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스위스출신의 니콜라스파티의 파스텔화 작품이다
파스텔은 쉽사리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연약한 회화재료라고 한다
그래서 전시제목에 더스트(dust)를 붙였나 보다
이번 작품전을 위해 5편의 벽화를 직접 그렸는데
제목에서 보여준 것처럼 전시가 끝나면 곧 흔적 없이 먼지처럼 사라질 작품들이다
아까워라
위 작품 다섯 점이 모두 벽화다
그러니 이 전시회가 끝나면 모두 먼지처럼 사라질 작품인 것이다
이 전시를 위해 이곳에서 벽화를 그렸을 작가를 생각하니 더 소중해 보인다
스위스에서 자란 작가 니콜라스 파티는
늘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살아서 그런지 풍경을 대하는 남다른 철학이 있다
색을 선택하는 자유분방함과 사물을 표현하는 틀을 규격화시키지 않아 좋다
스스로도
피카소의 그림을 많이 참고했다고 고백했다
그렇다고 피카소의 큐비즘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파스텔 특유의 재료로
자신만의 성을 굳건히 세웠다
물에 쏟아지는 달빛을 이렇게 예쁘게 그려넣다니
달빚조각이 물에 담겨 조각조각 떠있다
두 손으로 물을 떠내면 내 손안에 달빛이 담길 것 같다
따뜻할까?
이렇게 말랑말랑 보들보들, 조몰락거리고픈 과일이라니
한입 베어 물면 말캉하니 뚝 떼어질 듯하다
늪이란 제목이 붙은 이 작품 앞에선 한동안 서성거렸다
짠딸과 내가 동시에 빠져버린 작품이다
우리
이 늪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자
이 장소는 비밀로 하기로 해
이 늪엔 분명 요정들이 살고 있을 거야
이렇게 반짝반짝 아름다운 늪이라면
매일 나와보고 싶다
나만 간직하고 몰래몰래 꺼내보고 싶은 장소다
이 그림은 미국 서부의 엔텔롭캐년의 색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무뚝뚝한 바위마저도
작가의 눈을 빌리면 이렇게 사랑스럽게 보인다
내가 마지막에 다시 한번 들러 미련을 뚝뚝 떨어뜨리며 떠나기 싫어했던 전시방이 바로 이곳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그린 작품이 걸린 방이다
누가 보아도 금방 계절을 알아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이지만
그의 초현실적인 표현력과 환상적인 색감을 극대화시킨 작품으로 보인다
그냥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작품이 걸린 순서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닌
여름 가을 겨울 봄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어떤 의도가 있었을까 한참 생각해 본다
강물에 비친 그림자가 이렇게 생생하고 사실적이어서 자꾸 옆에서도 보고
고개를 기울여서도 바라보고
위에서 내려다보기도 하면서 감탄한다
작가의 손이나 붓놀림을 상상하며....
이 두 작품의 제목은 아침노을과 저녁노을인데
둘 중 어느 것이 아침이고 저녁인지 상상하고 맞춰보시길......
모네의 작품 <인상>의 한 부분을 가져다 담아놓은 느낌이 든다
전시방을 이렇게 아치형태로 꾸며놓아
시작적인 효과를 주었다
두터운 아치벽에 작품의 컬러가 환상적인 느낌으로 담겨있다
이미 이 아치벽도 하나의 오브제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구름이라는 제목이 붙었는데
나에겐 겹겹이 겹쳐 보이는 우리나라의 산처럼 보인다
물에 반영된 모습에 윤슬까지 반짝이니 눈이 부시다
저 폭포의 물이 시원하다
더위에 지친 올 같은 여름에 위로가 된다
이번 작품전의 특이한 점은
리움미술관에 보관된 고미술품과의 콜라보다
이 작품은 아마도 동굴과 아기의 탯줄을 보관한 백자 태호를 함께 보여주면서
어둠 속의 공간과 어머니의 자궁을 연계시켜
인류의 근원인 동굴의 시간과 한 인간의 시간을 함께 보여주기 위함이다
백자로 만든 태호에는 주로 왕실의 탯줄을 보관했다고 한다
작가의 산을 대하는 자세는
단순하고 전형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
여기에 금동 용두보당을 함께 전시했다
사찰입구에 세워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을 알리는 깃발을 다는 당간을 미니어처처럼 만든 것이다
용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아주 명랑 쾌활하다
어! 이거 나 리움미술관의 고미술관에서 본 적 있는데 하며 기억을 되살린다
짠딸도 맞아 본 적 있어하며 그때 찍어놓은 사진을 찾아낸다
리움의 고미술관엔 현대작가들의 작품전을 보러 갔다가 한 번씩 훑어보고 나오는 장소여서
아마도 눈에 익었을 것이다
이 작품 역시도 리움의 고미술관에서였는지 아님 이건희 컬렉션 전에서였는지
본 적이 있다
겸재 정선이 그린 힘찬 붓놀림이 느껴져 자세히 봤는데
목숨 수(壽)를 표현한 그림이라는 설명을 읽거나 들은 적이 있어 기억에 남았기에 금방 알아봤다
우리의 고미술과 병치해 전시한 니콜라스 파티의 기획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자신의 작품과 함께 전시된 우리의 고미술품에 감상자인 나는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고 있었다
그래서 더 감상의 맛을 더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도슨트를 다운로드해 들으면서 감상하면 다 설명이 나오지만
자신만의 해석을 해 보는 것도 좋다
그림 속에 푹 빠진 짠딸
바쁜 일로 연일 야근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쌓았을 텐데
아름다운 그림 앞에서 얼굴이 환해지는 걸 보니
다 녹여냈나보다
니콜라스 파티의 파스텔화처럼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은 언젠가 소멸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