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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724
■ 3부 일통 천하 (47)
제11권 또 다른 난세
제 6장 방연(龐涓)과 손빈(孫賓) (2)
위(魏)나라에 당도한 손빈(孫賓)은 먼저 방연(龐涓)의 부중(府中)을 방문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방연(龐涓)과 재회한 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나를 잊지 않고 위왕에게 천거해 줘서 참으로 고마우이."
"생색내는 것은 아니지만 형님을 천거하느라 여간 힘들지 않았다오. 나중에라도 이 은혜는
갚아야 할 것이오.""여부가 있겠소."다음날 손빈(孫賓)은 방연을 따라 궁으로 들어가 위혜왕을 알현했다.
위혜왕(魏惠王)은 당하에까지 내려와 손빈을 맞이했다.그 행동과 말이 여간 정중하고 공손하지 않았다.
손빈(孫賓)은 감격하여 말했다.
"신은 시골 태생의 필부(匹夫)입니다. 왕께서 지나친 예로써 불러주시니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선생의 명성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소. 과인은 선생이 오기를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기다렸소이다. 이제 선생이 오셨으니, 내 이제 무슨 시름이 있을 것이오?"
그러고는 방연을 돌아보며 물었다."과인은 손 선생을 부원수(副元帥)로 삼고 장군과 함께
군대를 지휘하게 하고 싶소. 장군의 의향은 어떠시오?"
방연(龐涓)은 재빨리 머리를 굴리고 나서 대답했다.
"신과 손빈(孫賓)은 동문수학일 뿐 아니라 결의 형제를 맺은 사이입니다.
손빈이 형이고, 신이 동생입니다.""동생이 어찌 형보다 높은 지위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당분간 손빈을 객경(客卿)으로 모시어 나라 일에 익숙하게 한 후, 손빈(孫賓)이 공을 세우는 날
원수의 자리를 손빈에게 넘겨주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객경은 글자 그대로 경(卿)급에 해당하는 손님일 뿐, 위(魏)나라의 신하는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융숭한 대접을 받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실권이 없다.빛 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방연(龐涓)은 손빈에게 병권을 나누어 주지 않기 위해 이런 묘수를 짜낸 것이었다.
방연의 음흉한 마음을 알 리 없는 위혜왕(魏惠王)은 만족하여 대답했다."그것이 좋겠구려."
손빈(孫賓)은 손빈대로 방연의 마음씀이 고마워 다시 한 번 감사했다.
"나는 동생만을 믿을 뿐이오."이로써 위혜왕은 손빈에게 객경 벼슬을 내리고 도성에서
가장 좋은 곳에 저택을 마련하여 방연 다음 가는 대우를 해주었다.손빈과 방연은 자주 만났다.
하지만 방연의 속마음은 늘 어지럽고 복잡했다.'듣자니, 내가 귀곡을 떠난 후 손빈(孫賓)은
스승에게서 손무의 병법을 배웠다고 한다. 우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부터 알아보아야겠다.'
어느 날이었다.방연(龐涓)은 자신의 부중에 술상을 차려놓고 손빈을 청했다.
두 사람은 술잔을 나누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화제가 자연스레 병법에 관한 것으로 흘렀다.방연(龐涓)이 병법에 관한 몇 가지 의문점을 물었다.
손빈(孫賓)은 흐르는 물처럼 막힘없이 대답해주었다.이번엔 손빈이 방연에게 질문했다.
방연이 알지 못하는 내용이었다.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방연(龐涓)은 모른다고 대답하기 싫었다.
슬쩍 넘겨짚었다."방금 전의 물음은 <손자병법>에 있는 내용이 아니오?"
손빈(孫賓)은 방연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소. 그런데 동생은 그것을 어떻게 알았소?"
방연은 손빈이 자신의 술수에 넘어온 것을 알고 속으로 기뻐했다."이제야 말입니다만,
나도 지난날 귀곡(鬼谷) 선생으로부터 비밀리에 <손자병법>을 배웠소. 그런데 그때는
철이 안 들어 건성으로 익혔지요. 이젠 배웠던 것마저 다 잊어버렸소.
참으로 아쉽고 후회스러운 일입니다. 형님께서는 이 동생을 위하여 그 책을 빌려주시오.
한 번만 읽어보고 돌려드리겠소."손빈(孫賓)은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귀곡 선생의 말과 달랐기 때문이었다.마음속에 한 가닥 의심이 일었다.
"선생께서는 그 책을 사흘간만 보여주시고 곧 도로 가져가셨소. 그래서 나도 베껴둔 것이 없소."
"그렇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다 외우고 있을 것이 아니오? 내게 그 내용을 들려주시오.
그러면 나도 옛 기억이 떠오를 것입니다."손빈(孫賓)은 슬쩍 거짓말을 했다.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사흘간 뿐이라 대충 읽어봤기 때문에 나도 기억이 희미하오."
방연(龐涓)은 더 이상 조를 수 없었다. 화제를 돌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며칠이 지나서였다.위혜왕(魏惠旺)은 손빈의 능력이 궁금했던지 방연과 손빈을 불러 명했다.
"두 장군께서는 각기 진(陣)을 쳐보시오."방연(龐涓)이 먼저 진을 쳤다.
위혜왕(魏惠王)이 손빈을 불러 물었다."저것이 무슨 진(陣)이오?"
손빈이 내려다보니 어려진(魚麗陣)이었다.움직이는 모양새가 고기 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린진(魚麟陣)이라고도 한다.고기 비늘처럼 얽힌 진(陣)이라는 뜻이다.
"저것은 어려진입니다. 병차 25승(乘)을 '편(徧)'이라고 하고 갑사 5명을 '오(伍)'라고 합니다.
어려진(魚麗陣)은 1편의 병차와 5오(伍)의 갑사가 한 조가 되어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전투 중 빈 자리가 생기면 즉시 5오(伍)의 갑사들이 그 자리를 메꿉니다.
이 진법은 나갈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가 없습니다. 강적과 싸울 때 주로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어려진(魚麗陣)은 천하무적이오?""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진법은 없습니다."
"어려진을 깨는 방법은 무엇이오?""어려진(魚麗陣)은 밀집대형입니다. 그러므로 학익진(鶴翼陣)으로
상대하다가 사세를 보아 포위하여 뒤편의 갑사를 공격하면 어려진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좋고 좋도다. 손빈 선생이여!"그 다음은 손빈의 차례였다.그는 교장(敎場)으로 내려가 군사들을
지휘했다. 군사들은 손빈(孫賓)이 휘젓는 깃발의 움직임에 따라 대열을 다시 갖추었다.
이내 하나의 진(陣)이 형성되었다.그런데 방연(龐涓)이 보기에 그것은 처음 보는 진(陣)이었다.
그는 당황하여 얼른 손빈 곁으로 가 속삭이듯 물었다.
"저것이 무슨 진이오?""이는 전도팔문진(顚倒八門陣)이라는 진법이오.""어떤 변화를 일으키오?"
"대치할 때는 저렇게 있다가 공격 명령이 내리면 장사진(長蛇陣)으로 변하는 것이 특징이오."
그때 마침 위혜왕(魏惠旺)이 방연을 불러 물었다."장군은 저 진법에 대해 설명해 보오."
방연(龐涓)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손빈이 펴고 있는 저 진(陣)은 전도팔문진(顚倒八門陣)이라고
하는 진법입니다. 적을 공격할 때면 장사진(長蛇陣)으로 변화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군사 훈련이 끝난 후 위혜왕(魏惠王)은 손빈을 불러 진법에 대해 확인했다.
그 대답이 방연의 대답과 다르지 않자 그는 방연과 손빈이 같은 재능을 지닌 것으로 알고
크게 기뻐했다."내가 천하 제일의 병법가 두 명을 거느렸으니, 무엇을 두려워하리오?"
그러나 방연(龐涓) 자신은 알고 있었다. 그는 부중으로 돌아와 고민에 빠졌다.
'손빈의 재주가 나보다 월등하니 야단났구나. 서둘러 손빈(孫賓)을 처치하지 않으면
내 자리가 위태롭겠다.'방연(龐涓)은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리고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냈다.
725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725
■ 3부 일통 천하 (48)
제11권 또 다른 난세
제 6장 방연(龐涓)과 손빈(孫賓) (3)
어느 날, 방연(龐涓)이 손빈(孫賓)의 집을 방문했다.손빈(孫賓)은 방연을 반갑게 맞아 들여
술잔을 나누었다.방연은 평소와 다르게 간이라도 빼어줄 듯 손빈을 끔찍이 생각하며 말했다.
"형님은 어려서 고아로 자라났으나, 다행이 이 곳 위(魏)나라 땅에 와서 높은 지위에 올라 있습니다.
듣기로 형님의 일가 친척이 제(齊)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는데, 어찌하여 이 곳으로 데려와 함께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형님이 혼자 지내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픕니다."혈연 얘기가 나오자 손빈(孫賓)은 이내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동생은 나와 함께 공부하긴 했지만, 우리 집 사정은 자세히 모를 것이오. 나는 네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일곱 살 때 아버지마저 잃었소. 그래서 숙부인 손교(孫喬)의 슬하에서 자라났소."
"그런데 어느 해인가 전화(田和)가 모반을 일으켜 임금이 되고 제강공을 섬기던 신하들을
모조리 추방했소. 그때 나의 숙부도 추방당하여 아들이자 내게는 종형(從兄)이 되는 손평(孫平)과
손탁(孫卓)을 데리고 주나라로 건너갔소. 물론 나도 따라갔지요."
그들이 주(周)나라 땅에 들어섰을 때 마침 그 해는 크게 흉년이 들었다.
곡식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려웠다.숙부 손교(孫喬)는 도저히 생계를 이어갈 방도가
서지 않자 조카인 손빈(孫賓)을 어떤 농사짓는 사람에게 맡기고는 아들 손평과 손탁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그때부터 손빈(孫賓)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였다.그러나 꿈만은 컸다.
'사나이로 태어나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철이 들면서 이런 생각이 든 손빈은 나이 스무 살이 되던 해 그 집을 도망쳐 나왔다.
그러나 딱히 갈 곳이 없었다.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중에 귀곡 선생의 학문이 높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무작정 귀곡(鬼谷) 선생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주기를 청했소. 다행히 선생께서는
나를 받아주셨지요. 그리고 일 년 후 동생이 그 곳으로 들어왔소. 이후의 일은 얘기하지 않아도
동생이 더 잘 알 것이오."손빈의 과거사에 방연(龐涓)은 함께 눈물을 흘렸다.
"숙부가 원망스럽겠구려.""그렇지 않소. 그나마 숙부께서 나를 키워주시지 않았다면
어찌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겠소? 오히려 나는 숙부가 그립소.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소?
이미 소식이 끊어진 지 오래인 것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것이 현재의 나의 처지요."
방연(龐涓)이 다시 물었다."형님의 부모님 산소가 어디 있는지는 알고 계시오?"
"나도 사람인데 어찌 근본을 잊을 리 있겠소. 나는 한시도 동아(東阿) 땅에 묻혀 있는 부모님
산소와 그 곳 산천을 잊은 적이 없소.""그렇지 않아도 내가 귀곡 땅을 떠나올 때 선생께서 '네가
공명을 이룰 곳은 너의 고국인 제(齊)나라다.' 라고 말씀하셨소. 그때 불현듯 고향 생각이 나더이다.
나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제나라를 다녀오고 싶소. 다만 내가 먼저 말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 위(魏)나라의 국록을 받고 있기 때문이오."방연(龐涓)은 손빈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형님 말씀이 지당하오. 기운을 내십시오. 제가 공연히 형님의 아픈 상처를 건드린 모양이구려.
반드시 고향 땅을 밟을 날이 오기를 저도 기원하겠습니다.""고마우이."
반 년 가량이 지났다.손빈(孫賓)은 방연에게 한 말을 다 잊었다.
평상시대로 군부에 나가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어떤 사람이 대문 앞을 서성거리며 기웃거리고 있었다.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 사람이 손빈의 노복(奴僕)에게 물었다."이 곳이 손 객경(客卿) 댁입니까?"
산동 지방의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손빈(孫賓)은 귀가 번쩍 트였다.반가움이 일었다.
수레에서 내리며 좌우 시종들에게 분부했다."저 사람을 내 방으로 데려오너라.
무슨 일인지 내가 직접 물어보리라."잠시후 시종이 산동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손빈(孫賓)이 물었다.
"너는 누구이며, 어째서 나를 찾았느냐?"산동 사람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소인은 정을(丁乙)이라고 합니다. 원래 제(齊)나라 임치 태생인데, 어쩌다 고국을 떠나
지금은 주나라 낙양에서 여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데 얼마 전 손평(孫平)과 손탁(孫卓)이라는 분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편지 한 통을
어르신께 전해드리라는 청이었지요. 소인은 편지를 받아 귀곡 땅으로 갔습니다만,
이미 어르신은 그 곳을 떠나신 뒤였습니다. 그 곳 사람이 위(魏)나라로 가보라고 하기에
부리나케 이 곳으로 다시 달려온 것입니다."
정을(丁乙)은 말을 마치자 품속에서 서신 한 통을 꺼내 손빈에게 바쳤다.
손빈(孫賓)은 편지를 받아 들고 겉봉을 확인했다.
분명 어릴 적 헤어진 바 있던 종형인 손평(孫平)과 손탁(孫卓)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손빈(孫賓)은 떨리는 손을 추스리며 황급히 겉봉을 뜯어 내용을 읽어보았다.
어리석은 형 평(平)과 탁(卓)이 어진 동생 빈(賓)에게 편지를 보내노라.
돌이켜보면 우리는 너무 불행했다. 집안은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나고 일가 친척은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는 너를 잊지 못한다.어린 너를 주(周)나라에 남겨둔 채 우리들만 떠나간 일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그 뒤 우리는 송(宋)나라로 가 역시 남의 집 농사 일을 도와주며 살아왔다.
너의 숙부는 결국 송나라에서 한 많은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의 고생이 이러했거늘 어린 너의 고생이야 어찌 필설(筆舌)로 다할 수 있겠느냐.
다행인 것은 이제 제(齊)나라 임금께서 옛 신하에 대한 모든 혐의를 푸시고 우리를 다시 고국으로
불러들이셨다. 더욱이 왕께서는 동생의 명성을 듣고 장차 불러들이어 높은 벼슬을 내리실 모양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가문은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소문에 들은즉 동생은 귀곡(鬼谷) 선생에게서 많은 공부를 했다고 하니 배운 바가 클 줄을 믿는다.
이 편지를 보는 즉시 귀곡 선생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고국으로 돌아오라.
우리는 하루 속히 동생을 만날 날만 고대하고 있다.모든 내용이 소상하고 정확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손평(孫平)과 손탁(孫卓)의 편지가 분명했다.
지난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손빈(孫賓)은 너무나 반갑고 감격스러운 나머지 편지를 움켜쥐고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한참 후에 심부름 온 산동 사람이 말했다."소인이 온 것은 어르신을 모셔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어르신은 속히 고향으로 돌아가셔서 오랜만에 종형님들과 해후하시기 바랍니다."
손빈(孫賓)이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나는 지금 위(魏)나라에서 벼슬을 살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으나 어찌 그럴 수 있으랴. 우선은 답장을 써줄 터이니,
그것을 나의 형님들에게 전해다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편지를 써 황금 한 냥의 여비와 함께 정을(丁乙)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어찌 알았겠는가.주나라에서 왔다는 정을(丁乙)이라는 사람은 손평, 손탁이 보낸 심부름꾼이
아니라 바로 방연의 심복 부하인 서갑(徐甲)일 줄이야.
반 년 전 방연(龐涓)은 손빈을 찾아가 위로하는 척하면서 그의 내력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뒤 그는 치밀한 계획하에 손평, 손탁이 쓴 것처럼 가짜 편지를 만들어냈다.
그러고는 마침내 얼굴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서갑(徐甲)이라는 부하를 시켜 손빈에게 갖다 주게
한 것이었다.
손빈(孫賓)은 어릴 적에 손평(孫平), 손탁(孫卓)과 헤어졌기 때문에 그들의 필적을 알지 못했다.
아무런 의심없이 심부름꾼을 믿었고, 끝내는 두 종형(從兄)에게 보내는 답신까지 써서
내주었던 것이다.손빈의 답신은 그 날로 방연의 손으로 들어갔다.
내용은 어린 시절의 회상과 숙부, 종형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방연(龐涓)은 그 필적을 모방하여 답장의 마지막 몇 구절을 바꾸었다.
어리석은 동생은 지금 위(魏)나라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지만 한시도 고국인 제(齊)나라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속히 돌아가 형님들을 뵙겠습니다.
만일 제나라 왕께서 나를 버리지 않고 등용하신다면 기꺼이 달려가 진충보국(盡忠報國)하겠습니다.
고치기를 마친 방연(龐涓)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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