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소설가들의 픽
오늘은 박완서 님의 단편 모음집 <쥬디 할머니>를 이야기할게.
박완서 님께서 돌아가신 지 꽤 되었지만,
숨어있는 작품들을 다시 출간해주어 반갑구나.
아빠랑 세대가 달라서 박완서 님의 책들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간간이 읽어보면 위트 있고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 많더구나.
그리고 시대적 배경이 지금으로부터 약 40~50년 배경이다 보니
옛이야기를 듣는 기분도 들고, 시대극을 보는 기분도 들었어.
박완서 님의 글을 통해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구나.
오늘 이야기할 <쥬디 할머니>는
‘소설가들이 사랑하는 박완서 단편 베스트 10’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단다.
31명의 우리나라 소설가들에게 박완서 단편 중에 최고의 작품을 2~3편 씩 추천을 받아
그 중에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10편을 이 책에 실은 것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10편이 모두 재미있더구나.
오늘은 그 중에 몇 편만 소개해 볼게.
1. 거침없는 박완서
첫 번째 작품은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쥬디 할머니>라는 작품이야.
5남매 자식들이 모두 성공하여 외국에서 살고 있었어.
그래서 할머니는 1년에 한 번씩 자식들을 만나러 외국여행을 다녀오곤 했단다.
많은 손주들 중에 할머니는 첫째 아들의 딸 ‘쥬디’를 가장 좋아해서
주변에서 할머니를 쥬디 할머니라고 불렀어.
5남내 중에 막내 아들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어.
그래서 결혼 주선이 여기저기에서 들어오는데 쥬디 할머니 눈에 차는 자리가 없었어.
그런데 어느 날 쥬디 할머니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나타났어.
쥬디 할머니가 어떤 부잣집의 소실이었다는 거야.
그리고 아이들도 남매를 낳았는데 그리 잘 사는 것은 아니라는 거야.
자식 자랑하기 좋아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라고 별 생각 없이 읽고 있다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란다.
쥬디 할머니가 이야기한 성공한 5남매는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고?
쥬디 할머니는 자신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나타나자,
곧바로 이사 준비를 했단다.
새로운 동네에 가서 다시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면 된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단다.
재미있는 반전이 있는 소설이구나.
…
<왜 보기가 쉽다고?>라는 작품도 위트가 넘치는 작품이란다.
맹범 씨는 부잣집 영감이었어.
어느 날 딸의 구 개월 된 아기를 혼자 봐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
네 시간만 보면 되는 것이지만,
한 번도 아기를 봐본 적이 없는 맹범 씨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어.
처음부터 아이가 계속 자지러지듯 울고 화분까지 깨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어.
한참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고작 몇 십 분이 지났어.
딸 아이가 이야기하기를 차를 타면 울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나서
맹범 씨는 어린 손주를 데리고 무작정 집을 나왔어.
그런데 급하게 나오느라 돈을 안 가지고 나왔단다.
이 시절은 스마트폰도 없고 신용카드도 없던 시절이야.
모두들 현금으로 계산하던 그런 시절이었단다.
맹범 씨는 동네 슈퍼에서 돈을 조금 빌려서 무작정 택시를 탔어.
손주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택시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니, 천막촌까지 오게 되었어.
평상시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곳인데 말이야.
아기 보는 것이 서툰 맹범 씨는 천막촌 집에서 물도 얻고 먹을 것도 얻어 먹는 등 도움을 받았어.
나중에 다시 찾아와 은혜를 갚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곳을 떠나
집에 오려고 지하철로 향했어.
지하철 역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랐어.
어떤 낯설고 추레한 지친 노인이 서 있는 거야.
하지만 맹범 씨는 그날의 고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돈이 다 떨어져서 집에 갈 지하철 표를 사기 위해 다시 구걸을 해야 했단다.
그렇게 소설이 끝났어.
어린 아기를 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택시를 타고 돌아다니다 내려서 간 곳이 천막촌이었다는 설정은
당시 사회문제도 함께 다루려는 시도가 엿보이는구나.
…
이번에는 <공항에서 만난 사람>이라는 작품을 이야기해볼게.
미시 박이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어.
그 시절에 답답해서 제주도를 다녀올 정도로 재력이 있는 사람이었어.
제주도에 다녀와서 공항에서 사람 구경을 하려고
국제 공항 쪽으로 갔단다.
당시 인천 공항이 없던 시절이고 김포 공항이 주요 국제 공항이었어.
그곳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미시 박은
예전에 미군 부대에서 알고 지내던 무대소 아줌마를 만났어.
미군 부대에서 미시 박은 PX에서 일했고, 무대소 아줌마는 청소부로 일했어.
그들은 함께 미군 부대 물품을 부대 밖으로 빼돌렸어.
무대소 아줌마는 그때도 억세고 거침없는 아줌마였단다.
물건 빼돌리는 것이 나중에 걸렸을 때도
무대소 아줌마는 오히려 호통치고
그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욕 ‘쌍노메 베치’를 날렸어.
그 일로 미군부대를 그만 두고 양코배기와 같이 살다가 남편은 먼저 죽고
아이 셋을 홀로 키운 억척스러운 엄마이기도 했어.
그 억세고 억척스러움은 여전해서 공항에서도 아들들에게
업그레이드 된 욕 ‘쌍노메 새끼’를 외치고 있었단다.
미시 박이 반가워서 무대소 아줌마를 아는 척 하니,
아들들을 데리고 미국에 가는 길이라고 했단다.
무대소 아줌마의 억척스러움이 없었다면,
힘든 세상에서 아들 셋을 키우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그런 억센 아줌마도 우리나라에서 혼혈 아이들을 키우기가 어려웠나 보구나.
결국 미국행을 선택했으니 말이야..
…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은 제목이 참 독특했단다.
두 할머니들의 욕구에 관한 이야기인데,
박완서 님은 과감하시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전쟁으로 남자들이 대부분 전쟁에 나가고 여자들만 있는 마을이 있었어.
미군이 들어와서 여자들을 탐한다는 소문이 돌아
남아 있는 여자들은 모두 마을의 가장 큰 어른인 어떤 노파의 집에 모여 있었어.
노파는 자신이 그 미군들을 상대하겠다고 했어.
노파는 꽃단장을 하고 하고 미군들이 오길 기다렸어.
소문대로 미군들은 여자를 데리고 가려고 노파의 집에 왔어.
미군들은 꽃단장한 노파를 데리고 갔어.
캄캄한 밤이라서 그 사람이 노파인 줄 몰랐지.
노파를 데리고 자신들의 본거지에 와서 전등 아래서 보고 깜짝 놀랐어.
미군들은 어이없음이 포함된 파안대소했단다.
미군들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재미를 얻었어.
노파에게 먹을 것을 잔뜩 주고 다시 집으로 돌려 보냈단다.
노파는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미군을 상대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여자의 마음이 있었던 것이란다.
…
김일병은 사랑하는 혜숙과 결혼 약속을 한 사이였어.
그런데 전쟁이 나는 바람에 결혼은 뒤로 미루고 군에 입대를 해야 했어.
김일병은 전투 중에 어떤 빈 마을에 갔다가 홀로 남은 노파의 집에서 끼니를 때웠어.
노파와 이야기를 하다가
숫총각은 총알이 찾아다닌다는 기분 나쁜 농담을 이야기했어.
김일병은 아직까지 숫총각이었거든.
그러자 노파는 자신이 숫총각을 떼어주겠다고 했고,
그 농담이 진짜면 어쩌지 걱정하다가 얼떨결에 노파에게 숫총각 딱지를 떼었어..
뒤늦게 김일병은 수치심이 일어 그곳을 도망가듯 떠났어.
그 이후 몇 십 년이 지나도 그날의 일은 트라우마처럼 그날의 일이 기억났단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욕망을 가지고 있을 거야.
…
<재이산>이란 작품은 자본주의와 인간성 상실을 비판하는 소설처럼 읽었어.
봉동필은 어렸을 때 고아원에서 자랐어.
좀 커서 고아원을 도망쳤고,
그를 거둬 주어 보살펴 주신 분이 있는데 그 분의 아들은 일찍 죽었단다.
나중에 봉동필은 자신을 보살펴 주신 아들의 이름인 강동수로 살아갔어.
아내도 만나 두 아들을 낳았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단칸방에서 월세를 살고 있었지.
봉동필은 전쟁 통에 가족을 잃었어.
어떤 나이 드신 분이 자신을 고아원에 데려간 것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 즈음 KBS 방송국에서 이산 가족 찾기 방송을 했단다.
아빠도 어렸을 때 본 이 방송이 기억나는구나.
전쟁 때 헤어진 가족들을 찾는 방송인데,
오랫동안 헤어졌던 가족들이 상봉할 때면 전국이 울음바다였단다.
다들 구구절절 사연들도 많았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은 만나지 못했지만
남한에서 소식이 끊긴 채 살아가던 많은 가족들이 만났던 것으로 아빠는 기억한단다.
강동수도 이 방송에 부모님을 찾아보려고 신청을 했단다.
그런데 얼마 후 작은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어.
조카를 찾았다는 반가운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근엄하고 무겁게 확인하려는 목소리가 전부였지만 작은 아버지가 맞는 것 같았어.
그리고 며칠 뒤 호텔 카페에서 만났고,
작은 아버지는 사무적으로 강동수, 아니 봉동필의 부모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어.
아버지는 대학교수였고, 엄마는 의사였대.
그 시절에 대학교수와 의사였다면 엄청나게 엘리트였겠구나.
그런데 두 분 모두 전쟁통에 돌아가셨다고 했어.
그리고 할아버지가 혼자 남은 봉동필을 고아원에 데려다 주었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너무 심하구나.
아무리 아빠, 엄마가 돌아가셨어도 할아버지도 있고,
아버지의 형제들도 많았는데 아이를 고아원에 집어 넣다니...
아버지의 동생들은 모두 성공해서 넉넉하게 잘 살고 있다고 했어.
이 모든 것을 기쁨의 눈물, 반가운 표정 하나 없이 사무적으로 이야기하셨어.
일단 잃어버린 조카를 만났으니 다른 가족들도 소개시켜준다고 하면서
작은 아버지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단다.
봉동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몇 십 년 만에 작은아버지를 만났으나 반가운 기색 하나 없고,
부모님들은 엘리트였는데 모두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동생들은 모두 성공해서 잘들 살고 있고 친척들이 많은데
자신은 고아원에 버려져서 지금까지 가난하게 살고 있고...
아빠 같았으면 반가움보다 억울함으로 화가 많이 났을 것 같구나.
그래도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있으면
지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했을 것 같구나.
다음 날, 봉동필은 아내와 아이들도 소개해주기 위하여 모두 데리고
작은 아버지 댁에 갔어.
그런데 숙모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쌀쌀맞게 대했어.
조카를 만난 반가움보다 봉동필의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자신이 오랫동안 맏며느리 역할을 한 것에 불만인 것 같았어.
정말 짜증나는 사람이구나.
막내고모가 찾아왔고,
작은아버지와 달리 리액션을 크게 봉동필과 반갑게 인사를 했어.
하지만 곧 숙모와 말다툼을 했어.
거기에 작은아버지의 손주들과 봉동필의 아이들이 다툼까지 일어났단다.
봉동필이 생각한 재회는 이런 재회가 아니었는데…
봉동필은 다른 친척들이 오기 전에
식구들을 데리고 작은아버지의 집을 나섰단다.
집밖에서 친척들로 보이는 사람들을 보았지만,
봉동필은 모른 척하고 집으로 돌아왔단다.
다시는 그들과 연락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갈 것 같구나.
그 시절에도 이미 가족과 사랑보다
돈이 앞서게 되었다는 것을 비판하는 작품인 것 같구나.
…
다음 이야기할 작품은 <해산바가지>
해산바가지가 뭐지? 이런 생각을 갖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단다.
주인공 ‘나‘의 친구의 며느리가 연속으로 둘째까지 딸을 낳자,
친구는 며느리를 구박하고,
사돈어른은 죄지은 것 같은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면서, ‘나‘의 옛 시절을 생각했어.
‘나‘는 아들을 낳으려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딸 넷을 낳고 막내로 아들을 낳았어.
그런데도 ‘나‘의 시어머니는 구박도 하지 않고
성별에 관계없이 해산바가지에 미역국을 끓여주시면서 새 생명을 축복해 주었어.
그런 시어머니가 지금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계셔.
자신에게 잘 해주신 시어머니를 자신은 보살피기 어렵다면서
요양원에 보낸 것이 죄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집으로 모셔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소설은 끝이 났단다.
박완서 님의 소설 소재 중에
아들선호사상에 대한 비판은 곧잘 등장하는 것 같구나.
전에 읽은 <엄마의 말뚝>에 실린 소설들에서도 본 기억이 있는데 말이야.
....
아빠가 이야기해 준 소설들 이외에
다른 작품들도 모두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너희들이 읽기에는 시대적으로 거리감이 있어서 이질감이 들 수도 있지만,
재미로만 보면 한번 읽어볼 만한 소설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지금은 너희들이 숙제 때문에 이런 소설을 읽을 시간은 없겠지만…
아빠가 책 잘 보관할 테니, 나중에 한번 읽어보렴.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쥬디 할머니의 일과는 국판 크기로 확대해서 패널한 쥬디 사진하고 뽀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책의 끝 문장: 정교하고 가벼운 틀니는 지금 손바닥에 있건만 아직도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또하나의 틀니의 중압감 밑에 옴짝달싹 못하고 놓여진 채다.
책제목 : 쥬디 할머니
지은이 : 박완서
펴낸곳 : 문학동네
페이지 : 364 page
책무게 : 473 g
펴낸날 : 2026년 01월 20일
책정가 : 18,500원
읽은날 : 2026.08.15~2026.08.16
글쓴날 : 2026.09.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