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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비큐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케니
김영태(오른쪽)
왼쪽 김무옥, 오른쪽 김두한
김무옥
구마적(고희경)
신마적(엄동욱)
하야시
마루오까
이정재
이화룡
임화수
시라소니(이성순)
김춘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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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통에는 주먹이라 하면 이길 자가 없었다는 구마적,
신마적-종로에서 유명한 건들로 이들은 모두 힘없는 자를 괴롭히거나 포악하게 행동하는 등
협객의 길을 포기하고 있어 도둑놈 괴수라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을 포함해 내로라 하는
주먹대장들을 모두 때려 눕히고 종로의 최고 오야붕 자리에 올라선 김두한이었다.
그런데 그가 한 여름날 백색 양복에 까만 넥타이 차림을 땀을 뻘뻘 흘리고 서 있다.
그 사연인 즉 이렇다. 얼마 전 김두한은 부하인 문영철과 길을 가다
무뢰배에 수난을 당하는 세 남녀를 구해준 적이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오빠요 두 여자는 그의 누이였는데, 고마움의 답례로 수박 한 조각 얻어먹은 뒤로
옥양목 저고리에 비로도 치마를 입은 순박한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기어이 한강의 보트놀이를 청한 것이다.
김두한이 뒷골목 암흑가의 주먹계 오야붕인 것을 알면 기겁할게 당연한터라
주변모두에게 입단속을 단단히 시켜두고 나온 터였다.
처남, 처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한 농지거리도 너그럽게 받아넘기며
처음이나 마찬가지인 일상의 기분을 맛보게 되었다.
보트에 내려 근사한 식사라도 대접하려던 계획이었다. 그런데 사람을 통해 연통이 들어왔다.
경기도 경찰국장인 오카와 단게 경무국장의 연락이었다.
문영철을 시켜 집까지 배웅하라 일러놓고 김두한은 아쉬운 마음을 접고 명월관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려는데 눈에 거슬리는 인사가 턱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두한의 눈에서 못마땅 기색이 스친다.
종로경찰서 고등계 주임 미와가 합석해 있었던 것이다.
조선 독립 운동가들을 탄압하고 고문하는 선두에는 형사 ‘미와’가 있었다.
종로경찰서 고등계 주임인 그에게 고문당하지 않은 독립운동가가 없을 정도로
그는 당시 조선의 독립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곧 지옥 그 자체였다.
그는 특히 사상범만 다루었는데 얼마나 악질인지 그에게 한 번 걸린 사람은 거의 반 죽음을 맞이하거나
풀려나더라도 고문으로 입은 상처와 병으로 괴로운 삶을 연명해나갔다.
이를 곁에서 봐왔던 김두한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릴 정도였다.
미와는 김두한이 독립군 사령관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항상 사람을 붙여놓았었다.
그가 압록강 건너 만주로 갈 수 없도록 감시하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기분이 상한 김두한이 미와를 노려 보며 말했다.
“어디서 썩은 갈치 냄새가 난다 했더니.......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온 것 같군요.”
오카와 단게는 너스레를 떨며 그를 자리에 앉힌다.
“하하. 그랬던가...? 어차피 하루 배부르게 먹고 마시자고 만난 자리 아닌가요.
기분 상해 하지 마십시오. 자, 자, 어서 기생들을 들어오라 해라.”
기생들이 따라주는 술을 한 잔 받고는 김두한은 긴장을 풀었다.
그는 다른 간부들의 안부를 물으며 시국의 여러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때 다시 김두한을 신경 쓰이게 한 것은 미와 형사가 떨어뜨린 볼펜.
미와는 김두한이 무슨 이야기를 시작하자 급히 수첩을 꺼내 적으려 하다가 볼펜을 떨어뜨린 것이다.
상 밑으로 들어가 더듬더듬 볼펜을 찾아 다시 자리에 앉는 미와. 김두한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더욱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 나눴다.
미와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모두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동안 제가...”
미와의 볼펜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다시 미와의 볼펜이 바쁘게 움직였다.
김두한은 화가 머리끝 까지 올랐다.
“당신 뭐요? 날 뒤따라다니는 것은 봐줄 수 있습니다만,
지금 내 앞에서 뭘 하는 거요? 당신 상관 되는 사람과 술 먹는 게 무슨 잘못된 일이오?”
“저는 제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김사장이 당신 일을 하는 것처럼, 제게도 일이 있지 않습니까?”
미와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김두한은 맥주병 하나를 깼다.
맥주가 흘러나와 바닥이 흥건해졌고,
미와 눈 앞에 깨진 맥주병이 들어왔다.
깨진 맥주병을 들고 화를 내는 김두한
“네 목숨은 여러 개인가 보지?”
미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보안과장인 야기보노가 김두한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사정했다.
“참게, 김사장, 당신이 참아야하네. 미와, 오늘은 문제 될 일이 없어. 나가도 좋아.”
이 때 미와가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을 닫기 전, 김두한과 눈을 마주쳤을 때, 미와가 웃고 있는 것을 김두한은 확실히 보았다.
김두한은 손에 든 깨진 맥주병을 벽에 던져버렸다.
얼음처럼 얼어붙은 다른 간부들 중 몇은 놀라 자리를 뜨고 몇은 김두한을 달래고 어르며 다시 모임을 계속했다.
모임이 끝나고 부하들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김두한은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는 부하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 명한다. 그리고는 그는 인력거를 잡아탔다.
“남산 드라마센터로 가자.”
그 곳은 미와의 집이다.
인력거에서 내리자마자 다짜고짜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김두한. 부하가 허겁지겁 그의 큰 보폭을 따라 걸어 들어왔다.
미와의 사위와 젖먹이 손주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부엌으로 갔다.
한국인 식모가 있었다.
그녀는 눈치 빠르게도 사태를 파악했는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르켰다.
지하실 반공호.......
김두한은 지하 계단으로 살금살금 내려갔다.
불이 꺼진 지하실, 갑자기 그의 뒤에서 그의 등에 업히듯이 덤빈 누군가가 있었다.
칼을 들고 있던 미와가 김두한을 덥친 것이다.
그러나 칼은 빗나가고 미와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갑자기 바람이 불자 라이터가 꺼지고 그 때 김두한의 다리에 칼이 들어왔다.
김두한이 넘어지고 미와가 그를 덮였다.
그리고 총성!
누군가 쓰러졌다.
스위치를 찾은 부하가 불을 켰다.
미와가 쓰러져있었다.
그는 김두한을 노려보며 말했다.
“더러운 깡패 놈.”
김두한이 그의 배를 가격했다.
“조선은 일본의 속국이다. 미개한 조선을 천황폐하께서...”
김두한이 다시 그의 배를 가격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네가 죽인 목숨들이 널 지옥까지 따라가 괴롭힐 것이다. 더욱 괴롭게 죽이지 못해 유감이다. 잘 가라, 삼륜이.”
그리고 다시 총성!
미와는 지하실 층계에서 낙상해 죽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그간 미와에게 고문당해 반 병신이 되거나 형제를 잃은 조선인들은 그것이 김두한의 일임을 눈치 채고 있었다.
김두한은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어가는 미와를 끌고 남산에 올랐다.
그곳에는 순국선열을 위한 위령탑이 쓸쓸히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고 어둠 속에서 구덩이를 파는
김두한의 그림자가 보이더니 그 안에 시체 한구를 던져 넣고는 서둘러 메워버린다.
미와의 시체를 구덩이에 묻고 메우는 김두한
일그러진 김두한의 얼굴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김두한의 얼굴은 흡사 백정이라 해도 될 만큼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김두한은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위령탑앞에 마주선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결의뿐이었다.
‘나는 백색 테러리스트다.
힘을 통한 멸공 이외에는 위기에 선 조국을 구출할 방법이 없다고 확신하기에 이 무자비한 피의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종로 우미관의 보스 김두한
당시 조선 최고의 주먹이라 불리며 스스로를 협객이라 칭했다.
박인애
김두한의첫사랑
김두한의 결혼식 사진
당시 종로를 휘어잡던 우미관 식구들.. 김두한, 김영태, 김무옥, 신영균, 문영철, 개코등등
김두한이 보스로 있을 당시의 종로우미관
현재의 우미관자리
'어려운 후배에게 선뜻 거금까지' 시신기증후 생 마감
키 160cm. 왜소한 체구. 체격에 딱 어울리는 애칭 ‘종로꼬마’이상욱씨(82)는 장군의 아들 김두한씨와 함께
종로바닥을 누비며 한국인의 기개를 떨쳤다.
종로주먹패의 마지막 협객 이상욱씨가 자신의 시신을 해부실습용으로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박치기 명수 '종로꼬마'
이상욱씨는 젊은 시절 작은키로 인해 ‘종로꼬마’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는 그를 평생따라 다니는 애칭이 됐다.
11살때부터 김두한과 동고동락을 시작한 이씨는 거지생활부터 안해본 일들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했다.
이는 이씨와 김두한씨를 평생 이어주는 끈끈한 줄이 된다.
일제시대 때 우미관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이씨는 행동대장으로 언제나 싸움의 선봉에 있었고
일본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김두한씨가 주먹패를 만들고 종로를 주무대로 활동할수
있었던 것도 이씨의 힘이 지배적.
이씨는 작은키를 최대한 활용하는 신속함을 주무기로 싸움에 나섰다.
중국무술 십팔기에 능란했던 이씨는 기습적으로 상대방의 허리로 파고들어
상대방이 방어로 틈도 없는 찰나에 얼굴을 들이받는 박치기가 그의 장기.
또한 무릎을 밟고 뛰어 올라 작은키를 이용한 박치기도 그가 아니면 흉내낼수 없었다 한다.
소설 ‘장군의 아들’의 작가 홍성유씨는 “종로꼬마는 몸놀림이 재빠르고, 주먹보다 발과 머리를
잘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30년대말 수표교 다리 위에서 혼자서 일본 건달과 학생 10여명을 혼내준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 당시 세인들의 입에 오랫동안 오르내렸다”고 말했다.
홀로 종로남아 후배뒷바라지
이씨는 해방후 김두한씨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뛰어들었을때도 홀로 종로에 남아
동료들과 후배들을 돌볼정도로 의리가 깊었다.
군사정권이 들어선 60년대 주먹생활을 청산하고 전기사업등 여러 가지 사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배들을 친자식이상으로 생각하는 그에게 돈이 생기면 언제나 후배들을 위해서 썼고
이 때문에 가족들은 넉넉한 생활한번 해보지 못했다. 이런 그의 후배사랑은
살아생전 끊임없는 후배들의 발길에서 알 수 있다. 후배들에게는 언제나 그의 존재가 일본인들을 혼내주는
‘종로꼬마’의 모습이었다.
70년 기독교에 귀의한 이씨는 ‘낙화유수’김태련씨, ‘용팔이’김용남씨,
영화 장군의 아들로 유명해진 김동회씨 등과 교류를 계속하며 살길이 막막한 후배들에게
선뜻 큰돈을 내놓아 사업자금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마지막도 멋있게
이씨는 96년 지병인 동맥경화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던중
‘국내 해부실습용 시신이 모자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라는 말을 전해듣고 부인 홍명자씨와 함께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시신기증을 서약했었다.
“사회에 뭔가 뜻있는 일을 남기고 가고 싶다.
의리를 지키며 남을 돕은 것은 김두한과 내가 한 평생의 약속이다.”
이씨는 자신의 시신기증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이씨 시신은 세브란스 병원에 냉장보관됐다가 2001년도 해부실습용으로 쓰인 뒤,
화장을 통해 연세대 납골당에 모셔질 예정이다.
마지막 의리파 주먹 ‘종로꼬마’이상욱씨는 그렇게 멋있게 삶을 마감했다
05-유진산 |
11-고희경-구마적 |
13-김무옥 |
13-선우영빈-하야시 |
14-김영태 |
14-엄동욱-신마적 |
17-이정재 |
18-김두한 |
19-김동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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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임화수 |
23-이상욱-종로꼬마 |
27-유지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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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김춘삼 |
30-김태련-낙화유수 |
마루오카경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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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조일환 |
50-조양은 |
55-김경민-김두한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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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치 깡패 양아치일뿐................ 국수주의자이며, 백색테러주의자....................
민족반역자............ 더러운 이름 세글자..................
? 알 가치도 없는 범죄자에 불과하죠.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 유명한 하야시가 저렇게 생겼군요 ㅎㅎ
하늘가님이 제가 하고 싶은 말 다 해주셨군요.
하여튼 티비가 문젭니다...
잘 정리된 글 감솨^^*
잘봤읍니다. 혹시 쌍칼 아저씨는 자료가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