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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722
■ 3부 일통 천하 (45)
제11권 또 다른 난세
제 5장 개혁 (10)
그런데 다음날 아침이었다.귀곡(鬼谷) 선생이 방연(龐涓)을 불러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네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지 않고 내 눈치만 보는 것이냐?
내가 언제 가는 사람을 잡았더냐?"방연(龐涓)은 귀곡 선생이 자신의 마음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었음을 알고 그제야 무릎을 꿇고 청했다."제자에게 세상으로 나가 선생님께 배운 바를
펼쳐 보이려는 뜻이 있긴 합니다만, 과연 떠나는 것이 좋을지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네가 평생 이 곳에 머무를 작정이 아니라면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너는 산속에 들어가서 꽃 한 가지를 꺾어 오너라. 내가 너를 위해 앞날을 점쳐 주겠다."
아침밥을 먹고 난 방연(龐涓)은 산으로 올라갔다.6월 여름철이었다.
녹음은 무성했지만 꽃은 이미 다 져버렸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꽃을 발견할 수 없었다.
방연(龐涓)은 겨우 점심 나절이 되어서야 꽃이 피어 있는 풀 한 포기를 발견하고 뿌리 째 뽑았다.
모옥(茅屋)으로 돌아 가려다가 이내 생각을 고쳤다.'이것은 풀꽃이기 때문에
너무나 미약하고 볼 품이 없다. 아직 해가 중천에 있으니 좀 더 좋은 꽃을 찾아보자.'
그는 풀꽃을 던져버리고 다시 산속을 헤맸다.
그러나 조금 전의 풀꽃보다 더 좋은 꽃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 풀꽃을 다시 주워 소매 속에 넣어 가지고는 모옥으로 돌아왔다.
"그래, 꽃을 꺾어왔느냐?"귀곡(鬼谷) 선생이 땀투성이가 된 방연을 보고 물었다.
"산속을 뒤지긴 했습니다만, 여름철이라 꽃이 없었습니다."
"꽃이 없다고? 그렇다면 네 소매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무엇이냐?"
방연(龐涓)은 귀곡 선생을 속일 수 없음을 알고 얼굴을 붉혔다.
소매 속에서 풀꽃을 꺼내 귀곡 선생에게 바쳤다.
하지만 뿌리 째 뽑힌 데다가 오랫동안 햇빛을 쬐었기 때문에 이미 반쯤 시들어 있었다.
귀곡(鬼谷) 선생은 꽃을 들여다보고 나서 말해주었다."이것은 마두령(馬兜鈴)이라는 꽃이다.
보다시피 한 번에 열 두 송이가 핀다. 너는 12년 동안 대운(大運)을 누릴 것이다."
방연(龐涓)은 속으로 기뻐하며 짐짓 물었다."어느 나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네가 가져온 풀꽃은 시들었다. 시듦은 곧 위(萎)다. 위는 위(委)와 통한다. 또 너는 이 꽃을
귀곡에서 뽑았다. 위(委)에다 귀(鬼)를 합하면 '위(魏)' 자가 된다.
그러므로 너는 위(魏)나라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방연(龐涓)은 더욱 기뻐했다.
자신이 가고자 마음먹은 나라가 바로 위(魏)나라가 아니던가.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위나라로 가겠습니다.""한 가지 더 말해주겠다.""말씀하십시오."
"너는 결코 남에게 속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을 속일 수는 있다. 그 점을 조심하여라.
네가 남을 속이면 반드시 너도 남에게 속을 날이 온다. 내가 일러주는 여덟 글자를 항시 잊지 말거라."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양이영(遇羊而榮)우마이췌(遇馬而疩)."풀이하면 이렇다.
- 양(羊)을 만나면 영화로울 것이요, 말(馬)을 만나면 탈이 난다.
그러나 방연(龐涓)이 그 말의 깊은 뜻을 어찌 알랴.그냥 건성으로 듣고 대답했다.
"선생님의 말씀 깊이 명심하겠습니다."다음날 방연(龐涓)은 귀곡 선생의 문하를 떠났다. 의형제를
맺은 손빈(孫賓)이 산 아래까지 방연을 전송했다. 헤어지기 전 방연이 손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는 전에 의형제를 맺으면서 평생 고락(苦樂)을 함께 하자고 맹세했소. 내가 위(魏)나라로 가서
출세를 하게 되면 반드시 손빈 형을 왕께 천거할 테니 그때 형은 얼른 달려오시오. 우리가 함께라면
그 어느 군대도 당해낼 수 없을 것이오.""동생의 그 말은 진정이오?"방연(龐涓)이 결연히 맹세했다.
"내가 만일 형에게 거짓말을 하면 온몸에 화살을 맞고 죽을 것이오."손빈(孫賓)은 감격하여 대답했다.
"말이라도 고맙소. 헤어지기 섭섭하여 해본 소리니, 그렇게까지 맹세할 필요없소."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작별했다.
손빈(孫賓)이 방연을 보내고 모옥으로 돌아오자 귀곡 선생이 물었다.
"네 얼굴에 눈물 자국이 있구나. 방연(龐涓)이 떠난 것이 슬프냐?"
"함께 글을 배우다가 떠나니 어찌 서운하지 않겠습니까?"
귀곡(鬼谷) 선생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시 물었다.
"너는 방연(龐涓)이 장수가 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는 오랫동안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았는데, 어찌 장수감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틀림없이
훌륭한 장수가 될 것입니다."그러나 귀곡(鬼谷)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공부를 완전히 마치고 떠난 것이 아니다."손빈(孫賓)은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하지만 귀곡 선생은 종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방연이 떠나고 나서 며칠 지나서였다.귀곡(鬼谷) 선생이 제자들에게 분부했다.
"어젯밤에는 쥐들이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다. 오늘밤부터는 교대로
불침번(不寢番)을 서서 쥐들을 쫓아내도록 해라."그 날부터 제자들은 교대로 불침번을 서기 시작했다.
손빈(孫賓)이 당직을 서는 날이 되었다. 자정이 넘었을 때였다.
손빈이 학사 주변을 순찰하고 있는데 문득 방문 하나가 열렸다.귀곡 선생이 거처하는 방문이었다.
"잠시 이리로 들어오너라."손빈(孫賓)이 방안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자 귀곡 선생이 침상 밑에서
죽간(竹簡)으로 엮은 책 한 벌을 꺼내놓으며 말했다.
"이 책은 너의 조부 손무(孫武) 선생이 지은 병법 13편이다. 세상에서 흔히 <손자병법> 이라고
부르는 책이 바로 이것이다. 손무 선생은 이 병서를 오왕 합려에게 바쳤는데, 합려(闔閭)는 이 책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싫어 쇠로 만든 궤 속에 넣어 감춰 두었었다. 그 뒤 월(越)나라가
오성을 불 질렀을 때 그 책도 타버렸다.""..................."
"그러나 그 전에 손무(孫武) 선생은 오자서에게도 그 책을 필사(筆寫)해 주었기 때문에 제(齊)나라로
망명한 그의 아들을 통해 <손자병법>은 없어지지 않고 세상에 다시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나 또한 그 필사본을 한 벌 구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것인데, 나는 여기에다
상세한 주해(註解)를 붙였다. 내가 알기로 이 책은 이 세상 그 어느 보물보다 값지다.
고금을 막론하고 군사를 쓰는 모든 비법이 여기에 다 들어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이 책을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겪어보니 너의 심성과 자질이 바르고
뛰어나므로 이 책을 전하는 바이다."귀곡(鬼谷) 선생이 내민 책을 보자 손빈(孫賓)은 감개무량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지은 책이 아닌가.그러면서도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그 동안 이 책을 가지고 계셨으면서 어찌하여 방연에게는 보이지 않으시고
이렇듯 저에게만 전하시는 것입니까? 제가 손무의 후손이라서 입니까?"
"아니다. 이 병서는 그것을 익힐 만한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야만 제대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잘 이용하면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지만, 잘못 쓰는 날에는 큰 해악을 끼친다.
방연(龐涓)은 이 책을 가질 만한 인물이 못 된다. 어찌 경솔히 전할 수 있겠는가?"
다음날부터 손빈(孫賓)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밤낮없이 <손자병법>을 외우고 공부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귀곡(鬼谷) 선생은 손빈을 불러 말했다."지난번에 준 책을 내놓아라."
손빈(孫賓)은 책을 가져다 선생에게 바쳤다.귀곡 선생은 <손자병법>의 내용을 차례대로 질문했다.
손빈의 대답은 흐르는 물과 같이 막히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그 사이 책의 내용을 완전히 통달했던 것이다.귀곡(鬼谷) 선생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과연 총명하구나. 너는 모든 일에 성심성의를 다하라. 그러면 너의 조부 손무(孫武)는
비록 죽었지만 살아 있는 것이나 다름 없음이니라."
723편에 계속
열국지[列國誌] 723
■ 3부 일통 천하 (46)
제11권 또 다른 난세
제 6장 방연(龐涓)과 손빈(孫賓) (1)
귀곡(鬼谷) 선생의 문하를 떠난 방연(龐涓)은 곧장 위(魏) 나라로 건너갔다.
이 무렵, 위(魏)나라 재상은 왕착(王錯)이라는 사람이었다.방연(龐涓)은 왕착을 찾아가 병법을 논하고
자신을 천거해 달라고 부탁했다.왕착(王錯)은 방연의 병법이 뛰어남을 알고 위혜왕에게 천거했다.
진(秦)나라의 개혁에 자극을 받아 천하 인재를 구하고 있던 위혜왕(魏惠王)은 병법가가
찾아왔다는 말에 큰 기대를 걸었다."방연이란 사람을 불러들이시오. 내 친히 그와 얘기를 나누어 보겠소."
방연(龐涓)이 궁으로 들어갔을 때였다.위혜왕(魏惠王)은 방연을 위해 양고기를 쪄서 내놓았다.
방연은 속으로 생각했다.'스승께서 양을 만나면 영화로울 것이라 하셨는데, 일이 잘 풀릴 모양이다.'
방연(龐涓)은 공손하되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되 거만하지 않게 행동했다.
위혜왕(魏惠王)은 방연의 그러한 모습에 크게 호감을 가졌다.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은 평소 무엇을 공부하시었소?""신은 귀곡 선생 문하에서 병법(兵法)을 연구했습니다."
"병법에 대해 가르침을 부탁하오.""병법(兵法)은 실로 복잡하고 오묘합니다. 어찌 그 많은 묘책과 진법을
일일이 아뢸 수 있겠습니까. 병법은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變化無雙)합니다."
"좋은 말씀이오. 우리 나라 동쪽엔 제(齊)나라가 있고, 서쪽에는 진(秦)나라가 있소이다. 또 남쪽에는
초(楚)나라가 있고, 북쪽에는 연(燕)나라가 있으며, 이웃으로는 한(韓)나라와 조(趙)나라가 있소.
어찌하면 이들을 도모하여 굴복 시킬 수 있겠습니까?"
"간단합니다. 왕께서 신을 이 나라 군대의 장군으로 삼으신다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대단한 자부심이었다.위혜왕(魏惠王)이 잠시 방연을 바라보다가 또 물었다.
"선생은 무엇으로써 그렇게 장담하시오?""신은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기어코 땅을 빼앗고야
말기 때문입니다.""말은 쉽습니다만, 실제로 그렇게 되기는 매우 어렵지 않겠소?"
"여섯 나라가 위(魏)나라를 위협한다고 하셨지만 신에게는 어린아이 장난처럼 보입니다. 만일 신을
장군으로 삼았는데도 왕께서 원하시는 바를 이루지 못할 경우에는 그 어떠한 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방연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위혜왕(魏惠王)은 몹시 기뻐했다.
그 즉시로 방연(龐涓)을 원수로 삼아 모든 병권을 맡겼다.
과연 방연은 발군(拔群)의 능력을 발휘했다.일 년이 채 안 되어 사기가 떨어진 군사들을 훈련 시켜
강한 군대로 만들어 놓았다.그때부터 위(魏)나라는 매년 주변국을 공격했다.
방연(龐涓)은 우선 위(衛)나라나 송나라 등 약소국을 대상으로 군대를 출동시켰다. 싸울 때마다 이겼다.
위(魏)나라의 위상은 점점 높아갔다.마침내는 송(宋)ㆍ노(魯)ㆍ위(衛)ㆍ 정(鄭)나라 군주들이 찾아와
위혜왕에게 조례를 올리는 정도가 되었다.
방연(龐涓)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제(齊)나라가 위나라 경계로 쳐들어왔을 때였다.
제나라는 제위왕(齊威王)이 즉위하면서 일약 전국 칠웅으로 성장한 대국이다.
모두들 위(魏)나라가 패하리라 예상했었는데, 그 예상을 방연이 보기 좋게 깨뜨린 것이었다.
- 방연(龐涓)이 있는 한 위(魏)나라를 건드리면 안 된다.주변국들은 한결같이 위나라의 눈치를 보았다.
위혜왕(魏惠王)은 대단히 만족했다.방연의 조카인 방총(龐蔥), 방모(龐茅) 등도 모두 장수로 등용했다.
이때부터 방연(龐涓)은 불멸의 공적이라도 세운 듯 크게 뽐내었다.손빈과의 약속 따위는 까맣게 잊었다.
그런 중에 위나라 재상 왕착(王錯)이 사신의 자격으로 주(周)왕실에 갔다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었다.- 귀곡(鬼谷) 선생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이 손빈이다. 방연(龐涓)은
손빈에 못 미치는데도 위(魏)나라 장군에 까지 올라 명성을 떨치고 있다. 만일 손빈(孫賓)을
장군으로 삼는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는 능히 패업을 이루리라.왕착(王錯)은 귀가 번쩍 트였다.
사람을 풀어 손빈에 대해 알아본 후 귀국하여 위혜왕에게 보고했다.
"신이 주(周)나라에 다녀오는 중에 손빈(孫賓)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병법의 귀재
손무(孫武)의 손자로 지금 귀곡 선생 밑에 있다고 합니다. 그를 불러 쓰심이 어떠한지요?"
"손빈(孫賓)이 귀곡 선생의 제자라면 우리 나라 장군 방연(龐涓)과 동문이 아닌가? 방연 장군을 불러
물어보면 자세한 것을 알 수 있겠구려."며칠 후, 위혜왕(魏惠王)은 방연을 불러 물었다.
"과인이 듣건대 장군과 함께 수학한 사람으로 손빈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이다. 더욱이 그는
손무의 비전(秘傳)을 물려받아 통달했기에 당대 최고의 병법가로 알려져 있다고 하오.
장군은 어째서 그 손빈(孫賓)을 과인에게 천거하지 않았소?"방연(龐涓)은 속으로 당황했다.
위혜왕의 입에서 손빈이란 이름이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얼른 변명했다.
"신은 손빈과 동문수학한 관계라 그의 능력에 대해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제(齊)나라
사람입니다. 그 일가가 다 제나라에 살고 있습니다.""그런 그가 위(魏)나라로 와 과연 얼마만큼
위나라를 위해 일하겠습니까? 그는 제(齊)나라를 위해 힘쓸 뿐 위나라를 위해서는 전력을
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왕께 천거하지 않은 것입니다."위혜왕(魏惠王)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소. 자고로 장수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하였소. 어찌 자기 나라에서만
벼슬을 살 리 있으리오. 더욱이 요즘은 시대가 많이 변하지 않았소?
과인은 손빈(孫賓)을 내 사람으로 삼고 싶소."방연(龐涓)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왕께서 손빈을 쓰실 요량이시라면 신이 곧 편지를 내어 그를 불러오겠습니다.""부탁하오."
방연은 원래부터 손빈의 재능에 대해 질투하고 있었다.
'손빈(孫賓)은 나보다 뛰어나다. 그가 오면 나는 왕의 신임을 잃을지 모른다.'
위(魏)나라로 가 출세하면 손빈을 부르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부르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러한 질투심 때문에서였다.그러나 지금은 왕명이 내려진 만큼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손빈(孫賓)을 불러들인 후 상황에 따라 조치를 취하기로 하자.'곧 편지 한 통을 써서
위혜왕에게 바쳤다.위혜왕(魏惠王)은 신하 한 사람에게 황금과 편지를 내주며 분부했다.
- 그대는 수레를 거느리고 귀곡 땅으로 가 손빈(孫賓) 선생을 모셔오너라.
위(魏)나라 신하는 귀곡 땅에 이르러 귀곡 선생과 손빈에게 황금을 예물로 바치고 방연의 편지를 전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어리석은 동생 방연(龐涓)은 형의 염려 덕분으로 위(魏)나라에 와
높은 벼슬에 올라 있습니다. 이 동생은 지난날 헤어질 때 약속한 바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제가 특별히 형을 왕께 천거 하였으니, 형은 이 편지를 보는 즉시 위나라로 오십시오.
함께 큰 공을 세웁시다.편지를 읽어본 손빈(孫賓)은 뛸 듯이 기뻐했다.
'방연(龐涓)이 약속을 잊지 않고 나를 천거했구나. 과연 그는 의리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귀곡(鬼谷) 선생은 다르게 생각했다.'방연(龐涓)은 천성이 오만하고 질투심이 강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어찌 좋은 마음으로 손빈을 부를 것인가. 위(魏)나라로 가면 손빈(孫賓)은 큰 화를 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손빈(孫賓)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대신 그는 손빈에게 말했다.
"너는 가서 꽃 한 송이를 꺾어 오너라. 내 너의 앞날을 위해 점을 쳐주리라."
때는 여름이 가고 9월이었다.손빈(孫賓)은 꽃을 꺾으러 굳이 산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며칠 전 자신이 꽂아둔 귀곡 선생의 책상 위에 있는 꽃병에서 국화 한 송이를 뽑아 바쳤다.
귀곡(鬼谷) 선생이 받아 살펴본 다음 도로 내주었다.
손빈은 그 꽃을 도로 꽃병에 꽂아두었다.귀곡(鬼谷) 선생이 손빈을 불러 점친 결과를 알려주었다.
"산속에 꽃이 많이 피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전날 꺾어다 둔 꽃을 가져왔다.
그래서 그 꽃은 완전하지도 싱싱하지도 않았다. 너는 장차 큰 시련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국화란 본래 추위에 잘 견뎌내며, 서리를 맞아도 시들지 않는다. 비록 꺾은 지 며칠이 지나
상하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크게 흉하지도 않았다. 너는 시련을 이기고 재기(再起)할 것이다."
"...................."
"특히 꽃이란 한 번 뽑히면 버림을 받아 시들고 만다. 그런데 너는 꽃을 도로 꽃병에 갖다 꽂았다.
이는 네가 모든 걸 사랑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안다는 뜻이다. 저 꽃병은 쇠로 만든 것이다.
쇠는 종(鐘)이나 솥을 만드는 재질이다.""이로 미루어볼 때 너는 눈이나 서릿발 같은 위엄을
천하에 떨칠 것이며, 마침내 네 이름이 종(鐘)에 새겨져 후세에 길이 전해질 것이다.
또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너는 네 고국을 잊지 말라. 네가 공명(功名)을 이룰 수 있는 곳은
너의 고국일 것이다.""스승님의 말씀 가슴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손빈(孫賓)이 귀곡 선생의 문하를 떠나는 날이 되었다.
귀곡(鬼谷) 선생은 떠나려는 손빈에게 비단 주머니 하나를 내주었다.
"위급하여 도저히 혜쳐 나갈 수 없을 때 열어보아라."손빈(孫賓)은 비단 주머니를 받고
하직 하는 절을 올렸다.스승에 대한 고마움과 정이 새삼 솟구쳐 올랐다.
눈에서 눈물이 쉴새 없이 흘러내렸다.
마침내 손빈(孫賓)은 위혜왕이 보내온 네 마리 말이 그는 수레를 타고 산을 내려갔다.
춘추시대 손무에 이은 또 하나의 병법의 귀재(鬼才)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72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