 계속 마셔요. 경찰이 물으면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해요.”
제 차에 탄 아들과 조카는 묵묵히 먼 산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제 편도 경찰 편도 안 들겠다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섭섭하기도 했지만, 실인 즉 좀 부끄러웠습니다.)
아무리 밟아도 차가 나가지를 않습디다.
결국 얼마가지 못하여 앞서온 경찰차가 바로 뒤에서 차를 세우라고 지시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차를 세우고 불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불었습니다.
뒤 따라 오던 경찰차에서 제법 높으신 분이 내려서 오늘 한 건 올렸다며 의기양양해서 왔습니다.
헌데 먼저 온 직급이 낮은 경찰관이 한 보고는 ;
“나오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들은 높으신 양반은 휘청거렸습니다.
현기증(眩氣症)이 온 모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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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정진권(고교동창)
첫댓글 LIG 손해보험에 근무하는 고교동창이 보내 온 글을 올려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