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웹진 《님Nim》 신인문학상
ㅣ당선작ㅣ
감자에 싹이 나서 이파리에 감자 감자 싹 하나 빼기 일 외 4편
금해현
감자에 하얀 눈이 자란다
온갖 비밀이 같이 자란다
말하고 싶어 말할 수 없어 감자가 썩는다
싹을 도려내고 싶다 반으로 갈라 다 퍼트려 주고 싶다 저 감자 새끼가 그랬다고
묻어 두고 새로운 씨감자가 자라게 둬보자
어디까지 자라는지 보자
몇 알이 자라는지 보자
땅속에 갇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누가 범인이었을까 소문 중에 맞는 소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비밀 안에 진실이 같이 자란지도 모른다 뺄셈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감자의 이야기에 덧셈해서 퍼트려 준다 비밀은 나를 덮어서 머리 위로 이파리가 자란다 사람들은 이파리를 하나하나 뜯어 간다 감자 대신 아파해 준다 썩은 감자는 보이지 않고 새로운 알감자는 잘 자란다 모르는 감자다
감자에 싹이 나서 하나하나 잘 덮어준다 이제 감자는 땅속에 곤히 잘 잔다
감자 감자 싹
컬렉션
-P가 없어지기까지
P에게 선물 받았다 크리스마스 한정 컬렉션 산타클로스 얼굴이 그려진 귀여운 타월 세트 가장 아끼는 컬렉션으로 서랍에 진열된다 사용하지 않고 나의 순위에 담기는 타월 컬렉션 우리의 가닥이 한 올씩 연결된 예쁜 자수가 사이를 그려준다 한 올 빠진다 네가 한 칸 빠진다 타월의 그림이 옅어진 만큼 사이는 멀어진다 언제부터인지 언제부터 사용하던 타월인지 날짜 따위 기록하지 않았기에 기억도 없다 타월의 자수는 다 풀어지고 우리의 사이는 풀리지 못한다 어디부터 엉켜있던 건지 알 수 없다 해지고 헤어지고 타월은 더 이상 예쁘지 않다 더 이상 내 서랍에 장식되지 않는 욕실 바닥 물곰팡이까지 닦자 모든 것들 다 씻어 내버릴 수 있게 더럽고 축축한 기억은 타월이 모두 다 가져가고 자국은 멍이 되어 오래도록 남는다 언제까지 기억할까 P가 없어졌다 닳도록 사용한 탓일까 실오라기가 나오기 시작한 순간 고쳐야 했는데 무언가를 닦아야 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장식한 순간부터 잘못이었을 수도 예쁜데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있다. 아니 가장 쓸모가 있는 존재가 되어있다 추한 것을 많이 닦아 줄 수 있는 것이 되어있다. 창틀의 눌러 붙은 벌레를 문댄다 서랍 속에 가만히 있던 타월이 해지고 해져서
걸레가 되기까지
키링 남친
게이 남친 만들기가 유행이라 네게 친구 하자 했다
해시태그 속에 담긴 자랑이 연결로 만들어 준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같이 예쁘장한 아이는 그냥 웃고 잘 웃고 매일 웃고 가방에 달기 아주 좋다
주렁주렁 너와 관련된 이야기가 같이 달려서 유행을 만들어 준다
드라마 속 영화 속 악인은 항상 선한 인상에 웃고 있다 너와 같이 모든 이야기는 현실에 맞춰서 써진 거야
그런 너, 예쁜 얼굴에 어정쩡한 태도만 보이는 아이
여자보다 이뻐서 인기가 많은 아이 주변에서 아름답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하다는 아이
나는 대문자 I여서 친구를 못 해
가방에만 달아줘
계속 자랑할 거야 가방에만 달기 아까운 액세서리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 애가 여자였으면 하기를 바라는 눈치야 너는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라는 거야 그냥 예쁜 아이로만 살고 싶은 내 키링
너는 만족스러워 했을까
여름이니까
미친 짓을 해도 괜찮지
머리를 아주 짧게 잘라 주세요 투블럭으로
시원해 보이게요
비가 올 때 우산 없이 뛰어들기
한여름에 롯데월드 혼자 가기
자갈치 시장에서 오이소,에 한 번 잡혀보기
나의 여름은 아직 살짝 덜 미쳐서 잊어야 할 이름이 여러 번 튀어나온다 여름에 태어났고 여름에 만나서 여름에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여름을 기다렸다
여름에 미쳐서 여름 향이 가득한 것을 주머니에 채운다
풋사랑에 빠지기 좋은 풋사과
터지기 좋은 레몬 탄산수
열대과일 맛 새콤달콤
나의 여름은 완성되지 못해서 주머니에서 여러 번 삐져나온다 여름은 짧았고 또 길었고 여러 번 찾아왔다, 갔다
견고한 모래성은 여러 번 쌓았다 쏟아진다 우리가 지은 완벽한 성벽
끝까지 잠기지 않은 지퍼처럼 빠져나온다
드르륵 스르륵
나의 여름은 어디에 미치지 못해서 여러 번 잊혀졌다
이제 여름이니까
다시 미쳐도 괜찮겠지
너에게 미쳐도 괜찮겠지
클리오네*
저기 먹이가 있을 것이다 먹지 않을 것이다
나를 천사라 말하는 사람 때문에 다가갈 수 없다
먹지 않으면 된다
착한 아이로 살아남으면 앞으로 네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번만 참으면 된다 이제 가만 유영하는 나를
여기 남은 나를
잊어주면 된다
먹지 않아도 괜찮다
우주를 대신 삼켰다가 뱉어낸다
주변은 빨려든다
내게서 나온 모든 것들은 따라붙고
꼬리가 자꾸 생긴다
먹지 않으면 안 된다
관찰당한다 이름은 여러 번 생겼다 없어진다 나를 여전히 불쌍히 여기는 사람과 욕하는 사람이 여럿 나타난다
먹을 수밖에 없다
나를 가만두지 않는 눈동자 때문에
참으면 된다 유영하던 나는
살고 싶던 나를
비워준다
그만 내가 살고 있던 바다로 남고 싶다고
입속의 이름을 뱉어낸다
* 바다의 요정 또는 천사로 불리는 고둥
ㅣ당선소감ㅣ
“시인이 되려고 하지 말고, 시인으로 살아가세요.”
한 시인께서 해주신 이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살아왔습니다.
'금해현'이라는 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저만의 공간을 만들고, 하루하루 시를 남겨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선 소식을 마주했습니다. 그 순간, 시를 사랑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써 내려가는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고, 감사한 마음이 가장 먼저 밀려왔습니다.
저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행운을 얻고 싶은 마음에 네잎클로버가 놓인 카페에서 원고를 퇴고했고, 숫자 3을 유난히 좋아합니다. 셋째로 태어난 것, 타로에서 숫자 3이 완성을 의미한다는 것, 제3회 웹진《님Nim》 신인상에 당선된 것, 그리고 서른셋에 등단하게 된 것까지. 어쩌면 우연일지 모르지만, 저는 오늘도 그런 의미들을 기쁜 마음으로 하나씩 품어 봅니다.
시를 쓸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따뜻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신 윤은경 교수님과 김완하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저를 가장 많이 성장하게 해주신 성은주 교수님. 제 시가 한 걸음씩 자라날 수 있도록 늘 아낌없는 지도와 용기를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교수님을 존경하는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겠습니다.
처음 제게 시인이라는 꿈을 심어주신 신의대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 덕분입니다.
시 쓰는 즐거움을 알게 해준 '프리시타일' 문우들, 한빛문학회 문우들, 최강 사계 멤버들, 대전문학관에서 만난 인생 선생님들, 신세계아카데미 문우들, 시와정신 문우들 그리고 한남대학교 한국어교육원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제가 절망하고 나약해질 때마다 손을 내밀어 주신 덕분에 다시 일어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한결같이 응원해 준 유정, 지효, 혜림, 채원, 민기. 이 소식을 함께 기뻐해 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사랑하는 우리 가족과 소중한 소금이, 후추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오늘도 살아가고, 또 시를 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부족한 제 시를 믿고 불러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누군가의 마음에도 시가 피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저는 계속해서 시를 써 내려가겠습니다. 그리고 시인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금해현 시인
1993년 대전 출생
한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전공 재학 중
한남대학교 한국어교육원 재직
제3회 웹진《님Nim》신인문학상 당선
ㅣ심사평ㅣ
시적 아우라를 형성하는 재량이 특출
주지하다시피 올해가 『님의 침묵』을 상재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만해 선사의 이 시집은 불가적 불이(不二)의 사상을 연애적 담론으로 시화한 주옥편이라 할 만하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작금의 지구촌에 불화와 반목의 기운이 등등한데 언제 제대로 된 연애를 할려고 하느냐! 스님은 할을 치실 것만 같다. 앞서의 시집 서문에서 선생은 일찍이 이렇게 뇌었다. “님만 님인 것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 우리는, 지구촌 국가와 세계시민들은 과연 그러한 평화의 모음들을 진작하고 있는가, 나로부터 되새기게 된다.
시를 생각하고 쓰고 더불어 시를 살려고 도모하려는 것도 ‘님을 긔룬 것’에 부합한다면 그것은 이 세상의 온갖 갈등과 딜레마와 더불어 참된 님을 이루어가는 일이 아닐까. 그러한 선생의 선각(先覺)이 모두에 배이고 번진 탓일까. 올해 신인상에는 육백 편이 넘는 시편이 경향 각지에서 답지했다. 예심과 본심 끝에 최종 네 분이 심사위원들의 손에 남겨졌다.
먼저 「내 슬픔의 사분의 삼」 外는 우선 활달한 시적 전개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거침없고 시원시원해서 타고난 시적 가창력을 실감케 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단어들을 동원할 때도 그것이 오히려 관습적인 통념에 얽매이지 않게 하는 묘한 재주를 지녔다. 다만 맺고 푸는 시적 흐름 속에 시인만의 개성적 포즈가 좀 더 진한 구체적인 심도를 가지고 파고들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티라노사우루스와 키스하기」 外는 일단 활달한 상상력의 스케일이 전방위적으로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교우하는 재량은 아무나 쉽게 구사하는 건 아니다. 대상 사물과 격의없이 내통하는 눈썰미는 능란한 사교적 정서의 힘으로 분출하는 듯했다. 활달하고 유연한 사고력이 바탕이 된 재능이다. 여기에 구체적인 감각과 직관적인 통찰이 개성적 언어의 결속을 더해주면 언제든 유쾌하고 능란한 시적 개화를 이룰 것을 확신한다. 「동상」 外는 당선작과 끝까지 경합을 벌인 좀 더 아까운 경우이다. 우선 시의 대상을 잘 품고 다지고 비다듬을 줄 알아서 이미 기성의 시품이라고 해도 처지지 않는다. 자기 주변의 무엇을 대하더라도 재기 있고 재치 넘치게 상상과 현실의 감각을 시로 어울려낼 줄 안다. 다만 좀 더 체험의 밀도와 고민의 본질을 다지면 더 수승해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우리는 금해현의 「감자에 싹이 나서 이파리에 감자 감자 싹 하나 빼기 일」 外에 기꺼이 손을 들어주었다. 능란한 말부림보다 우선 대상 사물과 시적 자아가 무리 없이 만나는 지점을 자연스럽고 새뜻하게 포착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사물의 흐름 속에 존재의 흐름을 겪게 하고 외물과 자아가 선호와 갈등을 벌이며 시적 아우라를 형성하는 분위기를 이끄는 재량이 특출하다. 즉 시만이 지닐 수 있는 이야기의 맛과 멋을 구성지게 돋워낼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그 믿음에 모두 표를 모았다. 더 정진하여 좋은 시인이 되길 바란다. 최종 본선작들도 멀지 않아 곧 부름에 이를 만치 만만치 않은 역량이다. 낙심이 있다면 그걸 무기로 반전시키길 성원한다. 다시금 재장구쳐 되새기기를 “긔룬 것은 다 님이다”라는 만해 선사의 말씀이 모두에게 평화와 희망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이용헌 안차애 유종인(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