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락역.
우리나라에서 가장 험하기로 유명한 태백선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태백선의 시발점이자 제천시내의 끝자락에 위치하여,
유류소와 무연탄취급소가 위치한 각종 산업화물의 중추이기도 하다.
비록 화물취급을 하는 것 이외에는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조용한 역이지만,
태백선의 최초 역이라는 상징성만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태백선의 첫번째 정거장인 장락역, 가을이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11월초에 조그만 발자취를 남겨본다.

역의 이름만 본다면 장락동에 있어야함이 마땅하지만,
정작 엉뚱하게도 '고암동'이란 곳에 역이 자리잡고 있다.
제천시내의 북쪽 끄트머리로서 각종 화물산업이 밀집한 곳이다.
도로가 선로변을 따라 쭉쭉 뻗어있어 영월-정선(증산)-태백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차량들이 지나친다.

하지만 도로가 너무 넓게 쭉쭉 뻗은지라 장락역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각종 공장들이 도로변을 따라 드넓게 펼쳐지다 보니,
그 공장들 사이로 자연스레 모습이 숨겨지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건물 크기까지 무척 조그맣다보니...
장락역은 애초부터 승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역은 아닌 것 같다.
역의 위치조차 너무 애매하고...
그렇다고 주변에 대규모의 아파트단지가 있는 것도 아니니..

장락역은 애초부터 승객이 많지 않았던 역이었다.
그래서 이미 오래 전에 매표업무를 중단해버렸고 그 자리를 벽으로 메꾸어놓았다.
맞이방이 있던 자리는 직원의 휴식처로 바뀐지 오래다.
얼마 전부터는 열차조차 모두 통과하기 시작해 시간표마저 떼어놓았는데,
그 이후로부터 장락역 맞이방은 맞이방으로서의 기능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장락역은 참으로 화물이 많은 역이다.
유류소부터 저탄소까지, 우리나라의 각종 산업 물류의 중추를 담당하는 모든 취급소가 몰린 곳이다.
여객취급이 중지된 이후로는 화물열차들이 아예 역 앞을 떡하니 가로막는 경우도 많아졌다.

한 때 석탄이 활기를 띄던 시절, 태백선은 최고의 수입을 거둬들이는 노선이었다.
수많은 무연탄를 비롯해 시멘트와 텅스텐까지 쉴새없이 수송하는 바쁘디 바쁜 화물노선이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석탄산업이 사양화되고 결국은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에 의해,
수많은 탄광이 폐광되었을 뿐더러 텅스텐은 아예 생산을 중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굴곡 깊은 역사를 마치 장락역이 표본처럼 보여주는 것만 같다.

태백선의 첫번째 역인 탓인지, 장락역은 화물에 철저하게 의존한다.
그러나 석탄과 석유를 동시에 취급하는 주요 화물역이지만,
외지인의 입장에서 보는 장락역은 그저 평범한 '간이역'에 불과하다.
주요 화물을 취급하는 역 치고는 주변의 분위기나 너무나 한적하다.

사람 하나 구경하기 힘든 역, 아름드리 산빛과 누런 들빛이 조화를 이루는 곳.
장락역은 간이역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건을 전부 갖추었다.
하지만 석탄, 석유를 동시에 취급하는 화물역이라는 이유로,
직원 숙소까지 위치한 엄연한 '보통역'의 위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역 건너편의 진짜 '장락동'은 2층 이상의 건물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하다.
넓은 들판 너머로 울긋불긋 물든 나무가 수를 놓은 수려한 풍경.
누렇게 색이 바랜 잔디와 흙으로 뒤덮힌 조촐한 승강장.
어설프게 심어진 짜리몽땅한 역목.
딱히 눈에 확 띄는 매력은 없지만 아무리 봐도 질리지는 않는 풍경이다.

하지만 한적한 풍경과는 다르게 장락역은 쉴새없이 석유와 석탄을 운반하고 있다.
바로 저기서 수많은 석유를 실어 충북선, 중앙선의 여러 지역으로 운반하고,
영월, 정선, 태백 등지에서 생산된 석탄을 이 곳으로 운반해와 보관하는 역할도 한다.
전형적인 화물노선, 태백선의 시발점인 만큼 화물에 있어서는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것이다.
비록 주변의 한적한 풍경엔 찬물을 끼얹는 옥의 티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장락역을 지금까지 있게 해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만약 화물이 없었다면 이 곳에 대피선 하나 제대로 있었을지도 의문이며,
이 자리에 새로이 역목이 심어질 수는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외로운 고양이보다야,
그래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보살펴주는 고양이가 낫지 않을까?

장락에서 송학으로 이어지는 철길은 완만한 곡선을 돌며 서서히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곡선이 심한 편도 아니오, 구배가 심한 편도 아니다.
하지만 제천역에서 입석리역에 이르는 구간이 통째로 이설된다.
개통 예정날짜는 2009년.
이 때가 되면 장락과 송학역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외로운 고양이'가 된다.

그렇게 되면 태백선의 첫번째 역이라는 사실조차 잊혀지게 될 것이고,
지금의 선로와 승강장, 역 건물, 화물취급소 모두 서서히 세월 속에 묻혀질 것이다.
사실 제천에서 입석리에 이르는 구간은 태백선에서도 가장 선형이 좋은 구간인데,
왜 굳이 이설하려고 애를 쓰는 것일까?

형식상으로는 제천시내를 가로지르는 것 때문이라고 얘기들을 한다.
실제로 제천-입석리 구간에는 수를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은 건널목이 자리잡고 있다.
허나 이들 중 정말 차량통행이 잦은 건널목은 거의 없으며,
태백선이 제천시내를 가로지르는 것도 아닌 시내 외곽을 뱅뱅 둘러가는 형태이다.

입석리, 쌍용의 시멘트 수송량이 어마어마한 만큼 복선화가 필요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평평한 땅을 직선으로 달리는 길을 놔두고,
굳이 험한 산줄기를 관통하여 좀 더 우회를 하는 길로 옮겨야 할 필요까지는 있는지...
살짝 걱정되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제천시내의 오른쪽 끄트머리를 한가로이 둘러가는 태백선.
저 길을 쭉 따라가면 머지않아 중앙선과 합쳐지면서 '제천역'이란 곳이 나올테다.
몇 년 안에 생을 끝마쳐야 하는 아쉬운 운명이긴 하지만,
장락역 속의 '질리지 않는 매력'만큼은 무수히 그 모습을 발산하게 될 것이다.
첫댓글 마지막 신호기가 꼭 주의신호 같네요... 적색신호인데 색상은 황색이네요~
사진에 찍힌 배경하늘의 색이 정말 곱네요. 꼭 마음에 드는 색조입니다. ^^* 제천에도 다녀가셨었군요... 아무래도 Maximum님은 전국의 모든 철도역을 다 돌아보시는 듯하네요. ^^; 언제 원고를 정리하셔서 '한국의 철도역 기행'같은 책을 내 보셔도 손색없을 듯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