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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모친상을 당했다. 그런가 보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하겠다. 여행기자로서 우연히 대통령 가족의 흔적을 조우했다. 모두 세 번이다. 세 장소 모두 사진이 있는데, 외장하드가 사무실에 있다. 내일 일찍 제주도에 내려가야 해서 사진 없이 몇 자 적는다. 한 피란민 가족의 딱한 사연을, 내가 아는 한 전한다. 나는 이 세 번의 만남을 인연이라고 믿는다. 이 인연을 바탕으로 나는 대통령을 이해한다. 나는 대통령이 쓴 책을 읽은 적이 없다.
장면 1
거제도의 한 허름한 농가. 대통령이 태어난 집이다. 대통령의 부모는 전쟁 중에 내려왔고,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다가 섬 안쪽 마을에 정착했다. 처음에는 변변한 거처를 구하지 못했다. 농가 옆 오두막에서 겨우 비를 피했다.
대통령 어머니가 출산이 임박했다. 집 주인은 오두막 산모에게 제 집의 방 한 칸을 내줬다. 그 방에서 대통령이 태어났고, 100일이 지나자 산모와 아기는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이후 대통령 가족은 거제도에서 7년쯤 살다 부산으로 넘어갔다.
대통령이 태어난 집은 현재 돌아간 집 주인의 아들이 산다. 외부의 출입을 일절 금지하고 있다. 나는 대통령 생가를 보고서 오버 투어리즘에 관한 칼럼을 썼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방문객의 등쌀에 현재 집 주인이 집 앞에 험한 경고문을 써 붙이고 철조망을 둘렀기 때문이다.
칼럼은 까칠했지만, 대통령 생가를 보고 온 마음은 편치 않았다. 정말로 볼품없었기 때문이다. 그 쓰러질 것 같은 농가도 대통령의 집은 아니다. 그 옆의 지금은 흔적도 없는 오두막에서 어린 대통령은 살았다.
장면 2
거제도에서 나온 대통령 가족은 부산 영도에서 살았다. 여행기자로서 나는 부산의 피란민 동네를 각별히 생각한다. 자갈치시장과 부산역을 중심으로 광복동 부평동 보수동 초량동 아미동 감천동, 그리고 다리 건너 영도. 이 일대에 우리 현대사의 아픈 장면이 다 모여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역사가 이 주변에 다 어려 있다.
옛날 피란민은 부산역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다. 지금도 초량동 산복도로에서 부산역에 들어오는 기차가 내려다보인다. 그 시절 피란민들은 기차가 들어오면 역으로 달려 내려갔다. 기차가 도착하면 먹을 게 생기기 때문이었다. 초량동과 부산역 사이에 168계단이 있다. 그 가파른 계단을 피란민은 하루에도 수십 번 오르내렸다.
육지의 피란민은 그나마 형편이 나았다. 영도는, 미처 육지에 터를 잡지 못한 피란민이 떠밀려 정착한 동네다. 육지의 달동네는 이미 만원이었다. 당시만 해도 영도 사람은 줄배를 타고 육지를 드나들었다. 영도에서 배를 타면 자갈치시장이 바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대통령 가족은 부산의 피란민 사회에서도 밑바닥에 있었다.
대통령은 어머니가 연탄 배달을 했다고 말했다. 그 가파른 섬에서 연탄 배달을 해서 먹고 살았다는 건, 영도 피란민 중에서도 어려운 축이었다는 뜻이다. 그래도 대통령은 아버지가 있었다. 가장이 없는 집은 더 처참했다.
영도의 가파른 해안절벽에 사람들이 기대어 살았다. 변소도 제대로 없는 그 벼랑 동네가 지금은 흰여울마을로 불린다. 요즘에는 예쁜 카페도 들어서 인증사진 찍으려는 청춘들로 붐빈다.
그 벼랑 마을의 한 빈집에서 영화를 찍었다. 변호인. 그래, 노무현 대통령의 일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국회의원이었던 대통령이 이 영화를 보고 그렇게 울었다고 한다. 먼저 간 친구가 사무쳤을 것이고, 영도에서의 진저리나는 피란살이가 떠올랐을 것이다.
장면 3
부산시 우암동의 내호냉면은 백 년 역사의 냉면집이다. 이 집에서 부산 밀면이 탄생했다. 내호냉면은 올해 개업 100년을 맞았다. 내호냉면은 함경남도 흥남 내호시장 입구의 ‘동춘면옥’이 원조다. 현재 4대 주인의 증조 외할머니가 1919년 10월 문을 열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부모도 흥남 인근 출신이다. 동춘면옥은 당시 흥남에서 제일 유명한 농마국수(함흥냉면) 집이었다. 대통령의 어머니도 동춘면옥 농마국수를 알고 있었을 터였다.
내호냉면 단골에는 대통령이 있었다. 대통령이 부산에서 변호사를 하던 시절 어머니를 모시고 내호냉면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지금도 내호냉면의 함흥냉면은 이북에서의 맛이 남아있다고, 피란민 어르신들은 입을 모은다.
내호냉면 가족은 1950년 12월 25일 흥남부두에서 미군 수송선을 탔다. 부산항에 도착했는데, 피란민이 너무 많아서 거제도에서 내렸다. 그 배를 탔던 모든 피란민은 처음에 거제도에서 살았다. 대통령의 부모도 그래서 거제도에서 살았다. 어쩌면 대통령의 부모는 내호냉면 가족과 같은 배를 탄 운명이었다.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문득엄니가보고싶다
이런 환경에서 훌륭하게 자란 사람이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을 위해 일 하는 대통령이라는 사실. 전 대통령들과 참 비교되게 진실한 대통령인 건 확실 함.
첫댓글 168계단도 갔었고 영도 흰여울마을도 갔었는데 저런 역사가 있었는 줄 하나도 몰랐어 그냥 변호인 찍은 곳이구나 했지 지금 다시 가면 다르게 보일 거 같다... 진짜 밑바닥부터 올라온 사람이네
사진으로만 봤던 어린 시절의 대통령의 모습이 저 풍경이랑 오버랩 되면서 울컥하게 됨ㅠㅠ 수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고된 일상을 버티고 그 자식들도 굶주림과 핍박을 견디며 살던 시절인데..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라 버티며 살아온 삶은 더 치열했겠지 어린 시절의 대통령이 너무 눈물나도록 아프게 느껴져 지금 이렇게 무거운 무게를 지려고 그토록 인내를 배우게 했으려나........
우와 정말....
이래서 우리같은 서민들 마음을 잘 이해하시는 구나 우리 대통령 자랑스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