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실 베트남에 오기 전에 오토바이를 탄 경험이 있었다. 그것이 비록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말이다. 그 당시 경기도 광탄 근처에서 아는 사람의 오토바이를 빌려 탄 적이 있었는데 오토바이 생 초짜가 핸드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을 빌려서 탔으니 뒷이야기는 생략해도 상황은 뻔하지 않겠나? 높이는 2미터가 넘는 논 두렁이지만 다행히 흙이 부드러운 곳이어서 생명에는 지장 없이 온 몸에 상처만 남는 영광을 안고 나의 오토바이 연수는 그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남들이 말하는 ‘오토바이는 과부틀’ 이라는 말을 절실히 실감하면서….
2.
떤셨녙 공항에서 호찌민 시내로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오토바이 아니 쎄마이 떼거지를 보면서 그때 그 아픈 추억이 떠오름과 동시에 내가 이곳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경우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을 했다.
3.
처음 다이야몬드 플라자가 있는 곳(우리 회사에서 대략 1km 정도 떨어져 있다)까지 택시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게을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돈이 많아서 그런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정도 거리라면 운동 삼아서라도 걸어 다닐 수 있는 데 라며 나 혼자 열심히 걸어다녔다.
내가 몸으로 그들을 이해하는 데는 딱 한 달 하고도 보름이 걸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도대체 걸어 다닐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결국엔 게을러서 그런 것도, 돈이 많아서 그런 것도 아니라 순전히 생명 유지 차원에서 택시를 애용(이용이 아니라 -_-)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 동네 택시비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회사 일로 다니는 것도 가능하면 택시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나의 신조다.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경비절약 차원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적은 경비를 회사에 청구하는 것이 조금 피곤하게 느껴지는 점도 있고 더 중요한 건 일이 바쁠 때는 경비 청구하는 것을 잃어버려 개인 살림살이에 적지 않은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적은 돈이라도 회사 경비는 확실하게 청구해서 받자는 것이 나의 신조인데 왜냐하면 내 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회사 돈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모든 사장님들은 조그만 경비는 칼같이 챙겨주기를 바란다. 아니면 다른 곳에서 새니깐..-_-)
이야기가 잠시 샜는데, 각설하고…
여기서 나의 주요 취미생활은 사진찍기다. 사진을 찍으려면 맘놓고 다닐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여기선 차가 없으니 불가능하였다.
4.
회사 사장님을 멋지게 설득을 한 결과 사장님 오토바이를 갈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새 오토바이를 가지고 싶어했었던 사장님의 의중을 잘 헤아릴 줄 아는 고급간부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내가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짧은 시간에 누구나 겪어야 할 신고식들을 나 역시 치렀다는 것이다. -_+…
이제 쎄마이를 몰고 다닌 지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그 동안 공식적인 라이센스도 취득했고 나름대로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친 결과 더 이상 쎄마이를 모는 것이 나에게 공포로 다가오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빽빽한 쎄마이 떼를 연신 브레이크를 잡아가며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와 스스로 쎄마이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뿌듯해 할 그 때 나의 자만심을 산산이 부서지게 만드는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내 옆에서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운전하던 얌전한 베트남 아줌마, 아가씨들이 어느 틈에 내 앞에서 처음 그대로 여유 만땅으로 가고 있는 것을 한두 번도 아니고 날이 갈수록 자주 목격하게 된 것이다. 분명히 거칠고 터프하게 몰면서 이 떼거지 무리를 모두 지나쳤었는데 언제, 어떻게?
5.
이번에는 처음부터 단단히 각오를 하고 레이스를 펼쳐보기로 했다.
그 계기는 역시 아가씨…-_-
토요일인가? 나의 애마를 몰고 어딜 갔다 오는데 갑자기 나타난 늘씬 105% 아가씨가 쎄마이 조차도 예쁜 놈을 몰고 앞에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달릴 때마다 야릇하게 보이는 허리 살은 나를 도전정신 가득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좋았어! 이건 내 오토바이 실력을 테스트 해 보기 위한 것이지 결코 저 아가씨 얼굴 한번 보려고 하는 짓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머리 속에 새기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아가씨는 내가 자기를 쫓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km를 가면서 단 한 번도 그 아가씨 앞에 나서지를 못했으니 말이다. -_- 이 넘의 아가씨…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그 도도한 자세로 생 발광을 하며 따라가는 나를 여유있게 제쳐 버리는 것이 아닌가?
베트남 오기 전에 종신보험 해지한 것이 생각나서 결국엔 포기했다. 우리 가족들을 생각해서…
그 이후에도 아줌마, 아가씨들과 몇 번의 레이스를 펼쳤으나 그 승률이 너무나 비참했다.
6.
동료 직원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역시 쎄마이의 나라는 대단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포스는 베트남 생활 넉 달째인 내가 도저히 근접하지 못할 깊이가 있다고 말이다. 내공이 장난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첫댓글 이미 베트남인들 ...손으로 운전하기 싫다...두 발로 거리를 질주하는 사람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서 춤을 춘다 등등의 소식도 올린 바 있습니다 ^^
대단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