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집트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나일강의 풍부한 물에 실려와 강 주변에 퇴적되는 토양은 사람들이 강 둑을 따라서 정착하여 경작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나일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들 중 하나인데 그 길이가 6,760km에 이르고, 중앙아프리카에 있는 루비론쟈에서 시작하여 빅토리아 호수를 거쳐 지중해로 유입됩니다.
고대 이집트 왕국의 영토는 구별된 두 지역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남부 지역이 상이집트(upper Egypt)이고 북부지역이 하이집트(lower Egypt)입니다. 상이집트는 나일강이 시작되는 지역이고 하이집트는 나일강의 하류지역으로 위치상으로는 북부입니다.
고대이집트의 지도
기원전 3000년 초엽부터 나일강을 중심으로 발전한 이 두 지역이 연합되어 하나의 왕국이 세워졌습니다. 기원전 3000-2500년 기간에 고도로 발달된 수준에 이르렀던 이집트 문명은 이후 약 3000년동안 거의 큰 변화를 겪지 않고 유지되었습니다. 물론 이집트 왕국내에서는 왕조의 이동이 있고 국제 상황의 변화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문명의 주요 특색들은 기본적으로 원형을 유지했는데, 기원전 322년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전쟁으로 고대 세계의 대부분 지역이 지각 변동을 겪을 때까지 그 특색을 유지했습니다.
이집트의 왕정제도는 메소포타미아 도시국가들의 왕정제도와 여러 가지 면에서 달랐습니다. 통치권을 가진 왕을 바로(Pharaoh)라는 호칭으로 불렀습니다. 바로는 단순히 신의 대리자이기보다는 인간의 형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신 또는 신적인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집트 왕은 신적인 권위를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전의에 관한 분명한 원칙들을 따라서 나라를 유지하고 통치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앗수르와 바벨론같이 국가가 열강으로 부상하는 것과 함께 다른 도시국가들의 권력의 초점이 때때로 이동하는 반면에 이집트에서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이었습니다. 수도가 바뀔 때에 왕조들이 때때로 바뀌기는 했을지라도 이집트는 본질적으로 단일화된 문화를 가진 하나의 국가로 존속했습니다. 사막과 바다로 이루어진 지형적인 경계들은 이집트가 내적인 통일성을 유지하는 환경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외부의 침략자들을 쉽게 물리치고 자국을 보호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몇 차례 외세에 굴복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패배들은 근본적으로 내부의 분열과 연약함의 결과였습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이 지금은 박물관용이 되었으나 인류 역사의 긴 시간을 지나는 동안 단일한 형태로 가장 오랜 시간 유지된 문화였다고 말하는 것이 정당한 평가입니다.
피라밋
메소포타미아처럼 이집트도 여러 면에서 성경의 세계에 연루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기원전 17세기부터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430년 동안 이집트에서 거주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출애굽이 기원전 1500-1200년 사이에 이루어 진 것으로 보는데, 그 기간에 이집트는 힉소스, 18, 19 왕조가 다스렸습니다. 기원전 20-18세기 12 왕조 때 상하로 나뉜 이집트가 통일되었는데 12왕조 이후 13, 14왕조는 비교적 약세였습니다. 이 틈에 이방 힉소스 왕조가 등장합니다. 힉소스 왕조는 아시아에서 온 이민족 정부입니다. 힉소스 왕조는 원주민의 18왕조 즉 이집트의 신왕조에게 축출됩니다. 기원전 15세기 출애굽설을 받아들인다면 힉소스 왕조가 막 시작할 시기에 외국인 요셉이 관리로 등용되기 쉬웠을 것이고, 총리대신으로 기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왕이 백성의 땅을 사들일 수 있었습니다. 기원전 13세기에 출애굽이 일어났다는 설을 받아들인다 해도 힉소스 왕조는 아시아에서 온 이방인인 이스라엘을 선대하고 번창하는데 일조를 했을 것입니다.
힉소스 왕조는 대부분 가나안에서 온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가나안인이 대거 이동하여 하이집트로 왔는데, 이곳은 이미 상이집트인들이 정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가나안인들이 정권교체를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힉소스 정권은 이집트에 동화되었습니다. 그러자 상이집트에서 힘을 규합한 원주민의 18왕조 즉 이집트의 신왕조에게 축출되었습니다. 신왕조인 18왕조는 특권을 누리던 이스라엘을 경계하고 억압했습니다. 18왕조는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면서 이스라엘을 종으로 부려 먹었습니다. 고통을 주면 이스라엘의 인구가 감소하리라 여겼지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리하여 산파에게 태어나는 이스라엘의 남자아이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때 살아남은 아이 중 한 명이 모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의 지도하에 이집트를 떠났습니다.